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기적보다 앞서는 말씀
어떤 사람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고 믿어도 될까요?
신명기 13장은 뜻밖에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가 등장합니다. 그들이 몰래 다른 신을 섬기자고 권합니다. 마지막에는 한 성읍 전체가 다른 신을 섬기게 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세 사건은 규모가 서로 다릅니다. 첫 번째는 특별한 권위를 가진 종교 지도자의 말이고, 두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의 몰래 건네는 권유이며, 세 번째는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의 입에서 같은 제안이 나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러 가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무엇을 근거로 자신이 걸어갈 길을 결정할 것입니까? 놀라운 능력입니까,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입니까, 많은 사람의 선택입니까? 아니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까?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본문은 다른 신을 섬기도록 꾀는 사람을 죽이고, 그릇된 예배에 빠진 성읍을 파괴하라는 명령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한 비유로 바꾸거나 오늘의 독자가 느끼는 윤리적 충격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말씀에 더하지도 빼지도 말라
첫 문장이 세 사건의 판단 기준을 세우다
신명기 13장은 다음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말을 성실히 지켜라. 거기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서 빼지도 마라.」신명기 13: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모세는 다른 민족들이 자기 신들을 섬기는 방식을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데 가져오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제는 예언자와 가족, 성읍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다른 길을 제안하는 경우를 다룹니다.
따라서 「거기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서 빼지도 마라」라는 명령은 단순히 성경 문서를 편집하거나 베껴 쓰는 일을 금지하는 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모세가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사람이 마음대로 바꾸지 말고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다른 것을 덧붙여 새로운 종교적 의무를 만들어 내거나, 불편한 부분을 빼 버리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경험이나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경험과 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은 일반적인 한국어 성경의 장절 구분에서는 12:32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의 장절 구분을 따르는 두루새김에서는 13장의 첫 절입니다.
표징이 이루어졌는데도 왜 따라가면 안 되는가
성취된 예언이 반드시 참된 예언은 아니다
2–3절에서 모세는 한 예언자나 꿈꾸는 사람이 나타나는 상황을 제시합니다.
그는 표징이나 기적을 예고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가 말한 표징이나 기적이 실제로 이루어지더라도,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섬기자고 말한다면,」신명기 13:3 · 두루새김
모세는 그 사람이 사실은 아무런 능력도 없고 모든 일을 조작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표징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고 그 표징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일으키셨는지, 다른 어떤 원인이 있었는지를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의 관심은 그 일이 일어난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뒤 사람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예언자가 놀라운 일을 보이고 나서 다른 신들을 따라가자고 말한다면, 그가 보여 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이 여호와야훼께서 이미 명령하신 길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8장과 함께 읽으면 드러나는 두 가지 기준
신명기 18:20–22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신명기 18장은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이 거짓된 주장임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13장은 이루어진 표징이라도 다른 신을 섬기도록 이끄는 말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언을 판단할 때에는 그가 말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가 누구를 따르라고 가르치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사람은 특별한 사건을 경험한 뒤 그 사건을 보여 준 사람에게 지나친 권위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 그 순간에 멈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는 말
「그 예언자나 꿈꾸는 사람의 말을 따르지 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사랑하는지 알아보시려는 것이다.」신명기 13:4 · 두루새김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만 시험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뒤흔드는 특별한 경험을 할 때에도 무엇을 신뢰하는지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시험의 핵심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사랑하는지」 이 표현은 신명기 6:5의 명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이미 여호와야훼를 온 마음과 온 생명으로 사랑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험의 상황 속에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관해 옳은 말을 할 줄 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강렬한 경험이나 설득력 있는 인물이 다른 방향을 제시할 때에도 그분에게서 돌아서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은 시험을 통해 그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가 드러나는 상황을 강조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는 것과 인간의 자유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하는지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여섯 동작으로 그려지는 충실함
5절은 다른 신들을 따라가라는 말에 맞서,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을 촘촘하게 묘사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따라가고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라.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굳게 붙들어라.」신명기 13:5 · 두루새김
이 동작들을 하나씩 떼어 별개의 종교적 의무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 충실하게 머무는 삶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나타냅니다.
거짓 예언자는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섬기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야훼를 「따라가고」 그분을 섬기라고 합니다.
두 길 가운데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잠시 그분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분의 길을 따라가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삶입니다.
이것이 4절에서 말한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왜 죽음의 형벌이 등장하는가
「그 예언자나 꿈꾸는 사람은 죽임을 당해야 한다.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종살이에서 구해 내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거역하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걸으라고 명령하신 길에서 너희를 벗어나게 하려 했다. 너희 가운데서 악을 없애 버려라.」신명기 13:6 · 두루새김
그가 단순히 잘못된 미래 예측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구해 내신 하나님에게서 떠나도록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에서 구해 내시고 자신과 언약을 맺으신 백성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다른 신에게 돌리려는 행위는 그 언약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반역으로 규정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고대 언약 공동체에 주어진 법적 명령을 오늘날 개인이나 종교 공동체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처벌할 권한으로 직접 옮길 수는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 질서와 현대 사회의 법적·종교적 상황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일과 그 형벌을 현재에 그대로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다른 길을 권할 때
낯선 예언자보다 더 어려운 시험
두 번째 사건은 더욱 개인적입니다.
「너희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나 아들딸, 품에 안기는 아내나 목숨처럼 아끼는 친구가, 너희도 너희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섬기러 가자고 몰래 너희를 꾄다면,」신명기 13:7 · 두루새김
「품에 안기는 아내」는 친밀한 부부 관계를 드러내고, 「목숨처럼 아끼는 친구」는 자기 목숨처럼 아끼는 가까운 사람을 나타냅니다. 모세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낯선 사람이 꾀는 상황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절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등장시킵니다.
앞의 예언자는 놀라운 표징을 통해 자신의 말을 믿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그런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됩니다.
그들과 맺은 관계 자체가 설득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말을 낯선 사람의 말보다 쉽게 신뢰합니다. 그 사람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특히 본문에서 권유는 「몰래」 이루어집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관계 속에서 조용히 다른 신을 섬기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말 앞에서도 자신이 누구를 섬기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너희도 너희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7–8절에서는 다른 신들의 범위를 길게 묘사합니다.
가까운 민족들의 신이든 먼 민족들의 신이든,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민족들의 신이든 상관없습니다. 가까운 민족의 종교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먼 곳에서 전해졌다는 이유로 특별한 권위를 갖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장에서는 「알지 못하던」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 표현을 그 신들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의미로만 좁힐 필요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안다는 것은 그분께서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셨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셨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반면 다른 신들은 이스라엘을 구해 내고 언약을 맺으신 분이 아닙니다.
「그에게 돌을 던져 죽여라. 그는 너희가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서 너희를 떠나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신명기 13:11 · 두루새김
따라서 그 권유는 단순히 다른 예배 방법을 소개하는 수준의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구원과 삶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를 바꾸려는 행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명령
9절부터는 본문이 매우 거칠어집니다.
「그 사람에게 동의하지도 말고 그의 말을 따르지도 마라.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아끼거나 감싸 주지도 마라.」신명기 13:9 · 두루새김
가족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다른 신을 섬기도록 꾄다면 그를 감싸 주지 말고 사형에 참여하라고 명령합니다.
모세는 가족의 가치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소중한 관계들을 하나씩 언급함으로써 이 명령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을 다루는지 드러냅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하더라도 다른 신을 섬기라는 요구가 정당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판단의 원리와 형벌의 집행은 구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의 말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는 원리는 본문에서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반면 그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은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에 주어진 재판과 처벌의 규정입니다. 이를 오늘날의 가족 관계에 직접 적용하여 종교적 선택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을 위협하거나 해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왜 먼저 손을 대라고 하는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를 죽일 때에는 너희가 먼저 돌을 던지고, 그 뒤에 온 백성이 돌을 던져야 한다.」신명기 13:10 · 두루새김
이 명령은 권유를 받은 사람이 자신과 가까운 관계라는 이유로 사건을 감추거나 책임을 피하지 못하도록 요구합니다. 신명기 17:7에서는 사형 사건의 증인들이 먼저 손을 대고 그 뒤에 온 백성이 참여하도록 규정합니다. 그곳에서는 증언하는 사람이 판결의 결과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구조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다른 신을 섬기도록 꾀는 행위를 개인적인 잘못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면 온 이스라엘이 이 일을 듣고 두려워하여, 너희 가운데서 다시는 이런 악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신명기 13:12 · 두루새김
이것은 고대 법규가 형벌을 공개적으로 집행하고 같은 범죄를 막는 효과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여 줍니다. 모세는 여기서 형벌을 공동체의 언약에 대한 충실함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사례에서는 문제가 한 개인이나 가족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이제 한 성읍 전체가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7:2–7은 다른 신을 섬긴 사람에 관한 사형 사건에서 철저한 조사와 두세 증인의 증언을 요구하고,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못하게 합니다. 13장에는 가족의 몰래 건네는 권유에 대한 상세한 재판 절차가 모두 설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개인이 의심만으로 가족을 즉시 살해해도 된다는 허가처럼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명기의 재판과 처벌에 관한 규정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형 명령 자체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소문을 들었다면 먼저 조사하라
여러 사람이 말한다고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사건은 한 성읍에 관한 소문으로 시작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살라고 주시는 성읍 가운데 한 곳에 관해 이런 소문을 들을 수도 있다.」신명기 13:13 · 두루새김
이 성읍은 이스라엘 바깥의 적대적인 도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 안에 있는 성읍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땅을 차지한 뒤에도 그 안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습니다.
14절에서는 「악한 남자들」이 나타나 그 성읍 사람들에게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권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14절은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확정해서 서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상황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소문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성읍이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 번의 조사 명령
15절은 매우 신중한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면 조사하고 살피며 철저히 물어보아라. 그 말이 참되고 확실하여, 너희 가운데서 그런 역겨운 일이 일어난 것으로 드러나면,」신명기 13:15 · 두루새김
히브리어에는 세 개의 동사가 연속으로 사용됩니다. 각 동사를 엄격하게 구분된 현대 수사 절차에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 동사가 연이어 사용되고 마지막에 「철저히」라는 말까지 붙는다는 사실은 분명한 효과를 냅니다.
충분히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되고 확실하여」라는 표현은 단순히 의혹이 그럴듯해 보이는 수준을 넘어 실제 사실로 확인되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앞의 두 사례에서 모세는 다른 신을 섬기자는 권유를 직접 받는 상황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례에서는 전해 들은 말만 있습니다.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다고 해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충분한 조사를 요구하는 이 명령 뒤에는 여전히 매우 어려운 형벌 규정이 놓여 있습니다.
자기 성읍을 완전히 없애라는 명령
왜 이스라엘의 성읍을 멸망시켜야 하는가
16절은 조사 결과 성읍에서 실제로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가 일어났음이 확인된 경우를 다룹니다.
「그 성읍 사람들을 반드시 칼로 쳐 죽여라. 그 성읍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가축도 칼로 죽여라.」신명기 13:1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적대적인 민족의 성읍을 정복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성읍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셨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 안에 있는 성읍이라도 다른 신들을 섬기는 길로 공동체를 이끈다면 심판의 대상으로 제시됩니다. 본문은 그 성읍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는지, 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별도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충분한 책임을 입증받았기 때문에 처형되었다고 덧붙여 설명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러한 집단적 파괴 명령은 실제로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 문제가 단순히 성읍을 파괴하는 일을 언약에 따른 심판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리품을 아무도 가져갈 수 없다
17절에서 모세는 성읍의 재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명령합니다.
「그 성읍에서 빼앗은 물건을 모두 광장 한가운데 모아라. 그리고 그 성읍과 빼앗은 모든 물건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바쳐 완전히 불태워라. 그 성읍은 영원히 무너진 채로 남아야 하며, 다시 세워져서는 안 된다.」신명기 13:17 · 두루새김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적대적인 집단을 제압했을 때 상대방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그러한 이익을 금지합니다.
「완전히 없애기로 한 것 가운데 아무것도 너희 것으로 남겨 두지 마라. 이는 여호와야훼께서 맹렬한 분노를 거두시고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불쌍히 여기시며,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 수를 많게 하시도록 하려는 것이다.」신명기 13:18 · 두루새김
여기서 「너희 것으로 남겨 두지 마라」(דָּבַק)로 옮긴 원문 표현에는 앞의 5절과 같은 어근의 동사가 등장합니다. 5절에서는 여호와야훼를 「굳게 붙들어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원문에서는 그것이 자기 손에 조금도 붙어 남지 않게 하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실함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재물에 대한 탐욕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기는 성읍을 심판한다는 명분으로 그곳의 재물을 차지한다면, 그 행위는 종교적 열심과 물질적 탐욕이 뒤섞인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은 이 심판이 사적인 복수나 약탈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읍을 파괴하는 행위로 개인이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비라는 말이 마지막에 등장하다
18절은 뜻밖에도 자비를 이야기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죽음과 파괴가 명령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자비와 번성이 약속됩니다. 이 문맥에서 자비와 번성의 약속은 심판받는 성읍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다는 고백과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어떻게 함께 이해해야 합니까?
신명기 13장은 그 문제를 오늘의 독자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해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아래 있는 공동체로 보고,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이끄는 행위를 그 관계를 파괴하는 중대한 반역으로 판단합니다. 그런 반역을 제거하는 일과 하나님의 분노가 거두어지고 공동체가 번성하는 일을 연결합니다.
그러나 이 논리를 이해하는 것과 그 안의 모든 윤리적 긴장이 해소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읍 전체에 내려지는 심판의 가혹함과, 그 뒤에 약속되는 자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려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을 지키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해야 한다.」신명기 13:19 · 두루새김
마지막 문장은 이 장의 처음으로 독자를 돌려보냅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말을 성실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제 19절에서도 그분의 모든 명령을 지키고, 그분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판단 기준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하람은 어떤 대상을 일반적인 사용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바치거나, 문맥에 따라 파괴하도록 정하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그 대상이나 행위와 관련된 명사 헤렘도 함께 사용됩니다. 이 문맥에서는 죽이고 파괴하는 명령이 직접 나오므로, 그 의미가 단순한 헌신이나 바침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을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 멸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누가복음 9:54–55). 또한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방식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8:36). 이것은 신명기 13장을 직접 인용한 해석은 아니지만,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실함과 종교적 강제력의 문제를 함께 생각할 때 성경 안의 중요한 연결점이 됩니다.
손에 붙어서는 안 될 것과 마음에 붙어 있어야 할 분
하나님을 굳게 붙들어야 할 사람의 손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자기 이익으로 삼은 흔적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13장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말하고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그 말이 이스라엘을 누구에게로 이끌고 있는가입니다.
모세는 그 충실함을 요구하면서 매우 가혹한 형벌까지 명령합니다. 그 형벌의 윤리적 어려움은 이 장을 읽은 뒤에도 남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의 구실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기적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몰래 속삭이며, 온 성읍이 다른 길로 향하더라도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분을 굳게 붙들어라.」
놀라운 현상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친 뒤에도, 이스라엘이 따라가야 할 분은 자신들을 종살이에서 구해 내신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 신명기 13장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한 가지 충실함을 이스라엘 앞에 요구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