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함께 기뻐하기
신명기 12장에는 놀랍게도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명령이 나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아무 곳에서나 바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곳으로 가져가라는 명령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기를 먹고 싶으면 어디서든 원하는 만큼 짐승을 잡아 먹어도 된다는 허락입니다.
이 두 명령은 왜 같은 장에 함께 있을까요?
제물과 제단에 관한 엄격한 규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모세는 끊임없이 먹고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 기쁨에는 아들딸, 남종과 여종, 그리고 땅을 몫으로 나누어 받지 못한 레위 사람까지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장의 마지막에 이르면 전혀 다른 종류의 예배가 등장합니다.
한 예배에서는 아들딸이 함께 먹고 기뻐합니다. 다른 예배에서는 아들딸이 신을 위해 불에 태워집니다.
이 장은 단순히 제사를 어디에서 드려야 하는지 정하는 장소 규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 예배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모습을 만들어 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장입니다.
다른 신들의 장소를 없애고, 여호와야훼께서 택하실 곳을 찾으라
왜 예배 장소부터 이야기하는가
1절은 신명기에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다음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차지하라고 주신 땅에서 지켜야 할 규정과 법이다. 너희가 그 땅에 사는 동안 언제나 성실히 지켜라.」신명기 12:1 · 두루새김
앞선 장들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어떤 하나님을 섬기는지, 그분께서 어떻게 그들을 구해 내셨는지, 그리고 왜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그 가르침은 약속의 땅에서 실제로 지켜야 할 규정으로 구체화됩니다. 신명기 12–26장은 이렇게 이스라엘의 예배와 사회생활, 공동체 질서를 다루는 긴 법규의 흐름을 이룹니다.
그런데 첫 번째 명령은 다른 민족들의 예배 장소를 없애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할 민족들은 높은 산과 언덕, 잎이 무성한 모든 나무 아래에서 자기 신들을 섬겼다. 그들이 신들을 섬기던 곳을 모두 없애 버려라.」신명기 12:2 · 두루새김
높은 산과 언덕,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는 고대 근동에서 신을 섬기는 장소로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높은 곳은 하늘에 가까운 장소로 여겨질 수 있었고, 무성한 나무는 생명과 풍요를 떠올리게 하는 자연물이기도 했습니다.
없애야 할 대상은 그곳에 세워진 다른 신들의 예배 시설과 우상들입니다.
신들의 이름을 지우고,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둘 곳을 찾다
「그들의 제단을 허물고 신을 섬기려고 세운 돌기둥을 부수어라. 아세라 나무 기둥은 불태우고, 그들의 신을 새겨 만든 우상은 찍어 버려라. 그곳에서 그 신들의 이름까지 없애 버려라.」신명기 12:3 · 두루새김
두루새김이 「아세라 나무 기둥」으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 아셰림(אֲשֵׁרָה)으로, 이 구절에서는 복수형으로 나타납니다. 고대 가나안 종교에서 알려진 아세라라는 신적 존재와 관련된 예배 물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이 낱말만으로 그 물건이 반드시 어떤 모양의 나무 기둥이었는지, 조각된 형상이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가운데서 한 곳을 선택하실 것이다. 너희는 그분이 머무실 그곳을 찾아가야 한다.」신명기 12:5 · 두루새김
한쪽에서는 이름을 지우고, 다른 쪽에서는 이름을 두십니다.
이 대조는 우연한 단어의 반복이 아닙니다. 그 장소에서 누구를 어떻게 예배하는지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은 기존 주민들이 사용하던 예배 장소를 그대로 물려받아, 신의 이름만 여호와야훼로 바꾸어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편리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골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예배의 중심을 결정하는 분은 예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그런 방식으로 섬기지 마라.」신명기 12:4 · 두루새김
문맥상 「그런 방식으로」는 앞에 설명된 다른 민족들의 예배 방식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신을 섬기던 방식으로 여호와야훼를 섬겨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이름」이 머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왜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곳에 머무신다고 말하기보다, 그분의 「이름」을 그곳에 두신다고 표현할까요?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히 어떤 존재를 부르는 소리만이 아닙니다. 그 존재의 권위와 명성과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특정한 장소에 두신다는 것은 그 장소를 자신의 예배와 특별히 연결하시고, 그곳에서 자신을 알리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훗날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열왕기상 8:27).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신 장소를 향해 드리는 기도에 귀 기울여 달라고 간청합니다(열왕기상 8:29).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장소를 정하는 일과 하나님을 하나의 건물에 가두는 일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또한 신명기 12장은 그 장소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후대의 독자는 예루살렘 성전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실제로 열왕기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는 장소로 중요하게 등장합니다(열왕기상 11:36).
그러나 신명기 12장 자체에는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여호수아 18:1에서는 이스라엘이 실로에 만남의 천막을 세우고, 예레미야 7:12에서도 실로는 하나님께서 처음 자신의 이름을 머물게 하신 곳으로 언급됩니다. 따라서 본문의 「선택하실 곳」을 처음부터 예루살렘의 특정 건물 하나로만 단정하여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지명이 아니라 장소를 정하시는 분이 여호와야훼라는 사실입니다.
제물을 가져와 하나님 앞에서 먹고 기뻐하라
제물의 목록이 말하는 것
6절에는 긴 제물 목록이 등장합니다.
「그곳으로 너희의 번제와 짐승을 잡아 바치는 제물, 십일조와 따로 떼어 바치는 것, 약속하여 바치는 제물과 스스로 원해서 바치는 제물을 가져가라. 소와 양과 염소의 첫 새끼도 가져가라.」신명기 12:6 · 두루새김
번제는 제단에서 불태워 바치는 제물이고, 다른 짐승 제물 가운데는 바친 뒤 정해진 부분을 먹는 제물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농업 생산물 등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몫이며, 약속하여 바치는 제물과 스스로 원해서 바치는 제물은 특별한 약속이나 자발적인 헌신과 관련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제물을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도록 구별한 것들을 각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마음대로 다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먹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주셨으니, 너희와 너희 집안사람들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두고 기뻐하여라.」신명기 12:7 · 두루새김
레위기 7:11–21에서도 친교 제물의 고기를 먹는 규정이 나옵니다. 어떤 제물은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와 함께 예배자의 식사로 이어집니다.
이 식사는 단순히 제사를 마치고 허기를 채우는 덧붙은 일이 아닙니다.
모세는 그 식사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행하는 일로 설명합니다.
예배가 기쁨의 자리가 되는 이유
신명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반복해서 명령합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며,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일구고 가축을 기르며 삶을 꾸려 갈 것입니다. 그 노동에는 실제로 사람의 수고가 들어갑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이 얻은 결실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는 일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인정하는 행위가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일부를 하나님께 가져오고, 그분 앞에서 함께 먹으며 기뻐합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 자기 몫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분 앞에서 받은 복을 누리며 기뻐하기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단지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것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하지 말라
8절은 갑자기 현재 이스라엘의 상황을 언급합니다.
「지금 우리는 여기서 저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하고 있다. 너희는 앞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신명기 12:8 · 두루새김
사사기 17:6과 21:25에서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12:8을 사사기의 표현과 완전히 같은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편히 쉴 곳과 몫으로 받을 땅에 너희가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신명기 12:9 · 두루새김
따라서 「저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라는 표현은 이 문맥에서 특히 제물을 바치는 장소와 예배의 방식에 관련됩니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행해 온 모든 일이 도덕적으로 무질서했다는 단정으로 넓힐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아직 광야 여정의 끝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땅을 얻고 정착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지금과 다른 질서가 필요합니다.
안식을 얻은 뒤의 예배
10절은 이스라엘이 들어갈 미래를 그립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땅을 차지하고, 사방의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살며 안전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편히 살게 하시고」라는 말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고 쉬게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위협과 전쟁에서 벗어나 자기 땅에서 안정되게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여호수아 21:44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사방으로 안식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7:1에서도 다윗이 주변의 적들로부터 안식을 얻었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모세는 그러한 안정된 삶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으로 제물을 가져가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안정과 풍요를 얻은 뒤에도 예배가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벗어나 정착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착한 삶의 질서를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가 함께 기뻐하는가
가족만이 아니라 종들과 레위 사람까지
12절은 예배의 기쁨에 참여할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너희와 너희 아들딸, 남종과 여종, 너희 성읍에 사는 레위 사람들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함께 기뻐하여라. 레위 사람들은 너희와 함께 땅을 몫으로 나누어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신명기 12:12 · 두루새김
이 명단은 단순한 인원 확인이 아닙니다. 누가 하나님의 복을 함께 누려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는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구절이 그 신분 차이를 없애거나 모든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같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공동체의 식사에서 그들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음식을 준비하고 일하는 사람으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함께 기뻐해야 할 사람으로 분명히 나옵니다.
레위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레위 사람에게는 특별한 설명이 붙습니다.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처럼 따로 땅을 몫으로 나누어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았으며, 그 생활은 공동체가 제공하는 몫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신명기 10:8–9, 18:1–8).
따라서 이스라엘이 풍요를 누리고도 레위 사람을 외면한다면, 그들의 예배에는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면서도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일을 맡은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땅에서 사는 동안 언제나 레위 사람들을 버려두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신명기 12:19 · 두루새김
레위 사람의 참여가 한 차례의 잔치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배를 올바르게 드린다는 것은 제단과 제물의 규정만 지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예배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 일도 포함합니다.
「그것들은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실 곳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먹어라. 너희와 너희 아들딸, 남종과 여종, 너희 성읍에 사는 레위 사람들이 함께 먹어라. 너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기뻐하여라.」신명기 12:18 · 두루새김
여기서 기쁨은 개인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함께 먹을 수 있는 식탁으로 표현됩니다.
신명기 12장에서 예배의 기쁨은 혼자 누리는 만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나누는 기쁨입니다.
제사는 한 곳에서, 일상의 식사는 어디서나
왜 고기를 아무 곳에서나 먹어도 된다고 하는가
13–14절은 예배 장소에 관한 규정을 다시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곳에서만 번제를 바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여기에는 제물로 바치는 짐승과 일상적인 식사를 위해 잡는 짐승을 구별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바치도록 구별된 제물을 정해진 장소에서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고기를 먹기 위해 잡는 짐승까지 모두 그 장소로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 구별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아갈 상황과 연결됩니다. 모든 사람이 항상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 가까이에 살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곳이 매우 멀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평소에 고기를 먹을 때마다 먼 길을 가야 한다면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20–21절에서는 땅이 넓어지고 선택하신 장소가 멀 경우, 자기가 사는 성읍에서 가축을 잡아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거룩한 제물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으로 가져가야 하지만, 모든 식사가 제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 17장과의 차이
레위기 17:3–7에서는 이스라엘 사람이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잡을 때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와 여호와야훼께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이 나옵니다. 그런데 신명기 12장은 선택하신 장소가 멀면 각 성읍에서 가축을 잡아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허락합니다.
두 본문은 가축을 잡는 장소에 관해 서로 다른 규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7장은 광야의 성막을 중심으로 한 진영 생활을 배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신명기 12장은 요단강을 건너 넓은 땅에 정착할 미래를 구체적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차이가 규정의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두 법규가 역사적으로 어떤 순서로 만들어졌는지, 서로의 관계가 정확히 어떠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율법 전통 안에서 정착 생활에 맞추어 규정이 구체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법규 전통의 강조점이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가젤과 사슴처럼 먹으라
15절과 22절에는 독특한 비교가 등장합니다.
「다만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복에 따라, 너희가 사는 어느 성읍에서든 원하는 만큼 짐승을 잡아 고기를 먹어도 된다. 가젤과 사슴을 먹을 때처럼, 부정한 사람도 정결한 사람도 그 고기를 먹어도 된다.」신명기 12:15 · 두루새김
가젤과 사슴은 먹을 수 있는 들짐승에 속합니다(신명기 14:5). 그러나 소나 양과 달리 이스라엘의 제단에 바치는 일반적인 짐승 제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가축의 고기를 먹을 때에도, 제물로 바치는 행위가 아닌 일반적인 식사로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하기 위해 들짐승을 예로 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정한 사람도 정결한 사람도」 먹어도 된다는 말은 부정한 종류의 짐승까지 모두 먹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먹는 사람이 예배 규정에 따라 정결한 상태에 있는지를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예배 규정상 부정한 상태에 있다고 해서 일상적인 고기를 먹는 일까지 모두 금지되지는 않습니다.
반면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의 일부를 먹는 경우에는 정결에 관한 별도의 규정이 적용됩니다. 레위기 7:19–21은 친교 제물의 고기를 먹는 사람의 정결 상태를 엄격하게 다룹니다.
거룩한 제물로 먹는 고기와 평범한 식탁에서 먹는 고기는 같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마음에도 지켜야 할 경계가 있다
피는 왜 먹지 말아야 하는가
일상적인 고기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허락에는 한 가지 제한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피는 절대로 먹지 마라. 피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어서는 안 된다.」신명기 12:23 · 두루새김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네페시(נֶפֶשׁ)입니다. 이 낱말은 문맥에 따라 생명, 목숨, 살아 있는 존재, 또는 욕구와 갈망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이 15절과 20절에서 「원하는 만큼」으로 옮긴 표현에도 원문에서는 네페시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23절에서는 피가 바로 네페시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먹으려는 고기에도 한때 살아 있던 존재의 생명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먹고 싶은 마음을 채우는 자유가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까지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고기를 먹을 자유를 받았지만, 그 생명을 아무 제한 없이 자기 것으로 삼을 권리까지 받은 것은 아닙니다.
피를 땅에 쏟으라는 뜻
「그러나 피는 먹지 마라. 물처럼 땅에 쏟아라.」신명기 12:16 · 두루새김
「물처럼 땅에 쏟아라」라는 말은 피를 마시거나 음식으로 먹지 말고 땅에 흘려보내라는 행동을 설명합니다. 제물의 피는 제단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일반적인 식사를 위해 잡은 짐승의 피는 땅에 쏟아야 합니다.
레위기 17:11에서는 몸의 생명이 피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피를 제단에서 속죄를 위해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신명기 12장은 피와 생명의 관계를 근거로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두 본문은 피의 의미를 조금씩 다른 문맥에서 설명하지만, 생명이 인간의 식욕에 따라 마음대로 소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사람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지만,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물의 피와 고기는 어떻게 다른가
26–27절은 다시 거룩한 제물에 관한 규정으로 돌아옵니다.
「번제의 고기와 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제단에 바쳐라. 다른 짐승 제물의 피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제단에 부어야 한다. 그 제물의 고기는 너희가 먹어라.」신명기 12:27 · 두루새김
번제에서는 고기와 피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 행위와 연결됩니다. 다른 짐승 제물에서는 피가 제단에 바쳐지고, 정해진 방식에 따라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모든 종류의 제사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피와 고기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핵심입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와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
25절과 28절은 이러한 규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피를 먹지 마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여, 너희와 너희 뒤를 이을 자녀들이 잘되게 하려는 것이다.」신명기 12:25 · 두루새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귀담아듣고 지켜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과 옳은 일을 하여, 너희와 너희 뒤를 이을 자녀들이 언제까지나 잘되게 하려는 것이다.」신명기 12:28 · 두루새김
8절에서는 「저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25절과 28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라고 합니다.
달라진 것은 누구의 판단에 옳은가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판단입니다. 나중에는 여호와야훼의 판단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실제로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을 인정했고, 그 욕구를 채우는 일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가 모든 판단의 최종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지,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어떤 한계를 지켜야 하는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정됩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방식을 여호와야훼께 가져오지 말라
장의 마지막에 처음 경고가 다시 등장하다
29절에서 모세는 다시 가나안 민족들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2절에서도 이스라엘이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할 민족들의 예배 장소를 없애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30절에서 모세는 새로운 위험을 언급합니다.
「그들이 너희 앞에서 멸망한 뒤에, 그들을 따라가다가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이 민족들은 자기 신들을 어떻게 섬겼을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 하며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방법을 알아보지 마라.」신명기 12:30 · 두루새김
군사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서 그들의 종교적 관습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차지한 뒤에도 그곳 주민들의 예배 방식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다른 민족의 종교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예배 방식을 따라 하려는 의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의 신들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들이 사용하던 방식으로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아들과 딸을 불에 태우는 예배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그런 방식으로 섬기지 마라.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미워하시는 온갖 역겨운 일을 자기 신들에게 행했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딸까지 불태워 신들에게 바쳤다.」신명기 12:31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히 예배 형식이 이스라엘과 다르다는 이유로 금지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신에게 값비싼 제물을 바치는 헌신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행동이 여호와야훼께서 미워하시는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예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모든 행위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것을 희생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아들과 딸이 함께 먹는 예배, 아들과 딸을 불태우는 예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에서 이스라엘은 아들딸, 남종과 여종, 레위 사람과 함께 기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장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른 신들의 예배에서는 아들딸이 불에 태워집니다.
한쪽에서는 자녀가 함께 먹으며 기뻐할 사람입니다. 다른 쪽에서는 신을 위해 희생시킬 대상이 됩니다.
본문이 이 둘을 직접 비교하는 해설을 붙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에서 「아들딸」이 반복되고, 서로 다른 예배 장면에 놓인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은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까지 정당화하는 이름이 될 수 없습니다.
불타는 제단이 아니라 함께 먹는 식탁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는 인간이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장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이 일상적인 식사의 자유를 인정하고, 공동체가 함께 기뻐할 자리를 마련하며, 생명을 파괴하는 예배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신명기 12장을 오늘의 예배에 적용하면서, 모든 신앙 공동체가 반드시 하나의 지리적 장소에서만 모여야 한다는 명령으로 곧바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아갈 상황에서, 제물과 제사 장소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은 단지 제물을 바치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분이 주신 복을 기억하며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12장의 마지막에 불에 태워지는 아들딸의 모습이 등장하는 까닭을 생각하면, 앞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식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롭게 보입니다.
그 식탁에는 아들딸이 살아서 앉아 있습니다. 남종과 여종도 함께하고, 땅을 몫으로 나누어 받지 못한 레위 사람도 초대받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습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