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25–36장 · 이삭과 야곱

하나님이 보신 스무 해

야곱은 스무 해 동안 라반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얻고 자녀들을 낳았으며, 많은 가축과 재산을 모았습니다. 이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그가 떠나자 라반은 친족들을 데리고 뒤쫓아 옵니다. 라반은 자신의 딸들과 손주들, 가축들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야곱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며 일했는지, 라반이 품삯을 얼마나 자주 바꾸었는지 따져 묻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감시하고 의심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얼굴을 살피며 그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아차립니다. 라헬은 아버지의 신들을 훔쳐 숨기고, 라반은 장막을 샅샅이 뒤집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과 재산을 알아내려 애씁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들은 알지 못합니다.

창세기 31장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보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무엇을 보고 계셨는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읽는 시간 26분소단락 1131장 본문 읽기 →

달라진 얼굴과 변하지 않은 약속

창세기 31:1–3 본문 →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의 재산을 두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것을 모두 가져갔다. 우리 아버지의 것으로 이 많은 재산을 다 모았다.」창세기 31: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야곱은 가축의 특징을 기준으로 품삯을 정하고 자신의 떼를 늘렸습니다. 라반의 아들들은 그 재산이 본래 자기 아버지의 것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가진 재산을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보지 않고, 자기 아버지의 것을 가져간 결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둘째, 라반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얼굴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창세기 31:2 · 본디새김

얼굴은 상대방의 태도를 알아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표정을 보며 관계가 변했다는 사실을 감지합니다.

이제 야곱이 그곳에 계속 머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이유는 앞의 두 이유와 성격이 다릅니다.

여호와야훼가 야곱에게 말했다. 「네 조상들의 땅으로, 네 친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창세기 31:3 · 본디새김

야곱은 주변 분위기가 나빠졌기 때문에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돌아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함께하시고,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8:15). 그때 야곱은 막 집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스무 해가 흐른 뒤 하나님은 직접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위험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 위험 가운데서도 자신이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에서 그 약속은 추상적인 위로에 머물지 않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왔을 때 실제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를 파셨고, 우리 돈까지 삼켜 버리셨다」 — 두 자매가 같은 목소리를 내다

창세기 31:4–16 본문 →

야곱은 라헬과 레아를 들로 부릅니다.

야곱은 사람을 보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과 염소가 있는 들로 불렀다.창세기 31:4 · 본디새김

본문은 왜 하필 들로 불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떠날 계획을 상의하기에 적절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들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나를 대하시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소. 그러나 내 아버지의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셨소.」창세기 31:5 · 본디새김

라반의 호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계속해서 자신의 노동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라반이 자신을 속이고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재산이 늘어난 이유를 자신의 기술이나 노력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들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소.」창세기 31:9 · 본디새김

앞 장에서는 그가 가축의 번식을 늘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가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하나님께서 라반의 가축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라반이 품삯을 바꿀 때마다 가축의 출산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회고합니다(31:8).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의 보호와 개입으로 이해합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에게 말한 일을 들려줍니다.

「그가 말했소. 『자, 눈을 들어 보아라. 양과 염소 위에 올라타는 숫염소들은 모두 줄무늬가 있거나 점이 있거나 얼룩이 있다. 라반이 네게 하는 모든 일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창세기 31:12 · 본디새김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가축의 무늬보다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너는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을 했다. 이제 일어나 이 땅을 떠나 네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라.』」창세기 31:13 · 본디새김

벧엘에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시고 지켜 주시며 아버지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하신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28:20–22).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세웠던 돌기둥과 서원을 기억하게 하시면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머무는 스무 해 동안 벧엘의 약속은 잊힌 과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경쟁하던 두 자매가 함께 말하다

야곱의 설명을 들은 라헬과 레아는 대답합니다.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 집에 아직 우리 몫이나 상속받을 재산이 있겠어요?」창세기 31:14 · 본디새김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외국 여자들처럼 여기신 것 아니겠어요? 우리를 파셨고, 우리 돈까지 모조리 삼켜 버리셨으니까요.」창세기 31:15 · 본디새김

여기서 「우리를 파셨다」는 표현은 앞서 야곱이 두 여자를 아내로 얻기 위해 오랫동안 노동했던 사실과 연결됩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일곱 해를 일했고, 라반의 속임수 뒤에 두 딸을 아내로 얻는 대가로 열네 해를 일했습니다. 두 자매는 아버지가 자신들의 혼인을 통해 얻은 대가를 모두 자기 것으로 삼았다고 비난합니다.

이들은 라반의 친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하기보다 외부인처럼 취급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에게 아버지의 집은 더 이상 확실한 보호와 소속의 장소가 아닙니다.

라헬과 레아는 그동안 자녀와 남편의 사랑을 둘러싸고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 라반을 대하는 문제에서는 함께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으신 재산은 모두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것이에요.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것을 모두 하세요.」창세기 31:16 · 본디새김

두 자매도 야곱에게 주어진 재산을 하나님이 마련하신 몫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아내들에게 설명했고, 두 아내는 자신들의 처지를 말했으며, 마지막에는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지지합니다.

야곱에게 돌아가라는 명령이 주어졌지만, 그 여정은 가족의 공동 결정으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열 번」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열 차례의 변경을 정확히 세어 놓은 것인지, 수차례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앞선 이야기에는 야곱의 품삯 협상이 기록되어 있지만, 열 번의 변경 사건이 하나하나 서술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꿈속에서 말하는 이는 하나님의 사자로 소개되지만, 그가 전하는 말씀은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자기 선언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사자 이야기에서는 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일인칭으로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 돈」이 당시 혼인 대가의 어느 부분을 정확히 가리키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의 결혼과 관련된 경제적 몫을 정당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훔친 신들과 훔친 마음 — 서로에게 숨기는 사람들

창세기 31:17–21 본문 →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낙타에 태우고, 자신이 모은 가축과 재산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납니다.

라반은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가 있었다. 라헬은 자기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쳤다.창세기 31:19 · 본디새김
야곱은 자기가 달아난다는 것을 알리지 않아 아람 사람 라반을 속였다.창세기 31:20 · 본디새김

원문은 글자 그대로 옮기면 야곱이 라반의 「마음을 훔쳤다」(⁨גָּנַב⁩)는 형태입니다. 이것은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떠남으로써 그를 속였다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두 행동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동사로 연결됩니다.

야곱의 가족은 라반에게 속임을 당해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라반의 집을 떠나면서 자기들도 그에게 사실을 숨깁니다.

야곱은 가족을 데리고 몰래 떠납니다. 그러나 라헬이 드라빔을 훔쳤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31:32).

라헬은 왜 드라빔을 훔쳤을까?

집안의 신들을 자기 가족과 함께 가져가고 싶었을 가능성도 있고, 아버지의 재산이나 가문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려 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라반이 점을 쳤다고 말한 앞 장의 내용(30:27)과 연결하여, 아버지가 더 이상 점을 통해 자신들을 추적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느 해석도 31장 자체에서 직접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드라빔을 훔친 라헬의 행동을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의로운 행동이라고 설명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는 지금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면서 아버지가 신들로 부르던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숨겨진 물건은 곧 가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뻔합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 17:5와 18:14–20에서는 미가의 집과 단 지파의 종교적 물건들 가운데 드라빔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9:13에서는 미갈이 드라빔을 침상에 놓아 다윗이 누워 있는 것처럼 꾸밉니다. 스가랴 10:2에서는 드라빔이 거짓된 말을 하는 대상으로 언급됩니다. 따라서 드라빔은 단순한 장식품이라기보다 종교적 의미를 가진 물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드라빔의 소유가 상속권을 뜻했다고 일반화하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특정 고대 문헌에서 가정의 신상과 재산 관계가 연결되는 사례가 논의되지만, 그것만으로 라헬의 동기나 이 가족에게 적용되던 법적 관습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뒤쫓아 오는 라반보다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

창세기 31:22–30 본문 →

야곱이 달아났다는 소식은 사흘째 되는 날 라반에게 전해집니다.

라반은 친족들을 데리고 뒤쫓아 갑니다. 그리고 이레 동안 추격한 끝에 길르앗 산지에서 야곱을 따라잡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밤에 꿈속에서 아람 사람 라반에게 와서 말했다. 「조심하여라. 야곱에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하지 마라.」창세기 31:24 · 본디새김

하나님은 야곱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야곱을 위협할 수 있는 라반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야곱을 따라잡은 뒤 그는 말합니다.

「내게는 너희를 해칠 힘이 있다. 그러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어젯밤 내게 『조심하여라. 야곱에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창세기 31:29 · 본디새김

야곱은 라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몰래 떠났지만, 그를 보호하는 결정적인 개입은 야곱이 알지 못하는 라반의 꿈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추격을 당하지 않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따라잡은 라반이 자기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으셨습니다.

라반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라반은 야곱을 만나자마자 책망합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말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잡힌 포로들처럼 끌고 가다니.」창세기 31:26 · 본디새김

그는 야곱이 미리 알렸다면 노래와 악기로 기쁘게 보내 주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딸들과 손주들에게 입맞춤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항의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앞서 라헬과 레아가 한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외국 여자들처럼 대했고, 자신들의 혼인과 관련된 돈까지 삼켜 버렸다고 비난했습니다(31:14–15). 따라서 라반이 말하는 가족 사랑과 딸들이 경험한 아버지의 행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독자는 이미 두 딸이 야곱의 귀환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네 아버지 집이 몹시도 그리워서 이렇게 기어이 떠났다지만, 왜 내 신들을 훔쳤느냐?」창세기 31:30 · 본디새김

야곱이 가족을 데리고 떠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빔이 실제로 도둑맞았다는 사실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하지 마라.」 문자 그대로 모든 말을 금하는 명령처럼 보이지만, 라반은 다음 날 야곱을 만나 길게 말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라반에게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절대적인 침묵 명령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양극단을 함께 언급하여 말이나 행동의 범위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맥상 라반이 야곱의 귀환을 자기 뜻대로 좌우하거나 그를 해치려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시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그 금지의 구체적인 범위를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으므로, 오직 협박만 금하셨다거나 귀환을 막는 모든 대화만을 금하셨다고 좁혀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창세기 20:3에서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경고하셨습니다. 두 장면 모두 하나님이 언약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그와 관계된 외부 인물에게도 말씀하심으로써 사건의 방향에 개입하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신들을 깔고 앉은 라헬, 진실을 모르는 야곱

창세기 31:31–35 본문 →

야곱은 자신이 몰래 떠난 이유를 설명합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외삼촌께서 외삼촌의 딸들을 제게서 강제로 빼앗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창세기 31:31 · 본디새김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야곱에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몰래 떠나는 행동에는 이러한 두려움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빔에 관한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누구에게서든 외삼촌의 신들을 찾으시면, 그 사람은 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친족들 앞에서 제게 있는 것 가운데 외삼촌의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시고 가져가십시오.」 야곱은 라헬이 그것들을 훔친 줄 몰랐다.창세기 31:32 · 본디새김

그러나 그 물건을 훔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입니다. 독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야곱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무지가 위험한 말을 낳습니다.

라반의 수색과 라헬의 속임수

라반은 장막들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야곱의 장막, 레아의 장막, 두 여종의 장막을 수색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헬의 장막에 들어갑니다. 라헬은 이미 드라빔을 낙타 안장 속에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라헬이 자기 아버지에게 말했다. 「주인님, 제가 주인님 앞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경 중이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뒤져 보았으나 드라빔을 찾지 못했다.창세기 31:35 · 본디새김

이 말은 라반이 앉아 있는 라헬을 일으켜 세워 안장을 조사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라반이 자신의 신들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지 못합니다. 반면 여호와야훼는 앞서 라반에게 직접 나타나 야곱을 해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라헬은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밝히지 않습니다. 야곱은 진실을 모르면서 자신의 결백을 확신합니다. 야곱의 억울함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지만, 그의 확신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내린 판단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야곱이 말한 죽음의 위협이 실제로 어떤 절차를 거쳐 시행될 수 있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발언이 반드시 효력을 지닌 정식 사형 선고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후대 율법에는 월경 중인 여성과 접촉하는 물건에 관한 정결 규정이 나옵니다(레위기 15:19–24). 그러나 그 규정을 그대로 이 사건의 시대와 지역에 적용하여, 라반이 종교적 부정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안장을 건드리지 못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라헬이 실제로 월경 중이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을 수도 있고, 도둑질을 감추기 위한 핑계였을 수도 있습니다.

「낮에는 더위가, 밤에는 서리가」 — 스무 해 노동의 진실

창세기 31:36–42 본문 →

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야곱은 화를 냅니다.

야곱은 화가 나서 라반과 다투었다. 야곱이 라반에게 따져 물었다. 「제 허물이 무엇입니까? 제 죄가 무엇이기에 저를 이렇게 맹렬히 뒤쫓으셨습니까?」창세기 31:36 · 본디새김

야곱은 이제 방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라반을 추궁하는 사람이 됩니다.

「제 물건을 모조리 더듬어 뒤지셨는데, 외삼촌 집의 물건 가운데 무엇을 찾으셨습니까? 여기, 제 친족들과 외삼촌의 친족들 앞에 놓아 보십시오. 그들이 우리 둘 사이를 판정하게 하십시오.」창세기 31:37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들을 증인과 판정자로 삼아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자는 요구입니다.

손실까지 떠안았던 목자

「제가 외삼촌과 함께한 이 스무 해 동안, 외삼촌의 암양들과 암염소들은 유산하지 않았고, 저는 외삼촌의 떼에서 숫양들을 잡아먹지 않았습니다.」창세기 31:38 · 본디새김

야곱은 자신이 라반의 가축을 성실하게 돌보았다고 주장합니다. 이어지는 말은 당시 목자의 노동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 보여 줍니다.

「짐승에게 찢긴 것은 외삼촌께 가져가지 않고 제가 그 손실을 메우곤 했습니다. 낮에 도둑맞은 것이든 밤에 도둑맞은 것이든, 외삼촌께서는 제게 배상을 요구하셨습니다.」창세기 31:39 · 본디새김

야곱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손실뿐 아니라 외부의 위험으로 생긴 손실까지 떠안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가축을 돌보는 일을 했다는 것보다 더 무거운 노동 조건을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렇게 지냈습니다. 낮에는 더위가, 밤에는 서리가 저를 삼켰고, 잠은 제 눈에서 달아났습니다.」창세기 31:40 · 본디새김

여기서 「삼켰다」는 표현은 강렬합니다. 더위와 서리가 단순히 불편한 날씨가 아니라 자신을 소모시키는 힘처럼 묘사됩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라반의 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의 돈을 삼켜 버렸다고 말했습니다(31:15). 이제 야곱은 더위와 추위가 자신을 삼켰다고 말합니다. 두 표현의 이미지가 완전히 같은 문법적 구조는 아니지만, 라반의 집에서 살아온 가족들의 경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 줍니다.

야곱의 재산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지만, 그 재산을 이루는 동안 그가 견딘 낮과 밤의 수고는 충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셨다고 야곱은 고백합니다.

「제 고통과 제 두 손의 수고를 보시고」

야곱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스무 해를 정리합니다.

「제가 외삼촌 집에서 지낸 세월이 스무 해입니다. 외삼촌의 두 딸을 얻으려고 열네 해를, 외삼촌의 양과 염소를 얻으려고 여섯 해를 외삼촌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께서는 제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습니다.」창세기 31:41 · 본디새김
「제 아버지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자 이삭이 두려워하는 분께서 제 편이 아니셨다면, 외삼촌께서는 틀림없이 저를 빈손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고통과 제 두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젯밤에 외삼촌을 꾸짖으셨습니다.」창세기 31:42 · 본디새김

여기서 하나님의 보호는 단순히 야곱이 큰 재산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감당해 온 노동과 손실을 하나님이 알고 계셨다는 사실에도 나타납니다.

본문에서 야곱은 라반에게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그 억울함이 라반의 인정을 받아야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미 자신의 처지를 보셨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야곱은 라반에게 말할 것을 모두 말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후대의 출애굽기 22:10–13에는 맡은 가축이 죽거나 다치거나 맹수에게 찢겼을 때 책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그 규정을 야곱 시대의 계약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가축 관리자의 책임과 불가항력적인 손실을 구별하는 문제가 실제로 중요한 법적 문제였음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어 파하드 이츠하크는 글자 그대로 「이삭의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이삭이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외삼촌께서는 틀림없이 저를 빈손으로 보내셨을 것」이라는 말은 야곱이 라반에 대해 내린 판단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라반이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다」 — 끝까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라반

창세기 31:43–44 본문 →

라반은 야곱의 긴 항변을 들은 뒤 이렇게 말합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했다. 「이 딸들은 내 딸들이고, 이 자녀들은 내 자녀들이며, 이 양과 염소는 내 양과 염소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다. 그러나 내 딸들에게, 또 이들이 낳은 자녀들에게 내가 오늘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창세기 31:43 · 본디새김

야곱은 자신의 노동을 근거로 말합니다. 라반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관계와 재산을 근거로 말합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과 물건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이 라반에게 있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라반이 자신의 권리와 지위를 주장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에는 이미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경고를 받았고, 야곱은 스무 해의 노동을 근거로 맞서고 있습니다. 두 딸도 야곱의 귀환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자, 이제 나와 네가 언약을 맺자. 이것이 나와 너 사이의 증인이 되게 하자.」창세기 31:44 · 본디새김

이제 문제는 과거의 손실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가 아닙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옮겨 갑니다.

라반은 자신의 잘못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야곱도 라반의 소유권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더 이상 싸움을 계속하는 대신 언약을 맺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합의를 기억하기 위해 돌을 세웁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른 하나의 돌무더기

창세기 31:45–50 본문 →

야곱은 돌 하나를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친족들에게 돌을 모으라고 합니다. 그들은 돌무더기를 쌓고 그 곁에서 음식을 먹습니다. 문서로 기록하여 보관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돌무더기와 기둥을 세워 자신들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 증언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 돌무더기에는 이름이 두 개 붙습니다.

라반은 그것을 여가르 사하두타라고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고 불렀다.창세기 31:47 · 본디새김

여가르 사하두타(⁨יְגַר שַׂהֲדוּתָא⁩)는 아람어 표현으로, 증언의 돌무더기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갈르엣(⁨גַּלְעֵד⁩)은 히브리어로 돌무더기와 증언이라는 말이 연결된 이름입니다. 두 이름의 언어는 다르지만 의미는 대응합니다.

이 장에서는 라반이 여러 차례 「아람 사람 라반」으로 불립니다(31:20, 24). 이제 두 사람이 돌무더기를 서로 다른 언어로 부르는 장면은 두 집안이 각각 다른 공동체로 갈라져 가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로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최소한 어떤 약속을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공통의 표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스바 — 서로를 그리워하는 기도인가?

돌무더기는 미스바라는 이름과도 연결됩니다.

또 미스바라고도 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보이지 않게 될 때, 여호와야훼께서 나와 너 사이를 지켜보시기를 바란다.」창세기 31:49 · 본디새김

이 표현은 때로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서로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기도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31장의 문맥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야곱과 라반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상태에서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고, 라반은 야곱을 추격했으며, 야곱은 라반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더 이상 서로를 직접 감시하거나 상대의 행동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시선은 서로를 위로하며 지켜 주시는 의미보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행동까지 감찰하시는 의미가 강합니다.

「만일 네가 내 딸들을 괴롭힌다면, 또 만일 내 딸들 말고 아내들을 더 맞아들인다면…… 우리 곁에는 아무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께서 나와 너 사이의 증인이시다.」창세기 31:50 · 본디새김

여기서 「괴롭힌다」는 말은 딸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가리키고, 다른 아내를 추가로 맞아들이는 일도 별도로 언급됩니다. 라반은 자신이 멀리 떨어져 있게 되면 그 일을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릅니다.

라반은 앞서 딸들에게서 자신의 몫을 빼앗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야곱에게 조건을 내겁니다. 이것이 라반의 진심 어린 염려인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요구인지, 두 가지가 함께 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 장의 언약은 인간이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기 때문에 맺는 언약이 아닙니다.

서로의 행동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자리까지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는 언약입니다.

조금 더 깊이

벧엘에서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잠에서 깨어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표지였습니다(28:18–22). 길르앗에서는 라반과의 언약을 맺기 위해 돌을 세웁니다. 돌무더기는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인이 됩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함께하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길르앗에서 야곱은 그 약속을 따라 귀향하는 길에 서 있습니다.

서로를 해치려고 넘지 않을 경계

창세기 31:51–53 본문 →

라반은 돌무더기와 기둥을 가리키며 언약의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돌무더기가 증인이고 이 기둥이 증인이다. 나는 너를 해치려고 이 돌무더기를 넘어 네게 가지 않을 것이며, 너도 나를 해치려고 이 돌무더기와 이 기둥을 넘어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창세기 31:52 · 본디새김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해치려고」입니다. 따라서 이 언약은 모든 왕래를 영원히 금하는 절대적인 국경 조약이라고 읽기보다,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라반이 야곱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라반은 야곱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사람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인간 사이의 구체적인 합의로 이어진 것입니다.

완전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았더라도, 더 이상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경계는 세울 수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두고 맹세했는가?

라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신과 나홀의 신, 곧 그들 아버지의 신들이 우리 사이를 판결하기를 바란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는 이를 두고 맹세했다.창세기 31:53 · 본디새김

두 사람은 하나의 돌무더기를 세웠고, 서로 해치지 않겠다는 언약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신적 증인으로 부르는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언약이 두 사람이 완전히 동일한 신앙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선언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상대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신적인 감찰과 판결 아래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아브라함의 신과 나홀의 신이 나란히 등장하고, 이어서 그들 아버지의 신들이 언급됩니다. 히브리어에는 복수 형태의 표현과 동사가 사용됩니다. 따라서 라반이 아브라함과 나홀의 하나님을 같은 존재로 이해했는지, 서로 다른 신들을 함께 부른 것인지를 문법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이 문제를 하나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앞서 야곱은 이 표현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경외하던 하나님을 가리켰습니다(31:42). 여기서는 언약의 증인으로 그분을 부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먹은 마지막 식사

창세기 31:54 본문 →

이 장은 뜻밖에도 식사 장면으로 끝납니다.

야곱은 산에서 희생 제물을 잡아 바치고, 자기 친족들을 불러 빵을 먹게 했다. 그들은 빵을 먹고 산에서 밤을 보냈다.창세기 31:54 · 본디새김

제의적 행동과 공동 식사가 언약의 마무리에 놓입니다.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서로 적대하던 사람들이 최소한 평화로운 관계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내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라헬이 훔친 드라빔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실을 그대로 남겨 둔 채 식사를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 먹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의 마지막에는 아직 작별 인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의 장절 구분에 따르면 그 장면은 다음 장의 첫 절에 놓입니다. 따라서 31장은 두 사람이 갈라서는 장면보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멈춥니다.

돌무더기 곁에서 맞이한 밤

창세기 31:1–54 본문 →

하나님이 보신다는 사실은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보호의 약속이지만,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요구하는 말이 됩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과거의 고통을 보십니다.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이 앞으로의 행동을 지켜보시는 증인이 되십니다.

하지만 이것을 야곱의 모든 행동이 정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보상하셨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그들의 잘못을 모두 무효로 만드는 판결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벧엘에서 하신 약속을 이어 가십니다.

야곱이 스무 해 동안 지켜 낸 것은 자신의 생존과 가족과 재산이었지만, 그 세월을 지나며 발견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지켜보고 계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은 그 발견을 거창한 선언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습니다. 아직 길을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을 뒤쫓았던 사람들은 이제 그와 같은 자리에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돌무더기가 놓여 있습니다. 그 돌들은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라반과 야곱이 더 이상 서로를 볼 수 없게 될 때에도, 그들이 한 약속을 지켜보실 분이 계십니다.

그날 밤 산 위에는 야곱의 장막과 라반의 장막이 함께 서 있었습니다.

낮에는 서로를 추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한 채 같은 산에서 잠을 청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