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5–11장 · 호렙에서 맺은 언약

사랑받아 선택된 백성의 엄격한 경계

신명기 7장에는 쉽게 나란히 놓기 어려운 두 말씀이 나옵니다.

한쪽에는 자비를 베풀지 말라는 명령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다른 민족들에 대한 철저한 파괴를 명령합니다.

그들은 우월하기 때문에 선택된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선택된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그 신상에서 은과 금을 떼어 자기 집에 들여오는 것까지 허용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7장이 이스라엘에게 묻는 것은 단순히 누구를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으며,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에서 시작하여 그들이 살아갈 집 안에까지 이릅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87장 본문 읽기 →

싸움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이다

신명기 7:1–5 본문 →

모세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마주할 일곱 민족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헷 사람, 기르가스 사람, 아모리 사람, 가나안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입니다. 이 목록은 출애굽기 3:8과 여호수아 3:10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신명기 7장에서는 이들이 이스라엘보다 수가 많고 강한 민족들로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그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시는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그들을 여러분 앞에 넘겨주셔서 여러분이 그들을 쳐부수게 되거든, 그들을 반드시 진멸하십시오.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십시오.」신명기 7:2 · 본디새김

승리의 주도권이 먼저 하나님께 놓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그 대상이 명백히 민족들입니다. 따라서 이 명령을 단순히 종교적 영향력을 제거하라는 비유적 표현으로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언약을 맺지 말 것, 혼인 관계를 맺지 말 것, 그리고 그들의 종교 시설을 파괴할 것. 이 세 명령은 서로 무관한 규칙이 아닙니다. 모두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위험과 연결됩니다.

왜 혼인 관계가 문제인가?

3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거나 그들의 딸을 이스라엘의 아들을 위해 데려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그 이유를 밝힙니다.

「그가 여러분의 아들을 돌려 나를 따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야훼의 노여움이 여러분을 향해 타올라 그분이 여러분을 속히 멸하실 것입니다.」신명기 7:4 · 본디새김

혼인을 금지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다른 민족의 혈통 자체가 더럽거나 열등하다는 주장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게 될 위험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혼인은 개인적인 애정 관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가문과 가문 사이의 결합이었고, 사회적·경제적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왕실 사이에서는 혼인이 정치적 동맹을 맺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집안과 혼인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우자 한 사람을 맞아들이는 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집안의 종교적 관습과 제의가 이스라엘의 생활 속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4:12–16도 가나안 주민들과 언약을 맺는 일, 그들의 신에게 제사하는 일, 그들과 혼인하는 일을 연결하여 경고합니다.

다만 이 설명을 근거로 모든 이방인과의 혼인이 언제나 동일하게 금지되었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21:10–14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경우를 규정합니다. 또한 룻기 1:16–17에서 모압 여자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며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이 본문들이 신명기 7장의 금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각기 살펴보아야 하지만, 적어도 성경 전체가 이방 혈통 자체를 신앙의 수용 가능성과 항상 동일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혼인 금지의 종교적 근거를 설명하는 일과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인 파괴 명령의 윤리적 정당성을 설명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제단과 기둥과 아세라를 무너뜨리라

「오히려 그들에게 이렇게 하십시오.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기둥들을 부수고, 그들의 아세라들을 찍어 버리고, 그들이 새긴 우상들을 불에 태우십시오.」신명기 7:5 · 본디새김

제단은 제사를 드리는 장소이고, 기둥은 종교적 의미를 가진 세워진 돌과 관련됩니다. 아세라는 고대 가나안 종교와 관계된 명칭입니다. 신명기에서는 찍어 버릴 수 있는 제의적 대상을 가리키지만, 그 구체적인 재질과 형태가 언제나 동일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뒤에도 이전의 종교적 체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거기에 여호와야훼에 대한 예배를 추가하는 방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게 되면, 여호와야훼와 맺은 언약에 충실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자비를 베풀지 마십시오」라는 명령은 인간을 향한 연민까지 금지하는 표현이므로 더욱 무겁게 읽혀야 합니다. 본문은 그 명령을 정복을 앞둔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놓지만, 왜 그 명령이 민간인에게까지 미치는지에 대한 충분한 윤리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을 해설할 때에는 해석자가 본문보다 더 쉽게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 명령을 오늘날 특정 민족이나 종교 집단을 제거하거나 박해할 수 있다는 근거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7장은 특정한 땅과 민족들,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명령을 기록합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자신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주장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2절의 진멸 명령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며, 신명기 20:16–18은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남기지 말라고 더욱 구체적으로 명령합니다. 한편 성경 전체에서는 가나안 주민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직 전면적인 파괴의 모습으로만 전개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2장과 6장에서 여리고의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정탐꾼들을 보호하며, 여리고 멸망 가운데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보존합니다. 여호수아 9장에서는 기브온 사람들이 속임수를 이용하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살아남습니다. 그들의 속임수는 비판적으로 서술되지만, 이스라엘은 이미 맺은 맹세를 함부로 깨뜨리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신명기 7장의 진멸 명령과 긴장 관계에 놓입니다. 그렇다고 이 사례들만으로 진멸 명령의 폭력성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안에 있지 않았다

신명기 7:6–8 본문 →

「여러분은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여러분을 택하여 그분의 특별한 소유인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신명기 7:6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의 엄격한 명령에 대한 이유로 제시됩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본래 다른 민족보다 죄가 없거나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여호와야훼께 속하도록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9:5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필 이스라엘입니까?

「여러분의 수가 다른 모든 민족보다 많아서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에게 마음을 두고 여러분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모든 민족 가운데 수가 가장 적습니다.」신명기 7:7 · 본디새김

앞의 1절에서는 가나안의 일곱 민족이 이스라엘보다 많고 강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객관적인 인구 순위를 현대적 통계처럼 제시하려는 진술이라기보다, 선택을 설명하면서 이스라엘의 수적 보잘것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습니까?

「오히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지키시기에,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여러분을 이끌어 내시고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집트 왕 파라오의 손에서 여러분을 속량하셨습니다.」신명기 7:8 · 본디새김

특히 「여러분을 사랑하시고」라는 표현은 신명기 6장의 중심 명령과 만나게 됩니다. 앞 장에서 이스라엘은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야훼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6:5).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 내기 위한 최초의 행동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분이 이미 보여 주신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두셨다는 표현

7절의 「마음을 두고」는 어떤 대상에게 애착을 가지거나 마음을 붙인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마음을 두신 이유를 설명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의 신실하심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특별해서 사랑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본래 우월하다는 증거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오히려 그들의 작음을 강조했습니다.

사랑은 실제 역사 속에서 행동했다

8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추상적인 감정으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속량하셨습니다」는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파라오의 지배 아래에서 종살이하던 상태로부터 구원받은 사건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그분이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랑과 심판을 모두 말하는 신실한 하나님

신명기 7:9–11 본문 →

9절은 이 장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아십시오. 그분은 신실한 하나님으로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이들에게 천 대에 걸쳐 언약과 한결같은 사랑을 지키십니다.」신명기 7:9 · 본디새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잊어버리시거나 아무렇게나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기억하셨고, 실제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미워하는 이들 각자에게 직접 갚아 멸하십니다. 그분을 미워하는 자에게 갚으시기를 지체하지 않으시고, 그 당사자에게 직접 갚으십니다.」신명기 7:10 · 본디새김

이 두 구절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사랑의 지속성과 심판의 엄중함이라는 두 방향에서 보여 줍니다. 신명기 5:9–10에서는 죄악을 삼 대와 사 대까지 묻는다는 말씀과 수천에 이르는 사랑이 대조되었습니다. 그런데 7:9에서는 「천 대에 걸쳐」 언약과 사랑을 지키신다고 명시합니다.

반면 7:10에서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이들에게 직접 갚으신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강조점은 하나님이 심판의 대상을 외면하시거나 그 행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신다는 데 있습니다.

11절에서 모세는 다시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내리는 명령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지켜 실행하십시오.」신명기 7:11 · 본디새김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순종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신실하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엘 파나브는 문자적으로 ‘그의 얼굴을 향해’라는 뜻을 지닙니다. 여기서는 그 당사자에게 직접 갚으신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반드시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바꿔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언약의 복은 얼마나 구체적인가

신명기 7:12–16 본문 →

12절은 조건문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이 법규들을 듣고 지켜 실행하면, 그에 따라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과 한결같은 사랑을 여러분에게 지키실 것입니다.」신명기 7:12 · 본디새김

앞부분은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구원하셨는지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그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살아갈 때 어떤 복을 누리게 되는지를 말합니다. 모세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획득하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언약 관계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에 약속된 복을 설명합니다.

13절부터는 그 복이 놀라울 만큼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태의 열매와 땅의 열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소 떼와 양 떼와 염소 떼의 번식이 모두 언급됩니다. 이것은 고대 농경과 목축 사회에서 사람들이 매일 경험하는 삶의 조건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은 단순히 경계선 안의 영토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생명이 자라고, 가족이 이어지며, 곡식과 가축이 번성하는 삶의 터전입니다. 이러한 복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을 약속하신 일과 연결됩니다(창세기 12:1–3; 17:4–8).

자녀를 얻지 못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약속

「여러분은 모든 민족보다 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식을 얻지 못하는 남녀가 없고, 여러분의 가축 가운데도 새끼를 얻지 못하는 암수가 없을 것입니다.」신명기 7:14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번성을 묘사하는 언약적 축복의 선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자녀의 출생은 가문의 지속과 공동체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가축의 번식 역시 생업과 생존에 직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모든 시대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불임이 없어야 한다는 개별적인 의학적 보장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오랫동안 자녀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장의 한나가 그러한 사례입니다. 따라서 자녀를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에게서 모든 병을 없애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이집트의 온갖 고약한 질병을 여러분에게 내리지 않으시고, 여러분을 미워하는 모든 이에게 내리실 것입니다.」신명기 7:15 · 본디새김

하지만 이 약속을 개별 신자의 모든 질병에 직접 대입하여 병에 걸린 이유가 불순종 때문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적들에게 질병이 내려진다는 본문의 심판 선언을 오늘날 타인의 질병을 하나님의 처벌이라고 판정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본문은 특정한 언약의 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축복과 심판을 설명합니다. 그 문맥을 벗어난 일반적인 질병 해석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의 약속 바로 다음에 다시 전쟁과 우상숭배에 관한 경고가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넘겨주시는 모든 민족을 삼켜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눈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게 하십시오. 그들의 신들을 섬기지 마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에게 올무가 되기 때문입니다.」신명기 7:16 · 본디새김

‘올무’는 어떤 사람이 걸려 빠져나오기 어려운 함정을 가리키는 이미지입니다. 모세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이스라엘에게 그런 올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 땅에 들어간 뒤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다면,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

신명기 7:17–21 본문 →

17절은 이스라엘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질문을 직접 인용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이 민족들은 나보다 수가 많다. 내가 어떻게 그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 하고 말하더라도,」신명기 7:17 · 본디새김

7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수가 많아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실 때에는 그들의 수가 적다는 사실이 장애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 싸울 때에도, 그 민족들의 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파라오와 온 이집트에 행하신 일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신명기 7:18 · 본디새김

모세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현재의 위험을 작게 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크게 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한 지배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곧 여러분의 눈이 본 큰 시험들과 표징들과 이적들, 그리고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끌어 내신 강한 손과 펼친 팔을 말합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신명기 7:19 · 본디새김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향한 신뢰의 근거가 됩니다.

여기서 믿음은 자신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믿어야 합니다.

말벌을 보내신다는 약속

「또한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벌을 보내셔서, 남아 있는 자들과 여러분 앞에서 몸을 숨긴 자들이 멸망할 때까지 그들을 치실 것입니다.」신명기 7:20 · 본디새김

이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직접 찾아내지 못한 적들까지 처리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들 앞에서 떨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계신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은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신명기 7:21 · 본디새김

이 구절에는 두려움의 방향이 바뀌는 대조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강하다고 믿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기억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강하신 분이라면 가나안 정복은 순식간에 끝나지 않을까요?

바로 다음 절에서 모세는 그 예상과 다른 말씀을 전합니다.

조금 더 깊이

18절의 히브리어에서는 ‘기억하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반복되어 기억의 확실함을 강조합니다. 출애굽기 23:28과 여호수아 24:12에도 하나님이 말벌을 보내신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말벌이 실제 곤충 떼를 뜻하는지, 적들에게 임하는 공포나 하나님의 군사적 개입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인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왜 조금씩 조금씩 몰아내시는가

신명기 7:22–24 본문 →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이 민족들을 여러분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몰아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속히 없애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들짐승이 불어나 여러분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신명기 7:22 · 본디새김

넓은 땅에서 기존 주민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면 사람이 관리하지 않는 공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들짐승이 번성하여 새롭게 정착하는 주민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29–30에도 같은 이유가 제시됩니다.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실제로 살아야 합니다.

성읍을 점령하고 적을 물리쳤더라도, 땅을 관리하고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면 안정된 정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승리만 약속하시는 것이 아니라, 승리 이후의 삶도 고려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이 그 민족들을 속히 없애 버릴 수 없는 이유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해서라거나, 하나님이 약속을 잊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모든 일이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보호 때문이라는 일반 법칙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명기 7:22는 특정한 정복 상황에서 들짐승이 늘어나는 위험을 이유로 제시합니다.

진멸하라는 명령과 점진적인 정복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2절에서는 반드시 진멸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22절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몰아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가지 읽기는 앞부분의 진멸을 정복의 최종적인 결과로 보고, 22절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실제로 23–24절에서는 적들이 끝내 진멸될 때까지 하나님이 그들을 넘겨주시고 혼란에 빠뜨리실 것이라고 다시 선언합니다.

그러나 ‘진멸’과 ‘몰아내다’는 정확히 같은 행동을 뜻하지 않습니다. 진멸은 파괴와 죽음을 강조할 수 있고, 몰아내는 것은 기존 주민들이 그 땅에서 떠나는 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표현을 구별하여, 신명기 7장이 가나안 주민들에 대한 파괴와 축출을 함께 말하고 있다고 읽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장은 가나안의 모든 주민이 한순간에 사라져 텅 빈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한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시간이 걸리는 정복과 정착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다만 본문이 지향하는 최종 결과는 여전히 매우 가혹합니다.

23–24절은 하나님이 적들을 큰 혼란에 빠뜨리시고, 왕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며, 이스라엘이 그들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없애 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들은 군사적 승리를 넘어 적들의 정치적 존재와 기억까지 지우는 철저한 패배를 묘사합니다. 따라서 22절의 점진성을 근거로 앞서 나온 파괴 명령을 모두 완화된 평화적 공존의 약속으로 바꾸어 읽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승리를 약속한 다음, 본문은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의 한 가지를 특별히 금지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도 정복과 정착의 복잡한 양상이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11:23에서는 여호수아가 온 땅을 차지했다고 요약하지만, 여호수아 13:1은 여전히 차지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사사기 1장도 여러 지파가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상황을 기록합니다. 이 기록들을 모두 동일한 시간과 관점에서 작성된 하나의 상세한 전쟁 일지처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완성된 성경에는 정복을 전체적으로 요약하는 진술과 실제 정착 과정의 미완성을 보여 주는 진술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우상에 붙은 은과 금을 탐내지 마라

신명기 7:25–26 본문 →

「그들의 신들을 새긴 우상들을 불에 태우십시오. 그 위에 있는 은과 금을 탐내어 여러분의 것으로 가져가지 마십시오. 그것 때문에 올무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신명기 7:25 · 본디새김

우상 자체를 섬기는 일은 이미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파괴하는 사람도 그 우상에 붙은 값비싼 금속을 탐낼 수 있습니다. 그는 우상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상을 불태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16절에서도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25절에서는 그 신들의 우상에 붙은 은과 금을 가져오는 일이 올무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우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값비싼 재료를 탐내서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두 경우 모두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승리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전리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멸 대상이 오히려 이스라엘의 집 안으로 들어온다면

「가증한 것을 여러분의 집 안으로 들여오지 마십시오. 들여오면 여러분도 그것처럼 진멸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반드시 혐오하고 반드시 가증하게 여기십시오. 그것은 진멸 대상이기 때문입니다.」신명기 7:26 · 본디새김

처음에는 다른 민족들이 진멸 대상으로 등장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스라엘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경고받습니다. 여기서는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이 무조건적인 면책권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라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6:9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집 문설주에 쓰라고 명령했습니다. 신명기 6:10–11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자신들이 세우지 않은 좋은 성읍과 집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7:26에서는 그 집 안으로 가증한 것을 들여오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집을 소유하는 일과 그 집 안에 무엇을 들여놓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속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탐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마드에서 나옵니다. 이 단어는 신명기 5:21에서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경고는 여호수아 7장의 아간 사건과 중요한 연결을 이룹니다. 여리고 정복 과정에서 아간은 진멸 대상에 속한 물건들 가운데 은과 금과 좋은 외투를 보고 탐내어 가져갔습니다(여호수아 7:20–21).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고, 아간의 행위는 공동체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여호수아 7:21에서 아간은 자신이 물건들을 보고 탐냈다고 고백합니다. 그곳에서도 ‘탐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하마드입니다.

집 문턱에서 멈추는 손

신명기 7:1–26 본문 →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집 안에 무엇을 들여놓을 것인지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져도 된다는 권리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 집을 마련한 사람은 그 집 문턱에 서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값비싼 은과 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집 안으로 들여놓아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을 이기는 장면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들이 탐내는 것을 자기 손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장면으로 끝냅니다.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될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명령은, 자기 집 안으로 무엇을 들여놓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