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28장
이 장의 자리 · 25–36장 · 이삭과 야곱
아무도 없는 길에서 만난 하나님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그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이어 주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게 되기를 빌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을 받은 야곱이 실제로 누리는 것은 넓은 땅도, 풍성한 재산도, 안정된 가정도 아닙니다.
그는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합니다. 해가 지자 길을 멈추고, 주변의 돌 하나를 가져다가 머리맡에 놓은 채 잠을 청합니다.
창세기 28장은 야곱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길을 떠난 야곱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이야기입니다.
그 만남에서 야곱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뒤 그는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그 변화의 중심에는 사다리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속아서 받은 축복과 알고서 빌어 준 축복
창세기 28장은 이삭이 야곱을 다시 축복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불러 그에게 복을 빌어 주고, 그에게 명령하며 말했다.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마라.」창세기 28: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이삭은 눈이 어두워 야곱을 에서로 착각한 채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삭은 자신이 누구에게 축복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형의 옷도, 털이 붙은 염소 가죽도, 거짓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직접 불러 축복합니다.
그 축복의 내용도 앞 장과 다릅니다.
앞서 이삭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 곡식과 포도주의 풍요, 형제들에 대한 지배권을 빌어 주었습니다(27:28–29). 이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엘 샤다이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자손을 낳고 번성하여 여러 민족의 무리가 되게 하시기를 빈다.」창세기 28:3 · 본디새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복을 네게, 또 너와 함께 네 후손에게도 주셔서, 네가 나그네로 머무는 땅,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을 차지하게 하시기를 빈다.」창세기 28:4 · 본디새김
이번 축복의 중심에는 후손과 땅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와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7:4–8).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흔아홉 살이었을 때 자신을 「엘 샤다이」라고 밝히시며 그를 번성하게 하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7:1–6). 이제 이삭은 같은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야곱이 여러 민족의 무리가 되기를 빕니다.
엘 샤다이라는 이름의 정확한 어원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름을 어떤 추상적인 속성으로 풀이하는 것보다, 그 이름으로 주어진 약속이 아브라함에게서 야곱에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축복의 마지막 부분에는 긴장이 남아 있습니다.
이삭은 야곱이 「나그네로 머무는 땅」을 차지하기를 빕니다. 나그네로 머문다는 것은 그 땅에 살면서도 아직 주인으로 소유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야곱은 그 땅을 차지하기는커녕 이제 그 땅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이어받는 순간, 야곱의 현실은 오히려 그 땅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약속을 받은 사람의 현재와 약속이 가리키는 미래 사이에 긴 거리가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밧단 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 가운데 아내를 맞아들이라고 명령합니다. 이 여정에는 두 가지 사정이 함께 있습니다. 앞 장에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했고, 리브가는 야곱이 하란으로 피하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이삭은 야곱이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향하는 곳은 어머니 리브가가 떠나왔던 친족의 땅입니다(24:10, 29, 67). 리브가는 그곳을 떠나 이삭의 아내가 되었고, 야곱은 이제 그곳으로 가서 자신의 아내를 찾으려 합니다.
그가 가족의 보호를 벗어나 홀로 길을 떠나면서 비로소 이 장의 중심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에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야곱이 떠나기 전에 성경은 잠시 에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뒤 밧단 아람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아버지가 야곱에게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말라고 명령한 것도 알게 됩니다.
에서는 가나안 여자들이 자기 아버지 이삭의 눈에 못마땅하다는 것을 알았다.창세기 28:8 · 본디새김
그리고 행동합니다.
에서는 이스마엘에게 가서, 이미 있는 아내들에 더해 마할랏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마할랏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였다.창세기 28:9 · 본디새김
이 행동은 아버지의 마음에 들려고 했던 시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가 가나안 여자들과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가나안 여자가 아닌 아브라함 가문의 여자를 추가로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에서는 이미 맞아들인 아내들과의 관계를 바꾸지 않습니다. 새로운 아내를 더합니다. 그가 왜 그런 방식을 선택했는지, 이삭이 그 결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진심으로 회개했다거나 반대로 계산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려 했습니다.
에서는 새로운 아내를 맞아들이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축복을 되돌리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는 다시 야곱에게 돌아갑니다.
형은 아버지의 마음에 들려고 아내를 더 맞아들이고, 동생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내를 구하러 갑니다.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 맞이한 밤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납니다. 익숙한 천막과 가족, 자신이 살아온 땅을 뒤로하고 먼 친족의 집을 향해 갑니다.
그가 향하는 하란은 아브라함의 가족 역사와 연결되는 곳입니다(11:31–32). 그러나 야곱 자신에게는 아직 새로운 삶이 기다리는 낯선 목적지입니다.
야곱은 한곳에 이르렀다. 해가 졌으므로 그는 그곳에서 밤을 보냈다. 그는 그곳의 돌들 가운데 하나를 가져다가 머리맡에 놓고 그곳에 누웠다.창세기 28:11 · 본디새김
그는 그곳을 특별한 예배 장소로 알고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그 장소를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독자는 아직 그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꾼은 계속해서 그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는 집 안에서 잠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둠이 내리자 길을 멈추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해 잠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런데 이 돌은 잠을 자는 동안 머리맡에 놓여 있다가, 다음 날 아침에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기둥이 됩니다.
처음에는 그저 주변에 있던 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야곱은 아직 그 돌에 어떤 의미가 생길지 알지 못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야곱이 그 장소에 이르렀고, 그 장소의 돌을 가져왔으며, 그 장소에 누웠다는 식입니다. 이 반복은 뒤에서 야곱이 「이곳」에 여호와야훼께서 계신다고 깨닫고 「이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돌을 베고 잤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어는 그 돌을 머리 쪽에 놓았다고 말할 뿐,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이어진 사다리
그가 꿈을 꾸었는데, 보니 사다리가 땅에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또 보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기 28:12 · 본디새김
야곱은 가족과 헤어져 길을 떠났고, 낯선 장소에서 잠들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자신이 머무는 땅과 멀리 있는 하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꿈에서는 그 둘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야곱이 알지 못하던 현실을 보여 줍니다. 그가 누워 있는 곳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는 버려진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사다리의 꼭대기에 도달하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는 잠들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이미 길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길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1장의 바벨 이야기와 비교해 볼 만합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세워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11:4). 반면 여기서 하늘에 닿는 구조물은 야곱이 건설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그것을 꿈속에서 볼 뿐입니다.
이 장면에서 먼저 행동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꿈의 중심은 사다리 자체가 아닙니다. 사다리 다음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다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술람(סֻלָּם)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낱말은 이 구절에만 등장합니다. 정확히 어떤 구조물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좁은 사다리였을 수도 있고, 층계나 경사로처럼 오르내리는 구조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는 신전과 높은 구조물에 계단을 설치하는 건축 방식이 있었지만, 그 사실만으로 야곱이 본 구조물의 모양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순서가 아니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순서로 묘사합니다. 이 순서가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미 땅에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의 출발점이나 구체적인 임무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순서만으로 사자들이 무엇을 하러 왔고 어떤 보고를 올렸는지까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1:51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로 오르내리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창세기 28장의 사자들이 오르내리는 장면을 직접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이미지를 예수와 연결하지만, 창세기 자체에서는 먼저 하나님이 길을 떠난 야곱에게 가까이 오셔서 자신의 약속을 주시는 사건으로 읽어야 합니다.
「네가 누워 있는 땅」 — 약속이 야곱에게 직접 주어지다
또 보니 여호와야훼가 야곱의 곁에 서서 말했다. 「나는 여호와야훼,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창세기 28:13 · 본디새김
야곱은 부모를 통해 이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전에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창세기 28장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첫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신을 소개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누워 있는 땅과 장차 차지할 땅
그가 그곳에서 실제로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잠시 몸을 누일 자리뿐입니다. 그는 그 땅의 소유자가 아니고, 자신의 집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네가 누워 있는 땅」은 단순히 야곱의 몸이 닿은 좁은 면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14절에서 그의 후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질 것이며, 너는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씨족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기 28:14 · 본디새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의 후손이 땅의 먼지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16). 이삭에게는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4). 이제 야곱에게 다시 먼지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먼지는 하찮음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를 나타내는 이미지입니다.
현재의 야곱은 한 방향으로 길을 떠나지만, 그의 후손에게 약속된 미래는 사방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야곱과 그 후손의 번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땅의 모든 씨족이 복을 받는다는 전망으로 넓어집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12:3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거기서도 땅의 모든 씨족이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후손과 관계된 하나님의 목적은 다른 민족들의 복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야곱 자신은 아직 이 약속의 넓이를 다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당장 가족을 떠나 먼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큰 미래에 관한 말씀에서 야곱의 눈앞에 놓인 현실로 시선을 옮기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보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너를 지키고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이는 내가 네게 말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창세기 28:15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앞의 땅과 후손에 관한 약속과 다르게 들립니다. 그 약속들은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그러나 15절은 지금 길을 떠나는 야곱에게 주어집니다.
야곱은 지금 아브라함과 이삭이 머물던 땅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그 땅에만 계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야곱이 어디로 가든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가 앞으로 도착할 밧단 아람에서도,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먼 길에서도 하나님이 그를 지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은 야곱의 현재 상황과 직접 연결됩니다.
야곱은 떠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가 돌아올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여정이 아무런 방향도 없는 방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내가 네게 말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약속이 이루어진 뒤에는 하나님이 야곱을 떠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확언입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지시를 거의 내리지 않으십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라거나, 누구를 어떻게 상대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자신이 무엇을 하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함께하시겠습니다. 지키시겠습니다. 돌아오게 하시겠습니다. 떠나지 않으시겠습니다.
야곱의 미래를 붙드는 것은 그가 세운 계획보다 하나님이 먼저 하신 약속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와야훼가 서 계신 위치는 해석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히브리어 니차브 알라브는 사다리 위에 서 계신다는 뜻으로도, 야곱 곁이나 그의 위에 서 계신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앞에 사다리가 등장하므로 그 위에 서 계신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야곱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과 연결하여 그의 곁에 서 계신 모습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후자를 따릅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이 자신을 밝히시고 야곱에게 직접 약속하신다는 점은 같습니다. 14절의 히브리어 동사 베니브레쿠(בָּרַךְ)는 복을 받는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복을 빈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여기서는 본디새김처럼 복을 받는다는 의미를 따릅니다.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 — 평범한 장소가 벧엘이 되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말했다. 「참으로 여호와야훼께서 이곳에 계시는구나. 그런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창세기 28:16 · 본디새김
본문은 하나님이 야곱의 꿈을 통해 비로소 그곳에 오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 말씀하셨고, 그 만남 때문에 야곱은 장소를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두려움은 무엇 때문인가?
그는 두려워하며 말했다. 「이곳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고, 여기는 하늘의 문이구나.」창세기 28:17 · 본디새김
여기서 「두려운」이라는 말은 단순히 위험하고 무섭다는 뜻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집」과 「하늘의 문」이라는 표현도 이 경험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하늘의 문이라는 말은 꿈에서 본 하늘과 땅 사이의 연결을 표현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오직 벧엘에만 계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야곱이 가는 모든 곳에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그 만남을 기억하기 위한 행동을 합니다.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맡에 놓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창세기 28:18 · 본디새김
이것은 그 돌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고,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돌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표지입니다.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해서 11절에서 그저 「한곳」이라고 불렸던 장소는 19절에서 벧엘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장소가 특별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에 야곱에게 그 장소가 특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야곱의 첫 응답 — 조건부 서원인가, 신뢰의 고백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야곱의 깨달음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야곱의 서원이 등장합니다.
야곱은 이렇게 서원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고 있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며, 제게 먹을 빵과 입을 옷을 주시고,」창세기 28:20 · 본디새김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여호와야훼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창세기 28:21 · 본디새김
이삭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요, 여러 민족의 섬김과 형제들 위에 서는 지위를 빌어 주었습니다(27:28–29). 그런데 지금 집을 떠난 야곱이 구하는 것은 먹을 빵과 입을 옷입니다. 그가 장차 많은 후손을 얻고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현재 그에게 절실한 것은 길 위에서 살아남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땅과 후손의 미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현재를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거래하려 하는가?
그러나 서원의 첫머리가 「만일」이라는 말로 시작한다는 점은 질문을 낳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함께하시고 지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야곱은 왜 다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지켜 주신다면이라고 말합니까?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며 거래 조건을 내거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분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신앙의 고백일까요?
야곱의 서원에는 하나님이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지켜 주신다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된다면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야곱은 그 약속을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필요에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미래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 약속을 실제 삶 속에서 알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는 약속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게 주시는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당신께 드리겠습니다.」창세기 28:22 · 본디새김
야곱이 이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로 삼겠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앞서 그는 그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그 이름을 자신의 미래와 연결합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십분의 일을 드리다」(עָשַׂר)라는 표현을 같은 어근으로 반복하여 반드시 드리겠다는 의지를 강조합니다. 여기서 십분의 일은 아직 모세 율법에 규정된 이스라엘의 십일조 제도와 같은 맥락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4:20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준 사례가 있지만, 야곱의 서원 역시 그 자신의 경험과 약속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됩니다.
그가 장차 어떤 방식으로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인지는 이 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재산을 얻게 된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하고 그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장차 야곱에게 땅과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장차 자신이 받을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두 말은 대등한 교환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 주어졌고, 야곱의 서원은 그 뒤에 나옵니다.
벧엘에서 시작된 관계는 어디로 이어지는가
그가 나중에 라반의 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내게 서원했다.」 (창세기 31:13의 내용)
그리고 창세기 35:1에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 그곳에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야곱은 그때 가족에게 하나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신이 고난을 겪던 날에 응답하시고, 가는 길에서 함께하셨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35:3).
벧엘의 경험은 그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조금 더 깊이
첫째, 야곱이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들었지만, 그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 서원을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일을 전제로 드리는 응답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의 서원은 특정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형식 자체가 반드시 불신앙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문법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서원의 조건절은 20절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놓고 해석이 갈립니다. 본디새김은 야곱이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까지를 조건으로 읽습니다. 그다음의 「여호와야훼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는 조건이 이루어졌을 때의 결과에 해당합니다. 반면 「여호와야훼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까지를 조건에 포함하고, 22절의 돌기둥과 십분의 일에 관한 약속을 서원의 결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연결 방식만으로 어느 해석이 유일하게 옳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 서원을 근거로 야곱이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단정하거나, 반대로 완전한 신앙을 보여 주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돌 하나가 하나님의 집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야곱보다 먼저 그곳에 계셨고, 야곱이 자신의 미래를 알기 전에 그에게 미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장소를 기억하고, 그곳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받을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야곱의 잘못을 정당화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나타나시기 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오라고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야곱의 도덕적 완전함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약속이 야곱의 이후 삶을 아무런 변화도 필요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야곱은 전날 밤 머리맡에 놓았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처음 그곳에 왔을 때는 이름을 알 필요도 없었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떠날 때는 그 이름을 기억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채 길을 떠난 야곱에게, 그날 밤 하나님은 땅을 약속하시고 돌아올 길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아직 손에 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앞으로 걸어갈 길이 있었고, 그 길 위에서 들은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기억하게 할 돌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