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이집트의 종살이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출애굽기 10장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 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자신이 이집트에서 행하신 일들을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 들려주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조금 뒤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야훼를 섬기러 떠나는 것을 허락하면서도 아이들은 데려가지 못하게 합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현재를 붙들어 두려 하지만, 여호와야훼는 그들의 미래까지 자신의 백성으로 세우려 하십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자에게 들려줄 이야기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다시 파라오를 찾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명령의 이유를 특별히 설명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파라오에게 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그가 있는 곳에서 나의 이 표징들을 행하려는 것이며,」 「또 내가 이집트를 농락한 일과 그들 가운데 둔 나의 표징들을 네가 네 아들과 네 손자의 귀에 들려주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출애굽기 10:1–2 · 본디새김
앞선 재앙들에서는 파라오가 여호와야훼를 알게 하려는 목적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제는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자신들의 후손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출애굽 사건이 단지 그 일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만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되는 일은 후손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후손들이 모든 일을 직접 목격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앞선 세대로부터 이야기를 듣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출애굽의 경험은 이야기가 되어 세대를 건너갑니다.
앞에서는 모세 한 사람을 향해 자녀에게 들려주라고 명령하시지만, 끝에서는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이야기의 책임이 여러 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아는 일로 이어집니다.
‘농락하다’는 상대를 가혹하게 다루거나 조롱거리로 만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표현에는 이집트를 단순히 패배시켰다는 말보다 강한 굴욕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출애굽기 앞부분에서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가혹하게 부리고 억압했습니다(출애굽기 1:11–14). 이제 여호와야훼는 그토록 강해 보이던 이집트의 권력이 자신의 표징 앞에서 무력해지는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목적은 이스라엘 후손들이 이집트 사람들의 고통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이 밝히는 목적은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데 있습니다. 후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자신들의 조상이 얼마나 강했는지가 아니라, 그들을 구해 내신 분이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말했다.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언제까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를 거부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여라.』」출애굽기 10:3 · 본디새김
파라오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예의를 갖추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의 요구 앞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왕의 자존심만을 겨냥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는 실제 행동을 문제 삼습니다.
파라오가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결국 그 백성을 놓아주는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나중에 출애굽기 12:26–27에서는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예식의 의미를 물을 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지가 제시됩니다. 출애굽기 13:8에서도 아버지가 자녀에게 여호와야훼가 이집트에서 행하신 일을 설명하도록 명령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출애굽이 단지 과거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신앙의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왕보다 먼저 이집트의 멸망을 알아본 신하들
여호와야훼는 파라오가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메뚜기가 이집트에 들어올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메뚜기가 땅의 표면을 덮어 아무도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박을 피하여 너희에게 남아 있는 나머지를 먹고, 너희를 위해 들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다.』」출애굽기 10:5 · 본디새김
우박은 이집트의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러나 모든 작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늦게 자라는 밀과 쿠쎄멧은 피해를 면했다고 앞 장에서 설명했습니다(출애굽기 9:31–32).
재앙이 한 차례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은 남은 것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손실을 입었더라도 회복할 여지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뚜기 재앙은 바로 그 여지를 없애겠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메뚜기는 들에서만 활동하지 않습니다. 파라오의 집, 신하들의 집, 이집트 모든 사람의 집까지 가득 채울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이것은 농경지의 피해가 생활공간의 침범으로 이어지는 재앙입니다.
모세는 경고를 전한 뒤 몸을 돌려 파라오 곁에서 나갑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신하들이 먼저 입을 엽니다.
파라오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이것이 우리에게 덫이 되겠습니까? 그 사람들을 보내 주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섬기게 하십시오. 이집트가 망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십니까?」출애굽기 10:7 · 본디새김
‘덫’이라는 말의 직접적인 대상이 모세인지, 그가 제기하는 요구와 그로 인해 계속되는 상황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의 뜻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는 일이 이제 이집트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덫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파라오는 여호와야훼의 표징을 통해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왕으로 묘사됩니다. 신하들은 파라오가 붙들고 있는 권력이 오히려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이집트의 권력 내부에서도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이 이스라엘의 자유를 그 자체로 존중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직접적인 관심은 이집트가 더 큰 피해를 입지 않는 데 있습니다.
파라오가 놓지 않으려는 것을 계속 붙들수록, 그가 지키려는 이집트가 오히려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가 함께 여호와야훼를 섬길 것인가
신하들의 말을 들은 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다시 불러들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다시 파라오에게로 이끌려 왔다. 파라오가 그들에게 말했다.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섬겨라. 갈 사람은 누구누구냐?」출애굽기 10:8 · 본디새김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파라오가 여호와야훼를 섬기러 가는 일 자체를 전적으로 금지하는 단계에서는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누가 그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려 합니다.
모세가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어린이들과 노인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 우리의 양과 염소와 소와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에게 여호와야훼를 위한 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10:9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예배는 일부 대표자만 참석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모세가 설명하는 여호와야훼의 축제에는 모든 세대가 참여합니다.
이 장 앞부분에서 여호와야훼는 후손들에게 출애굽의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파라오는 바로 그 후손이 될 아이들이 함께 떠날 수 있는지를 문제 삼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예배하러 가는 동안 이집트에 남겨 두어도 되는 부속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 또한 여호와야훼의 백성에 속합니다. 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정만 여호와야훼의 백성인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특정한 연령이나 노동 능력으로 규정되는 집단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속한 백성입니다.
파라오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보내 주기라도 한다면야, 여호와야훼도 그렇게 너희와 함께하기를 바라지. 보아라. 재앙이 너희 앞에 있다.」출애굽기 10:10 · 본디새김
이 말은 실제 허락이라기보다 거절과 위협을 담은 발언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파라오가 아이들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는 안 된다. 자, 장정들만 가서 여호와야훼를 섬겨라. 너희가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파라오 앞에서 쫓겨났다.출애굽기 10:11 · 본디새김
파라오는 모세가 요구한 것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규정합니다. 모세는 모든 세대가 함께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장정들만 가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떠나야 한다는 요구를 성인 남성들만의 제한된 외출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남겨 두는 것은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그런 목적을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으므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파라오가 여전히 이스라엘 가족의 이동을 통제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이 장에서 파라오는 이제 단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왕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까지 자기 권한 아래 두려는 왕으로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재앙이 너희 앞에 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악이 너희 얼굴 앞에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는 모세 일행이 악한 의도를 품고 있다는 비난으로도 이해할 수 있고, 그들 앞에 닥칠 불행을 경고하는 위협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만이 확실하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남은 푸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협상이 결렬되자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손을 뻗으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뻗자 여호와야훼는 온종일, 그리고 밤새 동풍을 불게 하십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그 바람이 메뚜기를 실어 옵니다.
메뚜기 떼가 바람에 실려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묘사는 자연현상의 모습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초점은 그것을 단순한 우연이나 통상적인 계절 변화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미리 경고하셨고, 모세가 지팡이를 뻗은 뒤 그분이 바람을 움직이셨으며, 메뚜기가 예고된 대로 도착했다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바람은 여호와야훼의 능력과 경쟁하는 자연의 힘이 아니라, 그분이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과정에 사용하시는 수단으로 묘사됩니다.
메뚜기가 온 땅의 표면을 덮어 땅이 어두워졌다. 메뚜기는 땅의 모든 풀과 우박이 남겨 놓은 나무의 모든 열매를 먹었다. 이집트 온 땅에서 나무에도 들의 풀에도 푸른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출애굽기 10:15 · 본디새김
앞선 우박이 작물을 손상시켰다면, 이번 메뚜기 재앙은 남아 있던 식물들까지 먹어 치웁니다. 이렇게 보면 15절의 「푸른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표현은 단지 곤충의 숫자가 엄청났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이집트가 식량을 생산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식물 세계가 황폐해졌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메뚜기 때문에 땅이 어두워졌다는 말은 이어지는 어둠 재앙을 예고하는 듯한 문학적 효과를 낳습니다. 먼저 메뚜기들이 땅을 덮어 어둡게 만듭니다. 곧이어 메뚜기가 없어졌는데도 이집트는 더욱 짙은 어둠에 잠깁니다.
메뚜기 재앙의 어둠은 땅을 뒤덮은 벌레 떼와 연결되지만, 다음 재앙의 어둠은 벌레가 사라진 뒤 하늘을 향한 모세의 행동으로 시작됩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달라는 파라오
메뚜기가 이집트의 남은 식물을 먹어 치우자 파라오는 서둘러 모세와 아론을 부릅니다.
파라오가 서둘러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했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다.」출애굽기 10:16 · 본디새김
앞서 우박 재앙 때 파라오는 여호와야훼가 의롭고 자신과 자신의 백성이 악하다고 고백했습니다(출애굽기 9:27). 이번에는 모세와 아론에게도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파라오의 잘못이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거역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의 결정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부당한 일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는 모세와 아론을 상대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러니 이제 너는 이번 한 번만 내 죄를 용서해 다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 이 죽음만은 내게서 거두어 달라고 간구해 다오.」출애굽기 10:17 · 본디새김
파라오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재앙을 겪었고, 여러 번 백성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이번만 용서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겠다는 구체적인 변화의 약속이라기보다, 눈앞의 재앙을 끝내 달라는 절박한 요청에 가깝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죽음은 현재 닥친 메뚜기 재앙을 가리킵니다. 메뚜기가 직접 파라오를 죽이고 있다는 뜻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집트의 남은 식물들까지 파괴하여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재앙을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모세는 다시 여호와야훼께 간구합니다.
여호와야훼가 바람을 매우 강한 서풍으로 바꾸었다. 그 바람이 메뚜기를 실어다가 갈대 바다로 몰아넣었다. 이집트 영토 전체에 메뚜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출애굽기 10:19 · 본디새김
그런데 바람이 단순히 원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고 설명하지 않고, 여호와야훼가 바람을 바꾸셨다고 말합니다. 메뚜기 재앙의 시작과 끝이 모두 여호와야훼의 행동으로 서술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뚜기의 제거가 곧 이스라엘의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20절은 여호와야훼가 파라오의 마음을 강하게 하셨고, 파라오는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구절은 파라오의 완고함을 여호와야훼의 행동과 연결합니다. 이때 본문은 그 사실을 숨기거나 완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파라오 자신의 거부로도 표현된다는 점 역시 중요합니다. 파라오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는 파라오의 저항 속에서도 자신의 표징을 이루시고, 그 사건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게 하십니다. 인간의 거부가 하나님의 목적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이제는 메뚜기들이 사라진 땅 위에 전혀 다른 어둠이 내립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이곳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갈대 바다」는 이후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날 때 중요한 장소로 다시 나타납니다(출애굽기 13:18, 14:21–22). 여기서는 메뚜기들을 몰아넣는 장소지만, 뒤에서는 이스라엘이 건너가는 길이 열립니다. 서로 다른 사건이므로 동일한 의미를 그대로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여호와야훼가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시는 모습이 두 장면에 공통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아무도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하늘을 향해 네 손을 뻗어 이집트 땅 위에 어둠이 있게 하여라. 그 어둠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출애굽기 10:21 · 본디새김
이번에는 메뚜기 재앙과 달리 사전에 파라오에게 경고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세가 손을 뻗자 이집트 온 땅에 짙은 어둠이 임합니다.
‘그 어둠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손으로 더듬는 행위와 관련되며, 어둠이 마치 만질 수 있을 만큼 짙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도 만질 수 있는 어둠이라는 뜻으로 표현합니다.
빛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어둠 자체가 하나의 실체처럼 사람들을 에워쌉니다.
사흘 동안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못했고, 아무도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는 그들이 사는 곳에 빛이 있었다.출애굽기 10:23 · 본디새김
본문은 모든 사람이 문자 그대로 사흘 동안 한순간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생리적 상태를 설명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이집트의 일상적인 활동이 마비된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누가 함께 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려 했습니다. 그는 남자들만 가라고 했고, 아이들은 남겨 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집트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던 왕의 땅에서 이동 자체가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이 명시적으로 설명하는 비유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만들어 내는 강한 대조입니다.
동일한 땅에서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집트의 왕조차 빛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파라오는 자신의 나라를 통치할 수 있지만, 그 나라에 빛이 있게 할 능력까지 가진 것은 아닙니다.
반면 여호와야훼는 이집트의 하늘을 어둡게 하시면서도 자신의 백성이 사는 곳에는 빛이 있게 하십니다.
파라오가 백성을 붙잡아 둘 수는 있었지만, 그 백성에게 비추는 빛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 1:2에서는 어둠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생깁니다(창세기 1:3). 출애굽기 10장은 창세기 1장을 직접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과 어둠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 놓여 있다는 공통된 주제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어둠과 구별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이집트를 어둠에 잠기게 하시면서 이스라엘이 사는 곳에는 빛을 남겨 두십니다. 이를 창조 질서가 거꾸로 되돌아가는 듯한 심판의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재앙이 창조의 역순을 정확히 따른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가도 되지만, 가축은 남겨 두어라
파라오는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큰 양보를 제시합니다.
파라오가 모세를 불러 말했다. 「가서 여호와야훼를 섬겨라. 다만 너희의 양과 염소와 소는 남겨 두어라. 너희 아이들도 너희와 함께 가도 된다.」출애굽기 10:24 · 본디새김
이전 협상에서는 장정들만 가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함께 가도록 허락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축을 남겨 두라고 합니다.
예배에 참여할 사람을 제한하던 것에서 이제는 예배에 필요한 재산과 제물을 제한하려 합니다.
가축을 이집트에 남겨 두면 이스라엘이 돌아올 것이라는 보장을 얻으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파라오가 자신에게 중요한 경제적 자산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파라오의 의도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말했다. 「당신도 우리 손에 희생 제물과 번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 바치겠습니다.」출애굽기 10:25 · 본디새김
모세는 이스라엘의 가축을 모두 가져가야 한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파라오도 그들에게 희생 제물과 번제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을 파라오가 실제로 직접 제물을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로 읽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모세는 파라오가 제사의 재료를 제한할 권한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갈 것입니다. 발굽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가운데서 가져다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여호와야훼를 섬길지는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알지 못합니다.」출애굽기 10:26 · 본디새김
모세는 어떤 가축을 얼마나 제물로 사용할지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예배를 드리려는 목적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야훼를 섬기러 가야 한다는 명령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그곳에 도착한 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제물로 여호와야훼를 섬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파라오가 미리 계산해 허용해 주는 최소한의 제물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예배할 수 있도록 모든 가축을 데려가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일부만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제는 가축의 일부를 남기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을 파라오가 정한 범위 안에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자유는 단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그분을 섬길 수 있는 상태로 옮겨 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모세의 대답인 「발굽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남김없이 종교적 목적에 바쳐야 한다는 명령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 표현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와 여호와야훼께 제사드리려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재산을 얼마나 포기하느냐보다, 누가 예배의 조건을 결정하느냐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협상은 다시 결렬됩니다.
27절은 여호와야훼가 파라오의 마음을 강하게 하셨으며, 파라오는 그들을 보내 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13:21–22에서 여호와야훼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백성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야 할 모든 길을 미리 정해 놓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움직입니다. 출애굽기 10장에서 모세가 보여 준 태도도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그는 파라오에게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기보다,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백성 전체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붙듭니다.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마라
마침내 파라오는 모세와의 대화를 끝내려 합니다.
파라오가 모세에게 말했다. 「내 앞에서 나가라. 조심하여라.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마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을 것이다.」출애굽기 10:28 · 본디새김
파라오는 모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다른 조건을 제안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모세를 자신의 앞에서 내쫓고, 다시는 얼굴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이집트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파라오는 자신이 다시는 모세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앞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어둠을 내리셔서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파라오가 자신의 명령으로 모세와의 만남을 끊으려 합니다.
그는 모세를 위협할 수는 있어도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는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않겠습니다.」출애굽기 10:29 · 본디새김
모세는 이 말에 반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용서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파라오가 더 이상 모세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파라오는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요구를 전하는 사람 자체를 자신의 앞에서 제거하려 합니다.
그 요구는 모세 개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하신 말씀입니다.
파라오는 모세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는 있어도, 여호와야훼가 시작하신 일을 끝낼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이 선언을 모세가 즉시 자리를 떠났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출애굽기 11장에서도 모세의 말이 계속되며, 11:8에서야 그가 파라오 곁을 떠났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따라서 10장 끝의 선언 직후 만남이 종료되었다고 읽을 수도 있고, 11장의 말까지 같은 대면 장면에 속한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 경계를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씀이 한 민족의 미래를 결정하는가
파라오는 아이들을 남겨 두라고 했지만, 여호와야훼는 그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파라오가 부여한 신분에서 찾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의 조상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배우게 됩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서 원하는 허락을 얻어 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이집트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끝까지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위해 떠나야 하는지에 관한 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파라오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겠다고 위협합니다.
그런데 이 장을 시작할 때 여호와야훼는 이미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이집트에서 행하신 일은 모세의 아들과 손자의 귀에 들려질 것이라고.
파라오는 모세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했지만, 모세가 전한 여호와야훼의 이야기는 그의 손자에게까지 들려질 것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