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이집트의 종살이

마침내 백성을 쫓아내게 될 파라오

파라오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보내 주겠다고 말했다가 약속을 거두어들였습니다. 때로는 남자들만 가라고 했고, 때로는 아이들을 데려가되 가축은 남겨 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떠날 수 있는지, 누구를 데려갈 수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는지를 끝까지 자신이 결정하려 했습니다.

「그가 너희를 보내 줄 때에는 너희를 여기서 완전히 쫓아내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그 반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집트에 마지막 재앙이 예고됩니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맷돌 뒤에서 일하는 여자 노예의 맏아들까지 죽을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이 장이 이전 재앙들과 다른 점은 그 죽음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본문은 마지막 재앙을 실행하는 장면이 아니라, 그것을 선언하는 장면에서 멈춥니다. 독자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듣지만, 아직 그날 밤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모세가 파라오의 궁정을 떠났을 때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집트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맏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11장 본문 읽기 →

허락하던 왕이 쫓아내는 왕으로 바뀐다

출애굽기 11:1 본문 →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내가 파라오와 이집트에 재앙을 하나 더 내리겠다. 그 뒤에 그는 너희를 여기서 보내 줄 것이다. 그가 너희를 보내 줄 때에는 너희를 여기서 완전히 쫓아내고야 말 것이다.」출애굽기 11:1 · 본디새김

「하나 더」라는 말은 이집트의 재앙들이 이제 결정적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립니다.

같은 어근의 동사를 거듭 사용하여 쫓아내는 행동을 강조하는 구문입니다. 여기에 완전함을 나타내는 말이 더해져, 단순히 마지못해 출발을 허락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강한 축출을 예고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노동력입니다. 파라오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를 섬기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요구했을 때, 그는 노동을 더 무겁게 만들어 그 요구를 억누르려 했습니다(출애굽기 5:6–9).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놓아줄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자유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서 파라오가 더 이상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가 가진 것은 파라오의 허락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모세는 왕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고 해방을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왕이 거부하고 있을 때 여호와야훼로부터 해방의 결말을 듣습니다.

노예들이 이웃에게 금과 은을 청한다

출애굽기 11:2–3 본문 →

이어지는 명령은 예상 밖입니다.

「부디 백성이 듣도록, 남자는 저마다 자기 이웃 남자에게, 여자는 저마다 자기 이웃 여자에게 은으로 만든 물품과 금으로 만든 물품을 청하라고 말하여라.」출애굽기 11:2 · 본디새김

여기서 「청하다」는 요청하거나 구한다는 뜻입니다. 문맥에 따라 빌린다는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지만, 이 구절 자체에는 반드시 나중에 돌려준다는 조건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품을 빌린 뒤 돌려주지 않으려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서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12:35–36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물품을 청했고,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 사람들의 호의를 얻게 하셔서 그들이 요청한 물품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3:21–22에서 여호와야훼는 이미 이스라엘이 빈손으로 이집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제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집트에서 강제로 노동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노동의 조건을 정할 수 없었고, 파라오의 명령 아래 고통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값진 물품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것을 그동안 착취당한 노동에 대한 보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13–14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다른 땅에서 종살이하며 고난을 겪은 뒤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1장은 이 물품들의 가치를 노동의 임금으로 계산하거나, 이집트 사람들에게 개인별 배상 책임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현대적인 임금 정산 장면과 정확히 동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직접 보여 주는 것은 오랫동안 종속되어 있던 사람들이 빈손으로 떠나지 않도록 여호와야훼께서 준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야훼가 이집트 사람들이 그 백성에게 호의를 품게 했다. 또 모세라는 사람은 이집트 땅에서 파라오의 신하들의 눈에도 백성의 눈에도 매우 큰 인물로 여겨졌다.출애굽기 11:3 · 본디새김

파라오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품습니다. 파라오는 모세를 자신의 앞에서 내쫓았지만, 그의 신하들과 백성은 모세를 매우 큰 인물로 여깁니다.

본문은 모든 이집트 사람이 모세를 따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라오의 거부가 곧 이집트 사람들 모두의 거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특히 「그 백성에게 호의를 품게 했다」는 서술의 주어는 여호와야훼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협상 능력만으로 이집트 사람들의 호의를 얻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 사람들의 태도에 작용하셨다고 말합니다.

왕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길을 막고 있지만,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떠날 때 필요한 것들을 이미 마련하고 계십니다.

파라오는 그들의 노동을 이용했지만, 여호와야훼는 그들의 이후 삶을 준비하십니다. 여기서 해방은 단순히 결박을 풀어 주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붙잡고 있던 자리에서 나오게 하시고, 앞으로 살아갈 길을 마련해 주시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나자마자 모든 것이 해결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을 이끌어 내신 여호와야훼께서 광야에서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십니다(출애굽기 16–17장). 11장에서 은과 금을 청하도록 하신 명령은 그러한 구원의 돌봄이 이집트를 떠나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한밤중에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나아가신다

출애굽기 11:4 본문 →

4절에서 모세의 말이 시작됩니다.

모세가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밤중쯤에 내가 이집트 가운데로 나아가겠다.』」출애굽기 11:4 · 본디새김

그동안 여호와야훼는 모세와 아론에게 손이나 지팡이를 뻗으라고 명령하시기도 했고, 바람과 우박을 보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이집트 가운데로 나아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앞선 모든 재앙도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재앙에만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마지막 재앙의 선언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이집트 가운데로 나아가신다는 표현이 전면에 나옵니다.

이것은 파라오가 지배하는 땅 한가운데서 여호와야훼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지 생활이 마비되거나 재산이 파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예고됩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범위는 이집트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부터 가장 낮은 자리까지 펼쳐집니다.

조금 더 깊이

「한밤중쯤」이라는 표현은 밤이 나뉘는 때, 곧 한밤중 무렵을 가리킵니다. 정확히 자정이라는 시각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을 어느 정도 근사적으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부터 맷돌 뒤의 여자 노예까지

출애굽기 11:5 본문 →

「『자기 왕좌에 앉아 있는 파라오에게서 난 맏아들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자 노예에게서 난 맏아들까지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이 죽고, 가축의 모든 맏배도 죽을 것이다.』」출애굽기 11:5 · 본디새김

한쪽에는 왕좌에 앉아 있는 파라오가 있습니다. 다른 쪽에는 맷돌 뒤에서 일하는 여자 노예가 있습니다.

왕좌는 이집트의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자리입니다. 맷돌은 곡식을 갈아 음식을 준비하는 일상적 노동의 도구입니다. 특히 이 구절의 여자 노예는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배 아래 노동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이 둘 사이에 이집트 사회의 모든 계층이 포함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왕의 집안도, 가난한 노예의 집안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 하필 맏아들입니까?

이스라엘은 이미 여호와야훼의 맏아들이었다

출애굽기 4:22–23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자신의 아들, 자신의 맏아들이라는 사실을 파라오에게 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섬기게 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면 파라오의 맏아들을 죽이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따라서 11장의 맏아들 재앙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심판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맏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그 아들을 붙들어 두고 보내지 않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야훼는 파라오의 맏아들에게 죽음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맏아들」은 단순히 가장 먼저 태어난 자녀라는 의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가족과 상속 질서에서 맏아들은 특별한 지위를 가졌습니다. 신명기 21:15–17은 맏아들의 상속권을 다루며, 창세기에서는 장자권과 가문의 계승이 여러 이야기의 중심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맏아들의 죽음은 한 가정이 자녀를 잃는 슬픔인 동시에 그 가정의 계승과 미래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이 죽는다는 것은 왕실의 미래와 관계되는 심판입니다. 다만 모든 왕조에서 맏아들이 반드시 다음 왕이 되었다고 전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왕실의 맏아들조차 여호와야훼의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누구의 아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이릅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르시지만, 파라오는 그 백성을 자신의 지배 아래 붙들어 두었습니다. 그 충돌이 마지막 재앙에서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여자 노예의 맏아들까지 죽어야 하는가?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맷돌 뒤에서 일하는 여자 노예가 파라오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 여자의 맏아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맏아들이 각자의 잘못에 비례하는 형벌을 받는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것은 이집트 전체에 임하는 심판입니다. 왕의 정책과 한 나라의 압제가 사회 전체를 심각한 비극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왕의 맏아들과 노예 여자의 맏아들이 함께 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본문은 완전한 도덕적 해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해석자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을 통쾌한 복수 장면으로만 읽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는 실제 사람들의 죽음이며, 가족들의 상실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서 이집트의 부르짖음으로

출애굽기 11:6 본문 →

출애굽기 2:23에서 이스라엘은 고된 노동 때문에 탄식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출애굽기 3:7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억압하므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집트 온 땅에 큰 부르짖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부르짖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출애굽기 11:6 · 본디새김

이때 사용된 「부르짖음」(⁨צַעֲקָה⁩)과 11:6의 「부르짖음」은 같은 히브리어 어근에 속하는 표현입니다.

처음에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들렸습니다.

이제는 이집트 온 땅에서 큰 부르짖음이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압제 아래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였습니다. 11장에서 예고되는 이집트의 부르짖음은 맏아들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애통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처음에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고, 이제는 억압을 유지해 온 나라 전체에서 통곡이 일어나게 된다는 서술은 강한 문학적 대응을 이룹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에 그들을 구하러 내려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재앙은 이스라엘의 고통과 무관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여호와야훼의 행동이 마침내 이집트 전체를 뒤흔드는 심판에 이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과정이, 이제 이집트 온 땅의 부르짖음을 가져올 심판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유를 끝까지 거부한 파라오의 결정은 결국 그의 나라 전체를 깊은 비극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큰 부르짖음과 짖지 않는 개 한 마리

출애굽기 11:7 본문 →

이집트에 일어날 울부짖음을 선언한 직후 여호와야훼는 완전히 다른 광경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는 사람에게나 가축에게나 개 한 마리도 짖지 않을 것이다. 이는 여호와야훼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구별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11:7 · 본디새김

히브리어 원문은 개가 혀를 날카롭게 한다는 관용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서는 개가 짖거나 소리를 내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개가 사람을 공격하고 이스라엘의 개만 조용히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위협이나 소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생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한쪽에는 이집트 온 땅을 채우는 울음소리가 있고, 다른 쪽에는 개의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 여호와야훼의 구별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개가 짖지 않는다는 말을 이스라엘이 언제나 두려움이나 슬픔 없이 살게 된다는 일반적인 약속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재앙이 임하는 특정한 밤에 이스라엘이 어떤 구별을 경험할 것인지를 가리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스스로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보호받는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7절은 구별하시는 분이 여호와야훼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맏아들이라는 관계가 먼저 주어졌고, 이제 그분은 자신의 백성과 이집트를 구별하십니다.

이 구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다음 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출애굽기 12장은 유월절 어린양과 그 피를 통해 이스라엘이 죽음의 재앙을 어떻게 피하게 되는지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11장의 구별을 민족적 신분만으로 모든 것이 자동 결정되는 이야기라고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11장이 먼저 밝히는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다음 출애굽기 13:1–2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맏아들과 가축의 맏배를 여호와야훼께 거룩하게 구별하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출애굽기의 맏아들 이야기는 이집트 맏아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맏아들도 여호와야훼께 속한 존재로 구별됩니다. 그 생명을 구하신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사실이 이후의 삶을 규정합니다. 구원받은 생명이 누구에게 속하는가를 새롭게 이해하는 사건입니다.

파라오의 신하들이 모세 앞에 엎드릴 것이다

출애굽기 11:8 본문 →

모세는 마지막으로 파라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선언합니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 모두 제게 내려와 제 앞에 엎드려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모든 백성은 나가십시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저는 나가겠습니다.」 모세는 크게 분노한 채 파라오 곁에서 나갔다.출애굽기 11:8 · 본디새김

모세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노동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파라오의 궁정으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파라오의 신하들이 모세에게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파라오 자신이 자기 앞에 엎드릴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 모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누구는 가고 누구는 남으라는 제한이 없습니다. 앞선 협상에서 파라오가 끝까지 제한하려 했던 문제가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서 떠날 허락을 얻어 내기 위해 더 이상 조건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때에 떠날 것을 선언합니다.

모세의 권위는 그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처음부터 모세의 사명은 파라오보다 더 높은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분노한 모세

모세가 분노한 이유를 본문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파라오가 끊임없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자신에게 다시 나타나면 죽이겠다고 위협한 일(출애굽기 10:28)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해방되지 못한 채 계속 억압받고 있다는 현실과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 가운데 어느 하나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이 모세를 냉정하게 승리를 선언하고 떠나는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크게 분노한 채 궁정을 떠납니다.

모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습니다. 파라오도 그 경고를 듣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여전히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대면 장면은 분노 속에서 끝납니다.

마지막 두 절은 왜 다시 파라오의 완고함을 말하는가

출애굽기 11:9–10 본문 →

11장 마지막 두 절은 새로운 재앙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요약합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파라오는 너희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집트 땅에서 나의 이적들이 많아지게 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11:9 · 본디새김
모세와 아론은 이 모든 이적을 파라오 앞에서 행했다. 여호와야훼가 파라오의 마음을 강하게 했고,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을 자기 땅에서 보내 주지 않았다.출애굽기 11:10 · 본디새김

9절에서 여호와야훼가 말씀하시는 내용은 앞서 출애굽기 7:3–4에서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파라오는 듣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야훼는 이집트에서 자신의 표징과 이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10절은 모세와 아론이 이미 행한 일들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이것은 재앙 이야기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요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파라오의 마음을 강하게 하셨다는 말은 그분이 이 사건을 자신의 목적 아래 두고 계신다는 서술입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실제로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본문은 이 관계의 모든 철학적 문제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과 파라오의 책임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지에 관한 완전한 체계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야기 속에서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파라오의 완고함이 여호와야훼의 목적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11장 끝의 완고함은 이야기의 최종 결말이 아닙니다. 아직 오지 않은 마지막 재앙을 앞두고, 파라오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마지막 확인입니다.

마지막 선언 앞에 선 사람들

출애굽기 11:1–10 본문 →

이스라엘의 자유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집트에 닥칠 죽음은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모세에게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선언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왕에게서 해방의 허락을 받아 내는 데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아직 거부하는 왕 앞에서 여호와야훼가 말씀하신 일을 끝까지 전한 사람입니다.

파라오는 아직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지만, 곧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게 될 것입니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습니다. 모세는 크게 분노한 채 궁정을 떠납니다. 이집트의 집들에는 아직 사람들이 살아 있고, 맷돌 뒤에서는 여자 노예가 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이미 한밤중에 자신이 이집트 가운데로 나아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집트에서는 전에 없던 큰 부르짖음이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개 한 마리도 짖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어느 집에서도 그날 밤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끝내 듣지 않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이미 선포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