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5–11장 · 호렙에서 맺은 언약
새 돌판과 바뀌어야 할 마음
하나님께서 언약의 돌판을 다시 써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모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에게 마음을 바꾸라고 명령할까요?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습니다. 모세는 언약의 돌판을 깨뜨렸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백성을 위해 간청했습니다. 그 뒤 하나님은 새로운 돌판에 처음과 같은 말씀을 다시 기록하셨습니다.
돌판은 새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야 할 백성에게는 여전히 바뀌어야 할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같은 말씀을 다시 쓰셨다
새로운 돌판, 달라지지 않은 말씀
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때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두 개를 깎아서 산으로 내게 올라오너라. 나무 상자도 만들어라.』」신명기 10:1 · 두루새김
이 말씀은 깨어진 언약의 돌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무엇을 쓰실지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깨뜨린 처음 돌판에 있던 말씀을 내가 새 돌판에 쓰겠다. 너는 그 돌판들을 상자 안에 넣어라.』」신명기 10: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어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의 실패에 맞추어 언약의 요구를 낮추시거나, 불순종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처음 주셨던 말씀을 다시 주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처음과 같이 그 돌판에 열 가지 말씀을 쓰셨다. 너희가 모였던 날, 그 산의 불 속에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돌판들을 내게 주셨다.」신명기 10:4 · 두루새김
「열 가지 말씀」은 우리가 흔히 십계명이라고 부르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본문은 그것이 「너희가 모였던 날」, 곧 이스라엘이 호렙에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과 같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신명기 5:4–22).
하나님의 용서는 그분의 말씀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용서는 과거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이 본문에서 용서는 잘못이 있었음에도 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길이 열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돌판을 궤 안에 넣으라는 명령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판을 다시 받으라고만 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넣어 둘 나무 상자도 만들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아카시아나무로 상자를 만들고 돌판을 깎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나는 몸을 돌려 산에서 내려와,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만든 상자에 돌판들을 넣었다. 그 돌판들은 지금도 거기에 있다.」신명기 10:5 · 두루새김
앞서 돌판은 백성의 눈앞에서 깨졌습니다. 이제 새로운 돌판은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깨진 돌판과 보관된 돌판의 대조는 언약의 회복을 눈에 보이게 합니다.
그런데 이 상자는 단순한 보관함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출애굽기 25:10–22에서는 언약의 증언을 담는 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만나시고 말씀하시는 장소와 연결됩니다. 신명기 10장은 그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돌판을 상자 안에 두었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의 공동체 생활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다시 그 말씀과 함께 길을 가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출애굽기 37:1은 브살렐이 궤를 만들었다고 기록하는 반면, 여기서는 모세가 자신이 상자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두 기록은 만든 사람을 서로 다르게 표현합니다. 모세가 전체 제작을 이끌었다는 뜻으로 두 기록을 맞추어 읽을 수 있지만, 신명기 10장은 만드는 과정의 세부 사항을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론은 죽었지만 섬김은 계속되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여행 기록
6절에 이르면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이 갑자기 바뀝니다.
앞에서는 모세가 자신이 경험한 일을 일인칭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행 경로를 삼인칭으로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브에롯 브네 야아칸에서 출발하여 모세라로 갔다. 그곳에서 아론이 죽어 묻혔고, 그의 아들 엘아자르가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 일을 맡았다.」신명기 10:6 · 두루새김
아론은 금송아지 사건에 깊이 얽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가 끝났을 때 제사장직까지 함께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특정 지도자 한 사람이 살아 있는지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아론에게 주어졌던 제사장의 일은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레위에게는 왜 상속 재산이 없는가
8절은 레위 지파가 맡은 일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때 여호와야훼께서는 레위 지파를 따로 뽑아 여호와야훼의 언약궤를 메게 하셨다. 또 여호와야훼 앞에 서서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 복을 빌게 하셨다. 그들은 오늘까지 그 일을 맡고 있다.」신명기 10:8 · 두루새김
앞서 소개된 상자가 이제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주신 언약의 말씀은 상자에 보관되었고, 레위 지파는 그 언약궤를 메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과 달리 나누어 받을 땅의 몫이 없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몫이시다.」신명기 10:9 · 두루새김
여기서 「나누어 받을 땅의 몫」은 약속의 땅을 다른 지파들처럼 나누어 받는 몫을 가리킵니다. 레위 사람에게 어떤 주거 공간이나 물질적 소유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민수기 35:1–8에는 레위 사람들을 위한 성읍과 가축을 먹일 풀밭을 제공하라는 규정도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몫이시다」라는 말은 레위 지파가 먹고살기 위해 물질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명기 18:1–8은 그들이 제물과 공동체가 제공하는 몫을 통해 생활하도록 규정합니다. 다른 지파들의 몫은 나누어 받은 땅으로 나타나지만, 레위의 특별한 몫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그분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땅을 소유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는 다른 지파와는 다른 몫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삶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은 잠시 뒤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과 남편을 잃은 여자들, 함께 사는 외국인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설명하는 부분과 함께 읽을 때 더욱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단순히 자기 가족과 자기 땅이 잘되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기록이 바로 이 자리에 등장하는 이유는 본문에서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행에 관한 별도의 회상이 끼어든 것으로 볼 수 있고, 언약궤를 보관하고 메는 책임을 맡은 레위 지파의 역할을 소개하기 위한 전환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 10:6은 아론이 모세라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반면 민수기 20:22–29와 33:38–39는 호르 산을 아론이 죽은 장소로 기록합니다. 또한 민수기 33:30–33에서는 모세롯, 브네 야아칸, 호르 학깃갓, 야트바타가 신명기와는 다른 순서로 나타납니다. 모세라와 모세롯이 같은 지역을 가리키고 호르 산이 그 안에 있었다는 설명이나, 이스라엘이 같은 장소들을 다시 방문했다는 설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만으로 그렇게 여행 경로를 다시 짜 맞추어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길을 떠나라고 하셨다
멸망하지 않은 이유
10절에서 모세는 다시 산 위에서의 경험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처음처럼 사십 일 밤낮을 산에 머물렀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때에도 내 말을 들어 주셨고, 너희를 멸하려 하지 않으셨다.」신명기 10:10 · 두루새김
이 말은 앞에서 깨졌던 돌판이 다시 주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밝힙니다. 특히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멸하지 않으셨다는 결과뿐 아니라, 그들을 멸하려는 뜻을 갖지 않으셨다는 점을 표현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백성을 앞장서 이끌며 길을 떠나라. 그들이 들어가서,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을 차지하게 하여라.』」신명기 10:11 · 두루새김
이것은 단지 죄에 대한 형벌을 면했다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이스라엘의 여정이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은 여전히 그들 앞에 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거슬러 한 일은 심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기회를 얻은 백성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두려워하고 사랑하라는 하나의 요구
「이제 이스라엘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섬기며,」신명기 10:12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하셨는지가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가 중심이 됩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요구가 다섯 가지나 나열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따로 떨어진 종교적 의무라기보다 하나님과 맺은 하나의 관계를 여러 방향에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분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삶의 실제 방향을 그분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과의 관계를 마음의 중심에 두는 것이고, 섬기며 명령을 지킨다는 것은 그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사랑해야 할 하나님은 그들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십니다. 그분은 경외해야 할 분이십니다. 동시에 그들이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 하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분은 사랑하고 가까이 섬겨야 할 분이십니다.
이러한 관계의 깊이를 모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신명기 6:5에서 이미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서는 두려움과 사랑, 섬김과 순종이 함께 제시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삶의 한 부분에서 행하는 종교적 행동만이 아닙니다.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유익을 위한 명령인가
13절 끝에는 작은 표현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여호와야훼의 명령과 규정을 지키는 것뿐이다. 너희가 잘되게 하시려는 것이다.」신명기 10:13 · 두루새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그 순종을 하나님 자신에게 부족한 무엇을 채우는 일로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모든 명령이 당장 편안한 삶이나 물질적 성공을 보장한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이미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웠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잘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향과 관련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 안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이 점은 곧 이어지는 17–19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지키고 함께 사는 외국인을 사랑하는 일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까
14절에서 모세는 갑자기 시선을 우주 전체로 넓힙니다.
「보아라.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것이다.」신명기 10:14 · 두루새김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은 히브리어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을 함께 언급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를 강조합니다.
「그런데도 여호와야훼께서는 오직 너희 조상들에게 마음을 두시고 그들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자손인 너희를 모든 민족 가운데서 선택하셨다. 오늘 너희가 바로 그 백성이다.」신명기 10:15 · 두루새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까요?
본문의 대답은 하나님께 부족한 것이 있었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마음을 두시고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그들이 하나님께 다른 민족들이 줄 수 없는 무엇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하십니다. 그런데도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의 자손을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이스라엘에게 부족한 자격을 보충해 주는 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신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자신을 높이기보다 자신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16절의 명령이 등장합니다.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
몸의 표지가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니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는 고집을 부리지 마라.」신명기 10:16 · 두루새김
이 구절의 「그러니」는 앞의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자랑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선택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들의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할례는 창세기 17:9–14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언약의 표지로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몸에 그 표지를 지닌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몸에 새겨진 표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도 잘라 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표지가 있어도 마음이 하나님께 굳게 닫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비유입니다. 「더는 고집을 부리지 마라」는 원문에서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말라는 표현을 옮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자기 방향을 고집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9장에서 이스라엘은 바로 그런 백성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분의 길에서 벗어났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고집을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몸의 할례와 마음의 할례는 여기서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몸에 지닌 언약의 표지가 그에 걸맞은 마음과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돌판은 새로워졌지만 마음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은 깨진 돌판을 대신할 새 돌판을 주셨습니다. 처음의 말씀도 다시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을 다시 기록하셨다는 사실만으로 백성의 고집스러운 마음까지 자동으로 달라졌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뒤 인간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응답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다시 이어 주셨으니 이제 백성은 그분의 말씀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는 바로 다음 구절에서 밝혀집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의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에 해당하는 자리에서, 원문은 히브리어 오를라트 레바브켐, 곧 마음의 포피를 잘라 내라고 말합니다. 남성의 몸에 행하는 할례를 마음에 적용한 표현입니다. 신명기 30:6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백성과 그 자손들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시어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0장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고, 3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할례를 행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두 본문은 강조점이 다릅니다. 하나는 백성의 응답을 요구하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시는 일을 바라봅니다. 둘을 무조건 같은 뜻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은 누구의 권리를 지켜 주시는가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
17절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힘 있게 선언합니다.
「너희가 더는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신들의 하나님이시며 주인들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위대하고 강하며 두려운 하나님이시다. 사람을 가려 편들지 않으시고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신명기 10:17 · 두루새김
「신들의 하나님」과 「주인들의 주인」은 여호와야훼께서 그 무엇보다 높으신 분임을 표현합니다. 이 문맥에서 강조되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비할 데 없는 권위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이점이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호의를 얻거나 선물을 바치는 일이 판결과 처분에 영향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가려 편들지 않으시고」(נָשָׂ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글자 그대로 옮기면 「얼굴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신분이나 관계 때문에 부당하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판결을 무엇인가를 바치는 행위로 뒤틀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16:19에서도 재판에서 사람을 편들거나 뇌물을 받지 말라는 명령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시는 일이 이스라엘의 재판에서도 금지되는 것입니다.
선택하시는 하나님과 편들지 않으시는 하나님
두 표현은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룹니다.
15절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사랑을 두시고 그 자손과 언약 관계를 맺으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반면 17절은 하나님께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실 때 신분이나 관계, 뇌물에 따라 불공정하게 행동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는 것이 곧 그 관계에 속한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해도 불공정하게 편들어 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지만, 금송아지를 만든 그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의 지도자인 아론도 심판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선택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은 아모스 3:2에서도 매우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만을 특별히 아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특별한 관계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이 다른 사람보다 본래 더 가치 있거나 언제나 더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뇌물과 신분에 따라 판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사람들
「그분은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과 남편을 잃은 여자들의 권리를 지켜 주시며, 함께 사는 외국인을 사랑하여 먹을 것과 옷을 주신다.」신명기 10:18 · 두루새김
이 자리에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사회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통해 보여 줍니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과 남편을 잃은 여자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와 생계를 이어 갈 바탕을 잃기 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함께 사는 외국인도 비슷한 어려움에 놓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외국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르(גֵּר)는 자기가 속했던 공동체를 떠나 다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단순히 잠시 방문한 손님과는 구별되며, 이스라엘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이나 친족 관계의 보호를 충분히 누리지 못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등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똑같은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권리를 지키고 생계를 유지하는 데 특별히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었다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이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정의를 행하시는 데까지 이릅니다.
하나님께서 공정하시다는 것은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언제나 겉으로 똑같이 대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지 않게 하신다는 뜻까지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정함을 본받으면서 힘이 부족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사랑은 먹을 것과 옷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함께 사는 외국인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막연한 말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먹을 것과 옷이라는 구체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먹을 것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을, 옷은 몸을 가리고 보호하는 기본적인 필요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할 때 본문이 선택한 것은 화려한 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마음을 두어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을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선택받은 이스라엘에게만 머무르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함께 사는 외국인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백성이 그분을 닮아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너희도 함께 사는 외국인을 사랑하여라
19절은 앞의 하나님의 행동을 곧바로 이스라엘의 명령으로 바꿉니다.
「너희도 함께 사는 외국인을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신명기 10:19 · 두루새김
여기서는 사랑의 명령에 두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함께 사는 외국인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자신들이 과거에 외국인으로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과거를 단지 자랑스러운 출애굽의 역사로 기억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어떤 처지로 살았는지도 기억하게 합니다. 그들의 조상은 한때 자기 땅을 떠나 이집트에 내려가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후손이 많아졌지만, 결국 억압과 종살이를 겪었습니다(출애굽기 1:8–14).
그들은 과거에 억압받았으므로 이제 힘을 얻었을 때 다른 사람을 억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자신들이 낯선 땅에서 살아야 했던 경험을 기억하며, 자기들 가운데 살아가는 낯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2:21과도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외국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함께 사는 외국인을 학대하거나 억압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10장은 그 요구를 한층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억압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9:33–34에서는 이 명령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사는 외국인을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대하고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 본문들을 함께 읽으면 함께 사는 외국인에 대한 사랑이 단순한 친절한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삶의 조건을 보장할 것인가와 관련된 요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함께 사는 외국인을 향한 사랑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12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 19절에서는 함께 사는 외국인을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라는 명령은 그분이 실제로 하시는 일을 본받으라는 요구로 이어집니다.
원문에서 마음의 포피를 잘라 낸다고 표현한 것은 단지 하나님에 대한 마음속 감정을 새롭게 하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 공동체 안에서 힘이 부족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지는 일입니다.
여호와야훼를 굳게 붙들라
하나님을 향한 관계로 돌아오다
20절에서 모세는 다시 하나님을 향한 명령으로 돌아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여라.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굳게 붙들며,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여라.」신명기 10:20 · 두루새김
이 표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르거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말고, 그분과 맺은 관계에 충실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여라」라는 명령도 이러한 충성의 문맥에 있습니다. 맹세가 필요할 때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일은 그분을 참된 권위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아무 일에나 맹세를 자주 하라는 요구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20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높이는 마음과 섬김, 충성과 신뢰를 하나로 묶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찬양할 분이시다
21절은 그 관계를 더욱 깊이 설명합니다.
「그분은 너희가 찬양할 분이시며 너희 하나님이시다. 너희가 직접 본 이 크고 두려운 일들을 너희를 위해 하신 분이시다.」신명기 10:21 · 두루새김
「너희가 찬양할 분」(תְּהִלָּה)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원문의 표현은 문맥에 따라 이스라엘의 자랑이나 영광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강조점은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이 끝내 높여야 할 대상은 자신들의 힘이나 성취가 아니라 여호와야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경험한 출애굽과 광야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돌보심을 보여 주는 역사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그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고백이면서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기억입니다.
칠십 명에서 하늘의 별들처럼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로 내려갔을 때는 칠십 명이었다. 그런데 이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수를 하늘의 별들처럼 많게 하셨다.」신명기 10:22 · 두루새김
이 말은 창세기 46:27과 출애굽기 1:5에 기록된 야곱 가족의 이집트 이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센 수에 따르면 이집트에 내려간 야곱의 가족은 칠십 명이었습니다.
「하늘의 별들처럼」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15:5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바라보고 별들을 셀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며 그의 자손이 그와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0:22는 그 약속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많아진 것은 하나님의 행동으로 설명됩니다.
이것은 14–15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마음을 두셨다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그분은 하늘의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며, 작은 가족을 별처럼 많은 백성으로 자라게 하신 분입니다.
하늘의 별들과 함께 사는 외국인의 먹을 것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소유하신다는 사실과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돌보신다는 사실이 한 장 안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판에 처음과 같은 말씀을 다시 쓰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받은 백성은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이 자기들 가운데 살아가는 낯선 사람에게까지 이르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다시 주신 말씀을 받아 든 백성은 자기들의 마음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 자신의 수를 자랑하기 전에, 자신들의 조상이 겨우 칠십 명으로 이집트에 내려갔던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때 낯선 땅에 의지해 살아야 했던 작은 가족이, 이제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큰 백성이 되었습니다.
신명기 10장의 마지막에는 하늘의 별들처럼 많아진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그 많은 백성이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들의 수가 얼마나 커졌는가만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외국인에게도 먹을 것과 옷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의 별들을 헤아릴 수 없게 하신 하나님은 그 외국인의 필요도 아시는 분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