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22장

이 장의 자리 · 19–24장 · 시나이산의 언약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서 들으시는 하나님

누군가의 집에서 물건이 사라졌습니다. 도둑은 잡히지 않았고, 집주인은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맡긴 사람은 의심을 거두지 못합니다. 아무도 진실을 보지 못했다면, 이 다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출애굽기 22장은 이런 문제를 다루는 법으로 시작합니다. 도둑이 얼마나 배상해야 하는지, 남의 밭을 망가뜨리면 무엇으로 갚아야 하는지, 맡아 둔 가축이 죽었을 때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세밀하게 따집니다. 피해가 발생한 경위와 책임의 범위를 구별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장의 중반을 지나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물건이 사라진 사건에서는 증거를 찾고 배상액을 계산하던 법이,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사람의 고통 앞에서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냅니다.

이 장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입힌 손해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묻다가, 누구도 자기 힘으로 바로잡을 수 없는 고통을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시는지까지 나아갑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922장 본문 읽기 →

도둑을 잡았다고 해서 무엇이든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출애굽기 22:1–3 본문 →

첫 법규부터 뜻밖의 구별이 등장합니다.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오다가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이라도 해가 뜨기 전과 해가 뜬 뒤의 책임이 다릅니다.

「도둑이 뚫고 들어오다가 발견되어 맞아 죽으면, 그를 친 사람에게는 피 흘린 책임이 없다.」출애굽기 22:1 · 본디새김
「그러나 해가 뜬 뒤였다면, 그를 친 사람에게는 피 흘린 책임이 있다. 도둑은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 그에게 배상할 것이 없으면, 훔친 것의 대가로 팔려야 한다.」출애굽기 22:2 · 본디새김

재산을 침해한 사람이라도 그의 생명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본문이 야간 침입자를 언제나 죽여도 된다고 허용하거나, 낮에는 어떤 경우에도 방어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이 명시하는 것은 침입자의 죽음에 대한 피의 책임을 두 상황에서 달리 판단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어서 본문은 도둑이 살아 있을 때의 책임으로 돌아갑니다.

훔친 것이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면 두 배로 갚아야 합니다. 앞서 출애굽기 21:37에서는 훔친 소나 양을 잡거나 팔아 버렸을 때 더 큰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손실의 형태에 따라 책임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도둑질로 깨뜨린 질서에 대한 추가적인 책임이 부과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배상할 재산이 없으면 훔친 것의 대가로 팔려야 합니다(22:2). 이 규정은 고대 사회에서 배상 책임이 사람의 자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것을 현대적인 의미의 인권 보호 제도로 미화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상황을 구별하는 데에는 실제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침입자를 맞닥뜨린 사람은 상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얼마나 위험한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날이 밝았다면 침입자와 상황을 식별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런 차이가 법규의 배경일 수 있습니다.

남의 밭에서 생긴 손해도 나의 책임이 된다

출애굽기 22:4–5 본문 →

도둑질 다음에는 고의로 훔친 것이 아닌데도 남의 재산을 해친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가축을 풀어 놓았더니 남의 밭에 들어가 작물을 먹어 버렸습니다. 불을 놓았는데 그것이 가시덤불을 거쳐 곡식 더미와 밭까지 태워 버렸습니다.

가축의 주인은 직접 남의 곡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불을 놓은 사람도 반드시 남의 곡식을 태우려고 불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 손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밭이나 포도원에서 가축을 먹이다가 자기 가축을 풀어 놓아 남의 밭을 뜯어 먹게 했다면,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해야 한다.」출애굽기 22:4 · 본디새김

피해를 입은 사람은 자신의 밭에서 자라던 것을 잃었습니다. 가해자가 자기 밭에 남아 있는 품질 나쁜 작물만 골라 건네고 배상을 끝냈다고 주장할 수 없도록, 법은 배상의 질까지 문제 삼습니다.

얼마를 배상할 것인지뿐 아니라 무엇으로 배상할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또한 불에 관한 규정에서는 불이 가시덤불에 옮겨붙은 뒤 피해가 커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피해가 여러 단계를 거쳐 발생했다고 해서 처음 불을 놓은 사람의 책임이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 법은 더 복잡한 문제로 들어갑니다. 손해가 발생한 것은 분명하지만, 누가 손해를 일으켰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증인이 없을 때, 신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출애굽기 22:6–14 본문 →

아무도 훔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고대 이스라엘에서 소와 나귀, 양과 염소는 단순한 소유물을 넘어 농사와 운반, 식량과 생계에 관계되는 재산이었습니다. 은이나 물건을 이웃에게 맡기는 일 역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맡긴 물건이 사라졌습니다.

도둑이 발견된다면 문제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도둑이 두 배를 배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도둑이 발견되지 않으면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물건을 맡은 사람이 훔쳤을 수도 있고, 실제로 외부의 도둑이 가져갔을 수도 있습니다.

22:7은 이때 집주인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명령합니다. 22:8은 그 절차를 더 일반적인 분쟁으로 확대합니다. 소나 나귀나 겉옷이나 잃어버린 물건을 두고 양쪽이 권리를 주장한다면, 두 사람의 사안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으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엘로힘(⁨אֱלֹהִים⁩)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가리키지만, 이러한 사법적 문맥에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판결하는 재판자들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가리킨다면 분쟁이 하나님의 판결 앞에 놓인다는 뜻이 두드러집니다. 재판자들을 가리킨다면 정당한 사법 절차를 통해 사건을 판단한다는 뜻이 강조됩니다. 구체적인 절차와 지시 대상을 본문만으로 완전히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의심받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건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맡은 사람이 훔쳤다는 사실까지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건은 판단을 받아야 하며, 유죄라고 판정된 사람에게 배상 책임이 돌아갑니다.

똑같이 물건을 잃었는데 왜 책임은 다른가

22:9–14에서는 가축을 맡기거나 빌린 상황을 구별합니다.

가축이 죽었거나 다쳤거나 끌려갔는데 목격자가 없다면, 맡은 사람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합니다. 자신이 이웃의 재산에 손대지 않았다는 맹세입니다. 주인은 그 맹세를 받아들여야 하며, 맡은 사람은 배상하지 않습니다.

반면 맡아 둔 가축을 도둑맞았다면 배상해야 합니다(22:11).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경우에는 그 증거를 가져오면 배상하지 않습니다(22:12). 앞선 은이나 물품의 보관 규정과 여기의 가축 보관 규정을 완전히 동일한 원칙으로 환원할 수는 없습니다. 법은 맡긴 물건의 종류와 사건의 상황에 따라 책임을 달리 정합니다.

짐승을 빌린 사람이 그 짐승을 잃었을 때, 주인이 함께 있었는지에 따라 책임이 달라집니다. 주인이 없었다면 배상하지만, 함께 있었다면 배상하지 않습니다(22:13–14).

왜 주인의 동행 여부가 중요한지는 본문이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법은 짐승의 소유자와 이용자가 함께 있는 상황을, 이용자만 짐승을 맡아 사용하는 상황과 다르게 판단합니다.

마지막의 「그것이 삯을 주고 빌린 것이면, 그 손해는 삯에 포함된다」는 번역상 갈림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사키르(⁨שָׂכִיר⁩)는 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고, 삯을 주고 사용하는 짐승과 관계된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그 삯에 들어 있다」라는 문장만으로는 삯에 무엇이 포함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용료에 손실 위험까지 포함되었다는 해석과, 고용 또는 임대의 관계를 다르게 이해하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본디새김은 손해가 삯에 포함된다는 읽기를 선택했습니다.

이 긴 법규를 관통하는 것은 책임을 정확하게 가려내려는 노력입니다.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손실을 배상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든 손실에서 면책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판단을 위해 증거가 요구되고, 맹세가 사용되며, 분쟁은 공적인 판단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무도 사건을 보지 못했을 때조차, 당사자는 자신의 말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손해를 배상한다고 모든 문제가 끝나는가

출애굽기 22:15–16 본문 →

이어서 등장하는 법규는 앞선 재산 규정과 형식상 비슷합니다.

어떤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 동침했다면 신부값을 치르고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결혼을 완강하게 거절하면 신부값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단순한 재산 손실이 아닙니다. 한 여성의 혼인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가족 사이의 관계가 걸려 있습니다. 여기서 ‘신부값’은 고대 사회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지급되던 재산을 뜻합니다.

아버지는 결혼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절하더라도 남자의 금전적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는 성적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남자가 그 여자를 아내로 데려갈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 규정입니다.

그러나 이 법규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여성의 혼인 선택권을 충분히 보호하는 규정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습니다. 본문은 아버지의 거부권을 명시하지만, 여성 자신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본문에서 다루는 것은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여자를 꾀어 동침한 경우입니다. 폭력을 사용한 성범죄에 관한 모든 상황을 이 두 구절에 포함시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상황을 다루는 규정은 신명기 22:23–29 등에서 별도로 나타납니다.

본문의 원래 기능을 이해하는 일과 그 제도를 오늘날 그대로 이상화하는 일은 구별해야 합니다.

갑자기 등장하는 세 가지 무거운 금지

출애굽기 22:17–19 본문 →

이제 법규의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집니다.

「주술을 행하는 여자는 살려 두지 마라.」출애굽기 22:17 · 본디새김
「짐승과 동침하는 자는 누구든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출애굽기 22:18 · 본디새김
「오직 여호와야훼에게만 바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는 자는 진멸을 당해야 한다.」출애굽기 22:19 · 본디새김

앞에서는 배상과 면책을 상세하게 구별했지만, 여기서는 세 가지 행위를 짧고 단호한 문장으로 금지합니다. 다만 앞선 재산 및 개인 관계의 분쟁과 달리, 여기서는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종교적·성적 경계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첫째 규정에서 주술을 행하는 여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대의 주술 행위를 오늘날의 특정한 종교적 관습이나 사회적 집단에 곧바로 대응시킬 근거는 부족합니다.

둘째 규정은 인간과 짐승 사이의 성행위를 금지합니다. 레위기 18:23과 20:15–16에서도 관련 금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의 직접적인 대상은 다른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출애굽기 20:3의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이 언약 공동체의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얼마나 엄중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문제는 제물을 바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예배가 향하는 대상입니다.

이 세 구절을 현대 사회의 종교적 강제나 폭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본문 자체가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 법규와 오늘의 법질서 사이에 별도의 해석적 판단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여호와야훼에게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한 직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들이 다른 민족의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기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집트에서 당했던 일을 기억하라

출애굽기 22:20–23 본문 →

「너는 거류민을 학대하지 말고 억누르지 마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거류민이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22:20 · 본디새김

그들은 이집트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억압당했으며,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힘이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장은 파라오가 그들에게 강제 노동을 부과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 이입을 넘어섭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이집트가 자기들에게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기억이 사라지면, 한때 억압당했던 백성이 이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거류민 다음에는 과부와 고아가 등장합니다.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괴롭히지 마라.」출애굽기 22:21 · 본디새김

이들은 고대 사회에서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보호가 취약해지기 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남성 가장과 친족 관계가 재산 및 생계의 중요한 기반이던 환경에서, 남편이나 아버지를 잃는 일은 생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네가 그를 정말로 괴롭힌다면, 그가 내게 간절히 부르짖을 경우 나는 반드시 그의 부르짖음을 듣겠다.」출애굽기 22:22 · 본디새김

출애굽기 2:23–25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된 종살이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제 똑같은 일이 이스라엘의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이 부르짖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에게 괴롭힘당한 사람이 부르짖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들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던 까닭은 그들이 그저 이스라엘이라는 집단에 속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는 그들이 당하는 억압과 고통을 하나님이 아시고 돌보셨다는 사실도 강조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고통이 무시되지는 않습니다.

가해자의 가족이 과부와 고아가 된다는 경고

「그러면 내 분노가 타올라 내가 너희를 칼로 죽이겠다. 너희 아내들은 과부가 되고 너희 아들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출애굽기 22:23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형벌의 강도를 높인 표현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다른 사람에게 만들어 낸 처지가 이제 자기 가정에도 닥친다는 선언입니다.

폭력과 억압은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 사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죽음과 가족의 해체는 새로운 과부와 고아를 만들어 냅니다. 본문은 그 결과를 바로 가해자 자신의 가족에게 닥치는 일로 묘사합니다.

법규를 지킨다는 것은 단지 정해진 배상액을 지불하는 일이 아닙니다. 힘없는 사람의 고통이 하나님께 도달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는 ‘괴롭히다’, ‘부르짖다’, ‘듣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반복되는 강조 구문으로 나타납니다. 이 메시지는 신명기 10:18–19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행하시며 거류민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도 거류민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빚을 갚을 권리와 잠을 잘 권리 사이에서

출애굽기 22:24–26 본문 →

과부와 고아에 관한 경고 다음에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등장합니다.

「네가 내 백성 가운데 너와 함께 사는 가난한 사람에게 은을 빌려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처럼 굴지 마라. 너희는 그에게 이자를 물리지 마라.」출애굽기 22:24 · 본디새김

문제는 빌려준 돈을 근거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가입니다.

여기서 이자가 금지되는 대상은 구체적으로 ‘너와 함께 사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 하나만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모든 금융 거래에서 이자가 금지되었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23:19–20은 이자 규정을 다른 구분과 함께 다룹니다.

가난한 이웃이 겉옷을 담보로 맡겼습니다.

채권자는 빚을 갚을 때까지 그 겉옷을 보관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담보물이란 본래 채무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네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기라도 하면, 해가 질 때까지 그에게 돌려주어라.」출애굽기 22:25 · 본디새김
「그것은 그의 유일한 덮개이며, 그의 살갗을 덮는 겉옷이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듣겠다. 나는 은혜를 베푸는 이이기 때문이다.」출애굽기 22:26 · 본디새김

이 질문 앞에서 겉옷은 더 이상 단순한 재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몸을 추위에서 보호하는 물건이며, 그가 오늘 밤을 보내는 데 필요한 생활의 조건입니다.

그 옷을 담보로 잡은 사람이 법적으로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끝까지 빼앗아 둘 권리까지 채권자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겉옷을 돌려주라는 명령은 단순한 사회복지 규정으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서 나오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도 힘없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대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4:12–13은 가난한 사람이 맡긴 담보물을 돌려주어 그가 자기 옷을 덮고 잠자리에 들 수 있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출애굽기 22장의 겉옷 규정과 같은 관심이 구체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34–35에서 예수는 되돌려받을 것을 계산하는 관계를 넘어서는 사랑과 빌려줌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법규의 직접적인 인용이라기보다, 이웃을 경제적 이익의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으려는 주제적 연결입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출애굽기 22:27–30 본문 →

마지막 네 구절은 다시 새로운 주제로 움직이는 듯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지 말고,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고, 수확물을 바치며, 맏아들과 가축의 맏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들에서 찢겨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이어집니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규정이지만, 마지막 30절이 이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하나님께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삶

먼저 22:27은 하나님과 백성의 지도자에 대한 태도를 다룹니다.

여기서 ‘하나님’에 사용된 말도 앞선 재판 규정에서 등장한 엘로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모독하지 말라는 뜻과, 재판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모독하지 말라는 뜻이 해석의 갈림으로 제시됩니다.

이어지는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읽으면 공동체의 권위와 사법 질서를 존중하라는 의미가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도자의 모든 행동을 무조건 정당화하거나 부당한 판결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금지한다는 뜻은 본문에서 도출되지 않습니다.

「네 수확물과 짜낸 즙을 바치는 일을 늦추지 마라. 네 아들들 가운데 맏아들을 내게 주어라.」출애굽기 22:28 · 본디새김

앞선 법규에서는 남의 재산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확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다루는가가 문제 됩니다. 자신이 수확한 것이 모두 자기 힘만으로 얻은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그 풍요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예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맏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을 인간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 13:12–15에서는 맏아들을 여호와야훼께 속한 자로 구별하면서, 사람의 맏아들은 속량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출애굽기 34:19–20에서도 같은 원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이집트에서 처음 난 것들에게 내려졌던 심판과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사건이 있습니다(출애굽기 12–13장).

이스라엘의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기 생명을 스스로 확보한 민족이 아니라 구원받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왜 새끼는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어야 하는가

「네 소와 네 양 떼와 염소 떼의 맏배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여라. 그 새끼는 이레 동안 제 어미와 함께 있어야 한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것을 내게 주어라.」출애굽기 22:29 · 본디새김

레위기 22:27에서도 소나 양이나 염소가 태어났을 때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여드레째부터 제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레와 여드레라는 시간 구분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도 일정한 질서와 조건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그 이유를 전적으로 동물 복지나 어미에 대한 배려라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 기간을 명령하지만, 왜 반드시 이레여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들에서 찢겨 죽은 짐승을 먹지 말라

마지막 명령은 일상적인 식생활로 내려옵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라. 들에서 찢겨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마라. 그것은 개에게 던져 주어라.」출애굽기 22:30 · 본디새김

이 명령은 거룩함을 성소 안의 예배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고기를 먹는 일에도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구별이 있습니다. 이 명령을 위생 문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직접적인 근거는 「나에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라」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은 출애굽기 19:6의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들은 앞서 가난한 사람의 겉옷을 돌려주라는 명령과 같은 장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예물과 음식에 관한 규정으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이웃의 재산을 정직하게 다루고, 어려운 사람에게 빌려준 돈을 무자비하게 요구하지 않으며, 보호받기 어려운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삶과도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순간, 법규를 읽는 시선이 달라진다

출애굽기 22:1–30 본문 →

앞에서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는 책임이 중심이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그 책임의 바탕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백성은 자기 권리를 행사할 때에도 다른 사람의 생명과 삶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외면하는 사람의 부르짖음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증인이 없는 사건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여기서는 가난한 사람이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하나님이 그 부르짖음을 직접 듣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들에서 찢겨 죽은 짐승의 고기는 개에게 던져 주고, 살아 있는 가난한 이웃에게는 그가 밤을 보낼 겉옷을 돌려줍니다.

출애굽기 22장이 보여 주는 거룩한 삶은 그렇게 구체적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