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제사의 종류
하나님과 함께하는 식탁의 경계
레위기 3장을 읽다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인데, 정작 제단에서 태우는 것은 짐승의 일부뿐입니다. 내장을 덮은 지방과 콩팥 주변의 지방, 간에 붙은 부속 부분이 자세히 열거됩니다. 양을 바칠 때에는 기름진 꼬리 전체까지 더해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 모든 규정을 압축하는 한 문장이 등장합니다. 「모든 지방은 여호와야훼의 것이다.」 제물의 어느 부분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선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제물 전체가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라면, 왜 굳이 특정한 부분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따로 선언할까요?
레위기 3장의 제물은 「친교 제물」입니다. 히브리어로 제바흐(זֶבַח) 셸라밈(שֶׁלֶם)이라고 합니다. 제바흐는 짐승을 잡아 바치는 제사를 가리키고, 셸라밈은 평안과 온전함을 뜻하는 샬람 계열의 말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는 전통적으로 화목제, 평화제, 친교 제물 등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이름만으로 어떤 의미의 평화를 가리키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제사인지, 이미 누리고 있는 평안을 기뻐하는 제사인지, 혹은 감사와 서원의 이행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제사인지는 실제 규정을 통해 살펴야 합니다.
레위기 7:11–18은 이 제물이 감사, 서원, 자원하는 예물과 관련하여 드려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제물의 고기를 먹는 규정도 제시합니다.
이 점에서 친교 제물은 앞선 두 장의 제사와 구별됩니다. 번제에서는 제물의 몸체 전체가 태워지고, 곡식 제물에서는 일부를 태운 뒤 나머지가 제사장에게 돌아갑니다. 친교 제물에서는 정해진 부분을 하나님께 태워 올리고,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몫 외에 제물을 바친 사람도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레위기 3장 자체에는 아직 그 식사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장의 관심은 그보다 앞선 단계에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바친 제물을 함께 먹을 수 있다면, 그 식탁에서 무엇을 먼저 구별해야 합니까?
수컷도 암컷도 바칠 수 있다
「『그의 제물이 친교 제물이라면, 그가 소를 바칠 경우에는 수컷이든 암컷이든 흠 없는 것을 여호와야훼 앞에 바쳐야 한다.』」레위기 3:1 · 본디새김
앞서 번제의 소와 양에는 흠 없는 수컷이라는 조건이 주어졌습니다(레위기 1:3, 10). 그런데 친교 제물에는 암컷도 허용됩니다.
변하지 않는 조건은 「흠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차이는 제물의 적합성이 모든 제사에서 하나의 동일한 기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공통점이 있어도 제사의 종류에 따라 구체적인 규정은 달라집니다.
「『그는 자기 제물의 머리에 자기 손을 얹고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그것을 잡아야 한다.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은 피를 제단의 사방에 끼얹어야 한다.』」레위기 3:2 · 본디새김
머리에 손을 얹고, 짐승을 잡고, 피를 제단 사방에 끼얹는 절차는 번제와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3장은 이 제사가 속죄를 이루기 위해 받아들여진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죄를 범했을 때 드려야 하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피를 사용하는 제사라는 사실만으로 친교 제물의 목적을 죄의 용서에 한정해서는 안 됩니다. 독자는 이 제사의 고유한 의미를 다른 부분에서도 찾아야 합니다.
그 단서는 이어지는 지방의 규정에 있습니다.
짐승의 몸에서 구별된 부분
「『그는 친교 제물 가운데서 여호와야훼에게 불 제물로 내장을 덮은 지방과 내장 위의 모든 지방과,』」 「『두 콩팥과 그 위에 있는 허리 쪽의 지방과 간에 붙은 부속 부분을 바치되, 그 부속 부분은 콩팥들과 함께 떼어 내야 한다.』」레위기 3:3–4 · 본디새김
이 목록은 현대 독자에게 다소 낯섭니다.
우리는 고기를 생각할 때 등심이나 갈비, 다리처럼 식용 부위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3장은 내장을 덮은 지방과 콩팥 주변의 지방, 간에 붙은 부분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우선 구별해야 할 것은 짐승의 몸에 있는 모든 지방과 제사용으로 특별히 떼어 내는 지방입니다. 실제로 떼어 내어 제단에 태워야 하는 특정한 부위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질 부분이 명확하게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그것을 구별하고, 제사장은 제단에 올립니다.
여기서 지방이 특별히 기름지고 풍부한 부분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하나님께 좋은 몫을 드린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지방을 택하신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들은 여호와야훼의 것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의 몫이 될 수 없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을 제단에서, 불 위의 장작 위에 놓인 번제 위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이는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내는 불 제물이다.』」레위기 3:5 · 본디새김
이는 친교 제물이 번제와 전혀 무관한 별도의 장소에서 시행되는 의식이 아니라, 같은 제단의 제사 질서 안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모든 친교 제물에 반드시 별도의 새로운 번제를 먼저 드려야 한다는 규정을 도출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제단에 이미 놓여 있는 번제와 친교 제물의 관계를 묘사하지만, 구체적인 모든 상황의 제사 순서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짐승을 소에서 양으로 바꾸면, 제단에 올리는 부분에도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조금 더 깊이
간에 붙은 부속 부분의 정확한 모양과 위치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내도록 규정하지만, 현대 해부학의 어느 부위와 정확히 일치하는지까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콩팥은 인간의 감정을, 간은 욕망을, 지방은 죄를 상징하므로 그것들을 하나님께 태워야 한다는 식의 설명은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양의 기름진 꼬리 전체
양이나 염소를 친교 제물로 바칠 때에도 수컷과 암컷 모두 허용됩니다. 흠 없는 제물을 가져와야 하며, 손을 얹고 잡은 뒤 제사장이 피를 제단 사방에 끼얹습니다.
하지만 양의 규정에는 소의 경우에 없던 것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는 친교 제물 가운데서 그 지방, 곧 기름진 꼬리 전체를 여호와야훼에게 불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는 그것을 등뼈 가까이에서 떼어 내야 한다. 또 내장을 덮은 지방과 내장 위의 모든 지방과,』」레위기 3:9 · 본디새김
이 표현은 고대 근동에서 사육되던 지방이 많이 축적되는 꼬리를 가진 양을 이해할 때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오늘날에도 꼬리나 엉덩이 부위에 많은 지방을 축적하는 양의 유형이 존재합니다.
이는 양의 신체적 특징에 따라 특별히 제단에 올려야 할 몫이 추가된 경우입니다. 소의 경우에 지정된 내장과 콩팥 주변의 지방, 간에 붙은 부속 부분도 그대로 바칩니다.
제물의 종류가 다르면 제단에 올릴 구체적인 부위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제물을 바치는 사람과 제사장의 역할, 피를 다루는 방식, 하나님께 지정된 부위를 태워 올린다는 원칙은 같습니다.
그런데 11절은 지금까지의 설명을 새로운 말로 마무리합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이는 여호와야훼에게 불 제물로 바치는 음식이다.』」레위기 3:11 · 본디새김
하나님은 음식을 드시는가?
이것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도 사람처럼 음식을 드시며, 제단은 하나님께 식사를 제공하는 장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근동의 여러 종교 문화에는 신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제의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성경 전체를 읽으면 하나님을 인간처럼 음식을 필요로 하시는 존재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 50:12–13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배고프시더라도 인간에게 말할 필요가 없으며,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수소의 고기를 먹거나 숫염소의 피를 마시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본문은 제단에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몫을 음식이라는 제의적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 표현을 통해 제사를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예물로 묘사합니다.
제물의 일부는 하나님께 바쳐지고, 나머지는 뒤의 규정에 따라 제사장과 제물을 드린 사람들이 먹습니다. 하나의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면서 사람들의 식사와도 연결됩니다.
이것을 하나님과 인간이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장면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학적 해석입니다. 레위기 3장은 하나님이 제사장이나 제물을 바친 사람과 함께 앉아 음식을 드신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물의 일부를 하나님의 음식으로 부르고 나머지를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는, 이 제사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친교를 표현한다고 읽을 만한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친교의 식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레위기 3장에는 제물을 먹는 사람이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먼저 무엇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 후 레위기 7:11–21에서 비로소 제물의 고기를 먹는 규정이 자세히 나타납니다.
감사로 드리는 친교 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날에 먹어야 하며 다음 날까지 남겨서는 안 됩니다(레위기 7:15). 반면 서원이나 자원하는 제물의 경우에는 드리는 날과 그다음 날에 먹을 수 있습니다(7:16–17). 또한 부정한 상태에서 제물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며, 부정한 것에 닿은 고기도 먹을 수 없습니다(7:19–21).
제사장들에게도 정해진 몫이 있습니다. 레위기 7:28–34에서는 가슴 부분과 오른쪽 뒷다리의 몫에 관한 규정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지방은 제단에서 태워지고,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부분은 정해진 직무에 따른 몫이며, 나머지 고기는 제사의 조건에 따라 먹을 수 있습니다. 같은 제물에서 나오지만 각각의 지위와 사용 방법이 다릅니다.
기쁨과 거룩함은 서로 반대되는가?
이런 제사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므로 친교 제물을 엄숙한 죽음의 의식으로만 묘사한다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신명기 12:7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먹고, 자신들과 가족이 수고하여 얻은 모든 일로 기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신명기 12:17–18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가족과 종들, 레위인들이 함께 먹으며 기뻐하도록 명령합니다.
물론 신명기의 이 규정들을 레위기 3장의 친교 제물과 모든 세부 사항에서 동일한 의식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예물과 하나님 앞에서의 식사가 연결된다는 공통된 주제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자신 앞에서 먹고 기뻐하는 일을 허용하십니다. 하지만 그 식사는 아무런 질서도 없는 무제한적인 소비가 아닙니다. 제물에는 하나님께 속한 부분이 있으며, 사람의 식사에도 지켜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거룩함은 기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기쁨에 마땅한 질서를 부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 이러한 제사의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핀다면, 히브리서 13:15–16의 찬양과 선행과 나눔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로 묘사하는 말씀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는 레위기 3장의 직접적인 인용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와 사람이 서로의 삶에 참여하는 행위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모든 지방은 여호와야훼의 것이다
염소의 규정에서는 양에게 요구되었던 기름진 꼬리 전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내장 주변의 지방과 콩팥, 간에 붙은 부속 부분을 떼어 내어 제단에서 태웁니다. 이는 짐승의 종류에 따라 제단에 올리는 부분에 차이가 있음을 다시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제 제사의 마지막 선언이 달라집니다.
「『제사장은 그것들을 제단 위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이는 흡족한 향기를 내도록 불 제물로 바치는 음식이다. 모든 지방은 여호와야훼의 것이다.』」레위기 3:16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앞에서 세 번에 걸쳐 반복된 세부 규정을 하나로 묶습니다. 왜 내장 위의 지방을 떼어 내야 합니까? 왜 콩팥 주변의 지방을 구별해야 합니까? 왜 양의 기름진 꼬리는 전부 바쳐야 합니까?
그것들이 여호와야훼께 속한 몫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든 지방」은 문맥상 제물에서 떼어 하나님께 태워 올리도록 지정된 지방과 관련됩니다. 모든 음식에 들어 있는 지방 성분 전체를 똑같이 취급하는 말로 곧장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7:23–25에서는 소와 양과 염소의 지방을 먹지 말라는 규정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죽은 짐승이나 맹수에게 찢긴 짐승의 지방은 먹을 수 없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됩니다. 곡식 제물에는 기름을 사용하도록 명령했다는 사실도 이미 레위기 2장에서 확인됩니다.
본문은 지방을 금지하기 전에 그 지방이 누구의 것인지를 선언합니다.
친교란 모든 구별이 사라지는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 가운데 사람에게 허용된 몫이 있다고 해서, 그 제물의 모든 부분을 사람이 자기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몫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몫을 구별하는 일이 친교의 질서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몫을 기다리지 못한 제사장들
사무엘상 2:12–17에는 엘리의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악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제물을 드릴 때 자신들의 종을 보내 고기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고기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지방을 태우기도 전에 자기들이 먹을 고기를 요구합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먼저 지방을 태운 다음에 가져가라고 말하면, 그들은 기다리지 않고 즉시 고기를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거절하면 강제로 빼앗겠다고 협박합니다.
사무엘상 2:15–16의 이 장면은 레위기 3장의 규정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모든 지방은 여호와야훼의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이 범한 잘못은 단순히 식탐이 많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몫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구와 권한을 하나님의 질서보다 앞세웠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이 하나님께 가져온 예물을 정해진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장에게 허용된 몫을 넘어 자기 마음대로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예물을 빼앗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상 2:17은 그들의 죄가 매우 컸으며, 그들이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제물을 멸시했다고 평가합니다. 제사의 절차를 무시한 일이 단순한 의식상의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제물과 하나님께 속한 몫을 침해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몫을 구별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욕구를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다른 사람의 몫까지 함부로 다룰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교는 단지 가까워지는 감정이나 친밀한 분위기로만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존중하고, 그분이 세우신 질서를 지키며,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할 몫을 침해하지 않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단에서 시작된 금지가 모든 거처로 이어지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너희의 모든 거처에서 지킬 영원한 규정이다. 너희는 어떤 지방도 어떤 피도 먹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3:17 · 본디새김
이 절은 앞의 규정과 문장 형태부터 다릅니다.
1–16절은 제물을 바치는 사람과 제사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은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와 모든 거처를 향한 금지 명령입니다.
피와 지방은 같은 이유로 금지되는가?
레위기 3장에서는 피와 지방이 모두 사람의 식용에서 제외되지만, 그 둘에 관해 주어진 설명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피는 제물을 잡은 직후 제사장들이 제단 사방에 끼얹습니다. 지방은 정해진 부분을 떼어 제단에서 태웁니다. 그리고 16절은 지방이 여호와야훼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레위기 3장 자체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를 더 분명하게 밝히는 본문은 레위기 17:10–14입니다. 그곳에서는 생명이 피에 있으며, 하나님이 피를 제단에서 속죄를 이루도록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과 그들 가운데 거류하는 사람들은 피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12:23에서도 피는 생명이라고 말하며,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 본문들을 함께 읽으면 피에 관한 금지는 생명에 관한 신학과 직접 연결됩니다.
지방은 제물 가운데 특별히 여호와야훼에게 돌아가는 몫으로 지정됩니다. 피는 생명과 연결되어 제단에서 특별하게 다루어집니다. 두 부분 모두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구별을 설명하는 성경의 언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단 밖의 삶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몫을 존중한다
17절에서 특별히 주목할 표현은 「너희의 모든 거처에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장막과 집에서 살아갑니다. 가족들과 음식을 먹고, 일상을 이어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피와 지방에 관한 규정이 그 생활의 자리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몫을 인정하면서 일상에서는 그 구별을 무시한다면, 그 제사를 통해 배우는 질서가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레위기 3장의 마지막 절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존중하는 일이 예배의 장소에만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이 규정을 오늘날 모든 문화권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레위기 3장만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 명령은 우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제사 및 음식 규정이며, 후대에 이 규정이 어떻게 이해되고 적용되는지는 별도의 정경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몫은 제단 앞에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3장에는 죄를 고백하는 장면이나 용서를 선언하는 문장이 없습니다. 반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가 있고, 하나님께 속한 부분이 구별되며, 그 제물의 나머지를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후속 규정이 있습니다. 레위기 7장에서 친교 제물이 감사와 서원 및 자원하는 제물로 드려진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이 제사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감사와 헌신, 기쁨을 표현하는 제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친교 제물을 오직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 치르는 제사로 한정하는 것도, 이미 완전한 평안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드리는 축하 의식으로만 한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친교는 경계를 지울 때보다 존중할 때 깊어진다
이 관계에서 서로 다른 몫을 구별하는 일은 친교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질서가 친교의 일부입니다. 이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몫과 사람이 누리는 몫이 올바르게 구별되는 일입니다.
제단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제물을 가져온 사람은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은 뒤 그것을 잡습니다. 제사장은 피를 제단 사방에 끼얹습니다. 내장 주변의 지방과 콩팥, 간에 붙은 부속 부분을 구별하여 제단에 올립니다. 양이라면 기름진 꼬리 전체도 함께 올립니다.
제단에서 연기가 올라갑니다.
그러나 짐승의 모든 고기가 불 위로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뒤에 이어지는 규정에 따라 제사장에게 돌아갈 몫이 있고, 제물을 바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몫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신의 것이라고 선언하신 지방은 남겨 두지 않습니다. 「모든 지방은 여호와야훼의 것이다.」 이 선언이 제단에서 울린 뒤에야 친교 제물의 나머지 고기를 먹는 일이 그 제사에 합당한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친교는 그분께 속한 것을 빼앗아 얻는 친밀함이 아니라, 그분께 속한 것을 존중하면서 그분이 주신 몫을 누리는 관계입니다.
레위기 3장은 그 관계를 제단 위에서 타오르는 지방과, 아직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지 않은 고기를 통해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