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5–11장 · 호렙에서 맺은 언약
사랑받아 선택된 백성의 엄격한 경계
신명기 7장에는 쉽게 나란히 놓기 어려운 두 말씀이 나옵니다.
한쪽에는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명령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다른 민족들에 대한 철저한 파괴를 명령합니다.
신명기 7장이 이스라엘에게 묻는 것은 단순히 누구를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으며,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인지에서 시작하여 그들이 살아갈 집 안에까지 이릅니다.
싸움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마주할 일곱 민족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헷 사람, 기르가스 사람, 아모리 사람, 가나안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입니다. 이 목록은 출애굽기 3:8과 여호수아 3:10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신명기 7장에서는 이들이 이스라엘보다 수가 많고 강한 민족들로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그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시는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셔서 너희가 그들을 쳐부수게 되거든, 그들을 반드시 완전히 없애라.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신명기 7:2 · 두루새김
여기서 사용되는 헤렘은 특정 대상을 일반적인 사용이나 처분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전쟁의 문맥에서는 사람이나 물건을 남김없이 파괴하는 행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그 대상이 분명히 민족들입니다. 따라서 이 명령을 단순히 종교적 영향력을 제거하라는 비유적 표현으로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언약을 맺지 말 것, 혼인 관계를 맺지 말 것, 그리고 그들의 종교 시설을 파괴할 것. 이 세 명령은 서로 무관한 규칙이 아닙니다. 모두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위험과 연결됩니다.
왜 혼인 관계가 문제인가?
3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딸을 그들의 아들과 결혼시키거나 그들의 딸을 이스라엘의 아들의 아내로 맞아들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그 이유를 밝힙니다.
「그들이 너희 자녀를 여호와야훼에게서 돌아서게 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크게 화를 내시고 너희를 곧 멸하실 것이다.」신명기 7:4 · 두루새김
혼인을 금지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다른 민족의 혈통 자체가 더럽거나 열등하다는 주장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게 될 위험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혼인은 개인적인 애정 관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가문과 가문 사이의 결합이었고, 사회적·경제적 관계를 맺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왕실 사이에서는 혼인이 정치적 동맹을 맺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집안과 혼인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우자 한 사람을 맞아들이는 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집안의 종교적 관습과 의식이 이스라엘의 생활 속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4:12–16도 가나안 주민들과 언약을 맺는 일, 그들의 신에게 제사하는 일, 그들과 혼인하는 일을 연결하여 경고합니다.
다만 이 설명을 근거로 모든 이방인과의 혼인이 언제나 똑같이 금지되었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21:10–14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경우를 규정합니다. 또한 룻기 1:16–17에서 모압 여자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며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이 본문들이 신명기 7장의 금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각기 살펴보아야 하지만, 적어도 성경 전체가 이방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그 사람이 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이 이유가 2절의 완전히 없애라는 명령이 지닌 폭력을 없애 주는 것은 아닙니다. 혼인 금지의 종교적 근거를 설명하는 일과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인 파괴 명령이 윤리적으로 정당한지 설명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제단과 기둥과 아세라를 무너뜨리라
「오히려 그들에게 이렇게 하여라. 그들의 제단을 허물고, 신을 섬기려고 세운 돌기둥을 부수어라. 아세라 나무 기둥을 베어 버리고, 그들이 새긴 우상들을 불태워라.」신명기 7:5 · 두루새김
제단은 제사를 드리는 장소이고, 「신을 섬기려고 세운 돌기둥」은 종교적 의미를 가진 세워진 돌과 관련됩니다. 아세라는 고대 가나안 종교와 관계된 명칭입니다. 신명기에서는 베어 버릴 수 있는 종교 의식의 대상을 가리키지만, 그 구체적인 재질과 형태가 언제나 같았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목록은 가나안의 종교적 생활을 이루던 시설과 상징들을 폭넓게 가리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뒤에도 이전의 종교적 체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거기에 여호와야훼에 대한 예배를 추가하는 방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땅에서 살아가게 될 이스라엘은 오직 여호와야훼를 섬겨야 합니다.
특히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라는 명령은 인간을 향한 연민까지 금지하는 표현이므로 더욱 무겁게 읽혀야 합니다. 2절의 완전히 없애라는 명령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며, 신명기 20:16–18은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남기지 말라고 더욱 구체적으로 명령합니다. 본문은 그 명령을 정복을 앞둔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놓지만, 왜 그 명령이 민간인에게까지 미치는지에 대한 충분한 윤리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현대 독자에게 심각한 윤리적 질문을 남깁니다. 그 질문을 단순히 당시 문화가 달랐다는 설명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본문이 실제로는 우상만 파괴하라고 했다는 식으로 바꾸어 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을 해설할 때에는 해석자가 본문보다 더 쉽게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한편 성경 전체에서는 가나안 주민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직 모두 파괴되는 모습으로만 전개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2장과 6장에서 여리고의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정탐꾼들을 보호하며, 여리고 멸망 가운데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킵니다.
여호수아 9장에서는 기브온 사람들이 속임수를 이용하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살아남습니다. 그들의 속임수는 비판적으로 서술되지만, 이스라엘은 이미 맺은 맹세를 함부로 깨뜨리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신명기 7장의 완전히 없애라는 명령과 긴장 관계에 놓입니다. 그렇다고 이 사례들만으로 그 명령의 폭력성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 명령을 오늘날 특정 민족이나 종교 집단을 제거하거나 박해할 수 있다는 근거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7장은 특정한 땅과 민족들,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명령을 기록합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자신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주장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는 바로 다음 절에서 이스라엘이 왜 그처럼 구별되어 살아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안에 있지 않았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땅 위의 모든 민족 가운데 너희를 선택하여, 그분의 특별한 소유인 백성으로 삼으셨다.」신명기 7:6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앞의 엄격한 명령에 대한 이유로 제시됩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본래 다른 민족보다 죄가 없거나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여호와야훼께 속하도록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9:5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왜 하필 이스라엘입니까?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두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 수가 다른 모든 민족보다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 수가 가장 적었다.」신명기 7:7 · 두루새김
앞의 1절에서는 가나안의 일곱 민족이 이스라엘보다 많고 강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7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체가 모든 민족 가운데 수가 가장 적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객관적인 인구 순위를 현대적 통계처럼 제시하려는 말이라기보다, 선택을 설명하면서 이스라엘의 수가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습니까?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기 때문에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셨다. 너희가 종살이하던 곳에서, 이집트 왕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신명기 7:8 · 두루새김
특히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라는 표현은 신명기 6장의 중심 명령과 만나게 됩니다. 앞 장에서 이스라엘은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야훼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6:5).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 내기 위한 최초의 행동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분이 이미 보여 주신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마음을 두신 이유를 설명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을 충실히 지키시는 성품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특별해서 사랑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본래 우월하다는 증거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오히려 그들의 작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선택의 이유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실제 역사 속에서 행동했다
8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추상적인 감정으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그분이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셨고, 약속에 충실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 속에서 행동하셨습니다.
사랑과 심판을 모두 말하는 신실한 하나님
9절은 이 장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분은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천 대에 걸쳐 언약을 지키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신다.」신명기 7:9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잊어버리시거나 아무렇게나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기억하셨고, 실제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 사람 자신에게 벌을 내려 멸하신다. 그분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갚는 일을 미루지 않으시고, 바로 그 사람 자신에게 갚으신다.」신명기 7:10 · 두루새김
이 두 구절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사랑이 계속된다는 점과 심판이 엄중하다는 점에서 보여 줍니다. 신명기 5:9–10에서는 죄악을 삼 대와 사 대까지 묻는다는 말씀과 수천에 이르는 사랑이 대조되었습니다. 그런데 7:9에서는 「천 대에 걸쳐」 언약을 지키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신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반면 7:10에서는 「바로 그 사람 자신에게」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당사자에게 벌을 내리고 갚으신다는 뜻입니다. 강조점은 하나님이 심판의 대상을 외면하시거나 그 행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신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명령과 규정과 법을 잘 지켜 행하여라.」신명기 7:11 · 두루새김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순종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이 약속을 충실히 지키시는 분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야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속한 백성인지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언약의 복은 얼마나 구체적인가
12절은 조건문으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이 법을 듣고 잘 지켜 행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도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키시고 너희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실 것이다.」신명기 7:12 · 두루새김
앞부분은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구원하셨는지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그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살아갈 때 어떤 복을 누리게 되는지를 말합니다. 모세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얻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언약 관계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에 약속된 복을 설명합니다.
자녀와 땅에서 거두는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기름, 소 떼와 양 떼와 염소 떼의 새끼들이 모두 언급됩니다. 이것은 고대 농경과 목축 사회에서 사람들이 매일 경험하는 삶의 조건입니다. 먹을 것이 있고, 가족이 이어지며,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는 삶을 말합니다.
특히 원문에서는 「태의 열매」(פְּרִי)와 「땅의 열매」라는 표현이 나란히 등장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너희 자녀」와 「땅에서 거두는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사람의 번성과 땅의 생산이 함께 복으로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은 단순히 경계선 안의 영토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생명이 자라고, 가족이 이어지며, 곡식과 가축이 번성하는 삶의 터전입니다. 이러한 복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을 약속하신 일과 연결됩니다(창세기 12:1–3; 17:4–8).
자녀를 얻지 못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약속
「너희는 다른 모든 민족보다 더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 가운데 자녀를 얻지 못하는 남자나 여자가 없고, 너희 가축 가운데도 새끼를 얻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신명기 7:14 · 두루새김
고대 사회에서 자녀의 출생은 가문의 지속과 공동체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가축의 번식 역시 생업과 생존에 직접 연결되었습니다. 따라서 자녀와 가축의 번식이 함께 언급되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생명력이 풍성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모든 시대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불임이 없어야 한다는 개별적인 의학적 보장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누리게 될 공동체의 복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오랫동안 자녀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장의 한나가 그러한 사례입니다.
따라서 자녀를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15절의 질병에 관한 말씀도 마찬가지로 주의 깊게 읽어야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서 모든 병을 없애 주실 것이다. 너희가 알고 있는 이집트의 온갖 지독한 병을 너희에게 내리지 않으시고, 너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실 것이다.」신명기 7:15 · 두루새김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보호와 건강의 복을 누리게 되리라는 강한 약속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을 개별 신자의 모든 질병에 직접 대입하여 병에 걸린 이유가 불순종 때문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질병이 내려진다는 본문의 심판 선언을 오늘날 타인의 질병을 하나님의 처벌이라고 판정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의 약속 바로 다음에 다시 전쟁과 우상숭배에 관한 경고가 등장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넘겨주시는 모든 민족을 모조리 없애 버려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지 마라. 그 신들을 섬기는 일은 너희를 옭아매는 덫이 될 것이다.」신명기 7:16 · 두루새김
「덫」은 어떤 사람이 걸려 빠져나오기 어려운 함정을 가리키는 이미지입니다. 모세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이스라엘에게 그런 덫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좋은 땅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땅에 들어간 뒤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다면,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
17절은 이스라엘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질문을 직접 인용합니다.
「너희는 마음속으로 『이 민족들은 우리보다 수가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신명기 7:17 · 두루새김
7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수가 많아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17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의 많은 수 때문에 두려워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수의 많고 적음’이라는 문제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실 때에는 그들의 수가 적다는 사실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 싸울 때에도, 그 민족들의 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파라오와 온 이집트에 하신 일을 반드시 기억하여라.」신명기 7:18 · 두루새김
모세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현재의 위험을 작게 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크게 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한 지배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너희가 직접 본 큰 시험들과 표징과 기적을 기억하여라. 또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이끌어 내실 때 드러내신 강한 손과 뻗은 팔을 기억하여라. 그분은 너희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신명기 7:19 · 두루새김
이 표현들은 이집트에서 일어난 재앙과 출애굽 사건을 가리킵니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향한 신뢰의 근거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믿어야 합니다.
말벌을 보내신다는 약속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에게 말벌도 보내실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너희를 피해 숨은 사람들이 모두 멸망할 때까지 그렇게 하실 것이다.」신명기 7:20 · 두루새김
이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직접 찾아내지 못한 적들까지 처리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너희 가운데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신명기 7:21 · 두루새김
이 구절에는 두려움의 방향이 바뀌는 대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강한 민족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강하다고 믿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기억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강하신 분이라면 가나안 정복은 순식간에 끝나지 않을까요?
조금 더 깊이
18절의 원문에서는 ‘기억하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반복되어 기억의 확실함을 강조합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반드시 기억하여라」로 옮겼습니다. 출애굽기 23:28과 여호수아 24:12에도 하나님이 말벌을 보내신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말벌이 실제 곤충 떼를 뜻하는지, 적들에게 닥치는 공포나 하나님이 전쟁에 개입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인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왜 조금씩 조금씩 몰아내시는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이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조금씩 몰아내실 것이다. 너희는 그들을 단번에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들짐승이 불어나 너희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신명기 7:22 · 두루새김
넓은 땅에서 기존 주민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면 사람이 관리하지 않는 공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들짐승이 불어나 새롭게 정착하는 주민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29–30에도 같은 이유가 제시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수가 충분히 늘어나 땅을 차지할 수 있을 때까지 기존 주민들을 한 해 안에 모두 몰아내지 않고 조금씩 몰아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실제로 살아야 합니다.
성읍을 점령하고 적을 물리쳤더라도, 땅을 관리하고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면 안정된 정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승리만 약속하시는 것이 아니라, 승리 이후의 삶도 생각하시는 분으로 그려집니다.
이스라엘이 그 민족들을 단번에 없앨 수 없는 이유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해서라거나, 하나님이 약속을 잊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땅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조건과 관계된 이유가 제시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모든 일이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보호 때문이라는 일반 법칙으로 넓혀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진멸하라는 명령과 점진적인 정복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2절에서는 「반드시 완전히 없애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22절에서는 「조금씩 몰아내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한 가지 읽기는 앞부분의 완전히 없애라는 명령을 정복의 최종적인 결과로 보고, 22절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실제로 23–24절에서는 적들이 끝내 멸망할 때까지 하나님이 그들을 넘겨주시고 혼란에 빠뜨리실 것이라고 다시 선언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없애라」와 「몰아내실 것이다」는 정확히 같은 행동을 뜻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없애는 것은 파괴와 죽음을 강조할 수 있고, 몰아내는 것은 기존 주민들이 그 땅에서 떠나는 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표현을 구별하여, 신명기 7장이 가나안 주민들을 파괴하고 쫓아내는 일을 함께 말하고 있다고 읽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장은 가나안의 모든 주민이 한순간에 사라져 텅 빈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한다고 그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시간이 걸리는 정복과 정착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도 정복과 정착의 복잡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11:23에서는 여호수아가 온 땅을 차지했다고 요약하지만, 여호수아 13:1은 여전히 차지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사사기 1장도 여러 지파가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상황을 기록합니다. 완성된 성경에는 정복을 전체적으로 요약하는 말과 실제 정착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말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다만 본문이 향하는 최종 결과는 여전히 매우 가혹합니다.
23–24절은 하나님이 적들을 큰 혼란에 빠뜨리시고, 왕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며, 이스라엘이 그들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없애 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들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넘어 적들의 정치적 존재와 기억까지 지우는 철저한 패배를 그립니다. 따라서 22절에서 조금씩 몰아내신다고 한 것을 근거로 앞서 나온 파괴 명령을 모두 약해진 명령이나 평화롭게 함께 살라는 약속으로 바꾸어 읽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승리를 약속한 다음, 본문은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의 한 가지를 특별히 금지합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의 「조금씩」에 해당하는 원문은 히브리어 메아트 메아트(מְעַט)로, 같은 말을 반복하여 조금씩 이루어지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우상에 붙은 은과 금을 탐내지 마라
「그들의 신들을 본떠 새긴 우상들을 불태워라. 우상에 붙어 있는 은과 금을 탐내지도 말고 너희 것으로 가져가지도 마라. 그것이 너희를 잡는 덫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신명기 7:25 · 두루새김
우상 자체를 섬기는 일은 이미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파괴하는 사람도 그 우상에 붙은 값비싼 금속을 탐낼 수 있습니다. 그는 우상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상을 불태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우상에 사용된 은과 금을 보면서 자기 것으로 가져가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앞에서는 이웃에게 속한 것을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신들의 우상에 붙은 은과 금을 탐내지 말라고 합니다. 대상은 다르지만 인간의 욕망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점은 같습니다.
16절에서도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너희를 옭아매는 덫」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25절에서는 그 신들의 우상에 붙은 은과 금을 가져오는 일이 덫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신들을 섬길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역겨워하시는 것과 연결된 재물을 자신의 소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승리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전리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멸 대상이 오히려 이스라엘의 집 안으로 들어온다면
「그 역겨운 것을 너희 집에 들이지 마라. 그것을 들이면 너희도 그것처럼 완전히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것을 철저히 꺼리고 몹시 역겨운 것으로 여겨라. 그것은 반드시 완전히 없애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신명기 7:2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을 완전히 없애라는 명령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받은 백성이라고 해서 자신들은 어떤 경우에도 심판에서 제외된다고 보장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라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경고는 여호수아 7장의 아간 사건과 중요한 연결을 이룹니다. 여리고 정복 과정에서 아간은 완전히 없애야 할 물건들 가운데 은과 금과 좋은 외투를 보고 탐내어 가져갔습니다(여호수아 7:20–21).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고, 아간의 행동은 공동체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신명기 6:9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집 문설주에 쓰라고 명령했습니다. 신명기 6:10–11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자신들이 세우지 않은 좋은 성읍과 집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7:26에서는 그 집 안으로 「그 역겨운 것」을 들이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집을 소유하는 일과 그 집 안에 무엇을 들여놓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속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승리한 뒤 자기 집에 무엇을 가져오지 말아야 하는지까지 가르칩니다.
그들의 신앙은 전쟁터에서만 시험받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집 문턱에서도 시험받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여기서 2절에 등장했던 헤렘이라는 말이 다시 나옵니다. 두루새김은 2절에서 「반드시 완전히 없애라」로 옮기고, 26절에서는 「완전히 없어져야 할 대상」과 「반드시 완전히 없애야 할 것」으로 풀었습니다.
집 문턱에서 멈추는 손
하나님이 주신 것과 금하신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들은 강해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었고, 원하는 모든 것을 차지할 권리를 받았기 때문에 선택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명령보다 높은 자리에 세워 주지는 않았습니다.
신명기 7장은 그 경고를 집 안으로 들여오는 한 물건에 집중시키며 끝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 집을 마련한 사람은 그 집 문턱에 서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값비싼 은과 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집 안으로 들여놓아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을 이기는 장면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들이 탐내는 것을 자기 손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장면으로 끝냅니다.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될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명령은, 자기 집 안으로 무엇을 들여놓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