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8–10장 · 제사장 세우기
거룩한 일을 맡기 전에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다
레위기 8장은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특별한 옷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고, 제물을 바치며,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 장을 천천히 읽으면 뜻밖의 사실을 발견합니다. 제사장 위임식에서 정작 제사장들은 제사를 집례하지 않습니다.
아론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서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씻김을 받고, 옷을 입고, 속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거룩한 일을 맡을 사람도, 먼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셔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 장은 제사장에게 어떤 권한이 주어지는지를 설명하기보다, 그 권한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 줍니다.
레위기 1–7장이 제물과 제사에 관한 규정을 제시했다면, 8장은 그 제사를 집례할 사람을 준비시키는 이야기입니다. 장면은 회중이 모이는 데서 시작하여 씻김과 옷 입힘, 기름부음, 세 종류의 제물, 거룩한 식사, 이레 동안의 기다림으로 이어집니다.
온 회중 앞에서 이루어지는 위임식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뿐 아니라 제사장 옷, 기름부음용 기름, 수소 한 마리, 숫양 두 마리, 누룩 없는 빵 바구니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온 회중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모아라.」레위기 8:3 · 본디새김
왜 제사장 위임식에 온 회중이 필요할까요? 제사장은 아론 집안의 사적인 종교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가는 일에 관여할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를 세우는 일은 온 공동체와 관계됩니다.
모세가 회중에게 말했다. 「이것이 여호와야훼가 행하라고 명령한 일이다.」레위기 8:5 · 본디새김
모세는 자신이 아론을 선택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론의 자질이나 공로를 소개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진행할 모든 행위의 근거를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둡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8–29장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제사장 옷을 만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방법을 지시하셨습니다. 레위기 8장은 그 명령이 실제로 실행되는 장면입니다.
특히 이 장에는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였다」라는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8:4, 9, 13, 17, 21, 29). 이 반복은 단순히 모세가 성실하게 일했다는 평가가 아닙니다. 독자가 보는 모든 동작이 개인의 판단이나 즉흥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명령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제사장의 권한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지만, 그 권한의 출처는 공동체의 선택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명령입니다.
레위기 8장의 제사장 위임은 출애굽기 19:5–6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소명과도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이자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큰 소명 안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특별한 제사장 직무를 맡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들 자신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입니다.
사람을 씻기고 옷을 입히며, 장소까지 거룩하게 하다
위임식의 첫 번째 실제 동작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가까이 오게 하고 그들을 물로 씻겼다.레위기 8:6 · 본디새김
제사장 직무를 맡기 위한 의식적 준비입니다. 출애굽기 29:4에서도 제사장 옷을 입히기 전에 물로 씻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어서 모세는 아론에게 속옷과 겉옷, 에봇, 가슴패, 두건을 차례로 입히고 마지막으로 금패를 답니다. 에봇의 어깨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두 보석이 있었고(출애굽기 28:9–12), 가슴패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들이 달려 있었습니다(출애굽기 28:15–21). 아론은 여호와야훼 앞에 들어갈 때 그 이름들을 몸에 지니게 됩니다.
그의 옷은 그가 누구인지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가 누구를 위해 서 있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옷입니다.
가슴패 안에는 우림과 툼밈도 넣습니다(8:8). 출애굽기 28:30은 이것들을 판결의 가슴패와 연결합니다. 민수기 27:21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과 관련됩니다. 다만 우림과 툼밈의 구체적인 형태와 사용 절차는 성경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출애굽기 28:36에는 그 금패에 새길 말이 제시됩니다. 「여호와야훼께 거룩」이라는 선언입니다. 옷 자체가 아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사람이 아니라 공간에도 기름을 붓는 이유
아론의 옷을 갖춘 뒤 모세는 곧바로 그에게 기름을 붓지 않습니다.
모세는 기름부음용 기름을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들을 성별했다.레위기 8:10 · 본디새김
그리고 제단에 일곱 번 기름을 뿌리고, 제단과 기구, 대야와 받침에도 기름을 바릅니다. 성경에서 거룩함은 단순히 인간의 내면이 훌륭하거나 도덕적으로 깨끗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여호와야훼께 속하여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는 것도 거룩함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기름부음용 기름의 일부를 아론의 머리 위에 붓고, 그를 성별하려고 그에게 기름을 발랐다.레위기 8:12 · 본디새김
성막과 제단에 사용한 기름이 아론에게도 사용됩니다. 장소와 사람이 따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구별됩니다.
한편 이 부분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구별됩니다. 아론에게는 머리 위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만, 아들들에게는 옷을 입히는 일만 기록됩니다. 아들들도 30절에서 기름과 피를 뿌림으로써 성별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아론의 특별한 제사장 지위를 보여 주면서도, 그와 아들들이 동일한 거룩한 직무 체계 안에 속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제사장을 세우기 위해 제단부터 정화하다
옷과 기름부음이 끝났습니다. 이제 제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가장 먼저 가져오는 것은 정화 제물로 바칠 수소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모세는 수소를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제단 둘레의 뿔들에 발라 제단을 정화했다. 피는 제단 밑받침에 쏟아붓고, 제단을 위해 속죄하려고 그것을 성별했다.레위기 8:15 · 본디새김
제단은 구리를 입힌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도덕적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제단을 위해 속죄해야 할까요?
레위기 16:16–19에서는 이스라엘의 부정과 죄로 인해 성소와 제단을 위한 속죄 의식을 행하도록 명령합니다. 이때 문제는 제단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머무시는 장소를 정화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레위기 8장은 그 원리를 제사장 위임식의 시작에 적용합니다. 제단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드릴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제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정화하고 성별해야 합니다.
기름을 바르는 일과 피를 바르는 일이 모두 필요한 이유도 이 문맥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름부음은 장소를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고, 정화 제물의 피는 제단을 정화하며 속죄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 제물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정화 제물의 지방은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리지만, 수소의 가죽과 살과 똥은 진영 밖에서 불태웁니다.
그다음에는 번제로 바칠 숫양이 등장합니다.
앞선 정화 제물에서는 일부만 제단에서 불태운 반면, 번제에서는 숫양 전체를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립니다. 내장과 다리까지 씻어서 제물로 바칩니다. 본문은 이것을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내는 번제」라고 부릅니다(8:21).
정화 제물이 제단의 정화와 속죄에 초점을 맞춘다면, 번제는 제물을 온전히 여호와야훼께 올려 드리는 행위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앞으로 백성의 제사를 집례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자신들을 위해 드려지는 제물에 손을 얹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속죄가 필요 없는 사람으로 높아지는 일이 아닙니다. 속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한 제사의 직무를 맡는 일입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5:1–3은 대제사장이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어 히브리서 7:27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를 위해 제사드릴 필요가 없는 제사장으로 구별합니다. 이것은 레위기 8장의 직접적인 예언이라기보다, 이 장에 나타난 인간 제사장의 조건을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대조하여 읽는 신학적 연결입니다.
조금 더 깊이
8:15에서 수소를 잡는 동작의 히브리어 동사에는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피의 처리에서는 모세가 주어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전체 동작을 모세의 집례로 이해할 수 있지만, 수소를 직접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동사 하나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분명한 것은 모세가 제단의 피를 처리하는 중심 집례자라는 사실입니다.
피가 귀와 손과 발에 닿다
세 번째 제물은 다른 두 제물과 구별됩니다.
그는 둘째 숫양, 곧 위임식 숫양을 가까이 데려왔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숫양의 머리에 자기들의 손을 얹었다.레위기 8:22 · 본디새김
위임식 숫양은 제사장을 그 직무에 세우는 의식에 사용됩니다. 아론과 아들들이 손을 얹은 뒤, 모세는 숫양을 잡고 그 피를 특별한 곳에 바릅니다. 아론의 오른쪽 귓불, 오른손 엄지손가락, 오른발 엄지발가락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같은 일을 행합니다.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것은 어떤 기술을 얻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거룩한 직무를 위해 구별되는 일입니다.
머리에 부은 기름이 아론의 특별한 직무를 드러냈다면, 귀와 손과 발에 바른 피는 그의 몸이 그 직무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귀와 손과 발은 사람이 살아가며 사용하는 서로 다른 신체 부위입니다. 이 부위들을 상징적으로 읽으면, 귀는 듣는 일, 손은 행하는 일, 발은 걸어가는 삶의 방향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정해진 제사를 수행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귓불이 순종을, 엄지손가락이 봉사를, 엄지발가락이 삶의 행로를 뜻한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는 의식의 동작에서 이끌어 내는 상징적 해석입니다. 레위기 14:14–17에서는 피부병에서 회복되어 정화 의식을 거치는 사람에게도 오른쪽 귓불, 오른손 엄지손가락,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피를 바르게 합니다. 그 의식에서는 같은 부위에 기름도 바릅니다. 두 의식의 목적은 다릅니다. 하나는 제사장 위임식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한 상태로 돌아오는 사람을 위한 의식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신체 부위에 피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거룩한 영역에 합당하게 서도록 사람을 준비시키는 공통된 의례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의 손을 채우다
모세는 숫양의 지방과 오른쪽 다리, 누룩 없는 빵 세 종류를 가져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아론의 손바닥들과 그의 아들들의 손바닥들 위에 놓고, 그것들을 여호와야훼 앞에서 흔들어 바쳤다.레위기 8:27 · 본디새김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질 직무와 직접 관련된 것을 손에 받습니다.
모세는 그것들을 그들의 손바닥 위에서 가져다가 제단에서 번제 위에 태워 연기로 올렸다. 이것들은 여호와야훼에게 흡족한 향기를 내는 위임식 제물들이었으며, 여호와야훼에게 바치는 불 제물이었다.레위기 8:28 · 본디새김
제사장은 자신의 권한으로 하나님께 무언가를 제공하는 독립적인 종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기름과 피가 옷까지 적시다
위임식 숫양의 가슴 부분은 모세에게 돌아갑니다(8:29). 모세가 제사의 집례자로서 자신의 몫을 받는다는 점에서도, 이 위임식과 앞으로 아론의 아들들이 담당할 일반적인 제사 사이에 차이가 드러납니다.
모세는 기름부음용 기름의 일부와 제단 위에 있는 피의 일부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들과 그와 함께 있는 그의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들에 뿌렸다. 그는 아론과 그의 옷들과 그와 함께 있는 그의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들을 성별했다.레위기 8:30 · 본디새김
옷을 입었다고 곧바로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겉모습으로만 성립하지 않습니다. 정화와 속죄, 성별의 의식이 함께 필요합니다.
옷과 몸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제사장의 거룩한 직무는 그가 입는 옷에만 머무는 것도, 그가 사용하는 도구에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존재와 행동 전체에 관계됩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33절에는 「여러분에게 직무를 위임하는 데」(מָלֵא)라고 번역된 표현이 나오는데, 히브리어에는 ‘여러분의 손을 채우다’라는 관용적 표현이 사용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장 위임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단순히 손바닥에 물건을 올려놓는다는 뜻이 아니라, 직무를 맡기고 그 직무를 수행할 자리에 세운다는 뜻입니다. 제사장 직무를 맡긴다는 말이 ‘손을 채운다’는 표현과 관련되는데, 위임식의 중심 장면에서는 실제로 그들의 손에 제물이 놓입니다. 이 동작 하나에서 ‘손을 채운다’는 관용구가 유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독자는 언어와 의식 사이의 의미 있는 호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임식은 식사로 이어지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제사가 끝난 뒤 모세는 아론과 아들들에게 고기와 빵을 먹으라고 지시합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했다.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고기를 삶으시오. 내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것을 먹어야 한다』고 명령한 대로, 거기서 그 고기와 위임식 바구니에 있는 빵을 먹으시오.」레위기 8:31 · 본디새김
그러나 이것은 자유로운 축하 잔치가 아닙니다. 먹는 장소도 정해져 있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방식도 정해져 있습니다.
「고기와 빵 가운데 남은 것은 불에 태우시오.」레위기 8:32 · 본디새김
출애굽기 29:33은 위임식에 사용된 음식을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이유를 그것이 거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음식은 평범한 식사에 사용되는 음식과 구별됩니다. 제사장들이 거룩한 직무를 맡기 위해 참여한 의식에 속한 음식이므로, 먹는 사람과 장소와 처리 방법에 제한이 있습니다.
거룩한 직무는 제사를 수행하는 순간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이후의 식사까지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안에 있습니다.
왜 이레 동안 나갈 수 없는가
그런데 식사 지시가 끝난 뒤 모세는 예상하지 못한 명령을 내립니다.
「여러분의 위임식 기간이 차는 날까지 이레 동안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나가지 마시오. 여러분에게 직무를 위임하는 데 이레가 걸리기 때문이오.」레위기 8:33 · 본디새김
출애굽기 29:35–37에서는 제사장 위임식을 이레 동안 행하고, 날마다 수소를 정화 제물로 드리며 제단을 정화하고 성별하도록 지시합니다. 따라서 레위기 8장에서 묘사된 의식은 단 하루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레 동안 이어지는 위임 과정의 일부로 이해해야 합니다.
명령하는 모세도 명령받은 사람이다
「이레 동안 밤낮으로 만남의 천막 입구에 머물며 여호와야훼가 맡긴 직무를 지키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죽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렇게 명령받았기 때문이오.」레위기 8:35 · 본디새김
여기서 「여호와야훼가 맡긴 직무를 지키시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여호와야훼의 맡기신 일, 곧 지켜야 할 의무를 지키라’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지키고, 맡겨진 의무를 수행하라는 말입니다.
31절에서 모세는 자신이 명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35절에서는 자신이 명령받았다고 말합니다.
같은 사람이 명령을 내리는 자이면서 동시에 명령을 받은 자입니다.
모세는 지금 위임식을 집례하고 모든 절차를 지휘합니다. 아론과 아들들은 그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모세 역시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도 여호와야훼의 말씀 아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시고, 모세가 수행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직무를 받습니다.
거룩한 직무는 영예로운 일이지만, 그 영예가 하나님 앞에서의 위험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거룩한 장소에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은 그 장소를 다루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죽지 않을 것이오」라는 경고는 곧 레위기 10장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명령받지 않은 불을 드렸다가 죽는 사건과 연결됩니다(10:1–3).
그러나 이 장 자체는 심판의 장면이 아니라 순종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여호와야훼가 모세를 통해 명령한 모든 일을 했다.레위기 8:36 · 본디새김
처음에는 모세가 여호와야훼의 명령대로 행했고(8:4), 마지막에는 아론과 아들들이 그 명령대로 행합니다. 이러한 처음과 마지막의 호응은 의도적인 문학적 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의 순종으로 시작된 위임식이 아론과 아들들의 순종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한 가지 해석상의 여지는 남습니다. 34절의 「오늘 행한 대로 행하여」라는 표현이 첫날의 의식 전체를 매일 동일하게 반복한다는 뜻인지, 출애굽기에 명령된 이레 동안의 속죄와 성별 절차를 가리키는 것인지 구체적인 범위는 명시되지 않습니다. 다만 출애굽기 29:35–37을 함께 읽으면, 위임이 하루가 아닌 이레 동안 진행되는 의식임은 분명합니다. 33절의 히브리어 표현은 직무를 맡기는 행위를 말하지만, 그 행위의 주체를 직접 밝히지는 않습니다. 문맥상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집례하는 과정이므로, 하나님의 명령과 모세의 실행을 구별하면서 함께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레위기 8장이 보여 주는 제사장의 본질
거룩함은 인간이 스스로 획득하여 하나님 앞에 내놓는 자격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서 아론은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주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집례되는 의식을 통해 거룩한 직무에 세워집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미 제사장 옷을 입고 있습니다. 몸에는 기름과 피가 뿌려졌습니다. 제물이 불태워졌고, 거룩한 식사도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머무는 곳은 여전히 만남의 천막 입구입니다.
바로 안쪽에는 거룩한 성막이 있고, 그들 앞에는 앞으로 섬겨야 할 제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요한 직무를 맡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능력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 머물며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것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들의 손은 이미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손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레위기 8장은 그렇게 끝납니다. 거룩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만남의 천막 입구에 머물며, 자신들을 세우신 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