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제사의 종류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식탁에 오를 때

레위기 7장에는 뜻밖의 명령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친교 제물을 바쳤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릴 몫을 구별하고, 남은 고기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기는 반드시 제사를 드린 날에 먹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반면 서원을 이행하거나 자원해서 바친 친교 제물의 고기는 다음 날에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셋째 날이 되면 반드시 불에 태워야 합니다.

왜 같은 하나님께 바친 고기인데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다를까요? 더구나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제물 전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음식을 언제 먹었는지가 제물의 받아들여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앞 장에서 제사장은 제단의 불을 돌보고 거룩한 제물을 정해진 방식으로 먹어야 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시선이 더욱 넓어집니다.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몫뿐 아니라 제물을 바친 사람들의 식사, 그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먹어서는 안 되는 부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간까지 규정됩니다.

레위기 7장은 하나님께 바친 제물이 제단을 떠나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질 때 무엇이 지켜져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제물의 일부를 먹도록 허락하시지만, 그 식사를 아무렇게나 누리도록 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고기는 여전히 거룩한 제물에 속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먹는 사람도, 나누는 방식도, 먹는 시간도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습니다.

거룩함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금지만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음식을 올바르게 누리는 질서로도 나타납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107장 본문 읽기 →

속건 제물도 지극히 거룩하다

레위기 7:1–7 본문 →

「『이것은 속건 제물에 관한 가르침이다.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다.』」레위기 7:1 · 본디새김

속건 제물은 앞 장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것에 손해를 끼치거나 이웃의 재산을 속여 취했을 때의 책임과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본문은 그 잘못을 범한 사람이 아니라 제물을 다루는 제사장의 직무에 집중합니다.

먼저 속건 제물은 번제를 잡는 곳에서 잡아야 합니다. 그 피는 제단 둘레에 끼얹어야 합니다. 기름진 꼬리와 내장을 덮은 지방, 콩팥 주변의 지방과 간에 붙은 부속 부분을 떼어 내어 제단에서 태웁니다.

속건 제물은 죄책을 처리하기 위한 제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지극히 거룩하다고 부르십니다.

죄를 위한 제물이기 때문에 부정한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책을 다루도록 하나님께 구별된 제물이기에 특별한 거룩함을 지닙니다.

「『제사장들 가운데 남자는 누구나 그것을 먹을 수 있다. 그것은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한다.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다.』」레위기 7:6 · 본디새김

어떤 거룩한 제물은 전부 태워집니다. 다른 거룩한 제물은 정해진 사람들이 먹을 수 있습니다.

거룩함 자체가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도록 정하셨는지가 중요합니다.

정화 제물과 속건 제물에 적용되는 하나의 가르침

「『정화 제물이나 속건 제물이나 가르침은 하나다. 그 제물은 그것으로 속죄하는 제사장의 몫이 되어야 한다.』」레위기 7:7 · 본디새김

여기서 「가르침은 하나다」라는 표현은 두 제사가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정화 제물과 속건 제물은 각각 다른 목적과 절차를 지닙니다. 정화 제물 가운데 피를 성소 안으로 가져간 것은 먹지 못한다는 규정도 이미 주어졌습니다(레위기 6:23).

따라서 이 구절의 하나라는 선언은 특별히 제물의 몫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두 제사의 고기는 해당 규정에 따라 속죄를 수행하는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그런데 앞의 6절에서는 제사장들 가운데 남자는 누구나 먹을 수 있다고 했고, 7절에서는 속죄하는 제사장에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두 표현은 먹을 수 있는 자격과 제물의 몫이 배정되는 원칙을 각각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모든 고기를 담당 제사장 혼자 가져가는지, 다른 자격 있는 제사장들과 어떻게 나누는지의 세부 사항을 이 두 절만으로 완전히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물의 사용이 제사장 개인의 임의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제사장이라도 몫을 받는 방식이 다르다

레위기 7:8–10 본문 →

「『누군가의 번제를 바치는 제사장에게는 그가 바친 번제의 가죽이 돌아가야 한다.』」레위기 7:8 · 본디새김

번제의 특징은 제물의 몸체 전체를 제단에서 태운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번제의 몸체가 전부 태워진다는 규정을 이해할 때 중요한 보충이 됩니다. 번제물의 고기는 제단에서 태워지지만, 가죽까지 반드시 태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어지는 9절에서는 화덕이나 깊은 팬, 굽는 판에서 만든 곡식 제물을 그것을 바치는 제사장에게 주도록 합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조금 다른 원칙이 나타납니다.

「『기름을 섞은 것이든 마른 것이든 모든 곡식 제물은 아론의 모든 아들들에게, 각자 자기 형제와 똑같이 돌아가야 한다.』」레위기 7:10 · 본디새김

9절에서는 제물을 실제로 바치는 제사장의 몫이 강조되었습니다. 10절에서는 제사장 집안의 형제들 사이에서 함께 몫을 받는 원칙이 나타납니다.

이 둘의 정확한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조리한 곡식 제물은 담당 제사장에게 돌아가고, 기름을 섞었거나 마른 다른 형태의 곡식 제물은 공동으로 분배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10절의 포괄적인 「모든 곡식 제물」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원칙들이 실제 분배 과정에서 어떻게 조정되었는지는 더 세밀한 규정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로부터 자신들의 몫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몫을 받는 방식도 하나님의 명령에 종속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이 사람에게 돌아갈 때에도, 그 예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관계와 분배의 질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본문은 성격이 다른 제사로 넘어갑니다.

속건 제물과 곡식 제물에서는 주로 제사장의 몫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친교 제물에서는 제물을 바친 사람도 식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제물에는 누룩 든 빵도 함께 가져온다

레위기 7:11–14 본문 →

레위기 3장에서는 친교 제물로 바칠 짐승의 종류와 제단에 올릴 지방을 설명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제물을 어떤 목적으로 드리는지, 무엇을 곁들이는지, 그리고 고기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먼저 감사의 경우입니다.

「『감사하려고 그것을 바친다면, 감사 제물과 함께 기름을 섞은 누룩 없는 빵들과 기름을 바른 누룩 없는 얇은 빵들과 잘 섞은 고운 가루로 만든 기름 섞은 빵들을 바쳐야 한다.』」레위기 7:12 · 본디새김

시편 107:21–22에서도 사람들이 여호와야훼의 인애와 놀라운 일들 때문에 감사하며 감사 제물을 드리고, 그분이 하신 일을 기쁨으로 이야기하도록 권합니다. 따라서 감사의 친교 제물은 단순히 의무를 이행하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그 감사를 제사로 표현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말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일상의 음식과 제사가 연결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감사하는 일은 자신이 가진 양식의 일부를 그분께 가져오는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13절에는 앞의 규정과 다른 빵이 등장합니다.

「『그는 누룩으로 부풀린 빵들과 함께 자기 제물을 자기의 감사 친교 제물에 곁들여 바쳐야 한다.』」레위기 7:13 · 본디새김

레위기 2:11에서는 곡식 제물을 누룩으로 부풀려 만들지 말라고 했으며, 누룩을 여호와야훼께 불 제물로 태워 올리는 일을 금지했습니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제물로 가져오는 일과 제단에서 태워 올리는 일입니다.

레위기 2:12는 누룩을 첫 소산의 제물로 바칠 수 있지만 제단에서 태워 올릴 수는 없다고 이미 구별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도 누룩 든 빵이 제물에 곁들여진다는 사실은 명시되지만, 그것을 제단의 불에 태우라는 명령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룩을 언제나 죄나 악의 상징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이 본문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제사의 종류와 드리는 방식에 따라 누룩을 다르게 취급합니다. 레위기 23:17에서도 첫 열매로 드리는 빵 두 개를 누룩을 넣어 굽도록 명령합니다.

감사의 제물은 제사장에게도 몫을 남긴다

14절에서는 여러 종류의 빵 가운데 하나씩을 여호와야훼께 떼어 바치는 몫으로 구별합니다. 그 빵은 친교 제물의 피를 끼얹는 제사장에게 돌아갑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그 예물의 일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장은 아직 감사의 제물을 함께 먹는 사람들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감사의 고기는 오늘 안에 먹어야 한다

레위기 7:15–18 본문 →

「『그의 감사 친교 제물의 고기는 그 제물을 바치는 날 먹어야 한다. 그는 그것을 아침까지 조금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7:15 · 본디새김

왜 감사의 제물에는 이렇게 짧은 시간이 주어졌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감사의 기쁨을 그날 함께 나누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관할 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제물을 바친 사람이 고기를 오랫동안 자기 몫으로 쌓아 두기보다 그날 먹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반드시 많은 이웃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여야 한다는 명령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레위기 7장은 감사의 제물에 반드시 몇 명이 참석해야 하는지, 누구를 초대해야 하는지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그가 바치는 제물이 서원에 따른 것이거나 자원해서 바치는 것이라면, 그 제물을 바치는 날 먹어야 하며, 그 가운데 남은 것은 다음 날에도 먹을 수 있다.』」레위기 7:16 · 본디새김

서원은 하나님께 어떤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자원하는 제물은 특별한 서원의 이행과 구별되는 자발적인 예물입니다. 두 경우 모두 친교 제물에 속하지만, 감사의 친교 제물보다 먹을 수 있는 기간이 깁니다.

그렇다고 무제한으로 보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날까지 남았다면 불에 태워야 합니다.

셋째 날의 고기는 왜 제물 전체를 무효로 만드는가?

「『만일 셋째 날에 그의 친교 제물 고기를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그것을 바친 사람에게 인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역겨운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을 먹는 사람은 자기 죄책을 져야 한다.』」레위기 7:18 · 본디새김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행위와 그 제물의 고기를 먹는 행위는 서로 분리된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제단에 지방을 올리고 피를 끼얹는 절차를 마쳤다고 해서 나머지 고기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먹는 시간에 대한 명령을 어기는 것은 단순히 이미 끝난 제사와 무관한 식사상의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 전체를 올바르게 다루지 못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일과 그분이 허락하신 몫을 먹는 일이 하나의 거룩한 질서 안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역겨운 것」은 제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고기를 가리키는 특별한 표현입니다. 단순히 맛이나 냄새가 역겨운 음식이라는 뜻으로 한정하기 어렵습니다. 레위기 19:5–8에서도 친교 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먹는 일을 금하며, 그렇게 먹은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거룩한 것을 더럽혔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고기를 오래 보관하면 상할 위험이 있다는 실제적인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부패나 식중독을 이유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물의 받아들여짐과 거룩함, 그리고 먹은 사람의 죄책을 말합니다.

누구나 먹을 수 있지만, 아무 상태로나 먹을 수는 없다

레위기 7:19–21 본문 →

「『어떤 부정한 것에든 닿은 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 불에 태워야 한다. 정결한 사람은 누구나 고기를 먹을 수 있다.』」레위기 7:19 · 본디새김

속건 제물은 제사장들 가운데 남자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교 제물의 고기를 먹는 사람에 관한 규정은 훨씬 넓습니다. 본문은 이 절에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을 특별한 직책이나 제사장 신분으로만 제한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기준은 정결함입니다.

부정한 고기와 부정한 사람은 다르다

20–21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고기 자체가 부정한 것에 닿는 경우뿐 아니라, 사람이 부정한 상태로 그 고기를 먹는 경우도 다룹니다.

「『어떤 사람이 부정한 상태로 여호와야훼에게 속한 친교 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레위기 7:20 · 본디새김

그 고기의 일부를 사람이 먹도록 허락받았다고 해서, 그 고기가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라는 지위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먹는 몫도 여전히 여호와야훼께 속한 친교 제물의 고기입니다.

이때 부정함을 곧바로 도덕적 악행이나 나쁜 인격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의 제의적 부정함은 특정한 신체적 상태나 접촉을 통해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정한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악한 성품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정한 상태가 되었다고 곧바로 공동체에서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상태에서 여호와야훼께 속한 친교 제물의 고기를 먹는 행위가 엄중한 제재의 대상입니다.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

이 표현은 레위기와 다른 율법 본문에서 심각한 위반에 대한 제재를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그 제재가 반드시 사람의 손에 의한 처형인지, 공동체에서의 추방인지,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시는 심판인지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결과를 말하지만, 집행 주체와 구체적인 방식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형벌 제도를 여기에 곧바로 대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제물의 고기를 부정한 상태에서 먹는 일은 공동체와의 관계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위반으로 취급됩니다. 제물의 고기를 함께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과의 친교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함의 질서 안에서 그 식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먹어서는 안 되는 지방과 피

레위기 7:22–27 본문 →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는 소와 양과 염소의 지방을 전혀 먹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7:23 · 본디새김

여기서 말씀의 대상이 바뀝니다.

앞에서는 친교 제물을 바치는 사람과 고기를 먹는 사람에 관한 규정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 자손 전체에게 지방과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레위기 3장에서 내장을 덮은 지방과 콩팥 주변의 지방, 기름진 꼬리 등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오늘날 음식에 포함된 모든 지방 성분을 금지하는 명령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저절로 죽은 짐승의 지방과 찢겨 죽은 짐승의 지방은 어떤 작업에든 써도 된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결코 먹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7:24 · 본디새김

이 규정은 지방 자체가 언제나 접촉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질이라는 생각과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금지의 핵심은 지방이라는 물질 자체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먹는 행위에 있습니다.

25절은 그 금지를 제사와 연결합니다. 「여호와야훼에게 불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종류의 짐승에서 나온 지방」을 먹는 사람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위기 3:16은 그 이유를 더욱 직접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모든 지방은 여호와야훼의 것이다.」 이 선언과 함께 읽으면 지방을 먹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한 식품 제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몫으로 구별하신 것을 사람이 자기 몫으로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그런데 26절에서는 금지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의 피든 짐승의 피든 어떤 피도 먹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7:26 · 본디새김

지방의 금지는 소와 양과 염소, 그리고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종류의 짐승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피의 금지는 새와 짐승을 포괄합니다. 또한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제단에서 제사를 드릴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되는 규정입니다.

레위기 17:11은 생명이 피에 있으며, 여호와야훼가 그 피를 제단에서 속죄를 이루도록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신명기 12:23도 피는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지방은 하나님께 지정된 제물의 몫으로 강조됩니다. 피는 생명과 관련되어 제단에서 특별하게 다루어집니다.

사람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허락은 짐승의 모든 부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금지에는 다시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라는 엄중한 선언이 따릅니다. 이제 레위기 7장은 친교 제물에서 누가 무엇을 가져오는지, 무엇이 하나님께 돌아가고 무엇이 제사장에게 돌아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자기 두 손으로 가져온다

레위기 7:28–30 본문 →

친교 제물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제물 가운데 하나님께 드릴 몫을 직접 가져올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두 손으로 여호와야훼의 불 제물들을 가져와야 한다. 그는 그 가슴을 여호와야훼 앞에서 흔들어 바치기 위해 지방을 가슴과 함께 가져와야 한다.』」레위기 7:30 · 본디새김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짐승을 가져오기만 하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이지만, 제물을 바치는 사람도 실제 행위에 참여합니다.

가슴은 먼저 여호와야훼 앞에서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구별된 뒤 제사장에게 돌아갑니다.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몫도 먼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의 질서 안에 놓여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런데 이 동작을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수행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앞뒤로 흔들었는지, 위아래로 움직였는지, 그 밖의 정해진 동작이 있었는지는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방향의 움직임이 반드시 특정한 신학적 의미를 나타낸다고 설명할 근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물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의식적으로 드려진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주신 몫

레위기 7:31–36 본문 →

「『제사장은 지방을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야 한다. 가슴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레위기 7:31 · 본디새김
「『너희는 너희의 친교 제물들 가운데서 오른쪽 다리를 떼어 바치는 몫으로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레위기 7:32 · 본디새김

다만 두 부분의 분배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31절에서는 가슴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33절에서는 오른쪽 다리가 아론의 아들들 가운데 친교 제물의 피와 지방을 바치는 사람의 몫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제사장 집안에 속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과 실제로 제사를 수행한 제사장에게 지정된 몫 사이의 구별이 있습니다. 또한 가슴은 흔들어 바치는 몫으로, 오른쪽 다리는 떼어 바치는 몫으로 표현됩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곧 그들의 친교 제물들 가운데서 흔들어 바친 가슴과 떼어 바친 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히 정해진 몫으로 주었기 때문이다.』」레위기 7:34 · 본디새김

실제로는 제물을 바친 사람이 제사장에게 몫을 건네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분배를 자신의 행동으로 설명하십니다.

따라서 제사장들이 받는 몫은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의 호의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합니다. 동시에 제사장들이 그 몫을 자기 권한으로 마음대로 늘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정하신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주라고 정하신 몫을 임의로 빼앗거나 줄여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은 몫을 임의로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원칙은 민수기 18:8–20에서 더욱 넓게 전개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는 거룩한 예물의 몫을 직접 맡기신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몫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십니다.

제사장의 몫은 봉사의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

35–36절에서는 이 몫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봉사하도록 나아온 때, 그리고 기름 부음을 받은 때와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직무를 맡기시면서 그 직무에 따라 받을 몫도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영원한 규정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가 이어지는 동안 개인의 취향에 따라 바꿀 수 없는 지속적인 제의적 의무를 가리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와 관계없는 모든 시대의 식품 분배 법률로 곧바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사장의 몫은 하나님께 드린 것에서 우연히 남겨진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섬기는 사람들에게 주시기로 정하신 선물입니다.

조금 더 깊이

흔들어 바치는 가슴과 떼어 바치는 다리를 서로 구별하여 표현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두 의식의 정확한 손동작을 이 본문만으로 모두 복원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부분 모두 임의로 제사장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구별된다는 사실입니다.

시나이산에서 시작된 가르침

레위기 7:37–38 본문 →

이것은 번제와 곡식 제물과 정화 제물과 속건 제물과 위임식과 친교 제물에 관한 가르침으로,레위기 7:37 · 본디새김

앞의 제사 규정들에서는 위임식을 다른 제물처럼 길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위임식의 구체적인 장면은 이어지는 레위기 8장에서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제물과 피, 기름 부음, 거룩한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7:37의 목록은 지금까지 설명한 제사 규정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제사장들이 실제로 세워지는 장면까지 연결합니다.

여호와야훼가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명령한 것이었다. 그날 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시나이 광야에서 자기들의 제물을 여호와야훼에게 바치라고 명령했다.레위기 7:38 · 본디새김

레위기 1장은 여호와야훼가 만남의 천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7장 끝에서는 시나이산과 시나이 광야가 언급됩니다.

출애굽기 후반에서 이스라엘은 시나이산 앞에 머물며 언약을 맺고 성막을 세웠습니다. 레위기 1장의 만남의 천막은 바로 이 시나이 광야의 이야기 안에 있습니다. 7:38은 제사 규정 전체를 하나님이 시나이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의 맥락 안에 놓습니다.

이 모든 규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필요에 따라 임의로 만들어 낸 관습이라고 소개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하신 가르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는다는 것

레위기 7:1–38 본문 →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고기를 먹는 일은 제사가 끝난 뒤의 사적인 소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그 음식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는가도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몫과 경계를 존중하는 가운데 누리는 기쁨입니다.

레위기 7장의 마지막 장면으로 감사의 제물이 놓인 식탁을 떠올려 봅니다.

제물의 지방은 이미 제단에서 태워졌습니다. 가슴과 오른쪽 다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의 몫으로 구별되었습니다. 남은 고기는 정결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제물을 바친 사람은 그 고기를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식탁에는 하나님께 드린 감사와 사람들이 누리는 양식이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을 이어 주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신 제물이 사람들의 식탁에 돌아올 때에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식으로 누려야 하는 선물입니다.

감사의 친교 제물은 오늘 드려졌습니다.

그 고기는 오늘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드린 감사는 제단의 연기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식사의 자리에서도 표현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