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이집트의 종살이

마침내 백성을 쫓아내게 될 파라오

파라오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보내 주겠다고 말했다가 약속을 거두어들였습니다. 때로는 남자들만 가라고 했고, 때로는 아이들을 데려가되 가축은 남겨 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떠날 수 있는지, 누구를 데려갈 수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는지를 끝까지 자신이 결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반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집트에 마지막 재앙이 예고됩니다. 왕의 자리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맷돌로 곡식을 가는 여자 노예의 맏아들까지 죽을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이 장이 이전 재앙들과 다른 점은 그 죽음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본문은 마지막 재앙을 일으키는 장면이 아니라, 그것을 선언하는 장면에서 멈춥니다.

이 장은 해방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 주기보다, 해방을 거부하던 왕의 권력이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지를 먼저 선언합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911장 본문 읽기 →

허락하던 왕이 쫓아내는 왕으로 바뀐다

출애굽기 11:1 본문 →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파라오와 이집트에 재앙을 하나 더 내리겠다. 그 뒤에 파라오는 너희를 여기서 보내 줄 것이다. 그때는 너희를 여기서 완전히 쫓아내고야 말 것이다.」출애굽기 11:1 · 두루새김

「하나 더」라는 말은 이집트의 재앙들이 이제 결정적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립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마지막 재앙을 통해 파라오가 마침내 허락하게 될 것이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노동력입니다. 파라오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를 섬기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요구했을 때, 그는 일을 더 힘들게 만들어 그 요구를 억누르려 했습니다(출애굽기 5:6–9).

그런데 이제 여호와야훼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토록 이스라엘을 붙잡아 두려던 파라오가 오히려 그들을 자기 땅에서 쫓아내게 될 것입니다.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놓아줄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자유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서 파라오가 더 이상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가 가진 것은 파라오의 허락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다.

노예들이 이웃에게 금과 은을 청한다

출애굽기 11:2–3 본문 →

이어지는 명령은 예상 밖입니다.

「백성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라. 『남자는 저마다 이웃 남자에게, 여자는 저마다 이웃 여자에게 은과 금으로 만든 물건을 달라고 하여라.』」출애굽기 11:2 · 두루새김

여기서 「달라고 하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알(⁨שָׁאַל⁩)은 요청하거나 구한다는 뜻입니다. 문맥에 따라 빌린다는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지만, 이 구절 자체에는 반드시 나중에 돌려준다는 조건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건을 빌린 뒤 돌려주지 않으려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서는 설명입니다.

출애굽기 3:21–22에서 여호와야훼는 이미 이스라엘이 빈손으로 이집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제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집트에서 강제로 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일하는 조건을 정할 수 없었고, 파라오의 명령 아래 고통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값진 물건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것을 그동안 빼앗긴 노동의 대가를 보상받는 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13–14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다른 땅에서 종살이하며 고난을 겪은 뒤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1장은 이 물건들의 가치를 노동의 임금으로 계산하거나, 이집트 사람들 각자에게 배상 책임을 지우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좋게 보게 하셨습니다. 파라오의 신하들도 이집트 백성도 모세를 매우 높이 여겼습니다.출애굽기 11:3 · 두루새김

파라오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좋게 봅니다. 파라오는 모세를 자신의 앞에서 쫓아냈지만, 그의 신하들과 백성은 모세를 매우 높이 여깁니다. 이것은 이집트 전체가 파라오와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좋게 보게 하셨습니다」라는 서술의 주어는 여호와야훼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협상 능력만으로 이집트 사람들의 호의를 얻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왕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길을 막고 있지만,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떠날 때 필요한 것들을 이미 마련하고 계십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은 출애굽 이후 광야의 이야기에서도 계속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나자마자 모든 것이 해결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을 이끌어 내신 여호와야훼께서 광야에서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며 그들을 인도하십니다(출애굽기 16–17장). 11장에서 은과 금을 달라고 하도록 하신 명령은 그러한 구원의 돌봄이 이집트를 떠나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한밤중에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나아가신다

출애굽기 11:4 본문 →

4절에서 모세의 말이 시작됩니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밤중쯤에 내가 이집트 한가운데로 나아가겠다.』」출애굽기 11:4 · 두루새김

그동안 여호와야훼는 모세와 아론에게 손이나 지팡이를 뻗으라고 명령하시기도 했고, 바람과 우박을 보내시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앞선 모든 재앙도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신 일이었습니다. 다만 마지막 재앙의 선언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이집트 한가운데로 나아가신다는 표현이 앞에 나옵니다.

이것은 파라오가 지배하는 땅 한가운데서 여호와야훼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 줍니다.

앞선 메뚜기 재앙에서는 동풍이 밤새 불다가 아침에 메뚜기들이 도착했습니다. 어둠 재앙에서는 사흘 동안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재앙은 한밤중에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지 생활이 멈추거나 재산이 파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예고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표현 카하초트 할라일라는 밤이 나뉘는 때, 곧 한밤중 무렵을 가리킵니다. 정확히 자정이라는 시각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시간을 대략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왕의 자리에 앉은 파라오부터 맷돌로 곡식을 가는 여자 노예까지

출애굽기 11:5 본문 →

「『왕의 자리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맷돌로 곡식을 가는 여자 노예의 맏아들까지,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이 죽을 것이다. 가축의 처음 태어난 새끼도 모두 죽을 것이다.』」출애굽기 11:5 · 두루새김

왕의 자리는 이집트의 가장 높은 권력을 상징하는 자리입니다. 맷돌은 곡식을 갈아 음식을 준비하는 일상적인 노동의 도구입니다. 특히 이 구절의 여자 노예는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배 아래 일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이 둘 사이에 이집트 사회의 모든 계층이 포함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왕의 집안도, 가난한 노예의 집안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 하필 맏아들입니까?

이스라엘은 이미 여호와야훼의 맏아들이었다

출애굽기 4:22–23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자신의 아들, 자신의 맏아들이라는 사실을 파라오에게 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섬기게 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면 파라오의 맏아들을 죽이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따라서 11장의 맏아들 재앙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심판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맏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그 아들을 붙들어 두고 보내지 않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야훼는 파라오의 맏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누구의 아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왜 여자 노예의 맏아들까지 죽어야 하는가?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맷돌로 곡식을 가는 여자 노예가 파라오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 여자의 맏아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맏아들이 각자의 잘못에 비례하는 형벌을 받는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이집트 전체에 닥치는 심판입니다. 왕의 정책과 한 나라의 억압이 사회 전체를 심각한 비극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왜 정당한지를 모두 설명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왕의 맏아들과 여자 노예의 맏아들이 함께 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본문은 도덕적으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해석자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을 통쾌한 복수 장면으로만 읽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는 실제 사람들의 죽음이며, 가족들의 상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이스라엘의 가족과 재산을 물려주는 질서에서 맏아들은 특별한 지위를 가졌습니다. 신명기 21:15–17은 맏아들이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다루며, 창세기에서는 맏아들의 권리와 집안을 이어 가는 일이 여러 이야기의 중심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맏아들의 죽음은 한 가정이 자녀를 잃는 슬픔인 동시에 그 가정이 이어지는 일과 미래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서 이집트의 부르짖음으로

출애굽기 11:6 본문 →

출애굽기 2:23에서 이스라엘은 고된 노동 때문에 탄식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집트 온 땅에서 큰 부르짖음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런 부르짖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출애굽기 11: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억압 아래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였습니다. 11장에서 예고되는 이집트의 부르짖음은 맏아들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슬픔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처음에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고, 이제는 억압을 유지해 온 나라 전체에서 통곡이 일어나게 된다는 서술은 이야기 속에서 강한 대응을 이룹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에 그들을 구하러 내려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재앙은 이스라엘의 고통과 무관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여호와야훼의 행동이 마침내 이집트 전체를 뒤흔드는 심판에 이른 것입니다.

본문은 그 모든 집에 닥칠 상실을 「큰 부르짖음」이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모읍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그 심판으로 인해 슬퍼한다는 사실이 함께 기록됩니다.

성경은 그 울부짖음을 지우지 않습니다.

큰 부르짖음과 짖지 않는 개 한 마리

출애굽기 11:7 본문 →

이집트에 일어날 울부짖음을 선언한 직후 여호와야훼는 완전히 다른 광경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개 한 마리도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의 가축을 향해 짖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나 여호와야훼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구별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11:7 · 두루새김

히브리어 원문은 개가 혀를 날카롭게 한다는 관용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서는 개가 짖거나 소리를 내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위협이나 소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생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한쪽에는 이집트 온 땅을 채우는 울음소리가 있고, 다른 쪽에는 개의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 여호와야훼의 구별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개가 짖지 않는다는 말을 이스라엘이 언제나 두려움이나 슬픔 없이 살게 된다는 일반적인 약속으로 넓혀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재앙이 닥치는 특정한 밤에 이스라엘이 어떤 구별을 경험할 것인지를 가리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스스로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보호받는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7절은 구별하시는 분이 여호와야훼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맏아들이라는 관계가 먼저 주어졌고, 이제 그분은 자신의 백성과 이집트를 구별하십니다.

이 구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다음 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출애굽기 12장은 유월절 어린양과 그 피를 통해 이스라엘이 죽음의 재앙을 어떻게 피하게 되는지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11장의 구별을 민족적 신분만으로 모든 것이 자동 결정되는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다음 출애굽기 13:1–2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맏아들과 가축의 처음 태어난 새끼를 여호와야훼께 거룩하게 구별하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맏아들도 여호와야훼께 속한 존재로 구별됩니다. 이스라엘이 재앙에서 보호받았다고 해서 자기 생명을 스스로 소유한 것처럼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생명을 구하신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사실이 이후의 삶을 결정합니다.

파라오의 신하들이 모세 앞에 엎드릴 것이다

출애굽기 11:8 본문 →

모세는 마지막으로 파라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선언합니다.

「임금님의 이 신하들이 모두 제게 내려와 제 앞에 엎드려 말할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모든 백성은 나가십시오.』 그런 다음에 저는 나가겠습니다.」 모세는 몹시 화가 난 채 파라오 앞에서 나왔습니다.출애굽기 11:8 · 두루새김

모세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일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파라오의 궁정으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파라오의 신하들이 모세에게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누구는 가고 누구는 남으라는 제한이 없습니다. 앞선 협상에서 파라오가 끝까지 제한하려 했던 문제가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서 떠날 허락을 얻어 내기 위해 더 이상 조건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때에 떠날 것을 선언합니다.

모세의 권위는 그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처음부터 모세의 사명은 파라오보다 더 높은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몹시 화가 난 모세

모세가 화가 난 이유를 본문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습니다. 파라오도 그 경고를 듣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여전히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대면 장면은 분노 속에서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파라오가 끊임없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자신에게 다시 나타나면 죽이겠다고 위협한 일(출애굽기 10:28)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해방되지 못한 채 계속 억압받고 있다는 현실과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 가운데 어느 하나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두 절은 왜 다시 파라오의 완고함을 말하는가

출애굽기 11:9–10 본문 →

11장 마지막 두 절은 새로운 재앙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는 너희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내가 이집트 땅에서 더 많은 놀라운 일을 일으키려는 것이다.」출애굽기 11:9 · 두루새김
모세와 아론은 이 모든 놀라운 일을 파라오 앞에서 행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굳게 만드셨고,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을 자기 나라에서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출애굽기 11:10 · 두루새김

9절에서 여호와야훼가 말씀하시는 내용은 앞서 출애굽기 7:3–4에서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10절은 모세와 아론이 이미 행한 일들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이것은 재앙 이야기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요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파라오의 마음을 굳게 만드셨다는 말은 그분이 이 사건을 자신의 목적 아래 두고 계신다는 서술입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실제로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이 두 진술을 나란히 놓습니다.

본문은 이 관계의 모든 철학적 문제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한과 파라오의 책임이 어떻게 함께 성립하는지 완전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야기 속에서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파라오의 고집이 여호와야훼의 목적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11장 끝의 완고함은 이야기의 최종 결말이 아닙니다.

마지막 선언 앞에 선 사람들

출애굽기 11:1–10 본문 →

모세는 왕에게서 해방의 허락을 받아 내는 데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아직 거부하는 왕 앞에서 여호와야훼가 말씀하신 일을 끝까지 전한 사람입니다. 파라오는 아직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지만, 곧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게 될 것입니다.

이 장이 끝날 때 그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면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무거운 침묵에 가깝습니다.

왕의 자리에 앉은 파라오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습니다. 모세는 몹시 화가 난 채 파라오 앞에서 나옵니다. 이집트의 집들에는 아직 사람들이 살아 있고, 여자 노예는 맷돌로 곡식을 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이미 한밤중에 자신이 이집트 한가운데로 나아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집트에서는 전에 없던 큰 부르짖음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개 한 마리도 짖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어느 집에서도 그날 밤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끝내 듣지 않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이미 선포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