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5–11장 · 호렙에서 맺은 언약

그 땅을 차지할 자격이 없는 백성

이스라엘은 이제 요단강을 건너려 합니다. 그들 앞에는 자신들보다 강한 민족들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들이 있습니다. 누구도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이 적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적을 물리친 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를 더 깊이 염려합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승리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들려올 말을 경계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면, 사람은 그 승리를 자신이 옳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이 얼마나 용감했는지, 얼마나 충실했는지가 아닙니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으며, 여러 차례 멸망의 위기에 놓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땅을 차지하기 직전에 이토록 부끄러운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것일까요?

신명기 9장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를 말하기에 앞서, 그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79장 본문 읽기 →

아낙 자손보다 먼저 건너가시는 분

신명기 9:1–3 본문 →

누가 그들 앞에 맞서 설 수 있겠는가

모세는 1절에서 이스라엘을 다시 부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는 오늘 요단강을 건너,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려 한다. 그곳에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큰 성읍들이 있다.」신명기 9:1 · 두루새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성벽」은 상대의 방어 시설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보이는지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신명기 1:28에서 이미 등장했습니다.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은 자신들보다 몸집이 크고 키가 큰 백성과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당시에는 그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때의 표현을 다시 사용합니다.

「그곳 백성은 몸집이 크고 키가 큰 아낙 자손들이다. 너희도 그들을 알고, 『누가 아낙 자손들에게 맞설 수 있겠는가?』 하는 말도 들었다.」신명기 9:2 · 두루새김

아낙 자손은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위협적인 존재로 기억되었습니다. 민수기 13:28, 32–33에서도 정탐꾼들은 그 땅 주민들이 크고 강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낙 자손을 언급합니다. 그들의 보고는 백성의 두려움을 더욱 키웠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오래된 두려움을 다시 불러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대답을 제시합니다.

「오늘 너희는 이것을 알아라. 너희보다 앞서 건너가시는 분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이시며, 그분은 집어삼키는 불이시다. 그분이 그들을 멸하시고 너희 앞에서 굴복시키실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몰아내고 빠르게 멸망시킬 것이다.」신명기 9:3 · 두루새김

1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간다고 했습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앞서 건너가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강한 적을 마주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바꾸는 것은 적의 크기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바라보아야 할 대상입니다.

이스라엘도 실제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이 가능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행동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집어삼키는 불이라는 표현

하나님을 「집어삼키는 불」이라고 부르는 표현은 신명기 4:24에도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문맥에서 사용됩니다.

9장에서는 그 표현이 이스라엘 앞에 있는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잠시 뒤 모세가 들려주는 호렙의 사건을 생각하면 이 표현에는 더욱 엄중한 울림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적을 심판하시는 불이시지만, 이스라엘이 반역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무조건 눈을 감아 주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실제로 8절에서 모세는 호렙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3절의 약속은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니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승리가 곧 의로움의 증거는 아니다

신명기 9:4–6 본문 →

하나님께서 도우셨으니 우리가 옳은 것일까

모세는 이스라엘이 승리한 뒤 마음속으로 할 수 있는 말을 미리 막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실 때, 마음속으로 『우리의 의로움 때문에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와 이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고 말하지 마라.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시는 것은 그 민족들이 악하기 때문이다.」신명기 9:4 · 두루새김

이 생각은 겉으로 보면 매우 신앙적인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승리의 이유를 어디에서 찾는가에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셨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으니,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결론짓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추론을 거부합니다.

「너희가 들어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는 것은 너희가 의롭거나 너희 마음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시는 것은 그 민족들이 악하기 때문이다. 또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다.」신명기 9:5 · 두루새김

4–6절에서는 「의로움」, 「의롭거나」, 「의롭기」라는 말로 같은 주장을 세 차례 되풀이합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이 옳다는 것을 땅을 받을 만한 근거로 내세우는 일을 문제 삼습니다. 모세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마음이 올바르다는 것까지 땅을 차지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민족들의 악함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유로 제시됩니다. 반면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얻게 되는 일을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합니다.

가나안 민족들이 심판받을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받을 만한 의로움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이 대목에는 오늘의 독자에게 어려운 문제가 남습니다. 다른 민족들을 몰아내고 멸망시키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요?

본문은 그 일을 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는 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9장은 그 민족들의 구체적인 죄를 하나씩 제시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12:29–31과 18:9–12에서 금지하는 가나안의 종교적 관행들이 관련된 배경을 알려 주지만, 그것만으로 이 장에 기록되지 않은 모든 역사적 상황을 다시 그려 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특별한 언약 역사 안에서 주어진 말씀을 후대의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자기 전쟁을 정당화하는 일반적인 허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장 자체가 승리하는 쪽이 더 의롭다는 판단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고집이 센 백성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 좋은 땅을 너희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것은 너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님을 알아라.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다.」신명기 9:6 · 두루새김

「고집이 센」은 원문에서는 문자 그대로 목의 뒷부분이 뻣뻣하다는 뜻이며, 방향을 바꾸거나 목을 굽히지 않으려는 고집을 생생하게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움직여야 할 백성이 오히려 자기 방향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표현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추상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습니다. 곧바로 이스라엘이 실제로 저지른 일들을 들려줍니다.

그 증거는 다른 민족들의 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들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언약의 돌판이 깨지던 날

신명기 9:7–17 본문 →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7절은 강렬한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광야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화나게 한 일을 기억하여라. 잊지 마라. 너희는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줄곧 여호와야훼를 거역해 왔다.」신명기 9:7 · 두루새김

「기억하여라. 잊지 마라」라는 표현은 같은 사실을 긍정과 부정으로 거듭 강조합니다. 여기서 기억의 대상은 하나님의 기적이나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승리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반역입니다.

신명기의 모세는 이스라엘이 자기 역사를 정직하게 기억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만 기억하고 자신의 반역을 지워 버린다면, 자신들이 왜 오늘 이 자리에 있는지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특히 호렙의 일을 길게 이야기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호렙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말씀을 주신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언약을 어겼습니다.

산 위에서는 말씀이 새겨지고, 산 아래에서는 형상이 만들어졌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쓰신 돌판 두 개를 내게 주셨다. 그 판에는 너희가 모였던 날, 여호와야훼께서 그 산의 불 속에서 너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신명기 9:10 · 두루새김

모세는 그것을 거듭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이 적힌 돌판으로 소개하고, 「언약의 돌판」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그 말씀에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가락으로 쓰신」이라는 표현은 그 말씀이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산 위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여기서 빨리 내려가라. 네가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네 백성이 악한 길로 빠졌다. 그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벌써 벗어나, 자기들을 위해 금속을 녹여 부어 우상을 만들었다.』」신명기 9:12 · 두루새김

12절과 16절에 반복되는 「벌써」라는 말은 이 사건의 충격을 키웁니다. 언약이 아직 오래 이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언약의 말씀이 돌판에 새겨지는 바로 그 시기에 그 말씀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백성인가

하나님은 그들을 「네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앞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거듭 말씀하셨던 것과 비교하면, 이 호칭의 변화는 매우 두드러집니다. 문맥에서는 이스라엘의 배반이 얼마나 심각한 관계의 위기를 만들었는지를 드러내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14절에서 그 위기는 절정에 이릅니다.

「『나를 내버려 두어라. 내가 그들을 멸하고 하늘 아래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 버리겠다. 그리고 너에게서 그들보다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신명기 9:14 · 두루새김

그러나 모세는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마지막 기도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두 손에 들린 언약이 땅에 떨어지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두 손에는 언약의 돌판이 있었습니다. 15절은 산이 불타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전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발견합니다.

「나는 두 손에 들고 있던 돌판 두 개를 붙잡아 내던져, 너희 눈앞에서 깨뜨렸다.」신명기 9:17 · 두루새김

돌판이 깨지기 전에 이미 백성은 그 위에 기록된 말씀을 어겼습니다.

따라서 깨지는 소리가 처음으로 언약을 위태롭게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위태로워진 관계가 모든 백성 앞에 드러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2:1–6을 보면 그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아론에게 자기들을 이끌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송아지 형상이 만들어진 뒤에는 그것을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신과 연결했고, 아론은 하나님을 위한 절기를 선포했습니다. 이 점 때문에 금송아지 사건을 단순히 낯선 이방신 하나로 갈아탄 사건이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출애굽기의 서술에서는 하나님을 형상으로 나타내거나 그 형상과 연결해 예배하려는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신명기 4:12, 15–16은 호렙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목소리는 들었지만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다고 강조하면서 형상을 만드는 일을 금합니다. 모세가 돌판을 깨뜨린 행동을 언약 관계가 깨어진 현실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이 모세의 행동에 대한 해설을 따로 붙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돌판이라는 이름이 반복되고, 그 직후 백성의 죄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문맥과 잘 맞습니다.

두 번의 사십 일 — 말씀을 받을 때와 백성을 위해 엎드렸을 때

신명기 9:18–21 본문 →

모세는 왜 다시 엎드렸는가

금송아지 사건을 돌아보던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처음처럼 사십 일 밤낮 동안 여호와야훼 앞에 엎드려 있었다.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너희가 저지른 모든 죄 때문에 그렇게 했다. 너희는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여 그분을 화나게 했다.」신명기 9:18 · 두루새김

앞에서 모세는 언약의 돌판을 받기 위해 사십 일 밤낮을 산에서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십 일은 성격이 다릅니다.

첫 번째 사십 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두 번째 사십 일을 돌아보는 이야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죄와 그들을 멸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분노가 중심에 놓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몹시 화를 내시고 너희를 멸하려 하셨기에, 나는 그분의 맹렬한 분노가 두려워 그렇게 엎드려 있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때에도 내 말을 들어 주셨다.」신명기 9:19 · 두루새김

모세가 두려워한 것은 적군의 군사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신다는 사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세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머뭅니다.

아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론에게도 몹시 화를 내시고 그를 죽이려 하셨다. 나는 그때 아론을 위해서도 기도했다.」신명기 9:20 · 두루새김

아론은 모세와 함께 백성을 이끌었던 지도자이며, 제사장으로 세워질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위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32:2–6을 보면 아론은 금을 모아 송아지 형상을 만드는 일에 관여했고, 그 앞에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백성을 올바른 예배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가 잘못된 예배를 만드는 데 참여한 것입니다.

이 짧은 언급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까지 하나님의 자비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백성만 실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금송아지는 먼지가 되었다

「나는 너희가 죄를 지어 만든 그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태웠다. 그것을 부수고 갈아서 먼지처럼 고운 가루로 만든 다음,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그 가루를 던졌다.」신명기 9:21 · 두루새김

금송아지는 사람들이 자신을 인도할 신적 존재와 연결했던 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형상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완전히 파괴됩니다.

그럼에도 그 형상을 만들었던 백성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만든 형상이 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거역한 하나님께서 모세의 간청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처음처럼」이 처음의 사십 일과 어떤 점까지 비교하는지는 문법적으로 완전히 한정되지 않습니다. 기간과 금식이 비슷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고, 엎드려 하나님 앞에 머문 모습까지 연결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30–35를 보면 모세의 간청 이후에도 백성의 죄에 대한 책임과 심판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21절의 원문에서는 송아지 자체를 백성의 죄라고 부르며, 두루새김은 죄를 지어 만든 것이라는 뜻을 풀어 옮겼습니다. 출애굽기 32:20에는 모세가 가루를 물에 뿌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신명기 9장은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던졌다고 설명합니다.

한 번의 실패가 아니었다

신명기 9:22–24 본문 →

광야의 여러 장소가 증언하다

호렙의 금송아지 사건만으로도 모세의 주장은 충분히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너희는 타브에라에서도, 맛사에서도, 키브롯 핫타아와에서도 여호와야훼를 화나게 했다.」신명기 9:22 · 두루새김

타브에라는 백성의 불평 때문에 하나님의 불이 진영 가장자리에서 타올랐던 사건과 연결됩니다(민수기 11:1–3). 맛사는 이스라엘이 물이 없다고 다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 가운데 계시는지를 시험했던 장소입니다(출애굽기 17:1–7). 키브롯 핫타아와는 백성이 먹을 고기를 탐욕스럽게 요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사건과 연결됩니다(민수기 11:4–6, 31–34).

여기서 이 장소들이 열거된 순서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나타난 사건의 발생 순서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맛사 사건은 민수기 11장에 기록된 타브에라와 키브롯 핫타아와 사건보다 앞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목록은 여행 경로를 시간순으로 정리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불순종을 짧게 모아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이스라엘은 여러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마지막으로 더욱 결정적인 사건을 언급합니다.

정작 약속의 땅을 거부했던 백성

「여호와야훼께서는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너희를 보내시며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너희는 그때에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거역했다. 그분을 믿지 않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신명기 9:23 · 두루새김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는 상황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이스라엘은 바로 그 땅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민수기 14:1–4에 따르면 백성은 이집트나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겠다고 말하고, 지도자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불순종은 단순히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깊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신명기 9:23은 이 사건을 세 가지 행동으로 설명합니다. 명령을 거역했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 세 표현은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비춥니다.

「내가 너희를 알게 된 날부터 너희는 줄곧 여호와야훼를 거역해 왔다.」신명기 9:24 · 두루새김

모세가 백성과 함께한 여정 전체에 반복적인 반역이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얻을 만한 충실함을 보여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때는 그 땅을 받으라는 하나님의 명령까지 거절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그들은 다시 그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 자리까지 데려왔는가요?

모세는 이제 자신의 기도를 들려줍니다.

모세의 기도 — 죄를 부정하지 않고 백성을 살려 달라고 간청하다

신명기 9:25–29 본문 →

다시 언급되는 사십 일

25절은 앞서 18절에서 등장했던 사십 일을 다시 언급합니다.

「내가 그 사십 일 밤낮 동안 여호와야훼 앞에 엎드려 있었던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멸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신명기 9:25 · 두루새김

모세는 백성의 죄를 설명하기 위해 사건들을 열거하다가, 다시 그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었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기도의 첫마디가 나옵니다.

「나는 여호와야훼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 여호와야훼여, 주님의 백성, 주님의 소유인 이들을 멸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구해 내시고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백성입니다.』」신명기 9:26 · 두루새김

모세는 백성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실수로 잘못된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전혀 다른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들이 누구에게 속한 백성인지를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네 백성」에서 「주님의 백성」으로

1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네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26절에서 모세는 그들을 「주님의 백성, 주님의 소유인 이들」이라고 부릅니다.

백성이 그 관계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백성이 그 관계를 배반한 바로 그 순간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구해 내시고 이끌어 내셨다는 사실을 호소합니다.

땅이 이스라엘의 차지가 되기 전에,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었습니다.

조상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백성의 고집과 악함과 죄를 따지지 말아 주십시오.』」신명기 9:27 · 두루새김

5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가 언급되었습니다. 이제 27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멸망하지 않도록 간청하는 기도 속에서 같은 세 이름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땅을 얻는 근거였습니다. 이제는 그 약속이 백성의 생존을 위해 호소하는 근거가 됩니다.

27절은 백성의 문제를 세 단어로 분명하게 부릅니다. 고집과 악함과 죄입니다. 모세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그 죄를 따지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것은 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판단해 달라는 요구라기보다, 그들의 죄를 근거로 백성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말아 달라는 간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죄를 감추어서 백성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에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알려질 것인가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내신 땅의 사람들이 우리를 두고 이런 말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이 백성을 데려갈 능력이 없으시고 이 백성을 미워하셔서 광야에서 죽이려고 데리고 나오셨다는 말입니다.』」신명기 9:28 · 두루새김

이것은 모세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외부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 해석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관심은 자신의 평판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새로운 큰 민족으로 만드시겠다는 제안보다, 이미 구해 내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과 약속을 내세웁니다.

모세가 간청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 행위를 스스로 부정하실 수 없다는 논리적인 불가능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보여 주신 구원과 약속을 지키시는 모습에 걸맞게 이 백성을 계속 돌보아 달라는 호소입니다.

마지막 말에는 백성의 공로가 없다

「『그들은 주님께서 큰 힘과 뻗으신 팔로 이끌어 내신 주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소유입니다.』」신명기 9:29 · 두루새김

기도의 시작에서도 백성은 「주님의 백성, 주님의 소유인 이들」이었고, 기도의 끝에서도 그들은 「주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소유」입니다. 이 기도에는 이스라엘이 앞으로는 반드시 순종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더 의롭다는 주장도 없습니다. 모세 자신이 더 큰 민족의 조상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도 없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이스라엘이 용서받을 자격이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조금 더 깊이

25절은 이미 언급했던, 백성을 위해 기도하던 기간을 다시 불러와 그때 드린 기도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비슷한 논리는 출애굽기 32:11–13과 민수기 14:13–19에서도 등장합니다. 특히 민수기 14장에서는 가데스 바르네아의 반역 이후 모세가 하나님이 다른 민족들에게 어떻게 알려질지를 근거로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신명기 9장의 기도는 이처럼 출애굽과 광야에서 반복되었던, 백성을 위한 기도의 중요한 요소들을 함께 돌아보고 있습니다.

언약의 돌판을 깨뜨린 손, 백성을 위해 엎드린 사람

신명기 9:1–29 본문 →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께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심판받아 마땅한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청을 들으셨고,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의 공로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과 이스라엘의 행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서로 다른 말입니다.

신명기 9장은 이스라엘의 승리에 관한 약속으로 시작하지만, 전쟁의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그는 두 손에 하나님의 언약의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이미 그 언약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돌판을 백성의 눈앞에서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모세에게는 자신이 더 크고 강한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하며 내세운 것은 자신의 미래나 공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주님의 백성, 주님의 소유인 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요단강 저편에는 여전히 높은 성벽과 강한 민족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성벽을 어떻게 무너뜨릴지보다 먼저, 자신들이 이미 깨뜨렸던 돌판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갈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적의 강함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의 실패, 자신들을 위해 드려진 기도,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