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2장 · 물고기 배 속 기도

가장 깊은 곳에서도 들리는 기도

요나가 하나님께 처음으로 기도하는 장소는 성전도, 예언자의 집도 아닙니다. 물고기의 배 속입니다. 바다 깊은 곳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내려갔던 사람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런데 요나의 기도에는 뜻밖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니느웨로 가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고, 죽음에서 건지셨다고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마음까지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생명을 돌려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요나가 그 생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읽는 시간 14분소단락 72장 본문 읽기 →

물고기의 배 속에서 시작된 구원

요나 2:1–2 본문 →

여호와야훼가 요나를 삼키도록 큰 물고기를 마련했다. 요나는 그 물고기의 배 속에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 있었다.요나 2:1 · 본디새김

요나가 바다에 던져진 뒤, 이야기는 그의 죽음을 알리는 대신 하나님의 새로운 행동을 기록합니다.

본문은 물고기를 자연스럽게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준비하셨다고 말합니다. 요나서에서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생물과 자연 현상까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물고기는 요나를 삼키는 위협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를 보존하는 수단입니다.

요나는 물고기에게 삼켜졌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물고기에게 삼켜졌기 때문에 바다에서 살아남습니다.

그곳은 자유로운 장소가 아닙니다. 바다를 건널 수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요나를 죽음에서 지켜 주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은 요나에게 즉각적인 해방보다 먼저 생명의 보존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닫힌 공간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 일어납니다.

요나는 물고기의 배 속에서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 기도했다.요나 2:2 · 본디새김

앞서 선장은 요나에게 기도하라고 요청했지만, 그가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그에게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는데, 요나는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달아났던 요나가 다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관계를 끊으려 했던 사람의 입에서 관계를 전제하는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일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는 표징으로 사용하십니다(마태복음 12:40). 이것은 예수님께서 요나의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 유형론적 연결입니다. 요나 2장 자체는 먼저 죽음의 깊이에서 생명을 건지시는 여호와야훼를 노래하는 기도로 읽어야 합니다.

스올의 배 속에서 들으신 하나님

요나 2:3–4 본문 →

그가 말했다. 「저는 제게 닥친 괴로움 속에서 여호와야훼께 외쳤고, 그분은 제게 대답하셨습니다. 스올의 배 속에서 제가 도움을 청하며 부르짖었고, 당신은 제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요나 2:3 · 본디새김

요나의 기도는 도움을 구하는 간청이 아니라, 이미 받은 도움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요나는 아직 물고기 안에 있습니다.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미 구원을 경험한 사람처럼 감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흐름에서 보면 그는 바다에 빠져 죽음에 가까워졌던 순간과, 자신이 지금 살아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돌아보고 있습니다. 육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죽음에 내맡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 있으면서 스올의 배 속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노래합니다. 따라서 그가 실제로 죽었다가 되살아났다고 이 표현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죽음에 이를 뻔했던 경험을 죽음의 세계에 내려간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도달한 가장 깊은 곳은 하나님의 귀에 가장 먼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시편의 기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시편 18:6에서 고난에 처한 사람은 여호와야훼께 부르짖고, 자신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성전에 이르렀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116:3–4에서도 죽음의 줄과 스올의 고통에 붙잡힌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릅니다.

4절에서 요나는 자신의 고난을 더욱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연결합니다.

「당신은 저를 바다 한가운데 깊은 곳으로 내던지셨고, 물살이 저를 에워쌌습니다. 당신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제 위를 지나갔습니다.」요나 2:4 · 본디새김

실제로 요나를 바다에 던진 사람은 선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께 「당신은 저를 … 내던지셨고」라고 말합니다. 그 사건 너머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또한 파도를 「당신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라고 부릅니다. 바다는 자신을 위협하는 힘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시편 42:7의 「당신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라는 고백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시편의 화자 역시 물결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해진 사람이 그 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2절에서는 요나가 ‘물고기의 배 속’에 있다고 말하고, 3절에서는 자신이 ‘스올의 배 속’에서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의 두 표현은 ‘배 속’을 나타내는 낱말이 서로 다르지만, 이야기 안에서는 두 공간이 나란히 놓입니다. 하나는 그가 현재 살아 있는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죽음에 가까워졌던 상황을 표현하는 장소입니다.

쫓겨났다고 생각한 사람의 새로운 시선

요나 2:5 본문 →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눈앞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바라보겠습니다.』」요나 2:5 · 본디새김

요나가 바다 깊은 곳에서 느낀 것은 단지 죽음의 공포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벗어나려고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쫓겨났다고 느낍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하나님과 멀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경험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이 방향을 바꿉니다.

본디새김은 앞 문장과 대조되는 희망의 선언으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다고 느끼면서도 하나님께 향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성전은 단순한 종교 건물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장소였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라도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기를 구했습니다(열왕기상 8:46–49).

그는 물고기 안에 있습니다. 눈으로 성전을 볼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런데도 성전을 향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 장소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분께 자신의 마음을 돌리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은 ‘그래도 다시 바라보겠다’는 긍정적인 다짐으로 읽을 수 있고, 모음 표기를 달리 이해하면 ‘어떻게 다시 바라볼 수 있겠는가?’라는 절망의 물음으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산들의 밑동과 땅의 빗장 — 죽음의 끝에서 끌어 올리시다

요나 2:6–8 본문 →

「물이 목숨을 위협할 만큼 저를 휘감았고, 깊은 바다가 저를 에워쌌습니다. 물풀이 제 머리에 감겨 있었습니다.」요나 2:6 · 본디새김

요나의 기도는 여기서 추상적인 고난의 표현을 벗어나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 줍니다.

이 장면에서는 소리도, 빛도, 방향도 사라지는 듯합니다. 요나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위로 올라갈 힘도, 밖으로 헤엄쳐 나갈 길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다의 깊이를 묘사하는 표현이 한층 더 내려갑니다.

「저는 산들의 밑동까지 내려갔습니다. 땅의 빗장들이 저를 영원히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 저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제 생명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셨습니다.」요나 2:7 · 본디새김

‘내려갔다’는 말이 ‘끌어 올리셨다’는 말로 바뀝니다.

요나가 내려갈 수 있는 곳에는 끝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 올리실 수 있는 능력에는 그 깊이가 한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을 부르게 된 순간을 돌아봅니다.

「제 안에서 제 목숨이 스러져 갈 때, 저는 여호와야훼를 기억했습니다. 제 기도가 당신께,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이르렀습니다.」요나 2:8 · 본디새김

구약에서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표현은 그분이 누구신지 떠올리고 다시 그분을 의지하는 행동과 연결됩니다. 요나는 이전에도 여호와야훼가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 깊은 곳에서 그 지식은 살아남기 위한 기도로 바뀝니다.

5절에서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8절에서는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에게서 쫓겨났다고 느꼈지만, 자신의 기도는 하나님께 도달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요나의 기도는 그 간구가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성전을 향해 걸어갈 수 없는 사람도 성전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네페시(⁨נֶפֶשׁ⁩)는 여기서 인간의 몸과 분리된 영혼이 아니라 죽음의 위협 아래 놓인 생명, 곧 목숨을 가리킵니다. 고대의 시적 세계에서 산의 밑동은 땅과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나가 실제로 해저의 어느 지형까지 내려갔는지를 설명하려는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돌아올 수 없다고 느끼는 극한의 깊이를 묘사하는 언어입니다. 빗장은 문을 걸어 잠그는 장치입니다. 요나는 마치 자신이 땅 아래의 세계에 갇혀,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합니다. 「영원히」라는 표현은 죽음 앞에서 느낀 절망을 극대화합니다. 여기서 「구덩이」는 앞서 말한 스올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구약의 시편에서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스올이나 구덩이에서 건지셨다는 고백이 나옵니다(시편 30:3; 103:4).

허망한 헛것과 인애 — 요나의 고백이 남기는 질문

요나 2:9–10 본문 →

「허망한 헛것들을 붙드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인애를 저버립니다.」요나 2:9 · 본디새김

요나의 기도는 여기서 갑자기 다른 사람들에 관한 말로 바뀝니다.

시편 31:6에도 같은 표현이 나타납니다. 그 시편에서는 허망한 헛것을 붙드는 사람들과 여호와야훼를 신뢰하는 사람이 대조됩니다. 요나의 말도 이런 신앙 고백의 전통 안에 있습니다. 참으로 의지할 분은 여호와야훼이지, 사람이 붙드는 헛된 대상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장의 뒤쪽이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인애’에 해당하는 헤세드(⁨חֶסֶד⁩)는 사랑이나 친절을 넘어 신실함, 관계에 대한 충실함, 변함없는 호의를 가리킬 수 있는 낱말입니다. 문제는 ‘자기들의 인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확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시는 인애를 저버린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헛된 것에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신실한 호의를 외면하는 셈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마땅히 지켜야 할 신실함이나 인애를 버린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헛된 것을 붙드는 행동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충실함을 포기하는 일이 됩니다.

두 읽기 모두 문맥에서 고려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인애의 주체와 대상을 명시하지 않으므로 한쪽으로만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요나는 헛된 것을 붙드는 태도와 참된 인애를 잃는 일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이방 선원들은 여호와야훼를 향해 부르짖고 제물을 바쳤습니다. 요나의 「허망한 헛것들을 붙드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이미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바친 선원들의 모습과 긴장을 이룹니다.

그런데 독자는 요나가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인애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인애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 긴장 속에서 요나의 마지막 선언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감사의 소리를 내며 당신께 제물을 잡아 바치겠습니다. 제가 서원한 것을 이행하겠습니다. 구원은 여호와야훼께 속합니다.」요나 2:10 · 본디새김

선원들은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바치고 서원을 했습니다(1:16). 요나는 이제 자신도 제물을 바치고 서원을 이행하겠다고 말합니다.

선원들에게서는 실제로 행한 일이었고, 요나에게서는 앞으로 행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구원은 여호와야훼께 속합니다」라는 선언은 시편 3:8의 선언과도 직접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구원의 근원과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구원할 물고기를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요나가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물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선언에서 요나서 전체의 신학적 긴장이 시작됩니다.

구원이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인지 결정하는 권한도 궁극적으로 여호와야훼께 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구원받은 일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넘어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려 할 때에도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 질문은 이 장에서 답을 얻지 못합니다. 요나의 기도는 구원의 주권을 정확하게 고백한 자리에서 끝나고, 이야기는 그 고백의 의미를 앞으로 시험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는 서원한 것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서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니느웨로 가겠다는 서원이라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문맥상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예배의 약속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시편 116:12–18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여호와야훼께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는지 묻고, 감사의 제사와 서원의 이행을 약속합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인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요나 2:11 본문 →

여호와야훼가 물고기에게 말하자, 물고기는 요나를 마른 땅으로 토해 냈다.요나 2:11 · 본디새김

요나의 긴 기도가 끝나자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간결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지, 물고기가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따른 결과만 기록됩니다.

물고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행동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달아났습니다.

이야기의 세계에서 바람과 바다와 물고기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존재는 오히려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마른 땅’은 요나의 앞선 고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바다와 마른 땅을 만드신 여호와야훼를 믿는다고 말했습니다(1:9). 이제 그 하나님께서 요나를 바다에서 마른 땅으로 돌려놓으십니다.

하나님에 관해 알고 있던 사실이 요나 자신의 생명을 통해 경험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그의 사명이 완수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물고기에서 나왔지만 아직 니느웨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은 돌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처음 받은 명령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과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

요나 2:1–11 본문 →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알았습니다. 시편의 언어로 찬양할 줄 알았고,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처음 거부한 하나님의 명령은 기도 안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 침묵만으로 요나의 회개가 거짓이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의 내면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요나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 감사가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이어질지 열어 둡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요나가 하는 말은 없습니다.

앞에서는 그토록 길게 기도하던 사람이 이제 침묵합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물고기가 움직입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머리를 휘감는 물풀도, 그를 가두는 바닷속의 빗장도 없습니다. 발을 디딜 땅이 있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요나는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그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어디를 향해 걸어갈 것인지가 남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