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27장

이 장의 자리 · 25–36장 · 이삭과 야곱

축복을 얻고 집을 떠난 사람

창세기 27장은 누가 축복을 받았는지 모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독자는 처음부터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삭만 모릅니다. 그래서 독자는 눈이 어두운 이삭이 속아 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긴장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행동했지만, 그 결과 누구도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앞서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25:23). 그러나 그 말씀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가족들은 저마다 자신의 뜻과 판단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사람들의 말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명령하고, 어머니가 그 말을 엿듣고, 작은아들에게 다시 명령합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 거짓말하고, 큰아들은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주어져 있지만, 그 약속을 둘러싼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는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가 있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1027장 본문 읽기 →

보지 못하는 아버지, 자신이 원하는 아들에게 주려는 축복

창세기 27:1–5 본문 →

이삭은 늙고 눈이 어두워져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큰아들 에서를 불러 말했다. 「내 아들아.」 에서가 그에게 대답했다. 「예, 여기 있습니다.」창세기 27:1 · 본디새김

이삭은 야곱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듣고, 손을 만지고, 옷의 냄새를 맡아 아들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감각들이 속임수에 이용됩니다.

독자는 이삭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누가 무엇을 보고 듣고 아느냐가 사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게 가져와 먹게 해 다오. 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복을 빌어 줄 수 있도록 말이다.」창세기 27:4 · 본디새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25:28). 그 사실이 이제 결정적인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이미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왜 에서에게 축복하려 합니까?

이 장은 이삭이 리브가에게 주어진 신탁을 알고 있었는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거역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삭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당시 맏아들의 지위도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태어난 아들에게는 일반적으로 특별한 상속의 권리와 가족 안에서의 우선적인 위치가 인정되었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는 것은 그러한 가족 질서와도 어울립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미 하나님이 그 일반적인 순서를 뒤집으실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삭이 자연스럽게 이어 가려는 가족의 질서와 하나님이 말씀하신 미래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자신이 원하는 축복을 곧바로 선언하지 않습니다. 먼저 에서에게 사냥감을 잡아 오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은 뒤 아들에게 축복하려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음식이 속임수의 통로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삭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곧 죽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35:28–29에서야 그의 죽음이 기록됩니다. 따라서 이삭의 말은 임박한 죽음의 정확한 예고라기보다, 늙고 쇠약해진 사람이 죽기 전에 중요한 일을 마치려는 의도로 이해해야 합니다.

「내 목소리를 들어라」 — 어머니가 세운 계획

창세기 27:6–17 본문 →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리브가가 듣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사냥하러 들로 나갑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야곱을 부릅니다.

「그러니 이제, 내 아들아, 내 목소리를 듣고 내가 네게 명령하는 대로 하여라.」창세기 27:8 · 본디새김

앞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명령을 지켰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5). 그런데 이번에는 리브가가 아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듣고 명령에 따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야곱이 따르도록 요구받는 것은 어머니가 세운 계획입니다.

야곱이 새끼 염소 두 마리를 가져오면 리브가가 이삭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음식을 가지고 에서인 것처럼 아버지에게 나아가 축복을 받으면 됩니다.

「혹시 아버지께서 저를 만져 보시면, 아버지 눈에 제가 아버지를 조롱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제게 복이 아니라 저주를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창세기 27:12 · 본디새김

야곱의 걱정은 계획의 도덕성보다 발각될 위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에서는 털이 많고 자신은 피부가 매끈하므로, 아버지가 몸을 만져 보면 속임수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아버지를 속이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속임수가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내 아들아, 네가 받을 저주는 내가 받겠다. 너는 그저 내 목소리를 듣고 가서 내게 가져오너라.」창세기 27:13 · 본디새김

이 말은 어머니의 강한 의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아들이 받을 저주를 대신 받을 수 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계획을 반드시 실행시키려는 리브가의 결심을 드러내는 말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후 리브가는 직접 음식을 만듭니다. 에서의 옷을 야곱에게 입히고, 새끼 염소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둘러 줍니다.

이삭이 맛으로 구별하지 못하도록 음식을 준비합니다. 손으로 만져도 구별하지 못하도록 가죽을 두릅니다. 냄새로 확인할 때를 대비하여 에서의 옷을 입힙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신탁을 기억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리브가가 그 신탁을 근거로 계획을 세웠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결과를 얻으려는 열심이,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수단을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리브가는 계획을 세우고, 야곱은 그 계획에 동의해 실행합니다. 야곱은 형의 옷을 입고, 형의 몸처럼 꾸민 채, 형을 위해 준비되었던 축복을 받으러 아버지에게 갑니다.

목소리는 야곱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다

창세기 27:18–27 본문 →

야곱이 이삭에게 다가가자 첫 질문이 나옵니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여기 있다. 내 아들아, 너는 누구냐?」창세기 27:18 · 본디새김
야곱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제게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복을 빌어 주실 수 있도록, 부디 일어나 앉아 제가 사냥한 고기를 드세요.」창세기 27:19 · 본디새김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잘못 들었다거나 아버지가 착각하도록 내버려 둔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이 에서라고 직접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의심할 만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그 거짓말을 유지합니다.

이삭이 아들에게 말했다. 「내 아들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았느냐?」 그가 대답했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제 앞에 사냥감이 나타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창세기 27:20 · 본디새김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이름까지 자신의 거짓말에 끌어들입니다.

실제로 야곱은 사냥을 하지 않았습니다. 리브가가 준비한 새끼 염소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이 장은 야곱이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만, 하나님이 실제로 이 속임수를 도우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여전히 의심합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말했다. 「내 아들아, 좀 가까이 와서 내가 너를 만져 보게 해 다오.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보자.」창세기 27:21 · 본디새김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자, 이삭이 그를 만져 보고 말했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구나.」창세기 27:22 · 본디새김

그는 서로 모순되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손의 감촉을 더 신뢰합니다.

그의 손에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있었으므로, 이삭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삭은 그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창세기 27:23 · 본디새김

이삭은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귀로는 두 아들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들은 목소리와 직접 만진 손이 서로 다르자, 잘못 만들어진 손의 감촉을 근거로 판단합니다.

이삭이 말했다.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했다. 「예, 저입니다.」창세기 27:24 · 본디새김

이삭은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십니다. 이어서 야곱에게 입을 맞추라고 합니다.

야곱이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삭은 그의 옷 냄새를 맡고 그에게 복을 빌어 주며 말했다. 「보아라, 내 아들의 냄새가 여호와야훼께서 복을 주신 들의 냄새 같구나.」창세기 27:27 · 본디새김

그 냄새는 실제로 에서의 옷에서 나는 냄새였습니다. 그러나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경은 독자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 주지만, 이삭에게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독자는 그가 속고 있음을 알면서도 속임수가 완성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 긴장감은 축복의 내용이 나오면서 절정에 이릅니다.

축복은 무엇을 약속하는가

창세기 27:28–29 본문 →

이삭은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 에서라고 믿고 축복합니다.

축복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풍요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을 주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를 넉넉히 주시기를 빈다.」창세기 27:28 · 본디새김

둘째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차지할 지위에 관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너를 섬기고 민족들이 네게 몸을 굽혀 절하기를 빈다. 네 형제들의 주인이 되어라.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몸을 굽혀 절하기를 빈다.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복을 빌어 주는 자는 복을 받기를 빈다.」창세기 27:29 · 본디새김

이삭은 농사에 필요한 이슬과 비옥한 땅, 곡식과 포도주의 풍요를 빕니다. 동시에 여러 백성이 그를 섬기고 형제들이 그 앞에 몸을 굽히는 지위를 빕니다.

특히 「네 형제들의 주인이 되어라」는 표현이 앞서 리브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맞물립니다. 하나님은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5:23). 그런데 이삭은 에서라고 생각한 아들에게 형제들의 주인이 되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이삭이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바로 그 동생에게 축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앞선 말씀과 인간의 속임수가 만들어 낸 결과가 맞아떨어진다는 사실과, 속임수 자체가 정당하다는 판단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울림

축복의 마지막 문장은 더 깊은 연결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 12:3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을 저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의 축복에도 같은 복과 저주의 구조가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이삭의 축복 전체를 아브라함 언약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전달하는 공식 선언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는 농업적 풍요와 형제들에 대한 우위가 중심을 이루며, 땅과 후손에 관한 언약의 약속은 다음 장에서 더욱 명시적으로 다시 등장합니다(28:3–4).

이삭이 베푸는 축복은 단순히 에서 개인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앞으로 어떤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받은 사람은 야곱이었습니다.

불과 한순간의 차이, 그리고 아버지의 떨림

창세기 27:30–33 본문 →

이삭이 축복을 마치자 야곱은 방을 나갑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기를 마치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 앞에서 막 나가자마자 그의 형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다.창세기 27:30 · 본디새김

성경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매우 가깝게 배치합니다. 그러나 거의 엇갈릴 뻔한 두 사람의 움직임을 기록함으로써 속임수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그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져왔다. 그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일어나셔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드세요. 제게 복을 빌어 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창세기 27:31 · 본디새김

앞서 야곱이 거짓말하며 했던 말과 이제 에서가 진실을 말하며 하는 말은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말했다.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 맏아들 에서입니다.」창세기 27:32 · 본디새김

처음에는 이삭이 야곱에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에서에게 같은 질문을 합니다.

이삭은 몹시 심하게 몸을 떨며 말했다. 「그렇다면 사냥감을 잡아 내게 가져온 사람은 누구란 말이냐? 네가 오기 전에 나는 그가 가져온 것을 골고루 먹고 그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기 27:33 · 본디새김

분명한 것은 그가 이미 축복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을 되돌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속임수로 얻은 축복이지만, 그 축복이 가리키는 미래까지 단순한 속임수였던 것은 아닙니다.

축복은 야곱에게 남았지만, 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왜 그렇게 심하게 떨었는지 본문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속았다는 충격 때문일 수도 있고, 축복이 예상과 다른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의 무게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해석에서는 이삭이 그 순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말하지 않으므로, 떨림의 이유를 하나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고대의 축복은 오늘날의 가벼운 덕담과 같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족의 미래와 지위를 선언하는 축복은 말하는 사람의 권위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축복의 말이 어떤 상황에서든 저절로 효력을 발휘하는 마술적인 주문이었다고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이삭 자신이 그 축복을 되돌릴 수 없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서의 울음 — 잃어버린 권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창세기 27:34–38 본문 →

에서는 아버지의 말을 듣자 몹시 크고 쓰라린 외침을 터뜨렸다. 그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에게도 복을 빌어 주세요.」창세기 27:34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에서는 자신의 맏아들 권리를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그 권리를 업신여겼다고 평가했습니다(25:33–34). 그러나 지금 그가 잃었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버지의 축복입니다.

맏아들 권리와 아버지의 축복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한 사건이나 동일한 권리는 아닙니다.

에서가 말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까? 그가 이렇게 두 번이나 저를 속였습니다. 제 맏아들 권리를 가져가더니, 보세요, 이제는 제 복을 가져갔습니다.」 그가 또 말했다. 「저를 위해 남겨 두신 복은 없습니까?」창세기 27:36 · 본디새김

에서는 동생의 이름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시 해석하는 셈입니다. 처음에는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난 야곱이었습니다. 이제 에서에게는 자신을 두 번이나 속인 야곱입니다.

앞서 에서는 맏아들 권리를 맹세하고 팔았습니다. 그 거래가 형의 허기를 이용한 야곱의 요구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맹세하고 권리를 판 것도 에서 자신이었습니다. 반면 이번 축복 사건에서는 에서가 참석하지 않은 사이 야곱이 직접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따라서 에서의 「두 번이나 저를 속였습니다」라는 말은 그가 겪은 상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두 사건의 구체적인 책임을 완전히 똑같이 판단하도록 만드는 객관적인 요약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에서의 고통은 사실입니다.

이삭은 자신이 야곱에게 이미 형제들의 주인이 되는 축복과 곡식과 포도주의 풍요를 빌어 주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다시 외칩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께는 빌어 주실 복이 하나뿐입니까? 아버지, 저에게도 복을 빌어 주세요.」 에서는 소리 높여 울었다.창세기 27:38 · 본디새김

창세기는 에서가 하나님의 언약 계보를 이어 가는 중심 인물이 아니라고 해서 그의 고통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의 과거 선택은 분명히 평가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의 눈물도 이야기 안에서 충분한 무게를 지닙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면서도 그 사람이 겪는 고통까지 지워 버리지는 않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이 누군가의 깊은 울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에서에게 주어진 말 — 풍요에서 멀어진 삶과 벗어날 멍에

창세기 27:39–40 본문 →

이삭은 결국 에서에게도 그의 미래를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했다. 「보아라, 네 거처는 기름진 땅에서도, 위에 있는 하늘의 이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창세기 27:39 · 본디새김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에서는 하나님이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을 주시기를 빕니다(27:28). 에서에게 하는 말에서도 같은 이슬과 기름짐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본디새김처럼 에서의 거처가 기름진 땅과 하늘의 이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는 해석입니다. 이 경우 야곱의 풍요로운 축복과 에서의 어려운 삶이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다른 하나는 에서 역시 땅의 기름짐과 하늘의 이슬을 누리게 되리라는 해석입니다. 이 경우 에서에게도 일정한 풍요가 주어지지만, 야곱에게 주어진 지배권과는 구별되는 말씀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으로 읽어도 야곱과 에서에게 주어진 말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너는 네 칼에 의지하여 살며 네 동생을 섬길 것이다. 그러나 네가 몸부림칠 때에는 그의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릴 것이다.」창세기 27:40 · 본디새김

여기서 에서의 삶은 투쟁과 종속의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은 그 종속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태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서 리브가에게 주어졌던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역사 속에서 아무런 변화 없이 지속된다는 뜻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이삭의 말은 두 형제에게서 이어질 민족들 사이의 관계가 지배와 저항을 포함한 긴 역사가 될 것임을 내다보게 합니다. 형제 사이에서 시작된 갈등이 두 사람의 생애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장은 아직 먼 훗날의 민족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다시 이삭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축복을 빼앗긴 에서가 이제 동생을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전치사 민은 문맥에 따라 어떤 것으로부터 받는다는 의미로도, 어떤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본문의 전체 흐름은 첫 번째 해석을 지지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삭은 이미 풍요와 지배권을 야곱에게 주었다고 말했고(27:37), 이어서 에서에게 칼에 의지하여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형태만으로 두 번째 해석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 36장에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의 계보가 나오고, 훗날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에는 복잡한 관계가 이어집니다. 열왕기하 8:20–22에는 에돔이 유다의 지배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후대의 사건들은 멍에를 벗는다는 표현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창세기 27:40이 그중 특정한 사건 하나만을 직접 가리킨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축복을 받은 야곱이 도망쳐야 하는 이유

창세기 27:41–45 본문 →

에서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빌어 준 복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을 품었다. 에서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버지의 상을 치를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러면 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창세기 27:41 · 본디새김

앞서 에서는 울었습니다. 이제 그 슬픔은 원한으로 바뀝니다.

지금까지의 갈등은 축복을 누구에게 주느냐는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형제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상황이 됩니다.

리브가가 에서의 말을 전해 듣습니다.

이 장의 처음에도 리브가는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듣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도 에서가 한 말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들은 말을 이용해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계획했습니다. 이번에는 들은 말을 이용해 야곱의 생명을 구하려 합니다.

「그러니 이제, 내 아들아, 내 목소리를 들어라. 일어나 하란으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달아나라.」창세기 27:43 · 본디새김

처음 계획을 시작할 때와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명령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야곱이 형의 축복을 얻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형에게 살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축복을 얻기 위한 행동이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불러왔습니다.

「네 형의 격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며칠 동안 그와 함께 머물러라.」창세기 27:44 · 본디새김

그러나 이후의 이야기를 보면 야곱은 금방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는 라반의 집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31:38–41).

「네게 향한 형의 분노가 가라앉고 형이 네가 그에게 한 일을 잊을 때까지 말이다. 그러면 내가 사람을 보내 너를 거기서 데려오겠다. 어찌 내가 하루에 너희 둘을 다 잃어야 하겠느냐?」창세기 27:45 · 본디새김

중요한 것은 리브가가 이제 자신이 아끼는 야곱만이 아니라 두 아들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벌을 내리셨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행동이 가족 안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을 얻도록 도왔지만, 그 축복을 받은 아들과 함께 살 수 있는 평안까지 얻지는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앞당기기를 바랐는지, 단지 장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 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죽음 뒤 야곱을 살해하겠다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독자는 여기서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형제 사이의 갈등이 살인으로 이어질 위험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차이도 있습니다. 가인은 실제로 아벨을 죽이지만, 이 장에서 에서는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 데 머뭅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인다면 야곱은 목숨을 잃습니다. 에서 역시 살인으로 인한 심각한 결과를 겪게 될 것입니다. 리브가가 두 아들을 잃는다고 말한 데에는 이런 위험을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법적 처벌이나 사건을 가리키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에서의 결혼 문제

창세기 27:46 본문 →

이 장은 형제의 살인 위협으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 리브가는 이삭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했다. 「헷 여자들 때문에 사는 것이 지긋지긋해요. 야곱이 이 땅의 여자들 가운데서 이런 헷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다면, 내게 삶이 무슨 소용이겠어요?」창세기 27:46 · 본디새김

앞 장의 마지막에는 에서가 헷 사람의 딸 둘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에게 괴로움이 되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26:34–35). 그러나 독자는 방금 리브가가 야곱에게 하란으로 도망가라고 말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지막 절은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합니다. 하나는 야곱의 결혼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야곱이 하란으로 떠날 이유를 이삭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에게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한다는 말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대신 야곱이 헷 사람의 딸과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말합니다.

이것을 리브가가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혼인 문제를 이용하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창세기 28:1–5에서 이삭은 야곱에게 가나안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말고 밧단 아람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보면 리브가의 말은 야곱이 집을 떠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다만 리브가의 결혼에 관한 근심이 순전히 꾸며 낸 핑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그 문제가 실제로 부모에게 괴로움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실제 걱정을 말하면서도, 야곱을 떠나보내려는 목적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리브가는 야곱을 축복의 자리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집 밖으로 내보내는 방향으로 행동합니다.

축복을 받은 뒤에 남은 집

창세기 27:1–46 본문 →

축복의 말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축복을 둘러싼 가족의 관계는 무너졌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얻은 방식 때문에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장면이 끝날 때까지 야곱은 아직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떠나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히 생겼습니다. 이야기는 축복받은 야곱이 기뻐하는 모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큰아들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작은아들을 멀리 보내야 할 상황에 놓인 어머니의 말로 끝납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축복을 받게 한 아들을, 이제는 자신의 계획으로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이삭의 축복은 여전히 야곱에게 남아 있습니다. 에서의 울음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형의 분노가 가라앉으면 아들을 다시 데려오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축복을 얻기 위해 형의 옷을 입고 아버지 앞에 섰던 야곱은 이제 자신의 집을 떠날 길 앞에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