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제사의 종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

레위기는 뜻밖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합니다.

읽는 시간 11분소단락 61장 본문 읽기 →

들어갈 수 없는 천막에서 들려온 초대

레위기 1:1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 모세를 불러 만남의 천막에서 말씀하셨습니다.레위기 1:1 · 두루새김

출애굽기 40장에서 이스라엘은 마침내 성막을 완성합니다. 이집트에서 구원받고, 시나이산에서 언약을 맺고, 금송아지 사건으로 관계가 무너질 위기를 겪었던 백성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분의 거처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막이 완성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서 모세조차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출애굽기 40:34–35).

바로 이 지점에서 레위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가 먼저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남의 천막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가갈 수 없었던 바로 그곳이 이제 말씀의 출발점이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을 때, 그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낮추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백성을 멀리 내쫓지도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자신에게 나아오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

레위기 1:2–3 본문 →

하나님의 첫 지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가운데 누가 여호와야훼께 가축을 제물로 바치려면, 소나 양이나 염소를 바쳐라.』」레위기 1:2 · 두루새김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오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제물은 단순히 소유물을 잃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는 예물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제물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물의 종류와 상태, 바치는 장소와 절차가 정해져 있습니다.

「『소를 번제로 바치려면 흠 없는 수컷을 바쳐야 한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여호와야훼께서 그 사람을 위한 제물로 받아 주시도록 그 소를 만남의 천막 입구로 데려와야 한다.』」레위기 1:3 · 두루새김

「흠 없는」이라는 말은 동물에게 제물로 바치기에 알맞지 않은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본문은 먼저 하나님께 바치기에 합당한 제물의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리르초노(⁨רָצוֹן⁩)는 해석이 갈리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그가 기꺼이’, 곧 자발적으로 가져온다는 뜻으로 읽기도 하고, ‘그가 받아들여지도록’이라는 뜻으로 읽기도 합니다. 원문에서는 같은 어근이 바로 다음 절에서 제물이 받아들여진다는 말에도 사용된다는 점이 후자의 이해를 뒷받침합니다.

어느 읽기를 택하든, 본문은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의지만으로 제사의 결과가 결정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물은 하나님 앞에 가져와지고, 거기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출애굽기 29:42–43은 레위기 1장과 중요한 연결을 이룹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레위기 1장에서 제물을 데려오는 곳이 바로 그 만남의 천막 입구입니다.

짐승의 머리에 얹은 손

레위기 1:4–5 본문 →

「『그 사람은 번제로 바칠 소의 머리에 손을 얹어야 한다. 그 제물은 그 사람을 위해 받아들여져 그를 위한 속죄를 이룰 것이다.』」레위기 1:4 · 두루새김

레위기 1장에서 분명한 것은 제물이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제물이 받아들여짐으로써 그 사람을 위한 속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번제가 등장한 자리에서는 특정한 범죄나 죄목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레위기 4장에서 다루는 죄를 위한 제사처럼 어떤 잘못을 범했는지부터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에게 속죄가 필요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를 통해 그를 위한 속죄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다음 장면에서는 죽임이 시작됩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 소를 잡아야 한다.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만남의 천막 입구에 있는 제단의 사방에 끼얹어야 한다.』」레위기 1:5 · 두루새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제사장에게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제물을 직접 가져오고, 머리에 손을 얹고, 짐승을 잡습니다. 그는 제사의 단순한 관객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피는 제물을 가져온 사람에게 뿌려지지 않습니다. 제단의 사방에 끼얹어집니다. 제사의 중심은 단지 짐승이 죽는 순간이 아니라, 그 피가 하나님이 정하신 제단에서 다루어지는 데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에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참여와 제사장이 맡은 일이 함께 필요합니다. 두 역할은 서로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손을 얹는 순간 사람의 죄가 짐승에게 옮겨지는 것일까요? 그렇게 이해하는 해석이 있지만, 레위기 1장은 죄가 옮겨진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속죄일에 아론은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의 죄악과 범죄를 고백하여 그것들을 염소의 머리에 두며, 염소는 그 죄악들을 지고 광야로 갑니다(레위기 16:21–22). 그곳에서는 죄를 염소에게 지우는 행위가 분명히 나옵니다. 반면 레위기 1장에서는 한 손을 얹는 동작과 그 사람을 위한 속죄만 언급됩니다. 따라서 두 본문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기 17:11은 생명이 피에 있으며 하나님이 그 피를 제단에서 속죄를 이루도록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레위기 1장의 피 의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후속 단서입니다.

불 위에서 전부 올라가는 것

레위기 1:6–9 본문 →

짐승을 잡은 다음에는 가죽을 벗기고 몸을 토막 냅니다. 제사장들은 제단에 불을 놓고 장작을 벌여 놓습니다. 고기 토막들과 머리와 기름덩이를 그 위에 벌여 놓습니다. 내장과 다리는 물로 씻습니다.

번제는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리는 제사입니다. 특히 다른 제사와 구별되는 특징은 제물의 몸 전체를 태운다는 점입니다.

레위기 3장의 화목제에서는 특정한 기름 부분을 제단에 태우고, 레위기 7장에서는 제사에 따라 고기를 먹는 규정도 주어집니다. 하지만 번제에서는 고기가 사람의 식사로 남지 않습니다. 가죽은 나중에 제사장의 몫으로 규정되지만(레위기 7:8), 번제물의 나머지 몸은 제단에서 태워집니다.

이 행위에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제사의 형태로부터 이끌어 낸 신학적 해석이지, 레위기 1장이 직접 설명한 목적은 아닙니다.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목적은 속죄와 받아들여짐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어야 한다. 제사장은 이 모든 것을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이것은 번제이며, 여호와야훼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를 내도록 불에 태워 바치는 제물이다.』」레위기 1:9 · 두루새김

앞에서는 제물이 사람을 위해 받아들여진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제물이 「여호와야훼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를 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를 바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길이 있을까요?

조금 더 깊이

「기뻐하시는 향기」라는 표현은 창세기 8:21에서 노아가 홍수 이후 번제를 드렸을 때에도 등장합니다. 홍수로 세상이 심판받은 뒤 노아는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 향기를 받으시고 땅을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번제는 심판 이후의 세계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계속된다는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레위기에서는 이 표현이 개인의 제사에 적용됩니다. 시편 50:12–13에서 하나님은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며, 자신이 수소의 고기를 드시거나 숫염소의 피를 마시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기뻐하시는 향기」는 제물의 향기 자체가 하나님을 변화시킨다는 설명이 아니라, 정해진 방식으로 드려지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제사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10:5–10은 시편 40편을 인용하면서 번제를 비롯한 제사의 전통을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읽습니다. 이는 레위기 1장을 직접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제사 전체를 후대에 구원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 연결은 중요하지만, 레위기 1장의 첫 독자에게 주어진 말씀의 의미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소에서 양으로, 양에서 새로

레위기 1:10–17 본문 →

번제의 규정은 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어서 양이나 염소를 바치는 경우가 나옵니다(1:10–13). 그리고 마지막에는 산비둘기나 어린 비둘기를 바치는 경우가 나옵니다(1:14–17).

소를 바칠 때처럼 흠 없는 수컷이어야 하고, 짐승을 잡은 뒤 제사장이 피를 제단 사방에 끼얹습니다. 몸을 토막 내고, 내장과 다리를 씻고, 제단에서 태웁니다.

그런데 소의 규정과 달리 짐승을 잡는 장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여호와야훼 앞, 제단의 북쪽 옆에서 그 짐승을 잡아야 한다.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의 사방에 끼얹어야 한다.』」레위기 1:11 · 두루새김

북쪽이라는 방향에 별도의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제사가 정해진 공간과 질서에 따라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소의 규정에서 등장했던 머리에 손을 얹는 동작과 속죄에 관한 문장은 이 부분에서 반복되지 않습니다. 소의 번제를 먼저 자세히 설명한 뒤, 양과 염소의 번제에서는 공통 절차를 반복하면서도 몇몇 설명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 문맥에서 같은 종류의 번제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제물이 작아지자 사람들의 역할도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새의 번제가 등장합니다.

소나 양을 바칠 때에는 제물을 가져온 사람이 짐승을 잡고, 제사장들이 피를 다룹니다. 그러나 새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직접 제물을 제단으로 가져와 머리를 비틀어 떼어 내고, 피를 제단 벽에 짜냅니다.

새를 바치는 경우에는 흠 없는 수컷이라는 조건도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두 종류의 새가 구별되고, 그중 비둘기에는 어린 것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새의 몸을 날개 쪽에서 찢어 벌리되, 완전히 둘로 나누지는 말아야 한다. 제사장은 그 새를 제단에서 타는 장작 위에 놓고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이것은 번제이며, 여호와야훼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를 내도록 불에 태워 바치는 제물이다.』」레위기 1:17 · 두루새김

레위기 1장은 제물의 종류를 세 가지로 구분하지만, 마지막 평가에서는 차등을 두지 않습니다.

소와 양과 새는 그 크기와 가치가 서로 다릅니다. 레위기 1장은 새를 바치는 사람을 분명히 가난한 사람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뒤에 나오는 레위기 5:7과 12:8에서는 양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새를 바치도록 하는 규정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제사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있는 길은 하나의 경제적 계층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15절에서 머리를 처리하는 동사 말라크(⁨מָלַק⁩)는 새의 머리나 목을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제사 동사입니다. 원문만으로는 머리를 완전히 분리하는지, 붙여 두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레위기 5:8에서는 같은 동사에 머리를 완전히 떼어 내지 말라는 제한이 덧붙습니다. 16절에서 모이주머니와 함께 제거하는 것도 원문에서는 깃털인지, 그 안의 내용물이나 오물인지를 두고 읽기가 갈립니다. 17절은 「새의 몸을 날개 쪽에서 찢어 벌리되」라고 옮겼지만, 원문에서 가리키는 세부 동작이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기술적 표현의 세부 사항을 오늘날 완전히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가까움

레위기 1:1–17 본문 →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을 마련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며, 그분 앞에서는 제물의 크기보다 그분이 정하신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사람에게도 응답이 요구됩니다. 사람은 자기 제물을 가지고 나아와야 하며, 정해진 방식으로 그것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일에는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는 응답이 따릅니다.

레위기 1장의 마지막에는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놓여 있습니다.

그 새는 소처럼 크지 않습니다. 제물을 처리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제사장은 그 새를 제단으로 가져오고, 피를 제단 벽에 짜내고, 몸을 찢어 벌려 불 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그 작은 제물도 연기가 되어 올라갑니다.

소를 바칠 때와 마찬가지로, 그 제사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를 내는 번제라고 불립니다.

만남의 천막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천막 밖에서는 한 사람이 제물을 가져옵니다. 제사장이 제단의 불을 돌봅니다. 그리고 그 제물의 연기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