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제사의 종류
하나님께 드린 것 가운데 남겨진 몫
레위기 2장에는 뜻밖의 장면이 나옵니다.
한 사람이 고운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얹어 하나님께 가져옵니다. 제사장은 그 가루와 기름을 한 움큼 집고 유향 전부와 함께 제단에서 태웁니다. 그런데 나머지는 어떻게 됩니까?
제단에서 태우지 않은 것이 오히려 「지극히 거룩한 몫」이라고 불립니다.
이 표현은 우리가 제물을 생각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면 전부 제단에서 태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일부만 태우고 나머지를 사람이 먹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제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앞 장의 번제에서는 제물의 몸체 전체가 제단에서 태워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장에서는 제물의 일부만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아갑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드리는 정도가 낮아진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제단에 올라가는 부분도, 제사장에게 남겨지는 부분도 모두 거룩한 질서 안에 놓습니다.
한 움큼의 곡식이 하나님께 드려지다
「『누군가 여호와야훼에게 곡식 제물을 바칠 때에는, 그의 제물은 고운가루여야 한다. 그는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놓아야 한다.』」레위기 2:1 · 본디새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곡식은 일상적인 양식의 재료였습니다. 밭에서 얻은 곡식을 가루로 만들고 빵으로 구워 먹는 일은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삶을 이어 가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바로 그 곡식을 자신에게 가져오도록 말씀하십니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창세기 4:3–5에서도 카인이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서는 카인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곡식이라는 재료 자체가 거부의 이유였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2장은 땅에서 얻은 소산도 하나님께 정당하게 드릴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본문은 각각의 재료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기름은 기쁨을 뜻하고, 유향은 기도를 뜻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이것이 제물로 바치도록 특별히 준비된 곡식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왜 유향은 전부 태우고 가루는 일부만 태울까?
「『그는 그것을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에게 가져와야 한다. 제사장은 거기에서 그 고운가루와 기름을 한 움큼 가득 집어야 한다. 제사장은 그렇게 집은 한 움큼을 그 유향 전부와 함께 기념 몫으로 제단 위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이는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내는 불 제물이다.』」레위기 2:2 · 본디새김
제사장이 마음대로 제물을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일부를 제단에 올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으로 남습니다.
여기서 본문의 관심은 제물을 얼마나 태우느냐보다, 무엇을 누구에게 드리도록 정해 놓았느냐에 있습니다.
남은 것이 왜 지극히 거룩한가?
「『곡식 제물에서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몫이다. 그것은 여호와야훼의 불 제물에서 나온 지극히 거룩한 몫이다.』」레위기 2:3 · 본디새김
제단에 태워 올린 부분만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평범한 음식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받는 몫도 여호와야훼에게 드려진 제물에서 나온 것이기에 지극히 거룩합니다.
레위기 6:14–18은 이 규정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제사장들은 남은 곡식 제물을 거룩한 장소, 곧 만남의 천막 뜰에서 먹어야 합니다. 아무 곳에서나 가져다 먹는 일반적인 양식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한 실제적인 공급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을 단순한 노동의 대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받는 양식은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거룩한 몫입니다.
레위기 2장은 이렇게 제단과 식탁을 이어 놓습니다. 그 연결을 이해하고 나면 이어지는 여러 조리법도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기념 몫」이라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아즈카라로, ‘기억하다’라는 뜻의 어근 자카르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제물을 드린 사람을 기억하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또는 제단에 올리는 부분이 제물 전체를 하나님 앞에 나타내는 기념의 몫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레위기 2장은 그 기억의 주체와 대상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념 몫이라는 표현에 지나치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덧붙이기보다, 제물 가운데 특별히 구별하여 제단에 올리는 부분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레위기 24:7에서도 진설병과 관련하여 유향이 기념의 몫과 연결됩니다.
화덕과 굽는 판과 냄비
「『네가 화덕에 구운 곡식 제물을 바칠 때에는, 그것은 고운가루로 만든, 기름을 섞은 누룩 없는 빵들과 기름을 바른 누룩 없는 얇은 빵들이어야 한다.』」레위기 2:4 · 본디새김
이제 제물은 가루의 형태에서 실제로 만든 음식의 형태로 바뀝니다.
본문은 각각의 조리 기구를 구별합니다. 화덕에서는 기름을 섞은 빵이나 기름을 바른 얇은 빵을 만들고, 굽는 판에서는 기름을 섞은 고운가루로 누룩 없는 것을 만듭니다. 냄비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고운가루와 기름이 재료가 됩니다.
여기서 본문은 제사의 영역에 사람의 일상적인 노동을 끌어들입니다.
곡식을 거두는 일, 가루를 만드는 일, 반죽하는 일, 기름을 섞는 일, 불을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일은 모두 생활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 가져오는 예물은 그 일상적인 노동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상의 음식을 아무렇게나 가져오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무엇을 넣지 않아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떼어 제단에 올릴지 구체적인 규정이 주어집니다.
사람의 일상적인 수고로 만들어진 음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구별되어 거룩한 제물이 됩니다.
「『그것을 조각조각 떼어 내고 그 위에 기름을 부어라. 그것은 곡식 제물이다.』」레위기 2:6 · 본디새김
굽는 판에서 만드는 제물에는 이미 고운가루와 기름이 섞여 있습니다(2:5). 그런데 조각을 낸 뒤에도 기름을 붓도록 합니다. 이처럼 본문은 음식이 단지 완성되었는지만 살피지 않습니다. 제물로 드려지는 마지막 준비 과정까지 규정합니다.
그러나 왜 특별히 조각을 내야 하는지, 왜 이 경우에는 다시 기름을 붓는지에 대한 상징적 설명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동작에 신학적 의미를 하나씩 대응시키기보다, 정해진 방식으로 제물을 준비한다는 흐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이 준비하지만, 제단으로 가져가는 일은 제사장이 맡는다
8절에서 장면이 다시 바뀝니다.
「『너는 이렇게 만든 곡식 제물을 여호와야훼에게 가져와라.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하며,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가야 한다.』」레위기 2:8 · 본디새김
곡식은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소유에서 나왔고 그의 손으로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성소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제물을 가져온 사람이 스스로 제단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에는 개인의 참여가 있지만, 그 참여가 제사장에게 맡겨진 거룩한 직무를 없애지는 않습니다.
이어서 9–10절에서는 2–3절의 결말이 거의 그대로 반복됩니다. 기념 몫은 제단에서 태워지고,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내는 불 제물이 됩니다.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몫이며, 지극히 거룩한 몫입니다.
제물의 모양이 달라져도 그 제사를 거룩하게 다루는 질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곡식 제물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넣어서는 안 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누룩과 꿀은 왜 제단에 올라갈 수 없는가?
「『너희가 여호와야훼에게 바치는 어떤 곡식 제물도 누룩으로 부풀려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누룩도 꿀도 조금이라도 여호와야훼에게 불 제물로 태워 연기로 올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레위기 2:11 · 본디새김
이 구절은 흔히 누룩과 꿀의 상징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해석됩니다.
누룩은 죄와 부패를 상징하고, 꿀은 쾌락이나 육체적인 달콤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곧바로 받아들이기 전에 다음 절을 읽어야 합니다.
「『너희는 그것들을 첫 소산의 제물로 여호와야훼에게 바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흡족한 향기를 내도록 제단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레위기 2:12 · 본디새김
따라서 이 규정의 핵심은 누룩과 꿀 자체가 언제나 부정하거나 악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것과 제단에서 태워 올릴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누룩은 언제나 죄의 상징인가?
성경에서 누룩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는 경우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누룩이 언제나 악이나 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레위기 23:17은 중요한 비교 본문입니다. 그곳에서는 첫 열매로 드리는 빵 두 개를 누룩을 넣어 구워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경우에는 누룩을 허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금합니까?
레위기 2장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룩이 발효를 일으킨다는 성질이나, 누룩 없는 빵이 출애굽의 기억과 연결된다는 사실(출애굽기 12:8, 15–20)을 고려하여 그 상징성을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연결이 곡식 제물의 금지 규정 전체를 설명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꿀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어 드바시(דְּבַשׁ)는 벌꿀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며 과일의 단 즙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어느 범위까지 포함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거룩함은 단순히 어떤 물질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드려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누룩과 꿀은 제단의 불에서 제외되지만, 소금은 오히려 어떤 제물에서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빠뜨려서는 안 되는 소금
「『네가 바치는 모든 곡식 제물에 소금을 쳐라. 네 곡식 제물에서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빼놓지 마라. 네 모든 제물에 소금을 곁들여 바쳐라.』」레위기 2:13 · 본디새김
레위기 2장에서 가장 뜻밖의 표현은 아마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일 것입니다.
소금은 음식을 맛있게 하며 보존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레위기 2장은 맛이나 보존의 기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금을 하나님의 언약과 연결합니다.
소금은 제물에 추가되는 선택적인 장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가리키는 표현과 함께, 제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요소로 등장합니다.
소금과 언약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민수기 18:19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에게 바치는 거룩한 예물 가운데 제사장 가족에게 주어진 몫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영원한 소금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역대기하 13:5에서는 하나님이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왕권을 주신 일을 소금 언약이라는 표현으로 가리킵니다. 두 본문은 모두 지속되는 관계나 약속을 설명하는 문맥에서 소금 언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때문에 소금이 변하지 않는 언약의 지속성을 상징한다고 읽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소금의 보존 기능도 이러한 해석과 잘 어울립니다. 다만 레위기 2:13 자체는 소금이 왜 언약을 상징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금이 썩지 않으므로 언약도 영원하다는 식으로 그 상징의 발생 과정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출애굽기 24:3–8에서 백성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응답했고, 모세는 언약의 피를 뿌렸습니다.
이제 레위기 2장에서 그 언약의 관계가 일상의 곡식 제물 안에까지 나타납니다.
특히 13절의 마지막 문장 「네 모든 제물에 소금을 곁들여 바쳐라」는 적용 범위를 넓힙니다. 이 말은 곡식 제물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모든 제물에 관한 명령으로 확장됩니다.
이스라엘은 소금을 바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언약의 관계 안에 있는 백성이 제물을 드릴 때 그 언약의 소금을 빠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제사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던 사람이 제물로 관계를 사들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미 맺어진 언약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제사장들이 받는 몫은 우연히 남은 음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세우신 질서 안에서 주어지는 몫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에서는 아직 충분히 여물지 않은 곡식이 등장합니다.
아직 여물어 가는 곡식을 가져오다
「『네가 여호와야훼에게 첫 열매의 곡식 제물을 바친다면, 햇곡식의 풋이삭을 불에 볶아 빻은 것을 네 첫 열매의 곡식 제물로 바쳐라.』」레위기 2:14 · 본디새김
레위기 2장의 처음에는 고운가루가 있었습니다. 중간에는 그 가루를 가지고 여러 방법으로 만든 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제물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이 곡식은 이미 충분히 말려서 저장해 놓은 가루가 아닙니다. 새로 여물어 가는 곡식의 이삭을 불에 볶고 빻아서 만든 것입니다.
이 규정은 곡식 제물의 시선을 양식의 준비 과정에서 수확의 시작으로 돌려놓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그해의 수확을 모두 누린 뒤가 아니라, 처음 얻은 소산을 하나님께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물론 첫 열매의 제사가 곧 장차 모든 수확이 반드시 풍성할 것이라는 보증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미래의 작황에 관한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첫 소산을 하나님께 가져오는 행위는 수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 소산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놓는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출애굽기 23:19에서 땅에서 처음 거둔 열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가져오도록 명령하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또한 레위기 23:10–14에서는 새 곡식의 수확을 시작할 때 첫 이삭을 가져오는 규정이 등장합니다. 다만 레위기 2:14–16의 제물과 레위기 23장의 절기 의식이 모든 세부 사항에서 동일한 의식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두 본문은 수확의 시작을 하나님께 드리는 공통된 주제를 보여 줍니다.
첫 열매의 제물도 기념 몫으로 드려진다
15–16절을 보면 첫 열매의 곡식 제물에도 기름과 유향을 더합니다. 제사장은 빻은 곡식과 기름의 일부를 유향 전부와 함께 기념 몫으로 제단에서 태웁니다.
재료의 상태는 다르지만, 기념 몫을 구별해 제단에서 태우는 기본 방식은 같습니다.
12절에서는 누룩과 꿀을 첫 소산으로 바칠 수 있지만 제단에서 태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6절에서는 첫 열매의 곡식 제물을 제단에서 태우라고 합니다. 서로 충돌하는 규정일까요?
12절은 앞 절에서 금지한 누룩과 꿀이 첫 소산의 제물로는 허용되지만, 제단에 태워지는 불 제물은 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14–16절은 햇곡식의 풋이삭을 볶아 빻아 만든 곡식 제물을 다룹니다. 이 제물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으라는 규정이 없으며, 기름과 유향을 더하여 일부를 태워 올립니다.
따라서 두 단락은 첫 소산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서도 제물의 재료와 바치는 방식이 구별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첫 열매의 곡식은 사람의 손을 거쳐 제물이 되지만, 그 시작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삭을 볶고 빻을 수 있습니다.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곡식이 자라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일을 인간의 노동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을 본문은 직접적인 교훈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첫 열매의 제사를 창조와 수확에 관한 성경의 더 넓은 문맥에서 읽으면, 인간이 얻은 소산을 하나님께 다시 가져온다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이 만든 것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일이기도 합니다.
곡식 제물은 무엇을 위한 제사인가?
이 장에는 피를 제단에 끼얹는 장면이 없습니다. 제물의 죽음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속죄를 이루신다는 직접적인 선언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곡식 제물은 속죄와 무관하고 오직 감사만을 위한 제사입니까?
그렇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2장은 곡식 제물을 명시적으로 감사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또한 뒤에 나오는 레위기 5:11–13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특정한 죄를 위한 제물로 고운가루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 제사를 통해 속죄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곡식이 사용된 제물이라고 해서 속죄와 언제나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곡식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인 동시에,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들의 삶을 뒷받침하는 질서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 사이의 경제적 나눔을 직접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하나님께 드린 제물과 제사장의 몫에 관한 관계를 다룹니다. 가난한 사람과 이웃을 위한 나눔은 레위기 19:9–10이나 23:22 같은 다른 규정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납니다.
한 움큼을 태우고 남은 것
하나님께 바친 것 가운데 일부는 불 위로 올라가고, 일부는 성소에서 섬기는 사람들의 양식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둘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나가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고 다른 하나가 그것을 감소시키는 행위가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의 제사 안에 속합니다.
이제 레위기 2장을 마무리하며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은 거대한 제단에 쌓인 많은 제물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손에 담긴 한 움큼의 고운가루입니다.
그 가루에는 기름이 섞여 있고, 유향이 더해져 있으며, 언약의 소금이 빠지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립니다.
그리고 남겨진 곡식은 거룩한 몫으로 보존됩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거룩함은 불 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몫으로 남겨진 곳에서도 이어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