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5–11장 · 호렙에서 맺은 언약

배부른 사람이 잊어버리는 것

광야에서 굶주리는 것과 풍요로운 땅에서 배부르게 사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믿음을 지키기 더 어려울까요? 신명기 8장은 뜻밖에도 두 번째 상황을 더 길고 절박하게 경고합니다. 광야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서는 먹을 것이 넉넉해져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10절에서 모세는 먹고 배부르게 되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똑같이 먹고 배부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같은 풍요가 찬양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망각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이 묻는 것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모세는 먼저 이스라엘을 풍요로운 땅이 아니라 배고팠던 광야로 데려갑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68장 본문 읽기 →

광야에서 배운 것 —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가

신명기 8:1–6 본문 →

하나님은 왜 굶주리게 하셨는가

1절에서 모세는 명령을 지키는 일과 생명, 번성, 땅의 소유를 연결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오랫동안 기다린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곧바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 땅의 풍요가 아닙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라고 합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이 마흔 해 동안 광야에서 여러분을 이끄신 모든 길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낮추시고 시험하여, 여러분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곧 여러분이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아보려 하셨습니다.」신명기 8:2 · 본디새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광야에서 일어난 몇 가지 기적만이 아닙니다. 「모든 길」입니다. 만나를 먹었던 날뿐 아니라 굶주렸던 날도, 물을 얻었던 순간뿐 아니라 목말랐던 시간도 그 기억에 포함됩니다.

모세는 광야의 고생을 우연한 불행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시험하셨다고 말합니다. 그 목적은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모르셨기 때문에 시험하셨다는 뜻일까요? 본문은 하나님이 무엇을 미리 알고 계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강조점은 시험을 통해 이스라엘의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때의 고백만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이 당장 주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의 익숙한 생존 방법 바깥에서 주어진 양식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6:15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보고 무엇인지 몰라 서로 묻습니다. 이어지는 설명에서 모세는 그것이 여호와야훼께서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라고 알려 줍니다.

먹을 것을 마련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곧 먹고 살 길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공급의 방식이 하나님께 있음을 배워야 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시며, 여러분도 모르고 여러분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여러분에게 먹이셨습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산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신명기 8:3 · 본디새김

이 구절은 흔히 육체의 양식보다 영적인 말씀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읽으면 광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흐려집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깨달음만 얻어서 배고픔을 견딘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먹을 것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빵이 필요 없다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빵을 얻는 일이 그들의 능력과 익숙한 방법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기록된 율법의 말씀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광야의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뜻하시는 바에 따라 생존에 필요한 양식이 주어진다는 의미가 특히 중요합니다.

이 점은 출애굽기 16:4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시면서, 백성이 날마다 필요한 분량을 거두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백성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지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나는 단순한 식량 공급이 아니었습니다. 그 식량을 얻는 방식 자체가 신뢰를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내일 필요한 것을 오늘 모두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에 따라 거두고, 그분이 내일도 먹이실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남겨 두지 말라는 지시를 어기고 아침까지 보관한 만나에는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출애굽기 16:19–20). 반면 안식일을 앞둔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틀 분량을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출애굽기 16:22–24).

사람을 살리는 것은 자신의 손에 확보해 둔 식량만이 아니라, 그 식량을 주시고 생명을 지속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징계하시는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다

「이 마흔 해 동안 여러분의 몸에 걸친 겉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여러분의 발도 붓지 않았습니다.」신명기 8:4 · 본디새김

옷과 발은 긴 여행을 견디는 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모세는 거대한 승리나 특별한 순간뿐 아니라, 계속 걸을 수 있었다는 일상적인 사실까지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사람이 자기 아들을 징계하듯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징계하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아십시오.」신명기 8:5 · 본디새김

따라서 광야의 어려움을 모두 개별적인 잘못에 대한 처벌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세가 제시하는 그림은 자녀를 버리지 않고 가르치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이 장을 현대의 고난에 적용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을 훈련시키기 위해 직접 주신 시험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광야 여정에 대한 모세의 해석입니다.

이 비유는 6절의 명령도 새롭게 읽게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고 그분을 두려워하라는 요구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강력한 지배자에게 복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을 이끄시고 먹이시고 지켜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광야는 그렇게 하나님의 돌보심을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은 광야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그 변화가 새로운 위험을 만듭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8:3의 말씀은 마태복음 4:4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인용하십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금식하신 예수님께서는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시험 앞에서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대답하십니다. 마태복음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배운 신뢰의 문제를 예수의 광야 시험과 연결합니다. 여기서도 핵심은 먹을 것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배고픔이라는 절박한 필요 앞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좋은 땅의 풍요 — 부족하지 않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명기 8:7–10 본문 →

물에서 시작해 쇠와 구리까지

7절부터 모세의 말은 갑자기 풍성해집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좋은 땅으로 데려가시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물이 흐르는 시내들이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 샘들과 깊은 물이 솟아나는 땅이며,」신명기 8:7 · 본디새김

먼저 등장하는 것은 물입니다. 시내들이 흐르고, 골짜기와 산에서 샘과 깊은 물이 솟아납니다. 광야에서 물을 찾아 헤맸던 사람들에게 이보다 먼저 소개해야 할 풍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먹을 것이 나옵니다. 밀과 보리는 일상적인 식량의 바탕이 되고,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석류나무는 과실을 제공합니다. 올리브나무에서는 기름을 얻을 수 있고, 꿀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9절은 철과 구리를 언급합니다. 땅의 풍요가 식탁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곳에는 도구와 여러 물건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원도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공급은 만나처럼 눈에 띄는 방식으로 나타났지만, 약속의 땅에서는 물과 토양과 수확과 노동의 결과를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앞으로 자기 손으로 땅을 일구고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와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리는 것의 근원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배부르게 된 다음에 드리는 찬양

「여러분이 먹고 배부르게 되면,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좋은 땅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찬양하십시오.」신명기 8:10 · 본디새김

사람은 부족할 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압니다. 무엇이 없고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러나 배부르게 되면 그 절실함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모세는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좋은 땅으로 말미암아」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식탁에는 농부의 노동과 그해의 수확이 놓이겠지만, 그보다 앞서 땅을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10절은 풍요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응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다음 절부터 모세는 같은 풍요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풍요의 시험 — 마음이 높아지는 순간

신명기 8:11–14 본문 →

좋은 것들이 늘어날수록

11절의 첫마디는 경고입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잊어,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명령들과 법규들과 규정들을 지키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신명기 8:11 · 본디새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망각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일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삶의 실제 판단과 행동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의 이어지는 가르침은 그 삶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나타나야 함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신명기 15:7–11은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굳게 하거나 손을 닫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자신이 받은 선물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절대적인 자기 소유로만 여기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이 먹고 배부르며 좋은 집들을 짓고 거기에 살고,」 「여러분의 소 떼와 양·염소 떼가 늘어나고 여러분의 은과 금이 늘어나며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것이 늘어날 때,」신명기 8:12–13 · 본디새김

여기에는 특별히 악한 행동이 하나도 없습니다.

먹고 배부르는 것, 좋은 집을 짓는 것, 가축과 재산이 늘어나는 것은 모두 앞에서 약속한 좋은 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물이 충분히 실현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을 경계합니다.

13절에서는 「늘어나다」라는 표현이 거듭 등장합니다. 가축이 늘어나고, 은과 금이 늘어나고, 모든 것이 늘어납니다. 소유가 확대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 준 다음, 모세는 14절에서 그 결과를 단 하나의 내적인 변화로 압축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높아져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분은 이집트 땅, 곧 종살이하던 집에서 여러분을 이끌어 내셨고,」신명기 8:14 · 본디새김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시험하셨습니다. 그런데 풍요로운 땅에서 그들의 마음은 스스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낮아짐과 높아짐은 단순히 경제적인 빈곤과 부유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2절의 낮아짐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는 일이고, 14절의 높아짐은 풍요를 누리면서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마음입니다.

광야의 부족함 속에서는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반대로 풍요로운 땅에서는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두드러지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능력을 사용하는 것과 자기 능력만으로 살고 있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경고는 신명기 6:10–12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건설하지 않은 성읍과 자신들이 파지 않은 우물과 자신들이 심지 않은 포도원과 올리브나무를 얻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배부르게 되었을 때 여호와야훼를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8장은 그 경고를 더욱 깊이 파고듭니다. 단지 선물로 받은 땅을 잊지 말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땅에서 자기 노동으로 얻은 성취까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묻기 때문입니다.

기억의 두 번째 자리 — 재산을 이룰 힘은 어디서 왔는가

신명기 8:15–18 본문 →

모세는 다시 광야를 보여 준다

14절에서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 뒤, 모세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길게 회상합니다.

앞부분에서는 광야의 경험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풍요를 누리는 사람이 왜 그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 없는 메마른 땅인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도록 여러분을 이끄시고, 여러분을 위해 차돌 바위에서 물을 내셨으며,」신명기 8:15 · 본디새김

모세는 광야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그곳은 위험한 동물이 있고 마실 물조차 없는 두려운 장소였습니다.

물은 시냇가나 샘터가 아니라 차돌 바위에서 나옵니다. 7절에서 약속의 땅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샘들이 있는 곳으로 묘사되었습니다. 15절의 광야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바위로부터 물을 내셨습니다.

물이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땅에서도, 물이 없던 광야에서도 이스라엘의 생존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달려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광야에서 여러분에게 먹이셨습니다. 여러분을 낮추시고 시험하시어 마침내 여러분이 잘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신명기 8:16 · 본디새김

여기서 「마침내」를 죽음 이후의 보상으로 옮겨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이 문맥은 광야의 여정과 장차 들어갈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낮아짐은 앞으로 맞이할 풍요를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힘이 아니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

이제 모세는 경고의 핵심을 제시합니다.

「또 마음속으로 『내 힘과 내 손의 능력이 나를 위해 이 재산을 이루었다.』 하고 말하지 않도록 하십시오.」신명기 8:17 · 본디새김

앞서 14절에서는 「마음이 높아져」 하나님을 잊는다고 했는데, 17절에서는 그 마음이 실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들려줍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랑이 아닙니다. 자기 삶에 대한 하나의 설명입니다.

이 말의 문제는 노동과 능력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18절이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재산을 이룰 힘을 주시는 분은 바로 그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그분의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시려는 것입니다.」신명기 8:18 · 본디새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그 능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

사람은 일하고 계획하고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생명, 기회, 땅과 자원, 그리고 일할 수 있는 힘까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의 수고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수고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일입니다.

재산의 목적은 언약과 연결된다

모세는 개인이나 집안의 번영을 그 자체로 최종 목적에 놓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얻고 삶을 일구는 사건은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12:1–3과 15:18–21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에는 자손과 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들어가려는 땅은 그 약속의 역사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18절을 누구든 하나님을 잘 믿으면 재산을 많이 얻게 된다는 일반적인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별히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 여정,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이라는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의 사람은 재산을 보고 「나를 위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18절은 그 능력을 하나님이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의 역사 안에 놓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성취만 바라보면 자기 삶의 이야기는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하고 끝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자기 삶을 그보다 훨씬 오래된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바라보도록 합니다.

이 대조는 바로 다음 장에서도 이어집니다. 신명기 9:4–6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한 뒤 자신의 의로움 때문에 그 땅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8장에서 경계하는 생각은 「내 힘으로 이 재산을 이루었다」는 것이고, 9장에서 경계하는 생각은 「내 의로움 때문에 이 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모든 성취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것과 자신의 의로움을 모든 은혜의 이유로 생각하는 것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둘 다 자신을 중심에 놓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린 사람의 마지막 선택

신명기 8:19–20 본문 →

신명기 8장은 가벼운 권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정말로 잊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몸을 굽혀 절한다면,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신명기 8:19 · 본디새김

앞에서는 하나님을 잊는 일이 마음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그 망각은 다른 신들을 따라가고 섬기고 절하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본문이 모든 형태의 교만을 곧바로 우상숭배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끝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 앞에서 멸하시는 민족들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멸망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신명기 8:20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는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무조건적인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이 말은 신명기 8장 전체의 출발점과 연결됩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실행해야 살고 번성하며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20절에서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땅을 차지하는 일과 그 땅에서 살아가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하나님께 귀 기울일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알고 있는 백성에게 그분을 기억하고 응답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모세의 논리입니다.

식탁 앞에서 갈라지는 두 길

신명기 8:1–20 본문 →

광야에서 배운 믿음은 빵이 없을 때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땅에서 지켜야 할 믿음은 빵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좋은 땅에서 곡식을 거두고 빵을 먹습니다. 그는 배부르게 되었습니다. 좋은 집도 있고, 가축과 재산도 늘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빵을 먹고, 같은 땅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 다 실제로 수고했을 것입니다. 둘 다 자신의 능력으로 많은 일을 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그 빵을 보며 자신을 여기까지 이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그 빵을 보며 자신의 힘만을 생각합니다.

신명기 8장은 그렇게 배부른 사람이 식탁 앞에서 어떤 말을 할 것인지 묻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