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2–14장 · 유월절과 떠남
문 안에서 기다리다 길을 떠난 사람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날 준비를 마쳤습니다. 허리에 띠를 두르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었습니다. 짐을 챙겨 언제든 출발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아침까지 자기 집 문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하신 분이 아직은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장의 중심에는 하나의 문이 있습니다.
문 안에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라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밖에는 아직 파라오가 통치하는 이집트가 있습니다. 밤이 지나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그 문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문은 단지 한 집의 출입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죽음의 밤을 지나 해방의 아침으로 나아가는 경계가 됩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자유를 향한 첫 번째 행동은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라 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단지 이스라엘이 어디를 떠나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이제 어떤 백성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해방은 새로운 시간에서 시작된다
마지막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여호와야훼는 모세와 아론에게 먼저 달력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달이 너희에게 달들의 시작이다. 너희에게 이달이 한 해의 첫째 달이 되어야 한다.」출애굽기 12:2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아직 이집트에 있습니다. 파라오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고, 마지막 재앙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이미 새로운 시간의 기준을 정하십니다.
달력은 단순히 날짜를 세는 도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지를 결정하는 틀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을 것인지, 어느 날을 절기로 지킬 것인지에 따라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는 사건이 달라집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의 하루는 강제 노동에 묶여 있었습니다. 파라오의 명령이 그들의 노동량을 결정했고, 감독자들이 그들의 일상을 통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야훼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시간을 기억하고 구별하는 방식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이집트 땅을 떠나지 않았지만, 이미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새로운 시간을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물론 이 말씀만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기존 달력이나 계절 구분이 폐지되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구약에는 해의 주기를 표현하는 여러 방식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 달이 이스라엘의 절기와 달을 세는 기준에서 첫째 달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13:4는 이달을 아빕월이라고 부릅니다.
한 집에 한 마리, 부족하면 이웃과 함께
여호와야훼는 첫째 달 열흘날에 각 가정이 양이나 염소 한 마리씩 마련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달 열흘날에 저마다 아버지의 집안별로 양이나 염소 한 마리씩, 한 집에 한 마리씩 마련해야 한다.』」출애굽기 12:3 · 본디새김
흔히 유월절을 어린양의 희생으로 기억하지만, 본문은 제물로 양뿐 아니라 염소도 허용합니다. 5절은 그것이 흠 없는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동물의 종류보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정하신 조건에 맞는 제물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한 집의 식구가 양이나 염소 한 마리를 먹기에 너무 적으면, 그 사람은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사람 수에 맞추어 한 마리를 마련해야 한다. 너희는 각 사람이 먹는 분량에 따라 그 한 마리를 먹을 사람 수를 계산하여라.』」출애굽기 12:4 · 본디새김
제물 한 마리를 마련하는 일이 각 가정에 똑같이 적용되지만, 실제로 먹을 사람의 수는 서로 다릅니다. 어떤 집은 식구가 많고 어떤 집은 적습니다. 이는 공동체가 한 가지 규정을 지키면서도 각 가정의 실제 형편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유월절 식사는 각 가정이 고립되어 치르는 의식이 아닙니다. 필요한 경우 이웃과 함께 준비하고 먹는 식사입니다.
그리고 그 짐승은 열흘날에 마련하여 열나흗날까지 맡아 두어야 합니다. 그때까지 기다린 뒤 해 질 무렵에 잡습니다.
「『너희는 이달 열나흗날까지 그것을 맡아 두어라. 해 질 무렵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온 회중이 그것을 잡아야 한다.』」출애굽기 12:6 · 본디새김
각 가정이 한 마리씩 준비하지만, 본문은 그 행동을 이스라엘 온 회중이 하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한 집 한 집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 공동체 전체의 행동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각 가정은 자신들의 식탁에서 먹지만, 모두가 같은 날 같은 말씀을 따라 행동합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의 궁정이나 성전에 모여 있지 않아도, 동일한 여호와야훼의 말씀 아래 하나의 공동체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해 질 무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벤 하아르바임은 문자적으로 「두 저녁 사이」라는 뜻입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늦은 시간부터 해 질 때까지로 이해하기도 하고, 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의 시간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 표현 자체만으로 정확한 시각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준비해 둔 짐승을 정해진 날 저녁 무렵에 잡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죽음이 지나갈 밤에 문설주에 바른 피
이제 여호와야훼는 그 짐승의 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그 피를 얼마쯤 가져다가, 그 짐승을 먹을 집들의 두 문설주와 문 위 가로대에 발라야 한다.』」출애굽기 12:7 · 본디새김
그런데 왜 피를 문에 발라야 하는가요?
여호와야훼는 그날 밤 이집트 땅을 지나가며 사람과 가축의 맏배를 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심판을 집행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피는 너희가 있는 집에 너희를 위한 표가 될 것이다. 내가 그 피를 보고 너희를 건너뛰겠다.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 너희에게는 멸하는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다.』」출애굽기 12:13 · 본디새김
앞서 재앙들도 여호와야훼의 능력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불렸습니다 이제 피가 묻은 집 역시 여호와야훼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보호하시는 곳을 나타내는 표가 됩니다.
본문은 피가 스스로 죽음을 쫓아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 피를 보고 너희를 건너뛰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입니다. 피는 여호와야훼께서 정하신 표징이며, 그 표징을 보고 행동하시는 분도 여호와야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정해진 짐승을 잡아 피를 바르며, 그날 밤 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 점에서 구원은 여호와야훼의 일방적인 행동인 동시에, 그 말씀에 따라 백성이 응답하도록 요구하는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행동을 자기 힘으로 구원을 만들어 내는 공로라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죽음의 재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떤 짐승을 잡아야 하는지, 피를 어디에 발라야 하는지, 언제까지 집 안에 있어야 하는지 모두 여호와야훼께서 알려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백성인지를 문에 표시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신 표를 문에 바릅니다.
본문의 초점은 이집트 사람보다 이스라엘 사람이 본래 더 의롭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정하신 보호의 방식에 있습니다.
이집트의 신들에게 내리시는 심판
「『내가 이날 밤에 이집트 땅을 지나가며, 이집트 땅에서 사람의 맏아들부터 가축의 맏배까지 모두 쳐 죽이겠다.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심판을 집행하겠다. 나는 여호와야훼다.』」출애굽기 12:12 · 본디새김
이집트에서는 여러 신들이 자연현상과 왕권, 생명과 죽음에 관계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야훼의 심판은 파라오 개인의 권력뿐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이 의지하는 신적 질서에 대해서도 선언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심판받는 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각 재앙이 반드시 특정한 이집트 신 하나를 겨냥했다고 단정하거나, 모든 재앙을 이집트 신들의 목록에 일대일로 대응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이집트의 왕과 신들이 지닌다고 여겨졌던 권위 앞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이름으로 심판의 주권을 선언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동사 파사흐(פָּסַח)는 일반적으로 건너뛰거나 넘어간다는 뜻으로 이해되지만, 이 문맥에서는 보호하거나 지켜 준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12:23은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피를 보시면 그 문을 건너뛰시고, 멸하는 자가 집에 들어가 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행동은 단순히 어떤 집을 지나쳐 간다는 공간적인 움직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집에 멸하는 재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행동으로도 설명됩니다. 이 두 의미는 반드시 서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 집을 건너뛰신다는 말이 바로 그 집을 멸망에서 지키신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떠날 준비를 하고 먹는 마지막 식사
문설주에 피를 바른 뒤에는 짐승의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여호와야훼는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고기를 날것으로 먹어서도 안 되고, 물에 삶아 먹어서도 안 됩니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함께 불에 구워야 하며,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도 안 됩니다.
왜 반드시 이렇게 먹어야 하는지 모든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각 조리법에 상징적인 의미를 하나씩 붙여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식사가 평범한 저녁 식사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먹을 음식뿐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고 먹는 방식까지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어라. 허리에 띠를 두르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쥔 채 먹어라. 그것을 서둘러 먹어라. 이것은 여호와야훼를 위한 유월절이다.』」출애굽기 12:11 · 본디새김
허리에 띠를 두르는 것은 긴 옷자락이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모습과 연결됩니다. 신발과 지팡이도 여행할 준비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실제로 출발하는 것은 아직 아닙니다.
이들은 떠날 준비를 마친 채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밤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은 자유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판단으로 아무 때나 문밖으로 뛰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떠나는 시점은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시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몸은 이미 출발을 향해 있지만, 그들의 생명은 그날 밤 자신들을 지키시는 여호와야훼께 달려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념하라고 하신다
유월절의 규정이 끝나자 여호와야훼는 이 날을 대대로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날은 너희에게 기념하는 날이 될 것이다. 너희는 이날을 여호와야훼를 위한 절기로 지켜라. 대대로 영원한 규정으로 이날을 절기로 지켜라.』」출애굽기 12:14 · 본디새김
마지막 재앙도 지나가지 않았고, 이스라엘도 이집트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벌써 그날을 기억하는 절기를 제정하십니다.
본문은 해방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그 해방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명령이 주어진 것으로 서술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고, 집에서 누룩을 없애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쫓겨나 지체할 수 없었으므로 반죽을 부풀릴 시간이 없었습니다(12:39). 따라서 누룩 없는 빵은 실제로 급하게 떠났던 상황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이 됩니다.
12:15–20에서는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는 명령이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12:39에서는 이스라엘이 서둘러 떠나느라 반죽을 부풀릴 수 없었다는 사실이 설명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미리 명령하신 음식이 실제 출애굽의 급박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그 사건을 기억하는 표지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먹어야 할 빵은 해방을 기다리며 먹는 빵이면서, 훗날 해방의 급박함을 기억하게 할 빵입니다.
유월절은 특별히 그날 밤의 희생 제사와 보호를 중심으로 합니다. 무교절은 이레 동안 이어지는 절기로서, 누룩을 제거하고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생활 전체를 규정합니다. 이 둘을 완전히 동일한 의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지만, 출애굽기 12장은 두 절기를 하나의 구원 사건에 연결합니다.
누룩 든 것을 먹는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구약의 여러 율법에서 공동체로부터의 단절이나 심각한 심판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그 결과가 반드시 사형 집행인지, 공동체에서 추방되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직접 생명을 거두시는 것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규정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지만, 본문이 설명하지 않는 처벌 방식까지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첫날과 일곱째 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일상적인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다만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은 허용됩니다.
여기서 절기는 지나간 사건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시간을 구별하는 행동이 됩니다.
그 해방의 기억이 일 년의 시간과 집 안의 음식, 공동체의 모임 속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6:1–8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일을 이집트에서 나온 사건을 기억하는 것과 연결합니다. 특히 누룩 없는 빵을 급하게 이집트에서 나왔던 상황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여호수아 5:10–12에서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뒤 가나안 땅에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지나온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다시 그 구원의 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열왕기하 23:21–23에서는 요시야 왕 때 유월절을 지키는 장면이 기록됩니다. 그 사건은 오랫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언약의 규정을 다시 회복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땅에 살든, 어떤 역사적 상황에 놓이든 자신들을 구하신 여호와야훼를 기억하게 하는 절기로 이어집니다.
아이가 물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예배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야훼께 받은 명령을 전합니다.
「에조브 한 묶음을 가져다가 대야에 있는 피에 담그고, 대야에 있는 그 피를 문 위 가로대와 두 문설주에 바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아침까지 자기 집 문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출애굽기 12:22 · 본디새김
여기서 보호받는 공간은 피가 발린 집입니다. 이어지는 23절은 여호와야훼께서 문에 있는 피를 보시고 멸하는 자가 집에 들어와 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집 안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전은 문 자체가 강해서 확보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을 보호하시겠다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부모님께 이 의식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으면,」출애굽기 12:26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아직 죽음의 밤을 지나지도 않았는데, 모세는 훗날 자녀가 이 의식의 의미를 물을 상황을 말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이들이 단지 오늘 밤 살아남는 데서 끝나지 않게 하십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날 밤의 의미를 후손에게 전하도록 하십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이 왜 필요한지는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십시오. 『이것은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유월절 희생 제사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를 치실 때,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들을 건너뛰시고 우리 집들을 구해 주셨다.』」 백성이 몸을 굽히고 엎드렸다.출애굽기 12:27 · 본디새김
대답은 의식의 세부 절차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할 사람들이 실제 이집트의 밤을 경험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경험한 구원의 사건을 자신들의 공동체를 구하신 이야기로 기억하게 됩니다.
여기서 신앙의 기억은 한 세대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섭니다.
후손들은 자신들이 직접 겪지 않은 사건을 통해 자신들이 누구인지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아직 구원의 결과를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야훼께서 자신들의 집을 보호하시고 앞으로 자녀들이 그 일을 기억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엎드립니다.
그리고 28절은 그들이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했다고 기록합니다. 말씀을 듣고 몸을 굽혀 경배하며, 실제로 그 명령을 수행합니다.
이렇게 죽음의 밤을 맞을 준비가 이루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에조브는 피를 묻혀 바르는 데 사용한 식물입니다. 흔히 우슬초라고 옮기지만 정확한 식물 종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멸하는 자」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장에 없습니다. 12:12와 12:29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의 맏아들들을 치신다고 말합니다. 반면 12:23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멸하는 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표현합니다. 이 두 진술을 서로 경쟁하는 설명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심판의 궁극적인 주체를 여호와야훼로 제시하면서, 멸하는 자의 활동 역시 그분의 통제 아래 놓여 있다고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의 정체나 작용 방식을 이 구절만으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집트 온 땅에서 일어난 부르짖음
마침내 한밤중이 됩니다.
한밤중에 여호와야훼가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 곧 자기 왕좌에 앉아 있는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지하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까지, 그리고 가축의 모든 맏배를 쳐 죽였다.출애굽기 12:29 · 본디새김
이 두 표현은 모두 사회적 지위의 가장 높은 자리부터 가장 낮은 자리까지 재앙이 미쳤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와 온 이집트가 밤에 일어났다. 이집트에 큰 부르짖음이 터졌다.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2:30 · 본디새김
왕실의 슬픔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하 감옥에 있는 포로의 집까지 죽음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 재앙을 단순히 파라오가 패배하는 장면으로만 읽으면, 본문이 묘사하는 수많은 가족의 상실을 놓치게 됩니다.
더욱이 본문은 모든 맏아들이 각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각 개인의 죄에 대한 개별적인 형벌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은 여호와야훼가 이집트에 심판을 행하셨다고 선언하지만, 각 사람의 죽음이 왜 정당한지에 관한 모든 윤리적 질문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파라오는 여호와야훼의 백성을 놓아주라는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집트는 여러 재앙을 겪었고, 마지막에는 맏아들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에 모세와 아론을 부릅니다.
파라오가 밤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했다.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나가라. 너희도 이스라엘 자손도 모두 나가라. 너희가 말한 대로 가서 여호와야훼를 섬겨라.」출애굽기 12:31 · 본디새김
이전에는 파라오가 조건을 정했습니다. 남자들만 가라고 했고, 아이들을 데려가면 가축을 남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세와 아론이 요구한 대로 가라고 말합니다.
그는 더 이상 예배의 조건을 협상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 떼와 염소 떼도 소 떼도 데리고 가라. 나에게도 복을 빌어라.」출애굽기 12:32 · 본디새김
그러나 이 말을 파라오의 완전한 회개나 신앙의 고백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가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붙잡아 두지 못하며, 모세와 아론에게 자신을 위한 복까지 요청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 백성을 그 땅에서 서둘러 내보내려고 그들을 다그쳤다. 그들은 「우리가 모두 죽게 생겼다.」 하고 말했다.출애굽기 12:33 · 본디새김
이것은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계속 붙들어 두는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지난 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예고하신 반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며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이제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떠나도록 재촉합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이 장면이 출애굽기 10:29에서 모세가 다시는 파라오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12:31은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고 말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직접 대면했는지, 사자를 통해 연락했는지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서둘러 떠났지만 빈손으로 떠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은 반죽이 부풀기도 전에 그것을 챙깁니다.
백성은 반죽이 부풀기 전에 그것을 가져갔다. 그들은 반죽 그릇들을 자기 겉옷에 싸서 어깨에 메었다.출애굽기 12:34 · 본디새김
그러나 여기서는 절기의 규정보다 실제 떠나는 상황이 강조됩니다.
대규모의 해방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의 손에는 반죽 그릇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행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급하게 떠나야 했기 때문에 길양식조차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누룩 없는 빵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 출발의 흔적이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말대로 행했다.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은으로 만든 물품과 금으로 만든 물품과 옷을 달라고 했다.출애굽기 12:35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가 이집트 사람들이 그 백성에게 호의를 품게 했고,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었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를 털었다.출애굽기 12:36 · 본디새김
한편으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물품을 주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본문은 그 결과를 「이집트를 털었다」고 표현합니다.
「털었다」라는 표현은 누군가에게서 재산이나 소유물을 벗겨 내거나 빼앗아 내는 뜻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집트 사람들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강제로 빼앗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36절의 서술과 맞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그 행위를 단순히 평범한 선물 교환이라고만 설명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출애굽기 3:21–22에서 여호와야훼는 이미 이스라엘이 빈손으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창세기 15:14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압제받은 뒤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문맥에서 보면 이 물품들은 오랜 종살이 뒤에 주어지는 출발의 재산이며, 이집트의 지배 아래 있던 사람들이 이제 소유물을 가지고 떠나는 상황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쫓겨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급하게 떠나야 했으므로 길양식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이 떠날 때 빈손이 되지 않도록 이미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만이 떠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이스라엘은 실제로 길을 떠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세스에서 숙곳으로 길을 떠났다. 어린아이들 외에 걸어서 가는 남자가 약 육십만 명이었다.출애굽기 12:37 · 본디새김
여기서 이야기는 한 가정의 문설주에서 거대한 공동체의 행렬로 확대됩니다.
앞에서는 집마다 양이나 염소 한 마리를 마련하고 가족들이 함께 식사했습니다. 이제 그 집들에서 나와 모인 사람들이 길을 떠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집트의 노동 현장에만 묶여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 방향으로 함께 이동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여러 부류가 섞인 큰 무리도 그들과 함께 올라갔다. 양 떼와 염소 떼와 소 떼, 곧 매우 많은 가축도 함께 갔다.출애굽기 12:38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이스라엘 자손 이외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이동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들이 정확히 어떤 민족적 배경과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집트 사람들과 다른 외국인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구성을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출애굽의 행렬이 혈통상 이스라엘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의 행렬이 이미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면, 앞으로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백성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한 규정이 43절 이후에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라암세스와 숙곳은 출애굽 여정의 첫 출발지와 첫 도착지로 기록됩니다. 다만 이 지명들을 현대의 특정 유적과 정확히 일치시키는 문제에는 지리적·고고학적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또한 약 육십만 명이라는 숫자는 본문이 특별히 「어린아이들 외에 걸어서 가는 남자」를 기준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이 숫자에 여성과 어린아이를 더해 전체 인구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본문에는 남녀의 비율이나 가구당 평균 인원 같은 정보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정확한 총인구를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숫자를 문자적인 인원수로 읽을 것인지, 고대의 집단을 세는 표현과 관련하여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해석상 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 구절이 이스라엘의 출발을 대규모 공동체의 이동으로 묘사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던 바로 그날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 거주한 기간은 사백삼십 년이었다.출애굽기 12:40 · 본디새김
사백삼십 년이 끝나던 바로 그날에 여호와야훼의 모든 부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41 · 본디새김
이것은 출애굽이 그날 밤의 사건으로만 이해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오랜 세월의 거주와 종살이 뒤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출애굽은 끝없이 미루어지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시간 이집트에 머물렀지만, 그 체류는 결국 끝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다른 땅에서 종살이할 것이지만, 그들을 압제한 나라를 심판하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5:13–14). 출애굽기 12장에서 그 약속의 중요한 요소들이 실제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이집트에 심판이 임했고, 이스라엘은 재물을 가지고 나왔으며, 마침내 그 땅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문맥에서 「바로 그날」은 단순히 연대기를 정확하게 기록하려는 표현만이 아닙니다. 오래전에 주어진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 밤은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려고 지키던 밤이었다. 바로 이 밤은 이스라엘 자손 모두가 대대로 여호와야훼를 위해 지켜야 할 밤이다.출애굽기 12:42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며 지키신 밤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그 밤을 특별히 지켜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문맥상 앞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신 일을, 뒤에서는 이스라엘이 대대로 그 밤을 지키는 일을 강조하는 읽기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두 표현의 의미를 반드시 그렇게만 나누어야 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이 두 측면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먼저 지키신 밤이, 이스라엘이 대대로 지켜야 할 밤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용감하게 탈출했는가가 중심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마침내 이루셨는가가 중심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이 따르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 거주한 기간을 사백삼십 년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과 사마리아 오경에는 그 기간을 가나안과 이집트에서의 거주와 연결하는 본문이 전해집니다. 이 차이에 따라 사백삼십 년을 이집트 체류 기간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조상들의 가나안 거주부터 이어지는 기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15:13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다른 땅에서 고난을 겪을 기간을 사백 년이라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사백삼십 년과 그 숫자가 다르기 때문에 두 기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도 해석의 문제가 됩니다. 다만 이것을 정확히 같은 기간을 가리키는 두 숫자의 오류라고 즉시 단정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모든 차이를 해소한 완전한 연대기를 만들어 낼 필요도 없습니다.
누가 유월절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가
출애굽의 행렬이 시작된 뒤 본문은 다시 유월절 규정으로 돌아옵니다.
누가 유월절 제물을 먹을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앞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집트를 떠났다는 사실과 나란히 읽을 때 더욱 중요해집니다.
여호와야훼는 먼저 외국인은 누구도 그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체류자와 품꾼도 먹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은을 주고 산 노예는 할례를 받은 뒤 먹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여러 신분 표현은 모두 같은 종류의 외국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외국인, 체류자, 품꾼, 거류민은 서로 다른 관계와 사회적 위치를 나타냅니다. 특히 거류민은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함께 살아가는 외부 출신 사람을 가리킵니다. 현대 국가의 시민권이나 체류 자격과 정확히 일치하는 신분은 아닙니다.
「거류민이 너와 함께 살면서 여호와야훼를 위한 유월절을 지키려 한다면, 그에게 속한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 뒤에야 그가 다가와 유월절을 지킬 수 있다. 그는 그 땅의 본토인과 같아질 것이다. 할례받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그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12:48 · 본디새김
「본토인과 너희 가운데 사는 거류민에게 같은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출애굽기 12:49 · 본디새김
이스라엘 공동체는 외부 출신 사람이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집단으로만 규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아무 조건 없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월절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그 공동체에 주어진 언약의 표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표지가 할례입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의 표로 제정되었습니다. 그 명령은 아브라함의 자손뿐 아니라 그 집에서 태어난 사람과 돈으로 산 남자 종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창세기 17:12–13).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 규정은 그 언약의 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예가 할례를 받고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본문이 노예제를 폐지하거나 노예와 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동일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노예가 존재하는 사회적 현실을 전제로 규정을 제시합니다. 그 현실에 대한 윤리적 평가와, 유월절 참여의 조건이 혈통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구별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남자에게 할례가 요구된다고 해서 여성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 장 앞부분에서 유월절은 가정의 식사로 제시되었고, 여기서는 공동체 참여의 언약적 조건으로 남자의 할례를 규정합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단순히 파라오의 땅에서 나온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구해 내신 백성이며, 그분과의 언약 아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유월절 식탁에 함께 앉는 것은 단지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이 아닙니다. 그 공동체를 구하신 여호와야훼와의 관계에 참여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뼈를 부러뜨리지 말라는 명령
「그것은 한 집 안에서 먹어야 한다. 너는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가져가지 마라. 너희는 그 뼈를 부러뜨리지 마라.」출애굽기 12:46 · 본디새김
왜 뼈를 부러뜨리면 안 됩니까?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제물의 온전함을 보존하기 위한 규정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이 한 구절만으로 정확한 목적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서는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방식이 규정되었고, 이제는 한 집 안에서 먹으며 뼈를 부러뜨리지 않는 방식까지 명령됩니다. 이 식사의 모든 과정은 여호와야훼의 구원 사건을 기억하는 의식으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은 개인의 선택적인 종교 경험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속한 공동체 전체가 지켜야 하는 절기입니다.
각 가정에서 먹는 식사가 이스라엘 전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고린도전서 5:7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유월절 제물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2장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비추어 읽는 명시적인 신학적 해석입니다. 요한복음 19:36은 예수의 뼈가 꺾이지 않은 사건을 성경의 말씀과 연결합니다. 이는 출애굽기 12:46의 유월절 제물 규정을 떠올리게 하는 정경적 연결이며, 시편 34:20도 함께 검토할 수 있는 관련 본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약의 읽기가 출애굽기 12장의 본래 이야기를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이 장은 이집트에서 죽음의 재앙을 앞두고 있던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라 보호받고 해방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역사적·서사적 의미를 충분히 읽은 뒤에야 유월절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하는 신약의 해석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여호와야훼의 부대가 이집트를 떠났다
출애굽기 12장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순종을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모두가 그대로 행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한 대로, 그들은 그렇게 행했다.출애굽기 12:50 · 본디새김
그들은 재앙을 일으킨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파라오를 굴복시킨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따라 행동한 사람들입니다.
양이나 염소를 마련하고, 피를 바르고, 집 안에서 기다리고, 음식을 먹고, 출발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2장은 그 행동들이 여호와야훼의 구원 사건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바로 이날에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부대별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냈다.출애굽기 12:51 · 본디새김
앞서 이스라엘은 라암세스에서 숙곳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걸었고, 반죽 그릇을 어깨에 메었으며, 가축을 데리고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움직임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때 본문은 여호와야훼를 주어로 삼습니다.
여기서는 여호와야훼께 속한 여러 집단이 질서를 갖추어 나오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들을 실제로 무장한 군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종살이하던 사람들이 이제 여호와야훼의 부대로 불린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파라오에게 속한 노동자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이제 여호와야훼의 부대로 이집트 땅을 떠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
여기서 신뢰는 두 가지 다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기다려야 할 때에는 기다리는 것이고, 떠나야 할 때에는 떠나는 것입니다. 둘 다 자신들의 상황 판단만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행동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출애굽기 12장의 구원은 죽음의 밤을 지나 살아남는 데서 시작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새롭게 세고, 구원의 밤을 기억하며,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한밤중에 이집트 온 땅에서 큰 부르짖음이 터졌습니다. 그러나 피가 발린 문 안에 머물던 이스라엘의 가족들은 보호받았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들은 집을 나섰습니다.
손에는 짐이 들려 있고, 어깨에는 반죽 그릇이 메어져 있습니다. 양과 염소와 소가 그들을 따라 움직입니다. 아이들과 노인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길을 떠납니다.
그들은 아직 어디에서 먹고 마시며 살아가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전날 밤까지 그들은 이집트의 집 안에서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따라야 했습니다.
이제는 그 문을 열고 나와 이집트 땅 자체를 떠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집 문을 지켜 주신 밤이 지나자, 이스라엘 앞에는 마침내 이집트 밖으로 나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