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9–10장 · 부림절의 시작

왕 다음가는 사람은 누구를 위해 사는가

에스더서의 마지막 장은 뜻밖의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유다인들은 멸절의 위협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대대로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서술자는 다시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를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왕이 백성에게 부담을 지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제국의 중심에 모르드개가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마지막 질문은 누가 권력을 차지했는가가 아니라, 권력을 얻은 사람이 누구의 행복을 구했는가입니다.

읽는 시간 10분소단락 410장 본문 읽기 →

왕의 권력은 여전히 세상 끝까지 미친다

에스더 10:1 본문 →

아하수에로 왕은 그 땅과 바다의 해안 지역들에 부역을 부과했다.에스더 10:1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에스더서의 첫 장면과 연결됩니다.

책의 시작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인도에서 구스까지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1:1). 그는 자신의 부와 권세를 과시하는 거대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서도 그의 광대한 통치 영역이 언급됩니다.

다만 처음에는 왕의 영화로운 잔치가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왕이 부과한 의무가 등장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마스(⁨מַס⁩)는 강제 노역이나 공납·조세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구절만으로 왕이 구체적으로 어떤 노동이나 재물을 요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디새김은 이를 “부역”으로 옮겼지만, 조세를 부과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왜 서술자는 이 사실을 마지막에 언급했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의 통치가 더욱 강해졌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이어지는 모르드개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 주기 위한 배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 전체의 흐름 속에서는 또 하나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유다인의 구원은 제국의 종말과 함께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제국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납니다.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광야의 길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에스더서에서 유다인들은 페르시아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정치적 질서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변화한 것은 그 질서 속에서 그들이 처한 위치입니다.

어제까지 유다인의 멸절을 계획한 하만이 왕의 인장 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유다인 모르드개가 왕 다음가는 지위에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살아남았고, 새로운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는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놓여 있습니다.

왕의 연대기에 기록된 모르드개

에스더 10:2 본문 →

왕이 권력과 위세를 떨치며 행한 모든 일과, 왕이 높인 모르드개의 큰 권세에 관한 자세한 내역은 메대와 페르시아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에스더 10:2 · 본디새김

왕의 업적을 기록하는 문장 속에 모르드개의 이야기가 들어온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모르드개의 위대함과 왕이 그를 높였다는 표현에 같은 어근이 사용됩니다. 모르드개의 높아진 지위가 왕의 권한으로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2장에서 모르드개는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알아내고 이를 알렸습니다. 그 사건은 왕 앞에서 궁중 기록에 남았습니다(2:21–23). 그러나 당시 모르드개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왕이 잠들지 못하던 밤에 그 기록이 낭독됩니다. 왕은 모르드개가 자신을 위해 한 일을 알게 되고, 그에게 아무런 영예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6:1–3).

이때부터 모르드개의 처지가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기록에만 남아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왕의 연대기에 큰 권세를 가진 인물로 기록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선행은 즉시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한 일은 한동안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잊힌 듯했던 기록이 다시 읽혔을 때, 그 일은 사건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는 에스더서의 신학적 읽기에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거나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러나 왕의 잠 못 이루는 밤, 우연처럼 보이는 기록의 낭독, 오래전에 이루어진 한 사람의 선행이 맞물려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물론 본문은 왕이 잠들지 못한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건들의 배치를 통해 섭리를 읽어 내는 해석입니다.

다만 10:2의 물음은 역사적 기록의 존재를 가리키는 서술자의 표현이지, 오늘날 우리가 그 연대기를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구절만으로 모르드개의 행적에 관한 외부 사료가 현존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그의 권세를 이야기한 뒤, 마지막 절에서 더 중요한 것을 덧붙입니다.

왕 다음가는 사람, 그러나 자기 백성을 위해 살아간 사람

에스더 10:3 본문 →

실로 유다인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 다음가는 지위에 있었고, 유다인들 가운데 큰 인물이었으며 많은 동족의 호의를 얻었다. 그는 자기 백성의 행복을 구하며 자기 겨레 모두에게 평안을 전했다.에스더 10:3 · 본디새김

이 구절은 모르드개의 지위를 두 방향에서 설명합니다.

하나는 페르시아 왕국 안에서의 위치입니다. 그는 왕 다음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다인 공동체 안에서의 위치입니다. 그는 유다인들 가운데 큰 인물이었고, 많은 동족의 호의를 얻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왕에게 인정받는다고 해서 자기 민족에게도 존경받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자기 민족을 위해 헌신한다고 해서 제국의 통치자가 높은 지위를 허락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르드개는 두 세계에 모두 속한 사람입니다.

페르시아 왕에게는 신임받는 고위 관리이며, 유다인들에게는 그들의 생존을 위해 행동한 동족입니다. “많은 동족의 호의를 얻었다”고 하지, 모든 동족이 그를 좋아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모르드개를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은 반대자의 존재나 반대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서술자는 모르드개의 인기를 모든 사람의 일치된 지지로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가 구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히브리어 본문은 그가 자기 백성의 “좋음”(⁨טוֹב⁩)을 구하고, 자기 공동체에 “평안”(⁨שָׁלוֹם⁩)을 말했다고 표현합니다. 문맥상 모르드개는 자기 백성이 잘되도록 힘쓰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모르드개가 얼마나 부유해졌는지, 어떤 집을 소유했는지, 얼마나 많은 신하를 거느렸는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권세를 설명하는 마지막 말은 자기 백성의 행복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얼마나 높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그의 지위가 말해 주지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가 추구한 것이 말해 줍니다.

이는 하만과 모르드개를 마지막으로 대조하게 만듭니다.

하만도 왕에게 높은 지위를 받았습니다(3:1).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 한 사람에 대한 분노를 유다인 전체를 멸절시키려는 계획으로 확대했습니다(3:5–6). 하만은 자기 지위에 대한 위협을 참지 못했고, 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했습니다.

반면 모르드개는 높은 지위를 얻은 뒤에도 자기 백성을 위한 행동으로 평가받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제국 안에서 왕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지만, 권력을 사용하는 방향은 달랐습니다.

평안을 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자기 겨레에게 평안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평안을 구하는 말과 소식을 전하는 행동, 또는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말하고 힘쓰는 태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평안을 전달했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모르드개가 모든 갈등을 해결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앞으로 아무런 위협도 없을 것이라고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이 짧은 결말이 남기는 신학적 의미

에스더서의 마지막 세 절에는 하나님의 이름도, 직접적인 신앙 고백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에스더서가 보여 주는 구원은 제국의 질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 질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보존되고 살아갈 길을 얻는 일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창세기에서 요셉이 이집트의 통치자 아래 높은 지위에 올랐던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요셉은 파라오 다음가는 권한을 받았고(창 41:40–43), 그 권한을 통해 기근 속에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특히 요셉은 자신에게 악을 행했던 형제들에게 하나님이 그 일을 선으로 바꾸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창 50:20).

그러나 두 이야기는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악한 의도를 선한 결과로 바꾸셨다는 해석을 직접 제시합니다. 반면 에스더서는 그러한 신학적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사건의 반전과 인물들의 행동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섭리를 읽도록 남겨 둡니다.

여기에서 예레미야 29:7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사는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 성읍을 위해 여호와야훼께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성읍이 평안해야 그들 역시 평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본문은 같은 명령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배민에게 그들이 사는 도시의 평안을 구하라고 하고, 에스더서는 모르드개가 자기 백성을 위해 행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두 본문은 외국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단순히 그 질서의 희생자로만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녕을 위해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에스더가 아니라 모르드개다

에스더서의 제목은 에스더의 이름을 따랐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갔고, 하만의 계획을 폭로했으며, 부림절 규정을 확정하는 데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책의 마지막 세 절에는 에스더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모르드개의 이름이 반복됩니다.

다만 마지막 장은 사건의 해결을 위한 행동에서, 그 사건 이후 공동체가 살아갈 질서로 시선을 옮깁니다. 에스더가 왕궁 안에서 자기 민족의 생명을 위해 나아갔다면, 모르드개는 이제 왕의 권력 안에서 자기 민족의 행복을 구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두 사람의 역할은 서로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동사는 평안을 “이루었다”가 아니라 평안을 “말했다”입니다. 또한 “자기 겨레 모두에게”로 번역된 표현의 마지막 단어 자로(⁨זֶרַע⁩)는 문자적으로 “그의 씨”, 곧 그의 후손을 뜻할 수 있습니다. 문맥상 유다인 공동체나 그 후손 전체를 가리키는 넓은 표현으로 읽을 여지가 있지만, 모르드개 개인의 후손으로 좁혀 이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본문만으로 그 범위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론: 왕의 연대기와 한 민족의 기억

에스더 10:1–3 본문 →

왕의 연대기는 모르드개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말합니다. 반면 에스더서의 마지막 문장은 그가 높아진 뒤 누구를 위해 살았는지를 말합니다.

하만이 없애려 했던 민족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없애는 데 사용될 뻔했던 제국의 권력 한가운데에, 이제 그들의 행복을 구하고 평안을 전하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왕 다음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올라서도 자기 백성의 평안을 구했다는 말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