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28장
이 장의 자리 · 25–36장 · 이삭과 야곱
아무도 없는 길에서 만난 하나님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그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이어 주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게 되기를 빌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을 받은 야곱이 실제로 누리는 것은 넓은 땅도, 풍성한 재산도, 안정된 가정도 아닙니다.
그는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합니다. 해가 지자 길을 멈추고, 주변의 돌 하나를 가져다가 머리맡에 놓은 채 잠을 청합니다.
창세기 28장은 야곱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길을 떠난 야곱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이야기입니다.
그 만남에서 야곱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뒤 그는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속아서 받은 축복과 알고서 빌어 준 축복
창세기 28장은 이삭이 야곱에게 다시 복을 빌어 주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불러 복을 빌어 주고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마라.」창세기 28: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이삭은 눈이 어두워 야곱을 에서로 착각한 채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삭은 자신이 누구에게 복을 빌어 주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형의 옷도, 털이 붙은 염소 가죽도, 거짓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직접 불러 복을 빌어 줍니다.
그가 빌어 주는 복의 내용도 앞 장과 다릅니다.
앞서 이삭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 곡식과 포도주의 풍요, 형제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빌어 주었습니다(27:28–29). 이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엘 샤다이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자손을 많이 낳아 늘어나게 하셔서, 네게서 여러 민족의 무리가 나오게 하시기를 빈다.」창세기 28:3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너와 네 후손에게도 주셔서, 네가 나그네로 머무는 땅을 차지하게 하시기를 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이다.」창세기 28:4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와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7:4–8).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흔아홉 살이었을 때 자신을 「엘 샤다이」라고 밝히시며 그를 번성하게 하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7:1–6). 이제 이삭은 같은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야곱에게서 여러 민족의 무리가 나오기를 빕니다.
그런데 복을 빌어 주는 마지막 부분에는 긴장이 남아 있습니다.
이삭은 야곱이 「나그네로 머무는 땅」을 차지하기를 빕니다. 나그네로 머문다는 것은 그 땅에 살면서도 아직 주인으로 소유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야곱은 그 땅을 차지하기는커녕 이제 그 땅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이어받는 순간, 야곱의 현실은 오히려 그 땅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밧단 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 가운데 아내를 맞아들이라고 명령합니다. 이 여정에는 두 가지 사정이 함께 있습니다. 앞 장에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했고, 리브가는 야곱이 하란으로 피하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이삭은 야곱이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향하는 곳은 어머니 리브가가 떠나왔던 친족의 땅입니다(24:10, 29, 67). 리브가는 그곳을 떠나 이삭의 아내가 되었고, 야곱은 이제 그곳으로 가서 자신의 아내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족의 보호를 벗어나 홀로 길을 떠나면서 비로소 이 장의 중심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에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야곱이 떠나기 전에 성경은 잠시 에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빌어 준 뒤 밧단 아람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아버지가 야곱에게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말라고 명령한 것도 알게 됩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여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창세기 28:8 · 두루새김
그리고 행동합니다.
에서는 이스마엘의 집안으로 가서 마할랏을 또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에서에게는 이미 다른 아내들이 있었습니다. 마할랏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였습니다.창세기 28:9 · 두루새김
따라서 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인 셈입니다. 이 행동은 아버지의 마음에 들려고 했던 시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에서는 이미 맞아들인 아내들과의 관계를 바꾸지 않습니다. 새로운 아내를 더합니다. 그가 왜 그런 방식을 선택했는지, 이삭이 그 결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진심으로 회개했다거나 반대로 계산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이 행동의 결과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에서는 새로운 아내를 맞아들이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복을 되돌리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는 다시 야곱에게 돌아갑니다.
형은 아버지의 마음에 들려고 아내를 더 맞아들이고, 동생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내를 구하러 갑니다.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 맞이한 밤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납니다. 익숙한 천막과 가족, 자신이 살아온 땅을 뒤로하고 먼 친족의 집을 향해 갑니다.
그가 향하는 하란은 아브라함의 가족 역사와 연결되는 곳입니다(11:31–32). 그러나 야곱 자신에게는 아직 새로운 삶이 기다리는 낯선 목적지입니다.
본문은 그가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걸었는지, 누구와 동행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가지 상황만 알려 줍니다.
야곱은 어떤 곳에 이르렀는데, 해가 져서 그곳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가 머리맡에 놓고 누웠습니다.창세기 28:11 · 두루새김
그는 그곳을 특별한 예배 장소로 알고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그 장소를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독자는 아직 그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꾼은 계속해서 그 장소를 가리킵니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장소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돌을 베고 잤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어는 그 돌을 머리 쪽에 놓았다고 말할 뿐,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 하나만이 특별히 언급되는 잠자리는 야곱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그는 집 안에서 잠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야곱은 아직 그 돌에 어떤 의미가 생길지 알지 못합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이어진 사다리
야곱이 꿈을 꾸었습니다. 땅에 세워진 사다리가 하늘까지 닿아 있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창세기 28:12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야곱이 알지 못하던 현실을 보여 줍니다. 그가 누워 있는 곳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는 버려진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사다리의 꼭대기에 도달하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는 잠들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이미 길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길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먼저 행동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꿈의 중심은 사다리 자체가 아닙니다.
사다리 다음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조금 더 깊이
좁은 사다리였을 수도 있고, 층계나 경사로처럼 오르내리는 구조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는 신전과 높은 구조물에 계단을 설치하는 건축 방식이 있었지만, 그 사실만으로 야곱이 본 구조물의 모양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순서가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미 땅에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의 출발점이나 구체적인 임무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벨에서는 사람들이 하늘에 닿으려고 무엇인가를 세웁니다. 벧엘에서는 아무것도 세우지 않은 야곱에게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두 본문이 서로를 직접 해석하도록 쓰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조는 의미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1:51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로 오르내리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창세기 28장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장면을 직접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이미지를 예수님과 연결하지만, 창세기 자체에서는 먼저 하나님이 길을 떠난 야곱에게 가까이 오셔서 자신의 약속을 주시는 사건으로 읽어야 합니다.
「네가 누워 있는 이 땅」 — 약속이 야곱에게 직접 주어지다
여호와야훼께서 야곱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야훼,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창세기 28:13 · 두루새김
야곱은 부모를 통해 이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전에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창세기 28장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첫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신을 소개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누워 있는 땅과 장차 차지할 땅
그가 그곳에서 실제로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잠시 몸을 누일 자리뿐입니다. 그는 그 땅의 소유자가 아니고, 자신의 집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은 단순히 야곱의 몸이 닿은 좁은 면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14절에서 그의 후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질 것이다. 너는 서쪽과 동쪽, 북쪽과 남쪽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씨족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기 28:14 · 두루새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의 후손이 땅의 먼지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16). 이삭에게는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4). 이제 야곱에게 다시 먼지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먼지는 하찮음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를 나타내는 이미지입니다.
현재의 야곱은 한 방향으로 길을 떠나지만, 그의 후손에게 약속된 미래는 사방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야곱과 그 후손의 번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땅의 모든 씨족이 복을 받는다는 전망으로 넓어집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12:3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거기서도 땅의 모든 씨족이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후손과 관계된 하나님의 목적은 다른 민족들의 복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야곱 자신은 아직 이 약속의 넓이를 다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당장 가족을 떠나 먼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큰 미래에 관한 말씀에서 야곱의 눈앞에 놓인 현실로 시선을 옮기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네게 말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니, 네가 어디로 가든 너를 지키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창세기 28:15 · 두루새김
야곱은 지금 아브라함과 이삭이 머물던 땅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그 땅에만 계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앞으로 도착할 밧단 아람에서도,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먼 길에서도 하나님이 그를 지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떠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가 돌아올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여정이 아무런 방향도 없는 방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네게 말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니」라는 말은 약속이 이루어진 뒤에는 하나님이 야곱을 떠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확언입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지시를 거의 내리지 않으십니다.
대신 자신이 무엇을 하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함께하시겠습니다. 지키시겠습니다. 돌아오게 하시겠습니다. 떠나지 않으시겠습니다.
야곱의 미래를 붙드는 것은 그가 세운 계획보다 하나님이 먼저 하신 약속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이 서 계신 위치는 해석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히브리어 니차브 알라브는 사다리 위에 서 계신다는 뜻으로도, 야곱 곁이나 그의 위에 서 계신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앞에 사다리가 등장하므로 그 위에 서 계신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야곱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과 연결하여 그의 곁에 서 계신 모습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이 자신을 밝히시고 야곱에게 직접 약속하신다는 점은 같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베니브레쿠는 복을 받는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복을 빈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 — 평범한 장소가 벧엘이 되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 처음 한 말은 무엇일까요?
야곱은 잠에서 깨어 말했습니다. 「참으로 여호와야훼께서 이곳에 계시는구나. 그런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창세기 28:16 · 두루새김
본문은 하나님이 야곱의 꿈을 통해 비로소 그곳에 오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깨닫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오직 벧엘에만 계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야곱이 가는 모든 곳에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런 의미도 느끼지 못했던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무엇 때문인가?
야곱은 두려워하며 말했습니다. 「이곳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는 바로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이구나!」창세기 28:17 · 두루새김
여기서 「두려운」이라는 말은 단순히 위험하고 무섭다는 뜻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존경을 포함합니다.
그는 평범한 밤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익숙한 세계가 갑자기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하늘의 문이라는 말은 꿈에서 본 하늘과 땅 사이의 연결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던 길을 통해, 야곱이 누워 있던 땅과 하늘 사이가 끊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야곱은 그 만남을 기억하기 위한 행동을 합니다.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맡에 놓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창세기 28:18 · 두루새김
고대에는 중요한 사건이나 종교적 경험을 기억하고 표시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우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야곱은 돌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이것은 그 돌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고,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돌을 하나님 자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볼 근거는 없습니다. 돌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표지입니다.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짓습니다. 이렇게 해서 11절에서 그저 「어떤 곳」이라고 불렸던 장소는 19절에서 벧엘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장소가 특별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에 야곱에게 그 장소가 특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야곱의 첫 응답 — 조건부 서원인가, 신뢰의 고백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야곱의 깨달음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야곱이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이 등장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며, 먹을 빵과 입을 옷을 주시고,」창세기 28:20 · 두루새김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여호와야훼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창세기 28:21 · 두루새김
이삭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요, 여러 민족의 섬김과 형제들 위에 서는 지위를 빌어 주었습니다(27:28–29). 그가 장차 많은 후손을 얻고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현재 그에게 절실한 것은 길 위에서 살아남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땅과 후손의 미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현재를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거래하려 하는가?
첫째, 야곱이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둘째, 이 서원을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일을 전제로 드리는 응답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야곱의 서원에는 하나님이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지켜 주신다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면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야곱은 그 약속을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필요에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미래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 약속을 실제 삶 속에서 알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는 약속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시는 모든 것의 10분의 1을 반드시 주님께 드리겠습니다.」창세기 28:22 · 두루새김
야곱이 이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로 삼겠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앞서 그는 그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그 이름을 자신의 미래와 연결합니다.
원문에서는 10분의 1을 드린다는 표현을 같은 어근으로 반복하여 반드시 드리겠다는 의지를 강조합니다. 여기서 10분의 1은 아직 모세 율법에 규정된 이스라엘의 십일조 제도와 같은 맥락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4:20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10분의 1을 준 사례가 있지만, 야곱의 서원 역시 그 자신의 경험과 약속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됩니다.
그가 장차 어떤 방식으로 10분의 1을 드릴 것인지는 이 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재산을 얻게 된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하고 그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두 말은 대등한 교환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 주어졌고, 야곱의 서원은 그 뒤에 나옵니다.
벧엘에서 시작된 관계는 어디로 이어지는가
그가 나중에 라반의 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내게 서원했다.」 (창세기 31:13의 내용)
그리고 창세기 35:1에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 그곳에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야곱은 그때 가족에게 하나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신이 고난을 겪던 날에 응답하시고, 가는 길에서 함께하셨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35:3).
지금 그는 막 길을 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분의 약속이 자기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질지 이제 배워 가야 합니다.
벧엘의 경험은 그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야곱이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읽기에서,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들었지만, 그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고대의 서원은 특정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형식 자체가 반드시 불신앙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히브리어 서원에서 조건을 말하는 부분은 20절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놓고 해석이 갈립니다. 두루새김은 야곱이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까지를 조건으로 읽습니다. 그다음의 「여호와야훼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는 조건이 이루어졌을 때의 결과에 해당합니다. 반면 「여호와야훼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까지를 조건에 포함하고, 22절의 돌기둥과 10분의 1에 관한 약속을 서원의 결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연결 방식만으로 어느 해석이 유일하게 옳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 서원을 근거로 야곱이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단정하거나, 반대로 완전한 신앙을 보여 주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돌 하나가 하나님의 집이 되기까지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 말씀하셨고, 그 만남 때문에 야곱은 장소를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장소를 기억하고, 그곳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받을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야곱의 잘못을 정당화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나타나시기 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오라고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야곱의 도덕적 완전함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약속이 야곱의 이후 삶을 아무런 변화도 필요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은 여전히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떠나는 길은 단순히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길이기도 합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야곱은 전날 밤 머리맡에 놓았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처음 그곳에 왔을 때는 이름을 알 필요도 없었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떠날 때는 그 이름을 기억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아직 손에 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앞으로 걸어갈 길이 있었고, 그 길 위에서 들은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기억하게 할 돌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