신명기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5–11장 · 호렙에서 맺은 언약
하늘의 비를 기다리는 땅
이스라엘이 들어갈 약속의 땅은 좋은 땅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11장에서 모세는 그 땅의 풍요를 설명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곳은 사람이 원하는 때에 물을 댈 수 있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하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문에서는 이 장의 처음에 이스라엘의 눈이 등장합니다. 모세는 백성이 하나님의 큰일을 직접 보았다고 강조합니다(7절). 중간에는 하나님의 눈이 땅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12절). 그리고 후반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 눈 사이에 두라고 명령합니다(18절).
눈으로 본 것을 기억하고, 자신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을 늘 눈앞에 두라는 흐름입니다.
직접 본 사람들에게 주어진 책임
「너희 자녀들이 아니라, 직접 본 너희에게 말하고 있다」
1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오늘 이것을 알아 두어라. 나는 이 일들을 알지도 보지도 못한 너희 자녀들이 아니라, 직접 본 너희에게 말하고 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엄한 가르침과 위대하심, 강한 손과 뻗은 팔을 기억하여라.」신명기 11:2 · 두루새김
모세는 이집트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표징들, 갈대 바다에서 이집트 군대가 멸망한 일,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차례로 언급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 선언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이 모든 큰일을 직접 본 사람들은 바로 너희다.」신명기 11:7 · 두루새김
여기서 모세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실제로 행하신 일을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2절의 「엄한 가르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무사르(מוּסָר)는 가르침과 훈련, 잘못에 대한 징계를 함께 포함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단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반역한 사람들을 심판하신 일까지 언급하므로, 이 말을 단순히 부드러운 가르침이나 처벌 가운데 하나로만 좁힐 수 없습니다.
갈대 바다에서 땅이 입을 벌리는 사건까지
먼저 이집트에서의 표징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파라오와 이집트 땅에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어 이스라엘을 뒤쫓던 이집트 군대를 갈대 바다의 물로 멸하신 일이 나옵니다.
그런데 6절에서 심판의 대상이 바뀝니다.
「르우벤의 후손 엘리압의 아들들인 다탄과 아비람에게 하신 일도 기억하여라. 온 이스라엘이 있는 가운데 땅이 입을 벌려 그들과 그 집안사람들, 그들의 천막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삼켰다.」신명기 11: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내부의 반역에도 무관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앞에서는 바닷물이 이집트 군대를 덮쳤습니다. 이제는 땅이 입을 벌려 반역자들을 삼킵니다. 물과 땅이라는 창조 세계의 요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드러내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목적은 그들이 이제 아무런 책임 없이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 내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했습니다.
이것이 8절의 「그러니」를 설명합니다.
본 것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러니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가 힘을 얻어, 차지하려고 건너가는 그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신명기 11:8 · 두루새김
여기서 「힘을 얻어」라는 표현은 앞에서 이야기한 군사적 강함과만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문맥은 하나님의 명령에 귀 기울이는 일이 이스라엘이 앞으로의 여정을 감당하는 데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보았던 사람들도 그분을 거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보지 못한 다음 세대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모세는 그 대답을 잠시 뒤 자녀 교육에 관한 명령에서 제시합니다. 그러나 먼저 이스라엘이 들어가게 될 땅의 특별한 성격을 설명합니다.
조금 더 깊이
광야 생활이 사십 년 동안 이어졌으므로, 모세의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집트를 떠날 당시의 사건을 성인으로서 직접 경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민수기 14:29–31에 따르면 당시의 성인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광야에서 죽었고, 그들의 자녀들이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말을 듣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무엇을 직접 보았는지에 관한 정확한 진술로 읽기보다는,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거쳐 온 공동체가 다음 세대에 앞서 받은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집트와는 다른 땅
발로 물을 대던 땅
10절은 이스라엘이 들어가게 될 땅을 이집트와 비교합니다.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은 너희가 떠나온 이집트 땅과 다르다. 이집트에서는 씨를 뿌린 뒤 채소밭에 물을 대듯 발로 물을 댔다.」신명기 11:10 · 두루새김
이집트의 농업은 나일강이라는 거대한 물 공급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강물이 넘쳐 땅을 적시고, 필요에 따라 물길을 이용해 농경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발로 물을 댔다」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베라글레카(רֶגֶל)는 글자 그대로 「당신의 발로」라는 뜻입니다. 발로 물길의 흙을 옮겨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모습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고, 발을 이용해 물을 대는 작업이나 사람의 노동으로 물을 옮기는 과정을 넓게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구체적인 물 대는 장치를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물을 대는 노동이 강조되고, 약속의 땅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강조됩니다. 모세가 보여 주는 것은 서로 다른 자연환경과 농업 방식입니다.
하늘의 비를 마시는 땅
「그러나 너희가 차지하려고 건너가는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받아 마시는 땅이다.」신명기 11:11 · 두루새김
모세는 땅을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합니다. 농부는 땅을 갈고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이 마실 물을 하늘에서 내려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이지만, 그 땅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이스라엘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사람은 자신의 노동과 함께 하나님의 돌보심을 계속 필요로 합니다.
한 해 내내 그 땅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12절은 그 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밝힙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돌보시는 땅이다. 한 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늘 그 땅을 눈여겨보신다.」신명기 11:12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의 깊게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원문에서는 하나님의 눈이 늘 그 땅 위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한 해의 시작부터 끝까지」라는 표현은 계속되는 돌보심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앞으로 살아갈 땅을 하나님이 계속 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신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때 내리는 비와 닫힌 하늘
이른 비와 늦은 비
13절에서 모세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오늘 내가 전하는 명령을 귀담아듣고 따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그분을 섬기면,」신명기 11:13 · 두루새김
그다음에는 비와 수확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집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땅에 제때 비를 내려 주실 것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너희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을 거두게 하실 것이다.」신명기 11:14 · 두루새김
이스라엘 땅의 농업 주기에서 이른 비는 건조한 여름 이후 가을 무렵 시작되어 땅을 적시는 비를, 늦은 비는 봄철 곡식이 자라는 데 필요한 마지막 시기의 비를 가리킵니다. 이른 비가 알맞게 내리면 메말랐던 땅이 적셔지고 씨를 뿌려 싹을 틔우기에 좋은 조건이 마련됩니다. 늦은 비는 곡식이 자라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모세가 약속하는 것은 단순히 비의 양이 많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때」 비가 내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비라도 농사에 필요한 시기에 내리지 않으면 좋은 수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계절의 질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로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이 주어집니다. 이 세 가지는 신명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농업 생산물의 대표적인 묶음입니다(신명기 7:13, 12:17).
「너희 가축을 위해 들에 풀이 나게 하실 것이다. 너희도 먹고 배부를 것이다.」신명기 11:15 · 두루새김
비는 밭의 곡식뿐 아니라 들의 풀에도 필요합니다. 그 풀은 다시 가축을 먹이고, 가축은 사람들의 생활을 지탱합니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바라보도록 합니다.
마음이 돌아서면 하늘도 닫힌다
그런데 풍요에 대한 약속 직후에 경고가 등장합니다.
「마음이 꾐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나님에게서 돌아서서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그들에게 절하지 마라.」신명기 11:16 · 두루새김
「꾐에 넘어가지 않도록」은 마음이 유혹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는 일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에게서 돌아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행동입니다.
가나안의 종교 환경에서는 비와 풍요를 신들의 활동과 연결하는 신앙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폭풍과 비에 관련된 바알 숭배가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풍요를 얻으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 경고를 이해하는 한 가지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너희가 다른 신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분노하여 하늘을 닫으실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고 땅에서는 곡식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그 좋은 땅에서 곧 멸망할 것이다.」신명기 11:17 · 두루새김
우상숭배를 통해 풍요를 얻으려는 선택이 오히려 풍요를 잃게 만드는 역설이 제시됩니다. 11절에서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받아 마시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늘이 닫히면 땅은 마실 물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리는 일은 그들이 살아가는 땅의 생명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모든 가뭄을 불순종의 결과로 볼 수 있는가
17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안에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모든 시대의 모든 가뭄이 그 지역 사람들의 특정한 죄 때문에 일어났다는 보편적인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경의 다른 본문들은 고난과 재난을 언제나 개인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욥기에서 의로운 욥이 겪는 고난은 바로 그런 단순한 설명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원문의 14–15절에서는 「내가」라는 하나님의 일인칭 말씀이 등장합니다. 모세의 연설 속에 직접적인 도입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지는 형태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여호와야훼께서」 비를 내려 주시고 풀이 나게 하신다는 말로 옮겼습니다. 원문에서는 13절의 명령을 가리키는 일인칭 표현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된다고 읽을 여지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본문의 중심은 비와 수확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자녀에게 가르치라
기억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가
18절은 앞의 경고에 대한 응답처럼 시작합니다.
「그러니 나의 이 말들을 너희 마음과 온 삶에 새겨라. 그 말들을 표징으로 손에 매고, 이마에 매는 띠로 삼아라.」신명기 11:18 · 두루새김
여기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 일어나는 곳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마음은 생각과 판단, 의지와 결단이 이루어지는 내면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이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이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마음에 새기라는 명령만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품으며, 자기 손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명령을 눈과 손에 말씀을 늘 간직하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고, 실제로 몸에 표지를 붙이는 행위까지 포함한 명령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종교 의식의 순간에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고 보고 행동하는 삶 전체에 깊이 새겨져야 합니다.
직접 보지 못한 자녀들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19절은 이 장의 앞부분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그 말들을 너희 자녀에게 가르쳐라.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그 말들을 이야기하여라.」신명기 11:19 · 두루새김
2절에서 모세는 지금 자기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일을 직접 경험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그 모든 일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모세의 대답은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라는 표현은 사람이 하루를 보내는 여러 상황을 아우릅니다. 집 안과 집 밖, 쉬는 때와 움직이는 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과 마치는 시간이 모두 포함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일상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문법적으로 누가 말하는지를 명시하지 않는 부정사 형태이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이야기한다는 뜻으로도, 자녀가 스스로 그 말씀을 말하도록 가르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교육의 목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음 세대의 언어와 생각, 삶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직접 본 세대의 책임은 자신이 경험한 일을 자랑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일을 보지 못한 세대도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명기 11장에서 기억이 교육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집 문 양옆의 기둥과 성문에 쓰라
20절은 가르침의 범위를 다시 넓힙니다.
「너희 집 문 양옆의 기둥과 성문에도 그 말들을 써 두어라.」신명기 11:20 · 두루새김
집 문 양옆의 기둥은 집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경계에 있습니다. 성문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람들의 왕래뿐 아니라 재판과 거래, 공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룻기 4:1–12에서는 보아스가 성문에 앉아 장로들과 함께 집안의 재산을 되찾는 문제를 처리합니다.
따라서 집 문 양옆의 기둥과 성문에 말씀을 기록하라는 명령은 개인의 집과 공동체의 공적 공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되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몸과 가정, 공동체의 공간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21절은 그 목적을 밝힙니다.
「그러면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이 오래 살 것이다. 하늘이 땅 위에 있는 날들만큼 오래 살 것이다.」신명기 11:21 · 두루새김
「하늘이 땅 위에 있는 날들만큼」이라는 말은 오래 이어짐을 강조하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앞에서는 하늘에서 비가 내려 땅이 살아갔습니다. 이제는 하늘이 땅 위에 있는 날들만큼 오래 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모세가 바라는 것은 지금의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그 땅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후대 유대교에서는 이러한 명령을 실천하면서 성경 구절을 넣은 작은 상자를 팔과 머리에 매는 테필린 전통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의 본문만으로 그러한 후대 물품의 구체적인 형태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발이 밟는 땅과 하나님을 굳게 붙드는 삶
하나님을 굳게 붙들라
22절에서 모세는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라고 강조합니다.
「너희가 내가 전하는 이 모든 명령을 성실히 지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사랑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굳게 붙들면,」신명기 11:22 · 두루새김
여기서 「굳게 붙들면」이라는 표현은 신명기 10:20에도 등장하는 말과 연결됩니다.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분과 맺은 관계에 충실하게 머무는 삶을 뜻합니다.
16절에서는 마음이 꾐에 넘어가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경계했습니다. 이제 22절에서는 하나님을 굳게 붙들라고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단단히 맺어진 채 머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다는 것은 여러 규칙을 겉으로 따르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속해 있고 누구를 신뢰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발이 밟는 모든 곳
23–25절에서 모세는 다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문제로 돌아옵니다.
「너희 발이 밟는 곳은 모두 너희 것이 될 것이다. 광야에서 레바논까지, 유프라테스강에서 서쪽 바다까지가 너희 땅이 될 것이다.」신명기 11:24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여호수아 1:3에서도 반복됩니다. 여기서 발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그 땅에 들어가 움직이며 차지하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23절은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25절은 하나님께서 그 땅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땅을 차지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과 행동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24절은 그 땅의 범위를 광야와 레바논, 유프라테스강과 서쪽 바다까지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서쪽 바다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경계는 출애굽기 23:31과 여호수아 1:4의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다만 이 구절을 이스라엘이 역사의 어느 시점에 그 모든 지역을 실제로 같은 방식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앞으로 차지할 땅의 범위를 약속의 말로 보여 줍니다.
또한 이 약속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살아온 특정한 역사 안에서 주어졌습니다. 후대의 어떤 국가나 공동체가 자신들의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는 데 두루 쓸 수 있는 허가의 말은 아닙니다.
약속의 땅은 그들의 승리나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는 백성에게 요구되는 충실한 응답도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복과 저주를 놓습니다
땅에 들어가는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26절에서 모세의 말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보아라. 오늘 내가 너희 앞에 복과 저주를 놓는다.」신명기 11:26 · 두루새김
모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언젠가 결정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땅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현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내가 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르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오늘 내가 명령하는 길에서 벗어나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라가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신명기 11:27–28 · 두루새김
두 구절에서 중요한 말은 「따르면」과 「따르지 않고」입니다. 원문에서는 듣는다는 동사로 이 두 길을 구별합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보는 일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직접 보았다고 해서 반드시 듣고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광야에서 이미 그런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에게 다시 선택을 제시합니다.
복과 저주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 문맥에서 복과 저주는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 빌어 주는 축복이나 개인적인 불행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하게 살아갈 때 누리는 생명과 풍요, 그리고 그 언약을 거역할 때 겪는 상실과 심판을 가리킵니다. 이 의미는 신명기 28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펼쳐집니다. 그곳에서는 농사와 가정, 사회생활과 국가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복과 저주의 결과가 길게 나열됩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내리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힘으로 이루어 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라는 요구가 주어집니다.
그들이 책임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일입니다.
두 산에 새겨질 선택
그리짐산과 에발산
29절에서 모세는 복과 저주를 특정한 장소에 연결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가 차지할 땅으로 너희를 데려가시면, 그리짐산에서 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여라.」신명기 11:29 · 두루새김
그리짐산과 에발산은 요단강 서쪽, 세겜 지역에 있는 두 산입니다. 그리짐산은 세겜의 남쪽에, 에발산은 북쪽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그 땅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동체가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신명기 27:11–13에서는 그리짐산에 서서 백성을 축복할 지파들과 에발산에 서서 저주를 선포할 지파들이 구체적으로 지정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8:30–35에서는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제단을 쌓고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며, 온 이스라엘 앞에서 복과 저주의 말씀을 읽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차지한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됩니다.
모레의 나무 곁이라는 지리적 기억
30절은 두 산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길갈 맞은편 모레의 큰 나무들 곁」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는 세겜의 모레 나무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자손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6–7).
아브라함에게는 미래의 자손과 땅에 관한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자손은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갈 책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땅을 차지하고 거기서 살 것입니다
31절은 다시 요단강을 언급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하려고 요단강을 건너갈 것이다. 너희는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서 살 것이다.」신명기 11:31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11장의 마지막 문장은 또 하나의 명령입니다.
「오늘 내가 너희 앞에 제시하는 모든 규정과 법을 성실히 지켜라.」신명기 11:32 · 두루새김
이것은 신명기의 다음 부분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신명기 12장부터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실제로 어떻게 예배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들이 길게 제시됩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는 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이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왜 이 두 산이 선택되었는지 본문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한쪽 산이 더 비옥하고 다른 쪽 산이 더 메말랐기 때문이라는 식의 상징적 설명도 제안할 수 있지만, 이 구절만으로 그런 이유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길갈이라는 지명은 구약에서 여러 장소를 가리킬 수 있으며, 이 구절의 길갈이 정확히 어느 곳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해 지는 서쪽으로 가는 길 너머」라는 표현도 어느 길을 기준으로 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비를 기다리는 땅 위에 놓인 두 산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현재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이 미래의 세대에도 전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의 비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나 그 비를 받아 마시는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맡겨진 응답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저편에는 하늘의 비를 기다리는 산과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 안에는 복과 저주를 선포할 두 산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백성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