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5–11장 · 호렙에서 맺은 언약

배부를 때 기억할 하나님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장차 맞이할 한 장면을 그려 줍니다.

그들은 크고 좋은 성읍에 들어가 살게 될 것입니다. 집에는 온갖 좋은 것이 가득하고, 물을 길을 저수조가 있으며, 포도밭과 올리브나무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그들이 직접 마련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졌을 때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풍요 속에서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던 삶을 얻은 뒤, 그것을 누리게 하신 분을 잊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듣고, 그분을 온 존재로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을 마음과 일상과 다음 세대의 삶에 두라고 명령합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 묻지만, 그보다 먼저 왜 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86장 본문 읽기 →

한 세대의 순종이 다음 세대의 삶으로 이어지도록

신명기 6:1–3 본문 →

모세는 먼저 하나님이 자신에게 규정과 법규를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명령, 곧 규정과 법규입니다.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이 제게 이것들을 여러분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차지하려고 건너가는 땅에서 실행할 것들입니다.」신명기 6:1 · 본디새김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만 지켜야 하는 임시 규칙이 아닙니다. 그들이 새롭게 얻게 될 땅에서 실제로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이는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아들의 아들이 평생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제가 당신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규정과 명령을 지키게 하려는 것이며, 당신이 오래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신명기 6:2 · 본디새김

모세의 관심은 지금 눈앞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자녀와 손자녀도 같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한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만으로 공동체의 미래가 자동으로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다음 세대도 그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경외는 그저 무서워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그 태도가 실제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여, 듣고 주의하여 실행하십시오. 여러분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여러분이 잘되고 여러분의 수가 크게 늘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신명기 6:3 · 본디새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젖은 가축과 목축의 풍요를, 꿀은 땅에서 얻는 달고 풍성한 산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 약속을 실제로 누리게 될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풍요로운 땅을 얻는 것 자체만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땅의 풍요로움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들으십시오」 — 모든 명령의 중심

신명기 6:4–5 본문 →

「이스라엘이여, 들으십시오. 여호와야훼는 우리 하나님입니다. 여호와야훼는 한 분입니다.」신명기 6:4 · 본디새김

모세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별히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고백을 들으라고 합니다.

이 읽기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우리 하나님, 오직 여호와야훼뿐이다」처럼 읽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읽으면 이스라엘이 다른 신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야훼만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는 배타적인 충성이 강조됩니다.

그들이 섬겨야 할 하나님은 여호와야훼이시며, 그분에 대한 충성을 다른 신들에게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그분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고, 광야에서 인도하셨으며, 이제 약속의 땅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당신의 마음을 다하고 당신의 목숨을 다하고 당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신명기 6:5 · 본디새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단순히 강력한 지배자와 복종하는 백성의 관계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은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은 각각 무엇을 뜻할까?

‘마음’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장소만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심하는 내면 전체와 관계됩니다. ‘목숨’은 몸과 분리된 영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 자신의 생명과 삶을 포함합니다.

‘힘’으로 옮긴 메오드(⁨מְאֹד⁩)는 원래 ‘매우’, ‘대단히’라는 정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명사처럼 쓰여 자신이 가진 능력과 역량을 최대한 동원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재산이나 자원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만 뜻을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 표현은 인간을 분석하여 각각 다른 기능을 맡기는 목록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자신의 존재 전체를 기울이라는 강조입니다. 특히 세 표현 앞에 모두 「다하고」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신명기 6장의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억하며, 그분에게만 충실하고, 그분이 명령하신 삶을 살아가는 일이 사랑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순종을 단순한 의무 수행으로만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삶의 한 부분을 그분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는 현재형의 ‘이다’에 해당하는 연결 동사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어들을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따라 읽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명기 4:35, 39는 여호와야훼가 하나님이시며 그분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신명기 전체의 문맥에는 여호와야훼의 유일성에 관한 고백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편 바로 뒤의 6:14에서는 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6:4 역시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충성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본문의 문법만으로 어느 한 읽기를 배타적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신명기 6:4–5를 인용하십니다(마가복음 12:28–30). 그리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레위기 19:18의 명령을 함께 제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하나님 사랑 명령을 버리거나 대체하지 않고, 중요한 계명으로 다시 확인하십니다.

마음에서 시작하여 집의 문과 성문까지

신명기 6:6–9 본문 →

「오늘 제가 당신에게 명령하는 이 말들을 당신의 마음에 두십시오.」신명기 6:6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앞의 사랑 명령과 직접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라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돌판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돌판에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 의지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단순히 외워서 기억하는 것보다 깊은 요구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 말들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되풀이하여 가르치고, 당신의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그 말들에 관해 이야기하십시오.」신명기 6:7 · 본디새김

이 문맥에서는 가르침을 반복하여 분명하게 익히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말씀이 자녀의 생각과 삶 속에 깊이 자리 잡도록 계속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만 가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전해져야 합니다.

이것은 20절 이후에 등장하는 자녀의 질문을 준비합니다. 자녀는 단순히 부모가 말한 내용을 반복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8–9절은 말씀을 기억하는 자리를 더욱 넓힙니다.

「그 말들을 표징으로 당신의 손에 묶고, 당신의 두 눈 사이에 매는 띠가 되게 하십시오.」신명기 6:8 · 본디새김
「그 말들을 당신의 집 문설주들과 당신의 성문들에 쓰십시오.」신명기 6:9 · 본디새김

한 가지 읽기는 이것을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행동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생생한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손은 사람이 일을 하는 곳이고, 눈은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연결됩니다. 문설주와 성문은 가정과 공동체의 공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른 읽기는 이 명령이 실제로 말씀을 몸에 묶고 문설주에 기록하는 행위까지 요구한다고 봅니다. 후대 유대교에서는 이 말씀을 실제로 몸에 매는 테필린과 문설주에 두는 메주자의 전통으로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나 8–9절의 히브리어 표현만으로 그 물건들의 구체적인 구조나 후대의 모든 의례 방식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읽기가 반드시 서로 배타적인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말씀을 기록하여 몸이나 문에 두는 행동을 하면서, 동시에 그 말씀을 일상에서 기억하고 실천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일상적인 행동과 가족의 대화, 가정과 공동체의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1:13–21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명령과 함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자녀에게 가르치며 손과 눈 사이에 표징으로 삼으라는 가르침을 다시 제시합니다. 시편 78:1–8은 조상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일을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목적은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잊지 않으며 명령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세우지 않은 집에서 배부르게 될 때

신명기 6:10–12 본문 →

10–11절은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누리게 될 풍요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땅에 무엇이 있는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직접 하지 않은 일을 반복해서 언급합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시겠다고 당신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당신을 데려가셔서 당신이 세우지 않은 크고 좋은 성읍들,」신명기 6:10 · 본디새김
「당신이 채우지 않은 온갖 좋은 것이 가득한 집들, 당신이 깎아 파지 않았는데도 이미 깎아 파진 저수조들, 당신이 심지 않은 포도밭들과 올리브나무들을 주시고 당신이 먹고 배부르게 되거든,」신명기 6:11 · 본디새김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네가 하지 않았다’는 부정 표현이 네 차례 반복됩니다. 이 반복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누리게 될 것들이 자신들의 노동만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안정된 정착 생활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디에 머물지, 필요한 것을 어떻게 얻을지 하나님께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은 이미 마련된 도시와 집, 물 저장 시설과 농경지를 누리게 됩니다.

그 성읍들은 누군가가 세웠고, 집은 누군가가 채웠으며, 저수조와 포도밭도 이전 주민들이 마련한 것입니다. 신명기 6:19는 그 땅의 원수들을 몰아내는 일도 언급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얻게 될 풍요에는 기존 주민들의 삶과 노동, 그리고 정복과 축출이라는 어려운 역사적 현실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본문은 그 과정의 윤리적 문제를 여기서 자세히 해명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관심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누리게 될 생활을 자신의 업적으로만 이해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11절 마지막에 이르면 네 차례의 부정문 뒤에 한 가지 긍정적인 행동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것들을 누리면서 실제로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 가장 중요한 경고가 주어집니다.

「당신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야훼를 잊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신명기 6:12 · 본디새김

하나님 자신이 그 땅과 그 안의 좋은 것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도 그 풍요를 좋은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을 누리는 일과 그것을 주신 분을 기억하는 일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서는 집에 음식이 있고, 저수조에 물이 있으며, 밭과 나무에서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일상이 되면, 자신들이 종살이하던 집에서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이 자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자신들이 왜 그 땅에서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더 이상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경고한 것은 풍요 자체가 아니라, 풍요를 누리면서 자신이 무엇을 받았는지 잊어버리는 삶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성읍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모여 살아갈 장소를 제공합니다. 집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저수조는 비가 적은 시기에도 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포도밭과 올리브나무는 지속적인 농업 생산과 정착 생활의 기반이 됩니다. 특히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는 심은 즉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작물이 아닙니다. 오래 가꾸어야 생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가꾸지 않은 나무에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부족할 때 하나님을 시험하고, 풍족할 때 그분을 잊다

신명기 6:13–19 본문 →

12절에서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 모세는 곧바로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십시오.」신명기 6:13 · 본디새김

고대 사회에서 맹세는 자신의 말이나 약속을 확증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지는 그들이 누구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가와 연결됩니다.

앞 장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입에 올리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신명기 5:11).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행위 역시 진실과 책임을 동반해야 합니다.

14절은 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고, 15절은 여호와야훼가 그들 가운데 계시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백성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은 단순히 종교적인 선택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는 일이 됩니다.

맛사에서 이스라엘은 무엇을 시험했는가?

「여러분이 맛사에서 시험했듯이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신명기 6:16 · 본디새김

맛사는 출애굽기 17:1–7에 등장하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목말라 죽게 하려 하느냐고 불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가 자기들 가운데 계신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었습니다. 자신들이 목마른 상황을 근거로 하나님이 정말 함께 계시는지 시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도움을 구하는 모든 기도가 잘못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시편에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 기도 자체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동은 아닙니다.

맛사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상황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는 근거로 삼았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시는지 확인해야 그분의 임재를 믿겠다는 태도였습니다.

풍족할 때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족할 때에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지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두 상황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공통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과 그분의 말씀보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더 결정적인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이 배부를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목마를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들이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17절은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반드시 지키라고 합니다. 단순히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확실히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르고 좋은 일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잘되고,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좋은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신명기 6:18 · 본디새김

앞에서는 이스라엘이 좋은 땅과 좋은 성읍과 좋은 것이 가득한 집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는 그들이 좋은 것을 누리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땅이 좋다는 사실과 그 땅에서 하는 일이 좋다는 사실은 서로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땅을 주셨다고 해서 그곳에 사는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이 자동으로 옳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땅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르고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19절에서는 하나님이 원수들을 몰아내실 것이라는 약속이 다시 언급됩니다. 이것은 모세가 지금 설명하는 삶이 실제 영토를 차지하는 역사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땅을 얻는 과정과 그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아래 놓여 있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질문을 미래의 한 가정으로 옮깁니다.

아들이 율법에 관해 물을 때, 아버지는 왜 종살이 이야기부터 하는가

신명기 6:20–24 본문 →

「훗날 여러분의 아들이 여러분에게 『여호와야훼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증언과 규정과 법규는 무엇입니까?』 하고 묻거든,」신명기 6:20 · 본디새김

약속의 땅에 정착한 어느 가정에서 한 아이가 부모에게 묻습니다. 아이는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가르침이 무엇이며 왜 주어졌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제시하는 대답은 뜻밖입니다.

「여러분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우리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종이었다.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신명기 6:21 · 본디새김

왜 계명에 관한 질문에 종살이 이야기로 답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명령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르침은 어느 날 갑자기 백성에게 부과된 규칙의 모음이 아닙니다.

아들은 질문하면서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을 「여러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자 부모는 대답하면서 「우리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종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겪은 사건을 지금의 부모와 자녀가 함께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특정한 세대가 경험한 사건이지만, 그 사건으로 형성된 백성의 정체성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집니다.

22절은 하나님이 이집트와 파라오에게 행하신 표징과 이적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23절은 그 구원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더욱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우리를 거기서 이끌어 내셨다. 우리를 데려다가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이었다.』」신명기 6:23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해방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유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아무런 관계나 책임도 없이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상태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우리에게 이 모든 규정을 실행하고 여호와야훼 우리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명령하셨다. 언제나 우리가 잘되게 하시고 오늘처럼 우리를 살려 두시려는 것이다.』」신명기 6:24 · 본디새김

이것은 명령을 지키면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백성이 그분의 가르침 안에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아이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배우기 전에, 자신들을 구원하신 분이 누구신지 듣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단순히 규칙에 복종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왜 이 규칙을 따라 살아가는 백성이 되었는지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7절의 가르침과 20절의 질문이 서로 만납니다.

자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르침이 어떤 역사와 관계 안에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에게서 자녀로 단순히 옮겨지는 정보가 아니라, 자녀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의로움이 될 것이다」

신명기 6:25 본문 →

신명기 6장은 다음 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우리가 여호와야훼 우리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 명령 전체를 지켜 실행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의로움이 될 것이다.』」신명기 6:25 · 본디새김

이 문맥에서 의로움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그분 앞에서 지켜 실행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스라엘이 완벽하게 계명을 지켜야만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읽으면 바로 앞의 이야기와 순서가 달라집니다.

21–23절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24절에서 하나님이 규정들을 실행하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25절의 의로움은 이집트에서 구원받을 자격을 얻기 위한 사전 조건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말하는 조건을 약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문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으로 인정된다는 뜻을 지닙니다. 이것을 단순히 믿음이 있으면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선언으로 바꾸어 읽어서도 안 됩니다.

한편 신명기 9:4–6은 이스라엘이 자기 의로움 때문에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신명기 9장은 이스라엘이 왜 그 땅을 받게 되었는지를 다룹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도덕적 우월함이나 공로에 있지 않습니다.

신명기 6장은 구원받아 땅을 받을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지켜 실행하는 일이 그들의 의로움으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의롭기 때문에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뜻도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하셨으므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6장 첫 절은 「이것은 명령」이라는 단수형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규정과 법규들이 언급됩니다. 마지막 25절에서도 「이 명령 전체」라는 단수형 표현이 나옵니다. 여러 규정과 법규가 있지만, 모세는 그것들을 하나의 가르침으로 묶어 이야기합니다.

그 가르침의 중심에는 여호와야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분을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명령이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는 일은 이 중심적인 관계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의로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아이가 묻고, 부모가 대답하는 자리

신명기 6:1–25 본문 →

부모가 자녀에게 전하는 것은 단순히 지켜야 할 규칙들의 목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기억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집이 있고, 밭이 있으며, 먹을 것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그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집과 밭은 처음부터 자기 가족의 삶에 속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아이는 이집트의 종살이를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거나 목마름 때문에 두려워했던 일도 직접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부모는 그 말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왜 그런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지 가르칩니다. 아이가 하나님의 명령을 묻는 순간, 부모는 다시 이집트의 종살이와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풍족한 집에서 자란 아이가 자신들이 한때 종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집은 더 이상 당연히 주어진 소유만은 아니게 됩니다. 그 집에서 살아가는 이유와 그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하나님의 구원과 연결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좋은 집과 풍성한 식탁을 누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염려한 것은 그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누리면서 여호와야훼를 잊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집에서 아이들이 질문하고 부모가 대답하게 합니다.

그렇게 신명기 6장은 풍족한 집 안에 하나의 오래된 이야기를 남겨 둡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종이었다.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