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2–14장 · 유월절과 떠남

해방된 백성을 먼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은 마침내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을 향해 가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장 가까운 길을 택하지 않으십니다. 그 길에서 전쟁을 만나면 백성이 마음을 바꾸어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처럼 보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를 굴복시키고 백성을 해방하신 하나님이 어째서 그 백성이 전쟁을 보면 겁을 먹을까 염려하십니까? 이스라엘은 이미 무장한 채 이집트를 나왔는데, 왜 전쟁을 피하도록 인도하십니까?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는 일과,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는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의 앞부분은 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맏아들과 절기, 자녀에게 들려줄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나왔으며, 누구의 손으로 구원받았고, 이제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억해야 할 과거를 받았고, 동시에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미래를 받았습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13장 본문 읽기 →

살아남은 맏아들은 이제 누구의 것인가

출애굽기 13:1–2 본문 →

출애굽기 13장은 짧고 단호한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맏것, 곧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사람과 가축의 태를 처음 여는 것을 나를 위해 성별하여라. 그것은 내 것이다.」출애굽기 13:2 · 본디새김

이집트에서는 맏아들과 가축의 맏배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집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보호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야훼는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맏것을 자신에게 성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물을 바치라는 종교적 의무가 아닙니다. 생명의 소속에 관한 선언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나를 위해 성별하여라」(⁨קָדַשׁ⁩)는 명령과 마지막의 「그것은 내 것이다」는 선언은 모두 여호와야훼 자신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맏것을 구별해야 하는 까닭은 여호와야훼께서 그 생명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태를 처음 여는 것」은 태를 여는 첫 출생을 가리키며, 단순히 한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자녀라는 개념보다 출생의 순서를 구체적으로 나타냅니다. 이 표현이 중요한 것은 뒤에서 사람의 맏아들과 가축의 맏배를 각각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은 12–13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주어집니다. 모든 맏것이 여호와야훼께 속하지만, 사람의 맏아들과 가축의 맏배를 드리는 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생명이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사실은, 그 생명을 구하신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는 데서 이해됩니다.

「내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 후손도 자기 이야기로 기억한다

출애굽기 13:3–8 본문 →

모세는 백성에게 출애굽의 날을 기억하라고 명령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집에서 나온 이날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여러분을 이곳에서 이끌어 내셨기 때문입니다. 누룩 든 것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출애굽기 13:3 · 본디새김

집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머물며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이집트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집이 아니라 종속되어 살아야 하는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노예살이하던 집에서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일을 기억하는 구체적인 방식으로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고 명령합니다. 아빕 달에 이집트를 떠난 사건을 기억하며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야훼를 위한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무교절은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땅에서도 계속 지켜야 할 절기입니다. 5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그들을 데려가시면 이달에 그 의식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이집트에서는 떠나기 위해 급히 누룩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더 이상 이집트에서 쫓겨나는 중이 아닐 것입니다. 그때에도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합니다.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는 때에도 자신들이 노예살이하던 집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삶이 시작된 뒤에는 과거의 고통을 잊기 쉽습니다. 자신들이 지금 누리는 삶을 마치 처음부터 당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위해 하신 일」이라는 뜻밖의 일인칭

8절은 이 기억이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해져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날 여러분은 저마다 아들에게 이렇게 알려 주십시오. 『이것은 내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여호와야훼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 때문이다.』」출애굽기 13:8 · 본디새김

모세는 후손들이 출애굽을 설명할 때 단순히 먼 옛날 조상들에게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여호와야훼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이라고 말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이집트에서 나온 세대에게는 문자 그대로 자신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이 의식은 대대로 이어져야 하므로, 훗날 이집트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도 그 말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은 단지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을 회상하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그 공동체의 구원 사건을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후손들은 이집트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백성의 후손이며, 그 구원으로 시작된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은 조상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알아야 할 것은 언제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라는 정보만이 아닙니다. 그 사건이 오늘 자신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손 위의 표, 두 눈 사이의 기념, 입에 있는 가르침

출애굽기 13:9–10 본문 →

모세는 이어서 독특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호와야훼의 가르침이 여러분의 입에 있도록, 이것은 여러분 각자의 손 위에 표가 되고 두 눈 사이에 기념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여러분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13:9 · 본디새김

손은 사람이 행동하는 데 사용하는 신체 부위이고,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데 사용하며, 입은 말을 하는 데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출애굽의 기억이 단지 마음속에 보관된 생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 기억은 행동과 생각, 말에 계속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손과 눈에 관한 표징이 결국 입에 있는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왜 무교절을 지키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물을 때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신 일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기억하는 표를 사람의 「손 위에」 두라고 합니다.

두 손이 서로 대응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야훼의 손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구원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이스라엘 사람의 손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손의 능력으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의 강한 손으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기 손으로 행하는 일 속에서 그 구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다음 절은 이 규정을 해마다 정해진 때에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은 해마다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반복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의미를 배우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손과 두 눈 사이의 표를 문자적으로 몸에 부착하는 물건으로 이해할 것인지, 기억과 행동을 강조하는 비유로 이해할 것인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신명기 6:8과 11:18에도 등장하며, 후대 유대교에서는 성경 말씀을 담은 경문을 몸에 매는 의례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3:9 자체는 그 표의 재료나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문맥에서 우선 분명한 것은 출애굽의 기억이 계속해서 가르침과 행동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6:6–9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손에 매어 표를 삼고 두 눈 사이에 붙여 기호를 삼으라고 명령합니다. 출애굽기 13장이 출애굽의 기억을 손과 눈, 입에 연결했다면,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일상생활 속에서 기억하고 가르치는 일로 확장합니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자녀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나귀의 맏배는 대속하고, 아들의 맏아들도 대속한다

출애굽기 13:11–16 본문 →

모세는 다시 맏것을 성별하는 규정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의 상황을 전제로 설명합니다.

「태를 처음 여는 것은 모두 여호와야훼께 넘겨 드리십시오. 여러분에게 생기는 가축의 모든 맏배 가운데 수컷들은 여호와야훼의 것입니다.」출애굽기 13:12 · 본디새김

그러나 모든 가축의 맏배를 같은 방식으로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나귀의 맏배는 모두 양이나 염소 한 마리로 대속하십시오. 대속하지 않으면 그 목을 꺾으십시오. 여러분의 아들 가운데 맏아들은 모두 대속하십시오.」출애굽기 13:13 · 본디새김

「대속하다」는 대가를 내거나 대신할 것을 제공하여 어떤 대상이 정해진 의무에서 풀려나게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나귀는 이스라엘의 제사 규정에서 제물로 드릴 수 있는 정결한 가축에 속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귀의 맏배를 여호와야훼께 드릴 때에는 다른 짐승으로 대신하는 규정이 주어집니다.

대속하지 않으면 목을 꺾으라는 명령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 짐승을 제물로 바친다는 뜻과는 구별됩니다. 대속하지 않는 나귀의 맏배를 그대로 자신의 소유로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왜 그런 방식으로 죽여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맏아들은 죽이거나 제물로 바치라고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대속하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사실이 사람과 가축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맏아들은 여호와야훼께 속하지만, 그 소속을 인정하는 방식은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대속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것은 그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생명을 구하신 분 앞에서 그 소속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해방과 소속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파라오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이제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맏아들의 대속을 왜 자녀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훗날 여러분의 아들이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그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다.』」출애굽기 13:14 · 본디새김

무교절은 정해진 때에 반복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맏것의 성별과 대속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일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달력이 돌아올 때에도 출애굽을 기억하고, 집안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때에도 출애굽을 기억합니다.

한 아이의 출생은 그 가정에 새로운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그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도 기억합니다.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내보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의 모든 맏것을 치셨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자신의 맏것을 여호와야훼께 구별하여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맏아들의 대속은 따라서 막연한 종교적 의무가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살아남은 생명에 관한 기억을 다음 세대의 삶 속에 새기는 행동입니다.

8절에서는 「나를 위해 하신 일」이라고 했고, 14절에서는 「우리를 이집트에서」라고 합니다. 개인의 이야기와 공동체의 이야기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한 여호와야훼의 구원을 기억하지만, 그 구원은 자신이 속한 백성 전체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람의 맏아들을 대속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액수는 아직 설명되지 않습니다. 민수기 18:15–16에서는 맏아들의 대속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제시됩니다. 민수기 3:12–13에서는 레위인을 이스라엘의 맏아들 대신 취하는 일이 설명되고, 민수기 18:15–16에서는 사람의 맏아들을 대속하는 규정이 제시됩니다. 이는 출애굽기 13장의 선언이 이후 이스라엘의 예배와 공동체 조직 속에서 더 구체적인 제도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무장한 백성을 하나님은 전쟁에서 멀어지게 하셨다

출애굽기 13:17–18 본문 →

이제 이야기는 갑자기 광야의 길로 옮겨 갑니다.

파라오가 백성을 내보냈을 때,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지나는 길이 가까웠지만 그 길로 그들을 이끌지 않았다. 하나님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마음을 바꾸어 이집트로 돌아갈까 염려된다.」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3:17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향할 때 반드시 멀리 돌아가야 할 지리적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더 가까운 길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 길을 택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보면 마음을 바꿀 수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

이 구절에서는 전쟁을 보고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거나 태도를 바꾸어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이동 경로만 고려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고려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갈대 바다로 향하는 광야 길로 돌아서 가게 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무장한 채 이집트 땅에서 올라왔다.출애굽기 13:18 · 본디새김

여기서 「무장한 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무심(⁨חָמֻשׁ⁩)은 일반적으로 무장을 갖춘 상태로 이해됩니다. 다만 그 정확한 의미에는 불확실성이 있어 대열을 갖춘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읽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장했다는 의미를 따른다면 본문에 흥미로운 긴장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전쟁을 보게 되면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전쟁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아직 독립된 공동체로서 전쟁을 치러 본 경험도 이야기 속에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무기가 있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나왔다는 것이 곧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 할 가능성까지 없앴다는 뜻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14:11–12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군대가 다가오자 차라리 이집트에서 섬기는 것이 나았겠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6:3에서도 그들은 이집트에서 먹던 음식을 떠올리며 불평합니다. 따라서 13:17에서 하나님이 우려하신 일은 근거 없는 가능성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진행 속에서 실제로 그와 비슷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그분은 그들을 즉시 가장 위험한 길로 보내어 믿음이 있는지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더 가까운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반드시 가야 할 곳만 아시는 분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동안 그들이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고려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항상 가장 짧고 효율적인 길로 데려가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의 인도에는 목적지만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백성의 상태도 포함됩니다.

다만 이를 하나님이 언제나 모든 위험을 피하게 하신다는 일반적인 약속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곧 갈대 바다 앞에서 심각한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우회나 지연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특별한 훈련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특정한 상황에서 왜 가까운 길을 피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이유를 모든 인생의 어려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의 뼈를 가지고 가는 이유

출애굽기 13:19 본문 →

광야로 향하는 행렬 속에 뜻밖의 물건 하나가 등장합니다.

모세는 요셉의 뼈를 함께 가져갔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돌보실 것이다. 너희는 이곳에서 내 뼈를 너희와 함께 가지고 올라가라.」 하고 말하여 그들이 굳게 맹세하도록 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3:19 · 본디새김

요셉은 죽기 전에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돌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이끌어 올리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50:24).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실 때 자신의 뼈도 함께 가지고 올라가라고 맹세하게 했습니다(창세기 50:25).

「반드시 너희를 돌보실 것이다」(⁨פָּקַד⁩)는 같은 동사를 거듭 사용하는 강조 구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찾아보시거나 돌보실 것이라는 확신을 나타냅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 이제 모세의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근의 시기에 많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참여했고, 자신의 가족이 이집트로 내려와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창세기 45:5–11, 47:11–12).

그는 이집트에서 큰 권력을 누렸고,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집트가 자기 백성의 마지막 거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손들이 언젠가 그 땅을 떠날 것이라고 믿었고, 그때 자신의 뼈를 함께 가져가라고 요청했습니다.

요셉이 살아 있을 때 이집트는 야곱의 가족이 기근을 피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노예살이하는 집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은 경험은 크게 달라졌지만,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그의 뼈를 가지고 가는 것은 그 약속을 기억하는 행동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직접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백성을 돌보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도착한 뒤 여호수아 24:32에서는 이스라엘이 요셉의 뼈를 세겜에 묻었다고 기록합니다. 요셉이 죽기 전에 남긴 부탁이 이집트에서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살아서 걸어갈 수 없는 길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열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짐만 가지고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약속의 기억도 함께 가지고 떠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서 11:22는 요셉이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말하며 자신의 뼈에 관해 명령한 일을 그의 믿음과 연결합니다. 이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사건을 후대에 신앙의 관점에서 다시 읽은 명시적인 사례입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

출애굽기 13:20–22 본문 →

이스라엘은 숙곳을 떠나 광야 끝자락에 있는 에탐에 진을 칩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정착지에서 점점 벗어나 광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전에 살던 곳과 다른 환경을 만나게 됩니다. 광야에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 이동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지가 생존과 직접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낮에도 밤에도 갈 수 있도록,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그들을 길로 인도하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빛을 비추며 그들 앞에 나아갔다.출애굽기 13:21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먼저 나아가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입니다.

이것은 광야의 시간에 맞추어진 인도입니다. 낮에는 낮의 방식으로, 밤에는 밤의 방식으로 백성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십니다.

또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물리적인 성질이나 형성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의 관심은 그 현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보다 누가 그 현상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가에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앞에 계신다는 것

이스라엘은 그동안 파라오의 명령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어디에서 일하고, 무엇을 만들고, 얼마나 노동해야 하는지를 다른 사람이 정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유롭게 길을 떠납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인도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앞에는 여호와야훼가 계십니다.

그런데 파라오의 통치와 여호와야훼의 인도는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파라오는 백성을 내보내 달라는 요구를 받자 노동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반면 여호와야훼는 백성이 전쟁을 보면 이집트로 돌아갈까 염려하시며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로 향할 때 낮과 밤에 필요한 인도를 제공하십니다.

떠나지 않는 구름과 불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출애굽기 13:22 · 본디새김

하나님은 백성이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아직 전쟁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면서 그들 앞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음을 증명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아직 길을 배우는 동안에도 앞서 나아가셨습니다.

가까운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길

출애굽기 13:1–22 본문 →

이스라엘은 지나온 길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길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지나온 길에만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앞서 가시는 길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숙곳을 떠나 에탐에 진을 쳤습니다. 그들 앞에는 광야가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길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에서 멈추고 언제 다시 떠나야 할지 스스로 모두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행렬 어딘가에는 요셉의 뼈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구름 기둥이 있습니다.

밤이 되면 불기둥이 빛을 비춥니다.

오래전에 요셉이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기 백성을 돌보실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제 그 백성은 실제로 이집트를 나와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약속의 땅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들보다 앞서 가시는 분이 누구신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까운 길을 얻지 못했지만, 그 길을 함께 가실 분을 잃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