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25–36장 · 이삭과 야곱

하나님이 보신 스무 해

야곱은 스무 해 동안 라반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얻고 자녀들을 낳았으며, 많은 가축과 재산을 모았습니다. 이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그가 떠나자 라반은 친척들을 데리고 뒤쫓아 옵니다. 라반은 자신의 딸들과 손주들, 가축들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야곱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며 일했는지, 라반이 품삯을 얼마나 자주 바꾸었는지 따져 묻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과 재산을 알아내려 애씁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들은 알지 못합니다.

야곱은 라헬이 신들을 훔친 줄 모릅니다. 라반은 신들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야곱은 라반이 아내들을 억지로 빼앗을까 두려워합니다.

창세기 31장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보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무엇을 보고 계셨는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읽는 시간 25분소단락 1131장 본문 읽기 →

달라진 얼굴과 변하지 않은 약속

창세기 31:1–3 본문 →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의 재산을 두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 것을 모두 가져갔어. 우리 아버지 것으로 저 많은 재산을 다 모은 거야.」창세기 31:1 · 두루새김

이것은 라반의 아들들이 한 주장입니다. 이야기꾼이 야곱이 실제로 라반의 재산을 모두 빼앗았다고 확인하는 문장은 아닙니다.

앞 장에서 야곱은 가축의 특징을 기준으로 품삯을 정하고 자신의 떼를 늘렸습니다. 라반의 아들들은 그 재산이 본래 자기 아버지의 것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야곱의 재산이 늘어날수록 그가 라반의 집안에서 더욱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 라반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얼굴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창세기 31:2 · 두루새김

얼굴은 상대방의 태도를 알아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표정을 보며 관계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조금 뒤 야곱은 라헬과 레아에게도 라반의 얼굴을 보니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31:5).

이제 야곱이 그곳에 계속 머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이유는 앞의 두 이유와 성격이 다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조상들의 땅으로, 네 친척들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창세기 31:3 · 두루새김

야곱은 주변 분위기가 나빠졌기 때문에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돌아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함께하시고,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8:15).

그때 야곱은 막 집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스무 해가 흐른 뒤 하나님은 직접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위험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 위험 가운데서도 자신이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야곱이 떠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함께 갈 가족들의 뜻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팔아 버리셨고, 우리 돈까지 모조리 써 버리셨잖아요」 — 두 자매가 같은 목소리를 내다

창세기 31:4–16 본문 →

야곱은 라헬과 레아를 들로 부릅니다.

야곱은 두 아내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합니다.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라반의 달라진 태도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야곱이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나를 대하시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아요. 하지만 내 아버지의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셨어요.」창세기 31:5 · 두루새김

라반의 호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계속해서 자신의 노동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라반이 자신을 속이고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재산이 늘어난 이유를 자신의 기술이나 노력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들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어요.」창세기 31:9 · 두루새김

앞 장에서는 그가 가축의 새끼를 늘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가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야곱이 가축을 늘리려고 실제로 노력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결과가 자신의 방법만으로 얻어졌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라반이 품삯을 바꿀 때마다 가축이 자신에게 유리한 무늬의 새끼를 낳았다고 돌아봅니다(31:8).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의 보호와 개입으로 이해합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자신에게 말한 일을 들려줍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어요. 『눈을 들어 보아라. 암컷들과 짝짓기를 하는 숫염소들은 모두 줄무늬나 점이나 얼룩이 있다. 라반이 네게 하는 모든 일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창세기 31:12 · 두루새김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가축의 무늬보다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라반이 무엇을 하였는지, 야곱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너는 거기서 돌기둥에 기름을 붓고 내게 약속했다. 이제 일어나 이 땅을 떠나 네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라.』」창세기 31:13 · 두루새김

야곱은 이제 그때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을 떠올리게 됩니다. 벧엘에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시고 지켜 주시며 아버지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하신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28:20–22).

야곱이 라반의 집에 머무는 스무 해 동안 벧엘의 약속은 잊힌 과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경쟁하던 두 자매가 함께 말하다

야곱의 설명을 들은 라헬과 레아는 대답합니다.

라헬과 레아가 야곱에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집에 아직 우리 몫이나 우리가 물려받을 재산이 남아 있겠어요?」창세기 31:14 · 두루새김
「아버지는 우리를 외국 여자들처럼 여기시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를 팔아 버리셨고, 우리 돈까지 모조리 써 버리셨잖아요.」창세기 31:15 · 두루새김

여기서 「우리를 팔아 버리셨고」라는 표현은 앞서 야곱이 두 여자를 아내로 얻기 위해 오랫동안 노동했던 사실과 연결됩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일곱 해를 일했고, 라반의 속임수 뒤에 두 딸을 아내로 얻는 대가로 열네 해를 일했습니다. 두 자매는 아버지가 자신들의 결혼을 통해 얻은 대가를 모두 자기 것으로 삼았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 돈」이 당시 결혼 대가의 어느 부분을 정확히 가리키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의 결혼과 관련된 재산의 몫을 정당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이들은 라반의 친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하기보다 외부인처럼 취급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에게 아버지의 집은 더 이상 확실한 보호와 소속의 장소가 아닙니다.

라헬과 레아는 그동안 자녀와 남편의 사랑을 둘러싸고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 라반을 대하는 문제에서는 함께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으신 재산은 모두 우리와 우리 아이들 것이에요.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모두 하세요.」창세기 31:16 · 두루새김

두 자매도 야곱에게 주어진 재산을 하나님이 마련하신 몫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라고 권합니다.

야곱에게 돌아가라는 명령이 주어졌지만, 그 여정은 가족이 함께 내린 결정으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열 번」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열 차례의 변경을 정확히 세어 놓은 것인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앞선 이야기에는 야곱이 품삯을 정하려고 의논한 일이 기록되어 있지만, 열 번의 변경 사건이 하나하나 서술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꿈속에서 말하는 이는 하나님의 천사로 소개되지만, 그가 전하는 말씀은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라는 하나님이 직접 자신을 밝히시는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천사 이야기에서는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나」라고 하며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훔친 신들과 훔친 마음 — 서로에게 숨기는 사람들

창세기 31:17–21 본문 →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낙타에 태우고, 자신이 모은 가축과 재산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납니다.

라반은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가 있었습니다.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쳤습니다.창세기 31:19 · 두루새김
야곱은 자기가 달아난다는 것을 알리지 않아 아람 사람 라반을 속였습니다.창세기 31:20 · 두루새김

원문은 글자 그대로 옮기면 야곱이 라반의 「마음을 훔쳤다」(⁨גָּנַב⁩)는 형태입니다. 이것은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떠남으로써 그를 속였다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두 행동은 서로 다르지만 원문에서는 같은 동사로 연결됩니다.

야곱의 가족은 라반에게 속임을 당해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라반의 집을 떠나면서 자기들도 그에게 사실을 숨깁니다.

야곱은 가족을 데리고 몰래 떠납니다. 그러나 라헬이 드라빔을 훔쳤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31:32). 그는 라헬의 도둑질을 함께 계획한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라헬은 왜 드라빔을 훔쳤을까?

드라빔 테라핌은 가정이나 개인의 종교생활과 관련된 신상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집안의 신들을 자기 가족과 함께 가져가고 싶었을 가능성도 있고, 아버지의 재산이나 가문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려 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라반이 점을 쳤다고 말한 앞 장의 내용(30:27)과 연결하여, 아버지가 더 이상 점을 통해 자신들을 추적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느 해석도 31장 자체에서 직접 확인되지 않습니다.

드라빔의 소유가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뜻했다고 일반화하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특정 고대 문헌에서 가정의 신상과 재산 관계가 연결되는 사례가 논의되지만, 그것만으로 라헬이 훔친 이유나 이 가족에게 적용되던 법적 관습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드라빔을 훔친 라헬의 행동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한 의로운 행동이라고 설명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는 지금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면서 아버지가 신들로 부르던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숨겨진 물건은 곧 가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뻔합니다.

뒤쫓아 오는 라반보다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

창세기 31:22–30 본문 →

야곱이 달아났다는 소식은 사흘째 되는 날 라반에게 전해집니다.

라반은 친척들을 데리고 뒤쫓아 갑니다. 그리고 7일 길을 뒤쫓은 끝에 길르앗 산지에서 야곱을 따라잡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밤에 꿈속에서 아람 사람 라반에게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조심하여라. 야곱에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하지 마라.」창세기 31:24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야곱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야곱을 위협할 수 있는 라반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야곱을 따라잡은 뒤 그는 말합니다.

「내게는 너희를 해칠 힘이 있다. 하지만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어젯밤 내게 말씀하셨다. 『조심하여라. 야곱에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하지 마라.』」창세기 31:29 · 두루새김

이 문장은 라반의 힘과 하나님의 경고를 정면으로 대비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몰래 떠났지만, 그를 보호하는 결정적인 개입은 야곱이 알지 못하는 라반의 꿈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추격을 당하지 않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따라잡은 라반이 자기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으셨습니다.

라반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라반은 야곱을 만나자마자 책망합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전쟁에서 붙잡힌 사람들처럼 끌고 가다니!」창세기 31:26 · 두루새김

그는 야곱이 미리 알렸다면 노래와 악기로 기쁘게 보내 주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딸들과 손주들에게 입 맞출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항의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앞서 라헬과 레아가 한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외국 여자들처럼 대했고, 자신들의 결혼과 관련된 돈까지 모조리 써 버렸다고 비난했습니다(31:14–15). 따라서 라반이 말하는 가족 사랑과 딸들이 경험한 아버지의 행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진심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어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만으로 야곱이 딸들을 억지로 끌고 갔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독자는 이미 두 딸이 야곱의 귀환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네 아버지 집이 몹시 그리워서 꼭 떠나야 했다 해도, 왜 내 신들을 훔쳤느냐?」창세기 31:30 · 두루새김

야곱이 가족을 데리고 떠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빔이 실제로 도둑맞았다는 사실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하지 마라.」 문자 그대로 모든 말을 금하는 명령처럼 보이지만, 라반은 다음 날 야곱을 만나 길게 말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라반에게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절대적인 침묵 명령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서로 반대되는 두 끝을 함께 언급하여 말이나 행동의 범위를 넓게 가리키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맥상 라반이 야곱의 귀환을 자기 뜻대로 좌우하거나 그를 해치려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시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그 금지의 구체적인 범위를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으므로, 오직 협박만 금하셨다거나 귀환을 막는 모든 대화만을 금하셨다고 좁혀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들을 깔고 앉은 라헬, 진실을 모르는 야곱

창세기 31:31–35 본문 →

야곱은 자신이 몰래 떠난 이유를 설명합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했습니다. 「두려워서 그랬어요. 외삼촌이 딸들을 제게서 억지로 빼앗아 가실까 봐 그랬어요.」창세기 31:31 · 두루새김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야곱에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몰래 떠나는 행동에는 이러한 두려움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빔에 관한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누구에게서든 외삼촌의 신들이 나오면, 그 사람은 살지 못할 거예요. 우리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제 물건 중에 외삼촌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가져가세요.」 야곱은 라헬이 그것들을 훔친 줄 몰랐습니다.창세기 31:32 · 두루새김

야곱은 자신의 일행 가운데 도둑이 없다고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물건을 훔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입니다. 독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야곱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무지가 위험한 말을 낳습니다.

라반의 수색과 라헬의 속임수

라반은 천막들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야곱의 천막, 레아의 천막, 두 여자 종의 천막을 뒤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헬의 천막에 들어갑니다. 라헬은 이미 드라빔을 낙타 안장 속에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라헬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화내지 마세요. 제가 지금 월경 중이라서 일어날 수가 없어요.」 라반은 뒤져 보았지만 드라빔을 찾지 못했습니다.창세기 31:35 · 두루새김

이 말은 라반이 앉아 있는 라헬을 일으켜 세워 안장을 조사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라반이 자신의 신들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지 못합니다. 반면 하나님은 앞서 라반에게 직접 나타나 야곱을 해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행동하십니다.

라반의 신들은 도둑맞아 숨겨진 채 발견되지 않습니다.

라헬은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밝히지 않습니다. 야곱은 진실을 모르면서 자신의 결백을 확신합니다. 야곱의 억울함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지만, 그의 확신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내린 판단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야곱이 말한 죽음의 위협이 실제로 어떤 절차를 거쳐 시행될 수 있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발언이 반드시 효력을 지닌 정식 사형 선고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후대 율법에는 월경 중인 여성과 접촉하는 물건에 관한 정결 규정이 나옵니다(레위기 15:19–24). 그러나 그 규정을 그대로 이 사건의 시대와 지역에 적용하여, 라반이 종교적으로 부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안장을 건드리지 못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라헬이 실제로 월경 중이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을 수도 있고, 도둑질을 감추기 위한 핑계였을 수도 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더위에, 밤에는 매서운 추위에」 — 스무 해 노동의 진실

창세기 31:36–42 본문 →

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야곱은 화를 냅니다.

야곱은 화가 나서 라반과 다투며 따져 물었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를 이렇게 거세게 뒤쫓으셨나요?」창세기 31:36 · 두루새김

야곱은 이제 방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라반에게 따져 묻는 사람이 됩니다.

「제 물건을 모조리 뒤지셨는데, 외삼촌 집 물건이 하나라도 나왔나요? 여기 제 친척들과 외삼촌의 친척들 앞에 놓아 보세요. 이 사람들이 우리 둘 중에 누가 옳은지 가리게 하세요.」창세기 31:37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닙니다. 가족들을 증인과 판정자로 삼아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자는 요구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는 옳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 가운데 아무도 라반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그럼에도 야곱이 뒤이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는 말에는 깊은 무게가 있습니다.

손실까지 떠안았던 목자

야곱은 자신이 라반의 가축을 성실하게 돌보았다고 주장합니다. 이어지는 말은 당시 목자의 노동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 보여 줍니다.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가축은 외삼촌에게 가져가지 않고 제가 물어 드렸어요. 낮에 도둑맞든 밤에 도둑맞든, 외삼촌은 제게 물어내라고 하셨어요.」창세기 31:39 · 두루새김

가축을 기르는 사람에게 들짐승의 공격이나 도둑질은 피하기 어려운 위험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설명에 따르면 라반은 그러한 손실까지 야곱에게 물어내도록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가축을 돌보는 일을 했다는 것보다 더 무거운 노동 조건을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낮에는 뜨거운 더위에, 밤에는 매서운 추위에 시달리며 잠도 못 잤어요.」창세기 31:40 · 두루새김

이것은 야곱이 그동안 재산을 크게 늘렸다는 사실만으로는 알 수 없는 모습입니다. 야곱의 재산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지만, 그 재산을 이루는 동안 그가 견딘 낮과 밤의 수고는 충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셨다고 야곱은 고백합니다.

「제가 겪은 고통과 두 손으로 힘들게 일한 것을 보시고」

야곱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스무 해를 정리합니다.

「외삼촌 집에서 그렇게 20년을 지냈어요. 외삼촌의 두 딸과 결혼하려고 14년을, 양과 염소를 얻으려고 6년을 외삼촌을 위해 일했어요. 그런데 외삼촌은 제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어요.」창세기 31:41 · 두루새김
「제 아버지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자 이삭이 두려워하는 분께서 제 편이 아니셨다면, 외삼촌은 틀림없이 저를 빈손으로 보내셨을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제가 겪은 고통과 두 손으로 힘들게 일한 것을 보시고, 어젯밤 외삼촌을 꾸짖으셨어요.」창세기 31:42 · 두루새김

그에게 하나님은 이제 단순히 조상들이 섬기던 하나님만이 아니십니다. 라반의 집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 주신 분입니다.

본문에서 야곱은 라반에게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그 억울함이 라반의 인정을 받아야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미 자신의 처지를 보셨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외삼촌은 틀림없이 저를 빈손으로 보내셨을 거예요」라는 말은 야곱이 라반에 대해 내린 판단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나서지 않으셨다면 라반이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야곱은 라반에게 말할 것을 모두 말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더위와 서리가 자신을 「삼켰다」(⁨אָכַל⁩)고 표현합니다. 단순히 불편한 날씨가 아니라 자신을 소모시키는 힘처럼 그려집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뜨거운 더위」와 「매서운 추위」에 「시달리며」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라반의 딸들은 아버지가 「우리 돈까지 모조리 써 버리셨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31:15). 원문에서는 그 자리에도 삼켜 버린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두 표현이 완전히 같은 문법 구조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라반의 집에서 살아온 가족들의 경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 줍니다. 히브리어 파하드 이츠하크는 글자 그대로 「이삭의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이삭이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다」 — 끝까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라반

창세기 31:43–44 본문 →

라반은 야곱이 길게 억울함을 밝히는 말을 들은 뒤 이렇게 말합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했습니다. 「이 딸들은 내 딸들이고, 이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며, 이 양과 염소는 내 양과 염소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 이 딸들에게, 또 이들이 낳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창세기 31:43 · 두루새김

야곱은 자신의 노동을 근거로 말합니다. 라반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관계와 재산을 근거로 말합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과 물건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이 라반에게 있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라반이 자신의 권리와 지위를 주장하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경고를 받았고, 야곱은 스무 해의 노동을 근거로 맞서고 있습니다. 두 딸도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자, 이제 나와 네가 언약을 맺자. 그것이 우리 사이의 증인이 되게 하자.」창세기 31:44 · 두루새김

이제 문제는 과거의 손실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가 아닙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옮겨 갑니다.

라반은 자신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고, 야곱도 라반의 소유권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더 이상 싸움을 계속하는 대신 언약을 맺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합의를 기억하기 위해 돌을 세웁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른 하나의 돌무더기

창세기 31:45–50 본문 →

야곱은 돌 하나를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친척들에게 돌을 모으라고 합니다. 그들은 돌무더기를 쌓고 그 곁에서 음식을 먹습니다.

문서로 기록하여 보관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돌무더기와 기둥을 세워 자신들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 증언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 돌무더기에는 이름이 두 개 붙습니다.

라반은 그 돌무더기를 여가르 사하두타라고 불렀고, 야곱은 갈에드라고 불렀습니다.창세기 31:47 · 두루새김

여가르 사하두타(⁨יְגַר שַׂהֲדוּתָא⁩)는 아람어 표현으로, 증언의 돌무더기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갈에드(⁨גַּלְעֵד⁩)는 히브리어로 돌무더기와 증언이라는 말이 연결된 이름입니다. 두 이름의 언어는 다르지만 의미는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라반이 여러 차례 「아람 사람 라반」으로 불립니다(31:20, 24). 이제 두 사람이 돌무더기를 서로 다른 언어로 부르는 장면은 두 집안이 각각 다른 공동체로 갈라져 가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로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최소한 어떤 약속을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공통의 표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스바 — 서로를 그리워하는 기도인가?

돌무더기는 미스바라는 이름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은 미스바라고도 불렸습니다. 라반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때, 여호와야훼께서 나와 너 사이를 지켜보시기를 바란다.」창세기 31:49 · 두루새김

이 표현은 때로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서로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기도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31장의 문맥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야곱과 라반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상태에서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고, 라반은 야곱을 뒤쫓았으며, 야곱은 라반의 행동을 사람들 앞에서 비난했습니다.

더 이상 서로를 직접 감시하거나 상대의 행동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시선은 서로를 위로하며 지켜 주시는 의미보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행동까지 살펴보시는 의미가 강합니다.

「네가 내 딸들을 괴롭히거나 내 딸들 말고 다른 아내들을 맞아들인다면…… 우리 곁에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와 너 사이의 증인이시라는 것을 명심하여라.」창세기 31:50 · 두루새김

여기서 「괴롭히거나」라는 말은 딸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가리키고, 다른 아내를 더 맞아들이는 일도 따로 언급됩니다. 라반은 자신이 멀리 떨어져 있게 되면 그 일을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릅니다.

라반은 앞서 딸들에게서 자신들의 몫을 빼앗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야곱에게 조건을 내겁니다. 이것이 라반의 진심 어린 염려인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요구인지, 두 가지가 함께 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행동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자리까지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는 언약입니다.

조금 더 깊이

벧엘에서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잠에서 깨어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표지였습니다(28:18–22). 길르앗에서는 라반과의 언약을 맺기 위해 돌을 세웁니다. 돌무더기는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인이 됩니다.

서로를 해치려고 넘지 않을 경계

창세기 31:51–53 본문 →

라반은 돌무더기와 기둥을 가리키며 언약의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돌무더기와 돌기둥이 증인이다. 나는 너를 해치려고 이 돌무더기를 넘어 네게 가지 않을 것이고, 너도 나를 해치려고 이 돌무더기와 돌기둥을 넘어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창세기 31:52 · 두루새김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해치려고」입니다. 두 사람은 절대로 이 돌무더기를 넘어갈 수 없다고 맹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해칠 목적으로 그 경계를 넘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라반이 야곱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라반은 야곱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사람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인간 사이의 구체적인 합의로 이어진 것입니다.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준 과거를 모두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한 가지 약속에는 동의합니다.

완전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았더라도, 더 이상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경계는 세울 수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두고 맹세했는가?

라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신과 나홀의 신, 곧 그들 아버지의 신들께서 우리 사이를 판결하시기를 바란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는 분을 두고 맹세했습니다.창세기 31:53 · 두루새김

앞서 야곱은 「이삭이 두려워하는 분」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경외하던 하나님을 가리켰습니다(31:42). 여기서는 언약의 증인으로 그분을 부릅니다.

두 사람은 하나의 돌무더기를 세웠고, 서로 해치지 않겠다는 언약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신적인 증인으로 부르는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언약이 두 사람이 완전히 동일한 신앙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선언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아브라함의 신과 나홀의 신이 나란히 등장하고, 이어서 그들 아버지의 신들이 언급됩니다. 히브리어에는 복수 형태의 표현과 동사가 사용됩니다. 따라서 라반이 아브라함과 나홀의 하나님을 같은 존재로 이해했는지, 서로 다른 신들을 함께 부른 것인지를 문법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이 문제를 하나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먹은 마지막 식사

창세기 31:54 본문 →

이 장은 뜻밖에도 식사 장면으로 끝납니다.

야곱은 산에서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친척들을 불러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고 그 산에서 밤을 보냈습니다.창세기 31:54 · 두루새김

제물을 바치는 일과 함께 먹는 식사가 언약의 마무리에 놓입니다.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서로 적대하던 사람들이 최소한 평화로운 관계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내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라헬이 훔친 드라빔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실을 그대로 남겨 둔 채 식사를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 먹습니다.

돌무더기 곁에서 맞이한 밤

창세기 31:1–54 본문 →

하나님이 보신다는 사실은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보호의 약속이지만,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요구하는 말이 됩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과거의 고통을 보십니다.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이 앞으로의 행동을 지켜보시는 증인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과거와 미래를 함께 아우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너무 쉽게 성공이나 풍요와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야곱의 모든 행동이 정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보상하셨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그들의 잘못을 모두 없던 일로 만드는 판결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벧엘에서 하신 약속을 이어 가십니다.

그들은 돌무더기 곁에서 함께 음식을 먹고 그곳에서 밤을 보냅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습니다. 아직 길을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을 뒤쫓았던 사람들은 이제 그와 같은 자리에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돌무더기가 놓여 있습니다. 그 돌들은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라반과 야곱이 더 이상 서로를 볼 수 없게 될 때에도, 그들이 한 약속을 지켜보실 분이 계십니다.

그날 밤 산 위에는 야곱의 천막과 라반의 천막이 함께 서 있었습니다.

낮에는 서로를 따져 물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한 채 같은 산에서 잠을 청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