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30장

이 장의 자리 · 25–36장 · 이삭과 야곱

얻으려는 사람들, 기억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30장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으려고 애쓰는 이야기입니다.

라헬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있지만 자녀가 없습니다. 레아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지만 남편의 사랑이 부족합니다. 두 자매는 상대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여종들을 남편에게 주고, 들에서 발견한 식물을 교환하고, 심지어 남편과 함께 보낼 하룻밤까지 거래합니다.

그 뒤에는 야곱과 라반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자녀가 아니라 재산이 문제입니다. 야곱은 오랫동안 라반을 위해 일했지만 자기 집안을 위한 재산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품삯을 확보하기 위해 가축의 털 색깔을 기준으로 계약을 맺고, 새끼의 무늬를 바꾸려는 방법까지 시도합니다.

이렇게 보면 장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뜻밖에 닮아 있습니다.

앞에서는 가족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고 거래합니다. 뒤에서는 재산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서로 계산하고 거래합니다.

그런데 이야기에는 인간의 계산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분이 계십니다.

이 장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가 하는 문제와, 실제로 생명과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1030장 본문 읽기 →

사랑받는 여자의 절망 — 「제게 아들들을 주세요」

창세기 30:1–2 본문 →

라헬은 자기가 야곱에게 아이를 낳아 주지 못한 것을 보았다. 라헬은 언니를 질투하며 야곱에게 말했다. 「제게 아들들을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겠어요.」창세기 30: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여호와야훼는 레아가 미움받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이제 30장은 라헬이 자신의 처지를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라헬은 자녀를 얻기를 바랍니다. 라헬은 야곱에게 사랑받는 아내입니다. 그러나 언니가 네 아들을 낳는 동안 자신은 한 아이도 낳지 못했습니다.

라헬이 느끼는 고통은 단순히 언니보다 뒤처졌다는 경쟁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당시 가족과 가계의 지속에서 출산은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특히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성에게는 심각한 사회적·개인적 고통이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그 절망을 호소한 상대는 하나님이 아니라 야곱입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에게 태의 열매를 주지 않으신 하나님 자리에 내가 있소?」창세기 30:2 · 본디새김

야곱은 자녀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아내의 고통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삭은 리브가에게 자녀가 없었을 때 아내를 위해 여호와야훼께 간청했습니다(25:21). 그러나 이 장에서 야곱이 라헬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는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아내의 고통을 돌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겠어요」라는 말이 당장 생명을 끊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뜻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자녀가 없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극심한 절망을 표현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빌하의 아들들 — 자녀를 얻었지만 경쟁은 끝나지 않다

창세기 30:3–8 본문 →

라헬은 자신의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아내로 줍니다.

라헬이 말했다. 「보세요, 제 여종 빌하가 있어요. 그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해 주세요. 그 여자가 제 무릎 위에 아이를 낳기를 바라요. 그러면 저도 그 여자를 통해 집안을 이루게 될 거예요.」창세기 30:3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창세기 16장에서 사라가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자녀를 낳지 못하는 아내가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주고, 그 여종의 출산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이루려 합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방법에서는 빌하의 의사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본문은 라헬이 빌하를 야곱에게 아내로 주었다고 말합니다. 빌하가 그 일을 원했는지, 거절할 수 있었는지, 자신의 아이를 라헬이 어떻게 대하는 것을 받아들였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빌하에게 아내라는 지위가 부여되지만, 그는 여전히 「라헬의 여종」으로 불립니다(30:7).

자녀를 원한 사람은 라헬입니다. 그러나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임신하고 출산하는 사람은 빌하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이름을 붙이고 그 의미를 설명하는 사람은 라헬입니다.

단 — 하나님이 나를 위해 판결하셨다

라헬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판결해 주셨고, 내 목소리도 들으셔서 내게 아들을 주셨구나.」 그래서 그녀는 그의 이름을 단이라 했다.창세기 30:6 · 본디새김

라헬은 빌하가 낳은 아이를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본문은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빌하를 통한 이 방법을 승인하셨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6절은 라헬이 아이의 탄생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들려줍니다.

그렇다고 그의 고백을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이 출산과 생명에 관여하신다는 사실은 계속 강조됩니다.

다만 인물의 고백과 이야기꾼이 직접 설명하는 하나님의 행동은 구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납달리 — 출산이 승부가 되다

빌하는 둘째 아들도 낳습니다.

라헬이 말했다. 「나는 언니와 큰 싸움을 벌였고, 이기기까지 했구나.」 그녀는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했다.창세기 30:8 · 본디새김

아들의 탄생은 한 생명이 가족에 들어온 기쁜 사건이지만, 라헬의 말에서는 언니와의 승부를 판정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몸으로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빌하가 두 아들을 낳았고, 라헬은 그 아들들을 자기 가족의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경쟁은 라헬이 승리를 선언했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언니 레아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제 무릎 위에 아이를 낳기를 바라요」라는 표현은 빌하가 낳은 아이를 라헬 자신의 가족 안에서 받아들이고, 자신도 그 아이를 통해 집안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 무릎 위에서 출산하는 의식이나 특정한 입양 절차를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구절은 구체적인 절차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큰 싸움」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나프툴레 엘로힘(⁨נַפְתּוּל⁩)입니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씨름들」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이는 매우 격렬한 싸움을 나타내는 강조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과 관계된 씨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서 라헬이 언니와의 경쟁을 직접 언급하므로, 적어도 그 경쟁이 중심에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갓과 아셀 — 레아도 경쟁의 방식을 따라가다

창세기 30:9–13 본문 →

레아는 자신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보고 여종 질파를 야곱에게 아내로 줍니다.

처음에는 라헬이 레아의 출산을 질투했습니다. 이제 레아는 자신이 출산을 멈추자 라헬이 사용한 방법을 따릅니다.

두 자매는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의 행동까지 닮아 갑니다.

레아에게는 이미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라헬은 자기 몸으로 낳은 아들이 없었고, 빌하를 통해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가족 안에서 자녀의 수가 서로의 지위와 인정에 연결되면서, 이미 여러 아들을 낳은 레아도 더 많은 자녀를 얻으려는 경쟁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질파는 두 아들을 낳습니다.

레아가 말했다. 「행운이 왔구나.」 그녀는 그의 이름을 갓이라 했다.창세기 30:11 · 본디새김
레아가 말했다. 「나는 행복하구나. 여자들이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니.」 그녀는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했다.창세기 30:13 · 본디새김

앞 장에서 그는 아들을 낳으며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고 곁에 머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갓과 아셀의 이름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행운과 행복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사회적 인정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곧이어 나오는 맨드레이크 이야기에서 레아는 여전히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감사와 경쟁심, 기쁨과 결핍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합니다.

그리고 빌하와 질파는 그 복잡한 경쟁 속에서 자녀를 낳는 당사자이지만, 자신들의 아이에게 이름을 붙이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빌하와 질파에게 고통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본문이 말하지 않으므로 그들의 내면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다른 사람의 경쟁 속에서 사용되는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네 아들이 태어나는 동안 두 자매의 경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야곱과 함께 보낼 하룻밤이 거래의 대상이 됩니다.

맨드레이크와 하룻밤 — 무엇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가

창세기 30:14–21 본문 →

밀을 거둘 무렵,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맨드레이크를 발견해 어머니에게 가져옵니다.

라헬은 레아에게 그 식물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레아가 뜻밖의 말을 합니다.

레아가 라헬에게 말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으로는 부족해서, 내 아들의 맨드레이크까지 빼앗으려 하니?」 라헬이 말했다. 「그럼 언니 아들의 맨드레이크 대신, 오늘 밤에는 그이가 언니와 자도 좋아요.」창세기 30:15 · 본디새김

라헬의 관점에서 보면 야곱은 자신이 사랑받는 남편입니다. 야곱이 처음부터 사랑했고 일곱 해 동안 기다렸던 사람도 라헬이었습니다.

그러나 레아의 관점은 다릅니다.

라반은 레아를 먼저 야곱에게 주었고, 이후 라헬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라헬이 언니의 남편을 독단적으로 빼앗았다고 본문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레아의 말은 그가 경험하는 소외감과 억울함을 보여 줍니다.

저녁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자 레아가 그를 맞으러 나가 말했다. 「당신은 제게 오셔야 해요. 제가 제 아들의 맨드레이크를 주고 당신을 분명히 빌렸으니까요.」 야곱은 그날 밤 레아와 잤다.창세기 30:16 · 본디새김

남편의 사랑을 얻기를 원했던 레아가 이제는 남편과 함께 보내는 하룻밤을 대가를 주고 확보해야 하는 처지로 등장합니다. 여기서도 두 여자의 경쟁이 가족의 친밀한 관계를 거래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레아에게 귀를 기울였다. 레아는 임신하여 야곱에게 다섯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창세기 30:17 · 본디새김

라헬은 맨드레이크를 얻었습니다.

레아는 야곱과 함께 보낼 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레아가 임신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맨드레이크의 효과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라헬은 그 식물을 얻었지만, 그 뒤에도 당장 자녀를 낳지 못합니다. 반면 식물을 넘겨준 레아가 다시 임신합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얻기 위한 수단을 거래했지만, 본문은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다시 보여 줍니다.

잇사갈 — 품삯이라는 말의 되풀이

레아는 다섯째 아들을 낳고 이렇게 말합니다.

레아가 말했다. 「내 여종을 남편에게 주었기에, 하나님께서 내게 품삯을 주셨구나.」 그녀는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했다.창세기 30:18 · 본디새김

16절에서 레아는 맨드레이크를 대가로 야곱과 함께 보낼 밤을 「빌렸다」고 말했습니다. 18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품삯」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두 표현이 같은 어근으로 연결됩니다.

레아는 여종을 남편에게 준 일 때문에 하나님이 보상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야기꾼은 하나님이 레아에게 귀를 기울이셨다고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여종을 남편에게 준 행위를 선한 일로 인정하시고 그 대가로 아들을 주셨다고 직접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스불론 — 여전히 남편의 존중을 기다리다

레아는 여섯째 아들을 낳고 말합니다.

레아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좋은 선물을 주셨구나. 이번에는 남편이 나를 존중하겠지. 내가 그에게 아들을 여섯 낳아 주었으니.」 그녀는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했다.창세기 30:20 · 본디새김

앞 장에서 넷째 아들 유다를 낳았을 때 레아는 여호와야훼를 찬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에서 남편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레아의 삶은 단순한 영적 성장의 직선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받은 것을 기뻐하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느낍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있다는 것과 인간관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고통이 있다는 것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아는 이어서 딸 디나를 낳습니다(30:21). 디나의 탄생에는 아들들의 경우처럼 이름의 뜻을 설명하는 고백이 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특별히 기록된 것은 이후 창세기 34장의 이야기에서 디나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전히 자녀를 낳지 못한 라헬에게 돌아갑니다.

그는 경쟁에서 이겼다고 선언하기도 했고, 맨드레이크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절실히 원했던 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에 이 식물이 사랑이나 출산과 관련된 효능을 지닌다고 여겨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0장은 그런 효능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라헬이 왜 그 식물을 원했는지도 명시하지 않습니다. 문맥상 자녀를 얻으려는 바람과 연결된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본문이 맨드레이크를 실제로 불임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레아가 사용한 동사는 존중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고, 함께 머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레아의 관심이 다시 남편에게 향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라헬을 기억했다」 — 뒤늦게 찾아온 요셉의 탄생

창세기 30:22–24 본문 →

여러 아들의 탄생이 기록된 뒤, 성경은 짧지만 결정적인 문장으로 라헬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라헬을 기억했다. 하나님은 라헬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녀의 자궁을 열었다.창세기 30:22 · 본디새김

앞서 하나님은 레아에게 귀를 기울이셨습니다(30:17). 이제는 라헬에게 귀를 기울이십니다(30:22). 하나님은 한쪽 여자의 말을 들으시기 위해 다른 여자의 말을 외면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두 자매는 서로를 경쟁자로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승자와 패자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으십니다.

요셉 — 거두어 가시고 더해 주시는 하나님

라헬은 아들을 낳고 말합니다.

라헬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 수치를 거두어 가셨구나.」창세기 30:23 · 본디새김
그녀는 그의 이름을 요셉이라 하며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아들을 하나 더 주시기를.」창세기 30:24 · 본디새김

요셉의 이름에는 이미 경험한 기쁨과 앞으로의 소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름은 감사의 고백이면서 다음 자녀를 향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처음 그는 남편에게 아들들을 요구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께 아들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요셉의 탄생은 라헬의 이야기만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도 이제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이전에 라헬을 잊고 계시다가 갑자기 생각해 내셨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창세기 8:1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와 방주에 있는 생물들을 기억하십니다. 그다음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 하시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19:29에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고 말한 뒤, 롯이 멸망에서 벗어나게 된 사실을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표현은 단순히 머릿속에 정보를 떠올리는 행위보다, 기억하시는 대상을 위해 행동하시는 사건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거두어 가셨다」는 표현에는 아사프(⁨אָסַף⁩)라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요셉 요세프는 「더하다」라는 뜻의 야사프와 연결됩니다. 두 동사는 서로 다른 어근이지만 소리가 비슷합니다. 본문은 그 비슷한 소리를 이용하여 두 가지 의미를 연결합니다.

「언제 제 집안을 위해 일하겠습니까?」 — 아버지가 된 야곱의 질문

창세기 30:25–30 본문 →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 야곱이 라반에게 말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 고향으로, 제 땅으로 가고자 합니다.」창세기 30:25 · 본디새김

성경은 야곱이 떠나겠다는 말을 요셉의 탄생과 직접 연결합니다.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얻는 대가로 일곱 해씩, 모두 열네 해의 노동을 약속하고 수행했습니다(29:18–30). 이제 그의 가족은 커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라반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제 아내들과 제 자녀들을 주십시오. 제가 그 아내들을 얻으려고 외삼촌을 위해 일했으니, 이제 떠나고자 합니다. 제가 외삼촌을 위해 해 온 일을 외삼촌께서는 아십니다.」창세기 30:26 · 본디새김

이 말은 야곱의 아내와 자녀들이 라반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선언하는 것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야곱은 라반과의 혼인·노동 관계를 끝내고 가족과 함께 떠날 수 있도록 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녀를 얻었지만 아직 독립된 집안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라반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좋게 여긴다면…… 내가 점을 쳐서 알게 되었는데, 여호와야훼께서 너 때문에 내게 복을 주셨더구나.」창세기 30:27 · 본디새김

뒤따라야 할 부탁을 끝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맥상 야곱이 떠나지 않고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라반은 여호와야훼의 복을 말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방식으로는 점을 언급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여호와야훼께 직접 약속을 들었습니다. 라반은 점을 통해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라반의 점술이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계시 수단이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라반이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번영을 해석했다고 기록할 뿐입니다.

「제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것이 얼마 없었으나, 크게 불어났습니다. 제가 발을 들이면서 여호와야훼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저도 언제 제 집안을 위해 일하겠습니까?」창세기 30:30 · 본디새김

이 장의 앞부분에서 라헬은 빌하를 통해 자신의 집안을 이루고자 했습니다(30:3). 이제 야곱은 자기 집안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두 표현에는 가족을 세운다는 공통된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로 다릅니다.

라헬은 자녀가 없어 가족을 이루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야곱은 아내와 자녀들이 있지만, 그 가족을 부양할 독립된 재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야곱은 이미 여러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삶의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처지는 여전히 라반과의 노동 관계에 묶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지키시고, 그가 떠나온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8:15). 야곱은 이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라반은 그의 귀향을 허락하는 대신 새로운 품삯을 제안합니다.

무늬가 있는 가축을 품삯으로 — 야곱이 세운 계산

창세기 30:31–36 본문 →

라반은 야곱에게 무엇을 주면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야곱은 기존의 재산에서 얼마를 떼어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축의 털 색깔과 무늬를 기준으로 자신의 품삯을 정하자고 제안합니다.

「제가 오늘 외삼촌의 양과 염소 떼를 두루 돌아보겠습니다. 거기에서 점이 있거나 얼룩진 짐승과, 양 가운데 검은빛을 띤 것과, 염소 가운데 얼룩지거나 점이 있는 것을 모두 따로 떼어 내 주십시오. 그런 것들이 제 품삯이 될 것입니다.」창세기 30:32 · 본디새김

야곱은 양 가운데서는 검은빛을 띤 것들을, 염소 가운데서는 얼룩이나 점이 있는 것들을 자신의 몫으로 구별하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짐승이 야곱의 몫에 해당하는지 외관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훗날 외삼촌께서 제 품삯을 살피러 오시면, 제 정직함이 외삼촌 앞에서 저를 위해 증언할 것입니다. 염소 가운데 점도 없고 얼룩도 없는 것이나, 양 가운데 검은빛을 띠지 않는 것이 제게 있다면, 그것은 모두 훔친 것입니다.」창세기 30:33 · 본디새김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두면 나중에 서로의 소유권을 다툴 때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과 계속 일하되, 앞으로 자기 몫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 두려고 합니다.

라반은 그날 무늬가 있는 염소와 검은빛의 양들을 가려내 자기 아들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자신과 야곱 사이에 사흘 길의 거리를 둡니다. 야곱에게는 라반의 남은 양과 염소를 치도록 합니다.

이것은 야곱이 제안했던 방식보다 그의 몫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치로 읽힐 수 있습니다. 무늬가 있는 짐승들은 야곱이 돌보는 떼에서 분리되었고, 그는 남은 가축을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남은 가축들로부터 자신의 품삯을 만들어 내야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여기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32절에는 해석상의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야곱이 가려내자고 한 가축을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품삯으로 받는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고, 앞으로 그런 특징을 지니고 태어날 짐승들을 자신의 몫으로 삼으려는 계약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라반이 이 행동으로 계약의 어느 조항을 명시적으로 위반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최초 제안에서 가려낸 가축을 즉시 누구의 소유로 삼을지가 완전히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껍질을 벗긴 막대기 — 야곱의 기술인가, 하나님의 복인가

창세기 30:37–42 본문 →

가축을 돌보게 된 야곱은 나뭇가지를 가져옵니다.

야곱은 싱싱한 포플러나무 가지와 아몬드나무 가지와 플라타너스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 흰 줄무늬를 냈다. 이렇게 그 막대들의 흰 부분을 드러냈다.창세기 30:37 · 본디새김

그는 이렇게 만든 막대기들을 가축이 물을 마시는 물구유에 놓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가 그 막대기들 앞에서 짝짓기하도록 합니다.

양과 염소는 그 막대들 앞에서 짝짓기를 했고, 줄무늬가 있는 새끼와 점이 있는 새끼와 얼룩진 새끼를 낳았다.창세기 30:39 · 본디새김

창세기 30장은 야곱이 시도한 방법과 그 뒤에 일어난 결과를 연결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어떤 생물학적 원리로 작동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막대기만 사용한 것이 아니다

40–42절을 보면 야곱은 막대기를 설치하는 일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짐승들을 구별하고 자기 떼를 따로 관리합니다. 또한 특정한 색깔의 짐승들을 다른 가축들이 마주 보게 합니다.

튼튼한 양과 염소가 짝짓기할 때마다, 야곱은 양과 염소의 눈앞에 보이도록 물구유에 막대들을 놓곤 했다. 그 막대들 앞에서 새끼를 배게 하려는 것이었다.창세기 30:41 · 본디새김

그런데 약한 짐승들이 짝짓기할 때에는 막대기들을 놓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약한 짐승들은 라반의 몫이 되고 튼튼한 짐승들은 야곱의 몫이 되었습니다(30:42).

이 장의 야곱은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품삯을 협상하고, 짐승을 구분하고, 번식에 관여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으려 합니다. 이것은 그가 자기 재산을 늘리는 데 적극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으로 야곱은 오랫동안 라반을 위해 일했고, 그 노동으로 라반의 재산이 크게 늘어났다고 주장합니다. 라반 자신도 야곱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인정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확보하려는 요구에는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야곱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튼튼한 가축을 확보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본문은 그의 모든 행동이 공정하고 정당했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야곱을 완전히 무고한 노동자로만 그리거나, 반대로 이 장면 전체를 사기 행위라고 단정하는 것은 모두 본문이 명시하는 범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라헬은 자녀를 얻기 위해 맨드레이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라헬의 출산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문장은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셨다는 말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가축을 늘리기 위해 줄무늬 막대기와 여러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 전체에서 여호와야훼의 복은 이미 야곱의 노동과 라반의 재산 증가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30:27, 30).

창세기 30장은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행동을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행동의 배경에는 어미가 짝짓기하거나 새끼를 배는 동안 바라본 것이 새끼의 외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야곱의 행동을 자세히 묘사할 뿐, 그러한 원리가 실제로 작동한다고 일반 법칙을 선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가축 번식에 관한 검증된 과학적 방법으로 소개해서는 안 됩니다. 40절에 등장하는 라반의 떼 가운데 줄무늬가 있거나 검은빛을 띤 가축들이 앞서 라반이 아들들에게 맡겼던 짐승들을 가리키는지, 그 뒤 라반의 떼에서 새로 나타난 짐승들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야곱이 어떤 짐승을 정확히 어느 단계에서 분리했는지 완전한 사육 절차로 재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후 창세기 31:9–12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라반의 가축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회고하고, 꿈에서 가축의 번식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 대목은 야곱이 자신의 번성을 하나님의 행동과 연결하여 이해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그 후대의 설명을 가지고 30장의 막대기 자체에 특별한 효력이 있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매우, 매우 크게 번성했다」 — 다시 들려오는 약속의 언어

창세기 30:43 본문 →

이 장은 야곱의 번성을 강조하는 문장으로 끝납니다.

그 사람은 매우, 매우 크게 번성했다. 그는 많은 양과 염소, 여종들과 남종들, 낙타들과 나귀들을 갖게 되었다.창세기 30:43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야곱이 벧엘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질 것이며, 너는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28:14)

거기서 「뻗어 나갈 것이다」라고 번역된 동사도 같은 어근에서 나옵니다. 28장의 약속은 야곱과 그의 후손의 미래에 관한 것이고, 30:43은 현재 야곱의 재산 증가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같은 어근이 사용됨으로써 그의 삶에 나타난 확장이 앞서 주어진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여종과 남종이 재산 목록에 함께 기록된 것은 당시의 가정경제와 사회구조를 보여 줍니다. 본문이 사람을 소유물로 취급하는 제도를 도덕적으로 승인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번성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야곱은 이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자신이 원했던 고향으로 아직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번성은 분명한 현실이지만, 벧엘에서 주어진 모든 약속이 완성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매우, 매우 크게 번성한 사람

창세기 30:1–43 본문 →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미래를 얻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에서 야곱이 얻은 많은 가축과 자녀들을 바라보면, 그가 벧엘에서 들었던 약속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모두 사라진 뒤에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레아와 라헬에게 자녀를 주셨다고 해서 여종들을 이용한 경쟁 방식이 모두 옳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야곱이 크게 번성했다고 해서 그가 가축의 품삯을 확보하려고 사용한 모든 방법이 정당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성경은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로 그 결과를 얻는 과정의 모든 행동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많은 것을 얻었지만, 아직 돌아갈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이제 수많은 가축이 있었습니다. 물구유 앞에는 그가 껍질을 벗겨 놓았던 막대기들이 있었고, 가축들은 저마다 다른 무늬의 새끼들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그것들을 구분하여 자기 떼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원했던 자기 집안의 기반이 이렇게 마련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번성의 한복판에서도, 야곱은 아직 라반의 땅에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