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34장

이 장의 자리 · 25–36장 · 이삭과 야곱

누이의 수치를 갚는다며 성읍을 약탈하다

창세기 34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은 디나입니다. 그런데 정작 디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디나에 관해 말하지만, 아무도 디나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사건의 전개입니다. 처음에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성읍의 모든 남자가 죽고, 여자들과 아이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한 사람에게 가해진 폭력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삼키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누이의 수치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다른 집안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까지 고통을 가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창세기 34장은 이 질문들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의 말이 옳은지 명확하게 판정하는 해설을 덧붙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과 명분을 내세우는 과정을 보여 주고, 마지막에는 답을 주지 않은 채 이야기를 끝냅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734장 본문 읽기 →

디나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디나가 보러 나갔다

창세기 34:1–4 본문 →

이야기는 디나의 행동으로 시작합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창세기 34:1 · 본디새김

그가 왜 나갔는지, 누구를 만나려고 했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디나가 경솔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위험을 자초했다는 식으로 읽는 것은 본문에 없는 판단을 덧붙이는 일입니다.

오히려 이야기의 시선은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갑니다.

그 땅의 우두머리인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 세겜이 그녀를 보았다. 그는 그녀를 붙잡아 범하고 욕보였다.창세기 34:2 · 본디새김

첫 절에서 디나는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습니다. 두 번째 절에서 세겜은 디나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보다’라는 행동 뒤에 이어지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디나의 경우에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거나 살펴보려는 외출이 묘사됩니다. 세겜의 경우에는 한 여자를 보고, 붙잡고, 범하고, 욕보이는 행동이 이어집니다. 본문은 세겜의 행동을 디나에게 가해진 심각한 침해로 제시합니다.

그의 마음은 야곱의 딸 디나에게 매였다. 그는 그 아가씨를 사랑했고, 그 아가씨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창세기 34:3 · 본디새김

본문은 세겜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가 디나에게 한 일을 취소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내용을 연속해서 배치함으로써 세겜의 감정과 행동 사이의 불편한 모순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세겜의 감정이 진실했을 가능성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진실하다는 것과 행동이 옳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디나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세겜이 자기 아버지 하몰에게 말했다. 「이 아가씨를 제 아내로 데려와 주십시오.」창세기 34:4 · 본디새김

여기서 세겜이 요청하는 상대는 디나가 아닙니다. 자기 아버지입니다. 고대의 혼인은 개인 사이의 결합일 뿐 아니라 가족들 사이의 협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에게 혼인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하는 형식 자체가 당시의 관습과 동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세겜은 이미 디나의 의사와 존엄을 침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도 그녀 자신의 의사를 묻기보다 아버지를 통해 그녀를 아내로 얻으려고 합니다.

세겜은 디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야기가 실제로 보여 주는 것은 그가 디나를 자기 뜻대로 취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차이는 이후의 모든 협상을 읽는 출발점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은 세겜의 행동을 세 개의 동사로 연속해서 묘사합니다. 여자를 취하는 것, 동침하는 것, 그리고 욕보이거나 굴욕을 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단순히 두 사람이 동의하여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마음이 매였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그의 ‘생명’이나 ‘마음’이 그녀에게 달라붙었다는 강한 애착의 언어입니다. 창세기 2:24에서 남자가 아내와 결합한다는 표현을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서는 정당한 결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폭력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가 다정하게 말을 건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어의 관용구는 상대의 마음에 말을 건넨다는 뜻으로, 위로나 설득의 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세겜이 디나를 위로하려 했을 수도 있고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침묵하는 아버지와 분노하는 아들들

창세기 34:5–12 본문 →

야곱은 딸이 겪은 일을 듣습니다.

야곱은 세겜이 자기 딸 디나를 더럽혔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아들들은 들판에서 그의 가축과 함께 있었다. 야곱은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침묵했다.창세기 34:5 · 본디새김

충격 때문에 말을 잃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들들이 돌아온 뒤 가족이 함께 대응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지역 유력자의 집안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행동하지 않으려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야곱의 침묵을 곧바로 무관심이나 비겁함으로 단정하는 것도, 신중하고 지혜로운 판단이었다고 칭찬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몰은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해 야곱과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야곱의 아들들이 돌아옵니다.

그들의 반응은 아버지와 전혀 다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소식을 듣고 들판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비통해하며 몹시 분노했다. 세겜이 야곱의 딸과 동침하여 이스라엘 안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창세기 34:7 · 본디새김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들이 분노한 까닭을 단순히 가족의 명예가 손상되었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겜 쪽이 얼마나 많은 혼인 대가를 제안할 수 있는지와 관계없이, 이미 저질러진 행동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입니다.

아직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나 제도화된 민족 공동체가 된 시점은 아닙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라는 표현은 야곱의 집안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훗날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관점을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이 비통해하고 분노하는 동안, 하몰의 협상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하몰은 아들이 디나를 사랑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혼인을 제안합니다.

「우리와 혼인 관계를 맺으십시오. 여러분의 딸들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 딸들을 데려가십시오.」창세기 34:9 · 본디새김

그가 제안하는 것은 세겜과 디나 한 쌍의 혼인만이 아닙니다. 두 집안 사이의 지속적인 혼인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은 여러분 앞에 열려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살고, 이 땅에서 장사하며, 이곳에 땅을 소유하십시오.」창세기 34:10 · 본디새김

야곱은 이제 막 세겜 부근에 정착한 외부인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에는 많은 가축과 재산이 있었지만, 지역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안정성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지역 유력자가 혼인 관계와 경제적 기회를 함께 제안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몰은 디나의 사건을 두 집안이 맺는 커다란 결합의 계기로 만들려 합니다.

「혼인 대가와 선물을 제게 아주 많이 요구하십시오. 제게 말씀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아가씨를 제 아내로 주십시오.」창세기 34:12 · 본디새김

고대의 혼인 대가는 신랑 측에서 신부 집안에 제공하는 재산이나 물품 등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세겜은 여기에 별도의 선물까지 더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을 얼마든지 내겠다는 의사가 이미 일어난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몰과 세겜의 제안에는 결혼, 경제적 이익, 가문 간 결합에 관한 말이 풍부합니다. 그러나 세겜이 저지른 일을 분명히 잘못이라고 인정하거나 디나의 의사를 확인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제안하지만, 정작 피해를 입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협상에서 들리지 않습니다.

그 공백 속에서 야곱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계획을 세웁니다.

언약의 표징이 속임수의 도구가 되다

창세기 34:13–19 본문 →

13절은 독자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미리 알려 줍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임수로 대답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세겜이 그들의 누이 디나를 더럽혔기 때문이다.창세기 34:13 · 본디새김

하몰과 세겜은 혼인 조건을 협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독자는 야곱의 아들들이 이미 그들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들들이 내놓는 조건은 할례입니다.

그들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누이를 할례받지 않은 남자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수치이기 때문입니다.」창세기 34:14 · 본디새김

앞에서는 세겜이 디나를 욕보인 일이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받지 않은 남자에게 누이를 주는 것이 자신들에게 수치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남자의 할례를 그 언약의 표징으로 주셨습니다(창세기 17:9–14). 따라서 할례는 야곱의 집안에 단순한 외모나 지역 풍습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속한 표징입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야곱의 아들들은 그 표징을 협상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다만 이 조건으로만 여러분에게 동의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남자가 모두 할례를 받아 우리처럼 된다면,」 「우리 딸들을 여러분에게 주고, 여러분의 딸들을 우리에게 데려오겠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살며 한 백성이 되겠습니다.」창세기 34:15–16 · 본디새김

표면적으로 보면 이 제안은 두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길을 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13절에서 이미 밝혀진 것처럼 그들은 속이고 있습니다. 할례가 이루어지더라도 실제로 한 백성이 되어 평화롭게 살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나타내는 표징이 사람을 무방비하게 만들어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안을 정당화할 때 거룩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그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속임수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계획을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고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승인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몰과 세겜은 그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그 젊은이는 그 일을 실행하는 데 지체하지 않았다. 야곱의 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집안 누구보다 존중받는 사람이었다.창세기 34:19 · 본디새김

세겜은 아버지의 집안에서 존중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이 디나를 욕보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지위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의 요구를 이루기 위해 할례를 받아들일 만큼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그 적극성을 앞서 저지른 잘못에 대한 진정한 책임 의식과 동일시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사건은 두 집안 사이의 협상을 넘어 성읍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한 백성이 되자는 말 뒤에 숨어 있는 계산

창세기 34:20–24 본문 →

하몰과 세겜은 성읍 성문으로 갑니다.

고대 성읍의 성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중요한 공적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몰과 세겜은 성읍 사람들에게 야곱의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자고 설득합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 살며 여기서 장사하게 합시다. 보십시오. 그들 앞에 땅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들의 딸들을 우리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을 그들에게 줍시다.」창세기 34:21 · 본디새김

하지만 이번 장에서 ‘우호적’이라는 평가는 극적인 반어가 됩니다.

하몰과 세겜은 상대를 평화로운 사람들로 알고 있습니다. 독자는 그들이 이미 속임수를 계획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성읍의 지도자는 평화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폭력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모든 짐승이 우리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 동의하기만 합시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 것입니다.」창세기 34:23 · 본디새김

야곱에게는 이 땅에서 살고 장사하고 재산을 소유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성읍 사람들에게는 야곱 집안의 가축과 재산이 결국 자기들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재산 취득을 뜻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혼인과 경제적 결합으로 재산을 공유하거나 자기들의 영향력 아래 두게 될 것이라는 계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기대를 드러낸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한 백성이 되겠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상대를 공격하려 합니다. 하몰과 세겜은 한 백성이 되자고 말하면서 자기 성읍 사람들에게 상대의 재산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양쪽 모두 공동체의 결합을 이야기하지만 그 말 뒤에는 서로 다른 계산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몰과 세겜이 야곱의 아들들처럼 집단 살해를 계획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두 집단의 의도와 행동을 같은 수준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양쪽 모두 상대를 자기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그 성읍 성문을 나서는 모든 사람이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따랐다. 모든 남자, 곧 그 성읍 성문을 나서는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았다.창세기 34:24 · 본디새김

그러나 그들 각자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세겜이 디나에게 한 일을 모두 알고 있었는지, 각자 어떤 동기로 할례를 받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읍의 모든 남자가 세겜의 폭력에 동의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알려진 것은 야곱의 집안과 하나가 되는 데 할례가 필요하다는 지도자들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결정으로 인해 무방비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누이를 데려오고, 다른 집안의 여자들을 포로로 잡다

창세기 34:25–29 본문 →

사건은 셋째 날에 폭발합니다.

셋째 날, 그들이 통증을 겪고 있을 때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형제인 시므온과 레위가 저마다 자기 칼을 들었다. 그들은 무방비 상태인 성읍을 덮쳐 남자를 모두 죽였다.창세기 34:25 · 본디새김

시므온과 레위는 자신들이 제시한 조건을 상대가 이행한 결과를 공격의 기회로 삼습니다. 속임수로 상대를 특정한 상태에 놓이게 하고, 그 상태를 이용하여 공격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칼날로 죽이고, 세겜의 집에서 디나를 데리고 나왔다.창세기 34:26 · 본디새김

그들이 누이를 위해 행동했다는 주장의 실제적인 근거가 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죽임당한 사람들에게 다가와 성읍을 약탈했다. 그 성읍 사람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혔기 때문이다.창세기 34:27 · 본디새김

25–26절에서는 시므온과 레위가 직접 등장합니다. 그런데 27절에서는 더 넓은 표현인 ‘야곱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모든 아들이 정확히 어떤 행동에 참여했는지는 상세하게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술은 두 사람의 공격 이후 다른 아들들까지 관여한 성읍 약탈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재산을 모두 약탈하고, 그들의 아이들을 모두 포로로 잡고 아내들도 포로로 잡아갔다. 집 안에 있는 것도 모두 약탈했다.창세기 34:29 · 본디새김

처음에는 세겜이 디나를 자기 뜻대로 붙잡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야곱의 아들들이 성읍의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아갑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누이 디나를 욕보인 일을 이유로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노의 결과로 다른 집안의 여자들과 아이들이 가족을 잃고 자유를 빼앗깁니다.

누이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존엄을 파괴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성읍의 모든 남자가 디나를 범한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세겜 한 사람의 범행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27절에서 성읍 사람들이 누이를 더럽혔다고 말하는 것은 복수의 이유를 공동체 전체로 확장하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만으로 성읍의 모든 남자가 동일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시므온과 레위를 영웅으로 칭송하지 않습니다.

승리의 노래도 없습니다.

전리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선언하는 말도 없습니다.

그들이 누이를 데리고 나왔다는 사실은 기록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약탈과 포로 잡는 행동 역시 숨기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들을 단순히 야곱의 아들들이라고 하지 않고 ‘디나의 형제’라고 소개합니다. 창세기 29–30장에서 레아는 야곱에게 시므온과 레위와 디나를 낳았습니다. 따라서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입니다. 하지만 가까운 가족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디나가 이때까지 세겜의 집에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감금되어 있었는지, 세겜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야곱과 아들들이 서로 다른 문제를 말하다

창세기 34:30–31 본문 →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꾸짖습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했다. 「너희는 나를 이 땅 주민들, 곧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에게 악취 나는 자로 만들어 곤경에 빠뜨렸다. 내게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대적해 모여들어 나를 칠 것이고, 그러면 나도 내 집안도 멸망할 것이다.」창세기 34:30 · 본디새김

야곱의 집안은 많은 가축을 가진 부유한 집안이지만, 지역 주민 전체와 싸울 만큼 큰 군사 집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한 성읍을 공격했으니, 주변의 다른 성읍 사람들이 보복하거나 연합해서 공격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은 현실적입니다.

더구나 야곱은 이제 막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땅이지만, 현재 그가 소유한 것은 아주 작은 부분뿐입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변 주민들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눈여겨볼 만한 공백이 있습니다.

그는 아들들이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였다는 사실을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아간 일도 구체적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또한 디나가 겪은 일과 그 고통에 대해서도 이 자리에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의 관심은 당장 자기 집안이 처하게 된 위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들들도 아버지의 우려에 답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처럼 다루어도 된다는 말입니까?」창세기 34:31 · 본디새김

야곱은 아들들이 저지른 폭력의 결과를 말합니다. 아들들은 자신들의 폭력을 일으킨 원인을 말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대가 제기한 문제에 충분히 답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의 질문에는 정당한 항의가 담겨 있습니다. 디나는 세겜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물건이 아닙니다. 그가 한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누이를 창녀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성읍의 모든 남자를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아도 된다는 결론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습니다. 아들들은 그 간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 가지 옳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다른 문제에 답하는 일을 피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34장은 여기서 끝납니다.

야곱의 마지막 답변도 없습니다. 디나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했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누군가의 통쾌한 승리로 끝내지 않고, 대답되지 않은 질문으로 끝냅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 34장 안에서는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을 직접 평가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창세기 뒤쪽에서 다시 언급됩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에게 말을 남길 때 시므온과 레위를 함께 부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다.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다.」 (창세기 49:5의 뜻) 그리고 그들의 분노가 사납고 격렬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그들의 모의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선언합니다(창세기 49:5–7). 특히 야곱은 그들의 분노를 저주합니다. 이것은 시므온과 레위가 누이의 고통에 분노한 것 자체를 부정한다는 뜻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분노가 잔혹한 폭력으로 나타난 것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창세기 49장의 발언만으로 34장에서 야곱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있었다고 소급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 장면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야곱이 실제로 한 말을 각각 전합니다. 그러나 정경 안에서 함께 읽으면,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을 무조건 정당한 복수로 칭송하는 해석에는 분명한 제동이 걸립니다.

분노가 지키려던 것을 파괴할 때

창세기 34:1–31 본문 →

분노의 출발점은 분명했지만, 그 분노가 만들어 낸 피해는 처음의 범행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본문은 폭력이 어떻게 자신의 명분을 확장해 가는지 보여 줍니다. 이 장의 핵심은 잘못에 분노하는 일이 정당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분노에서 나온 모든 행동이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보는 데 있습니다.

물론 디나가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그의 발언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가 실제로 침묵했다는 사실은 구별해야 합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집안이 위험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들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처럼 다루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성경은 이 사실을 독자에게 직접 해설해 주지 않습니다. 대신 야곱의 두려움과 아들들의 분노를 서로 마주 세워 놓은 채 이야기를 끝냅니다.

처음에는 한 여자의 존엄이 짓밟혔습니다. 마지막에는 또 다른 여자들과 아이들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립니다.

디나의 이야기는 그녀가 무엇을 말했는지 전하지 못한 채, 그녀를 위한다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남깁니다.

그것이 창세기 34장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무거운 침묵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