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제사의 종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

레위기는 뜻밖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합니다.

읽는 시간 13분소단락 61장 본문 읽기 →

들어갈 수 없는 천막에서 들려온 초대

레위기 1:1 본문 →

여호와야훼가 모세를 불렀다. 그리고 만남의 천막에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레위기 1:1 · 본디새김

출애굽기 40장에서 이스라엘은 마침내 성막을 완성합니다. 이집트에서 구원받고, 시나이산에서 언약을 맺고, 금송아지 사건으로 관계가 무너질 위기를 겪었던 백성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분의 거처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막이 완성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서 모세조차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출애굽기 40:34–35).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해지자 사람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레위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만남의 천막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접근할 수 없었던 바로 그곳이 이제 말씀의 출발점이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을 때, 그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낮추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백성을 멀리 내쫓지도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자신에게 나아오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

레위기 1:2–3 본문 →

여호와야훼의 첫 지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가운데 누군가 여호와야훼에게 제물을 바칠 때에는, 너희는 가축 가운데서, 곧 소와 작은 가축 가운데서 너희 제물을 바쳐라.』」레위기 1:2 · 본디새김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오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제물은 단순히 소유물을 잃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는 예물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제물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물의 종류와 상태, 바치는 장소와 절차가 정해져 있습니다.

소를 번제로 바치는 경우를 봅시다.

「『그가 소 가운데서 바치는 제물이 번제라면, 그는 흠 없는 수컷을 바쳐야 한다. 그는 그 제물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자신을 위해 받아들여지도록 그것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와야 한다.』」레위기 1:3 · 본디새김

‘흠 없다’는 말은 동물에게 제물로서 부적합한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본문은 먼저 하나님께 바치기에 합당한 제물의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리르초노(⁨רָצוֹן⁩)는 해석이 갈리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그가 기꺼이’, 곧 자발적으로 가져온다는 뜻으로 읽기도 하고, ‘그가 받아들여지도록’이라는 뜻으로 읽기도 합니다. 같은 어근이 바로 다음 절의 ‘받아들여질 것이다’에도 사용된다는 점은 후자의 이해를 뒷받침합니다.

어느 읽기를 택하든, 본문은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의지만으로 제사의 결과가 결정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물은 여호와야훼 앞에 가져와지고, 거기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특히 출애굽기 29:42–43은 레위기 1장과 중요한 연결을 이룹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레위기 1장에서 제물이 가져와지는 곳이 바로 그 만남의 천막 입구입니다.

제사를 하나님께 무언가를 제공하여 그분의 호의를 사는 거래로만 이해한다면, 본문의 순서가 뒤집힙니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제물을 받아들이시는 방식까지 정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제물은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짐승의 머리에 얹은 손

레위기 1:4–5 본문 →

「『그는 번제의 머리에 자기 손을 얹어야 한다. 그것은 그를 위한 속죄를 이루도록 그를 위해 받아들여질 것이다.』」레위기 1:4 · 본디새김

레위기 1장에서 분명한 것은 제물이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제물이 받아들여짐으로써 그 사람을 위한 속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번제가 등장한 자리에서는 특정한 범죄나 죄목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레위기 4장에서 다루는 죄를 위한 제사처럼 어떤 잘못을 범했는지부터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에게 속죄가 필요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를 통해 그를 위한 속죄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왜 속죄가 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완전한 이론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다음 장면에서는 죽임이 시작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 소를 잡아야 한다.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오고, 만남의 천막 입구에 있는 제단의 사방에 그 피를 끼얹어야 한다.』」레위기 1:5 · 본디새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제사장에게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제물을 직접 가져오고, 머리에 손을 얹고, 짐승을 잡습니다. 그는 제사의 단순한 관객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피를 다루는 일에서는 분명한 경계가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그 피를 제단에 가져갑니다.

레위기 17:11은 생명이 피에 있으며 하나님이 그 피를 제단에서 속죄를 이루도록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레위기 1장의 피 의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후속 단서입니다.

본문에서 피는 제물을 가져온 사람에게 뿌려지지 않습니다. 제단의 사방에 끼얹어집니다. 제사의 중심은 단지 짐승이 죽는 순간이 아니라, 그 피가 하나님이 정하신 제단에서 다루어지는 데에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손을 얹는 순간 사람의 죄가 짐승에게 옮겨지는 것일까요? 그렇게 이해하는 해석이 있지만, 레위기 1장은 죄가 옮겨진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속죄일에 아론은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의 죄악과 범죄를 고백하여 그것들을 염소의 머리에 두며, 염소는 그 죄악들을 지고 광야로 갑니다(레위기 16:21–22). 그곳에서는 죄를 염소에게 지우는 행위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반면 레위기 1장에서는 한 손을 얹는 동작과 그 사람을 위한 속죄만 언급됩니다. 따라서 두 본문을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 위에서 전부 올라가는 것

레위기 1:6–9 본문 →

짐승을 잡은 다음에는 가죽을 벗기고 몸을 토막으로 나눕니다. 제사장들은 제단에 불을 놓고 장작을 벌여 놓습니다. 토막과 머리와 기름덩이를 그 위에 놓습니다. 내장과 다리는 물로 씻습니다.

번제는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리는 제사입니다. 특히 다른 제사와 구별되는 특징은 제물의 몸체 전체를 태운다는 점입니다.

레위기 3장의 화목제에서는 특정한 기름 부분을 제단에 태우고, 레위기 7장에서는 제사에 따라 고기를 먹는 규정도 주어집니다. 하지만 번제에서는 고기가 사람의 식사로 남지 않습니다. 가죽은 나중에 제사장의 몫으로 규정되지만(레위기 7:8), 번제물의 나머지 몸체는 제단에서 태워집니다.

이 행위에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제사의 형태로부터 이끌어 낸 신학적 해석이지, 레위기 1장이 직접 설명한 목적은 아닙니다. 본문이 명시하는 목적은 속죄와 받아들여짐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그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어야 한다. 제사장은 그 모든 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이는 번제이며,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내는 불 제물이다.』」레위기 1:9 · 본디새김

앞에서는 제물이 사람을 위해 받아들여진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제물이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낸다고 합니다.

홍수로 세상이 심판받은 뒤 노아는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립니다. 여호와야훼는 그 향기를 받으시고 땅을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번제는 심판 이후의 세계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계속된다는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레위기에서는 이 표현이 개인의 제사에 적용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실제로 음식을 필요로 하시거나 제물의 냄새 때문에 배고픔을 달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편 50:12–13에서 하나님은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며, 자신이 수소의 고기를 드시거나 숫염소의 피를 마시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흡족한 향기는 제물의 향기 자체가 하나님을 변화시킨다는 설명이 아니라, 정해진 방식으로 드려지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제의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번제가 놓이는 자리

레위기 1장의 번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갑자기 등장한 제사가 아닙니다.

창세기 8:20–21에서 노아는 홍수 이후 번제를 드리고, 창세기 22:13에서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발견한 숫양을 번제로 드립니다. 출애굽기 29:38–42에서는 매일 드리는 번제가 만남의 천막에서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만나시는 일과 연결됩니다.

나중에 레위기 9:22–24에서는 아론이 제사를 드린 뒤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나온 불이 제단의 제물을 삼킵니다. 레위기 1장의 규정에서 설명되던 제사가 실제로 시행되고,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임재하시는 장면입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10:5–10은 시편 40편을 인용하면서 번제를 비롯한 제사의 전통을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읽습니다. 이는 레위기 1장을 직접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제사 전체를 후대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 연결은 중요하지만, 레위기 1장의 첫 독자에게 주어진 말씀의 의미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이 장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거처에서 말씀하시며, 자신에게 나아올 수 있는 제사의 길을 알려 주시는 장면입니다.

레위기 1장에서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감정이나 내면 상태에 관한 설명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얼마나 슬퍼했는지, 얼마나 헌신적인 마음을 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이 길게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요구하신 절차입니다.

이는 내면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다른 본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인간의 행동이 분리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사야 1:11–17에서는 제사를 많이 드리면서도 악을 행하고 정의를 외면하는 백성이 책망받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막연한 열심이나 감정에만 맡겨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길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그렇다면 소를 바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길이 있을까요?

소에서 양으로, 양에서 새로

레위기 1:10–17 본문 →

번제의 규정은 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어서 양이나 염소를 바치는 경우가 나옵니다(1:10–13). 그리고 마지막에는 산비둘기나 어린 집비둘기를 바치는 경우가 나옵니다(1:14–17).

| 제물 | 주요 규정 | 마지막 선언 | | --- | --- | --- | | 소(3–9절) | 흠 없는 수컷, 안수, 도살, 피 의식, 몸체를 태움 |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 | | 양·염소(10–13절) | 흠 없는 수컷, 도살, 피 의식, 몸체를 태움 |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 | | 산비둘기·어린 집비둘기(14–17절) | 제사장이 직접 제물을 처리하고 피를 제단에 냄 |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 |

소를 바칠 때처럼 흠 없는 수컷이어야 하고, 도살한 뒤 제사장이 피를 제단 사방에 끼얹습니다. 몸을 나누고, 내장과 다리를 씻고, 제단에서 태웁니다.

그런데 소의 규정과 달리 도살 장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명시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 앞, 제단의 북쪽 옆에서 그것을 잡아야 한다.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의 사방에 끼얹어야 한다.』」레위기 1:11 · 본디새김

본문이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제사가 정해진 공간과 질서에 따라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소의 규정에서 등장했던 안수와 속죄에 관한 문장은 이 부분에서 반복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양과 염소의 번제에는 속죄 기능이 없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읽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소의 번제를 먼저 자세히 설명한 뒤, 양과 염소의 번제에서는 공통 절차를 반복하면서도 몇몇 설명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 문맥에서 같은 종류의 번제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제물이 작아지자 사람들의 역할도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새의 번제가 등장합니다.

소나 양을 바칠 때에는 제물을 가져온 사람이 짐승을 잡고, 제사장들이 피를 다룹니다. 그러나 새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직접 제물을 제단으로 가져와 머리를 처리하고, 피를 제단 벽에 짜냅니다.

새를 바치는 경우에는 흠 없는 수컷이라는 조건도 다시 명시되지 않습니다. 두 종류의 새가 구별되고, 그중 집비둘기에는 어린 것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는 새를 날개 쪽에서 찢되,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장작 위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이는 번제이며,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내는 불 제물이다.』」레위기 1:17 · 본디새김

레위기 1장은 제물의 종류를 세 가지로 구분하지만, 마지막 평가에서는 차등을 두지 않습니다.

소와 양과 새는 그 크기와 가치가 서로 다릅니다. 레위기 1장은 새를 바치는 사람을 명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뒤에 나오는 레위기 5:7과 12:8에서는 양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새를 바치도록 하는 규정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필요한 제물의 크기는 같지 않지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번제라는 지위와 그 흡족한 향기에 관한 선언은 같습니다.

이는 모든 제물이 무조건 받아들여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해진 제물과 절차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물의 규모 자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정도를 결정한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제사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있는 길은 하나의 경제적 계층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15절에서 머리를 처리하는 동사 말라크는 새의 머리나 목을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제의적 동사입니다. 머리를 완전히 분리하는지, 붙여 두는지 이 절만으로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레위기 5:8에서는 같은 동사에 머리를 완전히 떼어 내지 말라는 제한이 덧붙습니다. 16절의 모이주머니와 함께 제거하는 것이 깃털인지, 그 안의 내용물이나 오물인지를 두고도 읽기가 갈립니다. 17절에서 날개 쪽을 찢는 방식 역시 세부 동작이 완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규정의 문장을 읽고 있지만, 최초의 독자들은 실제로 그 동작을 실행하거나 목격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기술적 표현의 세부 사항을 오늘날 완전히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가까움

레위기 1:1–17 본문 →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을 마련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며, 그분 앞에서는 제물의 크기보다 그분이 정하신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사람에게도 응답이 요구됩니다. 사람은 자기 제물을 가지고 나아와야 하며, 정해진 방식으로 그것을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1장의 마지막에는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놓여 있습니다.

그 새는 소처럼 크지 않습니다. 제물을 처리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제사장은 그 새를 제단 위로 가져오고, 피를 제단 벽에 짜내고, 몸을 찢어 불 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그 작은 제물도 연기가 되어 올라갑니다.

소를 바칠 때와 마찬가지로, 그 제사 역시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내는 번제라고 불립니다.

만남의 천막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천막 밖에서는 한 사람이 제물을 가져옵니다. 제사장이 제단의 불을 돌봅니다. 그리고 그 제물의 연기가 여호와야훼 앞으로 올라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