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8–10장 · 제사장 세우기

거룩한 일을 맡기 전에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다

레위기 8장은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특별한 옷을 입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되고, 제물을 바치며,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 장을 천천히 읽으면 뜻밖의 사실을 발견합니다. 제사장 위임식에서 정작 제사장들은 제사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아론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서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씻김을 받고, 옷을 입고, 속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거룩한 일을 맡을 사람도, 먼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셔야 하는 사람입니다.

레위기 1–7장이 제물과 제사에 관한 규정을 제시했다면, 8장은 그 제사를 진행할 사람을 준비시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에도 제사장들은 아직 자기 일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사를 진행하는 장면은 다음 장에서 시작됩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78장 본문 읽기 →

온 회중 앞에서 이루어지는 위임식

레위기 8:1–5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뿐 아니라 제사장의 옷들, 기름을 부어 구별하는 데 쓸 기름, 수소 한 마리, 숫양 두 마리, 누룩 없는 빵 바구니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온 공동체를 만남의 천막 입구로 모아라.」레위기 8:3 · 두루새김

왜 제사장 위임식에 온 공동체가 필요할까요? 제사장은 아론 집안의 사적인 종교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가는 일에 관여할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를 세우는 일은 온 공동체와 관계됩니다.

모세가 공동체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일이다.」레위기 8:5 · 두루새김

모세는 자신이 아론을 선택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론의 자질이나 공로를 소개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진행할 모든 행위의 근거를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둡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8–29장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에게 제사장 옷을 만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방법을 지시하셨습니다. 레위기 8장은 그 명령이 실제로 실행되는 장면입니다.

특히 이 장에는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했다는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4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라고 하고, 이어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습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8:9, 13, 17, 21, 29).

공동체는 아론에게 거룩한 권한을 주는 주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누가, 어떤 근거로 제사장으로 세워지는지를 함께 목격합니다.

제사장의 권한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지만, 그 권한의 출처는 공동체의 선택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명령입니다.

레위기 8장의 제사장 위임은 출애굽기 19:5–6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부르심과도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이자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큰 부르심 안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특별한 제사장의 일을 맡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들 자신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입니다.

사람을 씻기고 옷을 입히며, 장소까지 거룩하게 하다

레위기 8:6–13 본문 →

위임식의 첫 번째 실제 동작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가까이 오게 하여 물로 씻겼습니다.레위기 8:6 · 두루새김

제사장의 일을 맡기 위한 의식적 준비입니다. 출애굽기 29:4에서도 제사장 옷을 입히기 전에 물로 씻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어서 모세는 아론에게 속옷과 겉옷, 에봇, 가슴패, 두건을 차례로 입히고 마지막으로 금으로 만든 판을 답니다. 에봇의 어깨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두 보석이 있었고(출애굽기 28:9–12), 가슴패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들이 달려 있었습니다(출애굽기 28:15–21). 아론은 여호와야훼 앞에 들어갈 때 그 이름들을 몸에 지니게 됩니다.

그의 옷은 그가 누구인지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가 누구를 위해 서 있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옷입니다.

가슴패 안에는 우림과 툼밈도 넣습니다(8:8). 출애굽기 28:30은 이것들을 판결의 가슴패와 연결합니다. 민수기 27:21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과 관련됩니다. 다만 우림과 툼밈의 구체적인 형태와 사용 절차는 성경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출애굽기 28:36에는 그 판에 새길 말이 제시됩니다. 여호와야훼께 거룩하게 속해 있다는 선언입니다. 옷 자체가 아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사람이 아니라 공간에도 기름을 붓는 이유

아론의 옷을 갖춘 뒤 모세는 곧바로 그에게 기름을 붓지 않습니다. 먼저 성막과 그 안의 물건들, 제단과 기구들에 기름을 바릅니다.

모세는 그 기름을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구별했습니다.레위기 8:10 · 두루새김

그리고 제단에 일곱 번 기름을 뿌리고, 제단과 기구, 대야와 받침에도 기름을 바릅니다. 성경에서 거룩함은 단순히 사람의 마음이 훌륭하거나 도덕적으로 깨끗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여호와야훼께 속하여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는 것도 거룩함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모세는 그 기름을 아론의 머리에 부어, 아론을 거룩하게 구별했습니다.레위기 8:12 · 두루새김

성막과 제단에 사용한 기름이 아론에게도 사용됩니다. 장소와 사람이 따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리와 예배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구별됩니다.

한편 이 부분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구별됩니다. 아론에게는 머리 위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만, 아들들에게는 옷을 입히는 일만 기록됩니다. 아들들도 30절에서 기름과 피를 뿌림으로써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아론의 특별한 제사장 지위를 보여 주면서도, 그와 아들들이 같은 거룩한 일을 맡는 질서 안에 속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제사장을 세우기 위해 제단부터 정화하다

레위기 8:14–21 본문 →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구별하는 일이 끝났습니다. 이제 제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가장 먼저 가져오는 것은 정화 제물로 바칠 수소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모세는 수소를 잡고 그 피를 손가락으로 제단 둘레의 뿔들에 발라 제단을 정화했습니다. 남은 피는 제단 밑부분에 쏟았습니다. 모세는 제단을 위해 속죄하려고 제단을 거룩하게 구별했습니다.레위기 8:15 · 두루새김

제단은 구리를 입힌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도덕적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제단을 위해 속죄해야 할까요?

레위기 16:16–19에서는 이스라엘의 부정과 죄로 인해 성소와 제단을 위한 속죄 의식을 행하도록 명령합니다. 이때 문제는 제단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머무시는 장소를 정화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레위기 8장은 그 원리를 제사장 위임식의 시작에 적용합니다. 제단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드릴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제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정화하고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기름을 바르는 일과 피를 바르는 일이 모두 필요한 이유도 이 문맥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일은 장소를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고, 정화 제물의 피는 제단을 정화하며 속죄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 제물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정화 제물의 지방은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리지만, 수소의 가죽과 고기와 오물은 진영 밖에서 불태웁니다. 그다음에는 번제로 바칠 숫양이 등장합니다. 앞선 정화 제물에서는 일부만 제단에서 불태운 반면, 번제에서는 숫양 전체를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립니다. 내장과 다리까지 씻어서 제물로 바칩니다.

정화 제물이 제단의 정화와 속죄에 초점을 맞춘다면, 번제는 제물을 온전히 여호와야훼께 올려 드리는 행위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앞으로 백성의 제사를 진행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자신들을 위해 드려지는 제물에 손을 얹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속죄가 필요 없는 사람으로 높아지는 일이 아닙니다. 속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한 제사의 일을 맡는 일입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5:1–3은 대제사장이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어 히브리서 7:27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를 위해 제사드릴 필요가 없는 제사장으로 구별합니다. 이것은 레위기 8장의 직접적인 예언이라기보다, 이 장에 나타난 인간 제사장의 조건을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대조하여 읽는 신학적 연결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수소를 잡는 동작의 히브리어 동사에 주어가 직접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피의 처리에서는 모세가 주어로 등장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흐름에 따라 수소를 잡는 일도 모세가 한 것으로 옮겼습니다. 전체 동작을 모세가 진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수소를 직접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원문의 동사 하나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피가 귀와 손과 발에 닿다

레위기 8:22–24 본문 →

세 번째 제물은 다른 두 제물과 구별됩니다.

모세는 두 번째 숫양, 곧 위임식 제물로 바칠 숫양을 데려왔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숫양의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레위기 8:22 · 두루새김

위임식 제물로 바칠 숫양은 제사장에게 그 일을 맡기는 의식에 사용됩니다. 아론과 아들들이 손을 얹은 뒤, 모세는 숫양을 잡고 그 피를 특별한 곳에 바릅니다. 아론의 오른쪽 귓불, 오른손 엄지손가락, 오른발 엄지발가락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같은 일을 행합니다.

레위기 14:14–17에서는 피부병에서 회복되어 정화 의식을 거치는 사람에게도 오른쪽 귓불, 오른손 엄지손가락,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피를 바르게 합니다. 그 의식에서는 같은 부위에 기름도 바릅니다.

두 의식의 목적은 다릅니다. 하나는 제사장 위임식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한 상태로 돌아오는 사람을 위한 의식입니다. 하지만 같은 신체 부위에 피를 바른다는 점에서, 거룩한 영역에 합당하게 서도록 사람을 준비시키는 의식의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것은 어떤 기술을 얻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거룩한 일을 위해 구별되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귀와 손과 발은 사람이 살아가며 사용하는 서로 다른 신체 부위입니다. 이 부위들을 상징적으로 읽으면, 귀는 듣는 일, 손은 행하는 일, 발은 걸어가는 삶의 방향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귓불이 순종을, 엄지손가락이 봉사를, 엄지발가락이 삶의 길을 뜻한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는 의식의 동작에서 이끌어 내는 상징적 해석입니다.

제사장의 손을 채우다

레위기 8:25–30 본문 →

모세는 숫양의 지방과 오른쪽 다리, 누룩 없는 빵 세 종류를 가져옵니다.

모세는 이것들을 모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흔들어 바쳤습니다.레위기 8:27 · 두루새김

제사장의 일을 맡긴다는 말이 ‘손을 채운다’는 표현과 관련되는데, 위임식의 중심 장면에서는 실제로 그들의 손에 제물이 놓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질 일과 직접 관련된 것을 손에 받습니다.

모세는 그것들을 그들의 손에서 받아 제단의 번제물 위에 얹고 태워 연기로 올렸습니다. 이것들은 여호와야훼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를 내는 위임식 제물이며, 여호와야훼께 불에 태워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레위기 8:28 · 두루새김

제사장은 자신의 권한으로 하나님께 무언가를 제공하는 독립적인 종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기름과 피가 옷까지 적시다

위임식 숫양의 가슴 부위는 모세에게 돌아갑니다(8:29). 모세가 제사를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몫을 받는다는 점에서도, 이 위임식과 앞으로 아론의 아들들이 담당할 일반적인 제사 사이에 차이가 드러납니다.

모세는 거룩하게 구별하는 데 쓰는 기름과 제단 위에 있는 피를 조금씩 가져왔습니다. 그것을 아론과 그의 옷, 아론의 아들들과 그들의 옷에 뿌렸습니다. 이렇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들이 입은 옷을 모두 거룩하게 구별했습니다.레위기 8:30 · 두루새김

옷은 이미 7–13절에서 입혔습니다. 그때 제사장으로서의 모습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위임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화 제물과 번제, 위임식 숫양을 거친 뒤에야 다시 사람과 옷에 기름과 피가 뿌려집니다.

옷과 몸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맡은 거룩한 일은 그가 입는 옷에만 머무는 것도, 그가 사용하는 도구에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존재와 행동 전체에 관계됩니다.

조금 더 깊이

22절의 ‘위임식’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밀루임(milluʾim)입니다. ‘채우다’라는 뜻을 가진 어근에서 나온 말로, 제사장의 일을 맡기는 의식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특히 33절에는 「여러분에게 제사장의 일을 맡기는」이라고 번역된 표현이 나오는데, 원문에서는 ‘여러분의 손을 채우다’라는 관용적 표현이 사용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의 일을 맡기는 것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단순히 손바닥에 물건을 올려놓는다는 뜻이 아니라, 일을 맡기고 그 일을 수행할 자리에 세운다는 뜻입니다.

위임식은 식사로 이어지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위기 8:31–36 본문 →

모든 제사가 끝난 뒤 모세는 아론과 아들들에게 고기와 빵을 먹으라고 지시합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했습니다.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고기를 삶으세요. 내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먹어야 한다』라고 명령한 대로, 거기서 그 고기와 위임식 바구니에 담긴 빵을 먹으세요.」레위기 8:31 · 두루새김

제물의 일부는 제단에서 불태워지고, 일부는 모세에게 돌아갔으며, 나머지는 아론과 아들들이 먹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로운 축하 잔치가 아닙니다. 먹는 장소도 정해져 있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방식도 정해져 있습니다.

「고기와 빵 가운데 남은 것은 불에 태우세요.」레위기 8:32 · 두루새김

출애굽기 29:33은 위임식에 사용된 음식을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이유를 그것이 거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음식은 평범한 식사에 사용되는 음식과 구별됩니다. 제사장들이 거룩한 일을 맡기 위해 참여한 의식에 속한 음식이므로, 먹는 사람과 장소와 처리 방법에 제한이 있습니다.

거룩한 일은 제사를 수행하는 순간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이후의 식사까지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안에 있습니다.

왜 이레 동안 나갈 수 없는가

그런데 식사 지시가 끝난 뒤 모세는 예상하지 못한 명령을 내립니다.

「여러분의 위임식이 끝날 때까지 칠 일 동안 만남의 천막 입구를 떠나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제사장의 일을 맡기는 위임식에는 칠 일이 걸리기 때문이에요.」레위기 8:33 · 두루새김

출애굽기 29:35–37에서는 제사장 위임식을 칠 일 동안 행하고, 날마다 수소를 정화 제물로 드리며 제단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구별하도록 지시합니다. 따라서 레위기 8장에서 묘사된 의식은 단 하루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칠 일 동안 이어지는 위임 과정의 일부로 이해해야 합니다.

명령하는 모세도 명령받은 사람이다

「칠 일 동안 밤낮으로 만남의 천막 입구에 머물며, 여호와야훼께서 맡기신 책임을 다하세요. 그래야 죽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렇게 명령받았어요.」레위기 8:35 · 두루새김

여기서 「여호와야훼께서 맡기신 책임을 다하세요」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여호와야훼의 맡기신 일, 곧 지켜야 할 의무를 지키라’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단순히 입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지키고, 맡겨진 의무를 수행하라는 말입니다.

31절에서 모세는 자신이 명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35절에서는 자신이 명령받았다고 말합니다.

같은 사람이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모세는 지금 위임식을 진행하고 모든 절차를 지휘합니다. 아론과 아들들은 그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모세 역시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도 여호와야훼의 말씀 아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시고, 모세가 수행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일을 맡습니다.

거룩한 일을 맡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지만, 그 영예가 하나님 앞에서의 위험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거룩한 장소에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은 그 장소를 다루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이 경고는 곧 레위기 10장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명령받지 않은 불을 드렸다가 죽는 사건과 연결됩니다(10:1–3).

그러나 이 장 자체는 심판의 장면이 아니라 순종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여호와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모든 일을 했습니다.레위기 8:36 · 두루새김

처음에는 모세가 여호와야훼의 명령대로 행했고(8:4), 마지막에는 아론과 아들들이 그 명령대로 행합니다. 이러한 처음과 마지막의 호응은 의도적으로 짜인 문학적 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의 순종으로 시작된 위임식이 아론과 아들들의 순종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34절의 「오늘 한 것과 같이 하라고」라는 표현이 첫날의 의식 전체를 매일 똑같이 반복한다는 뜻인지, 출애굽기에 명령된 칠 일 동안의 속죄와 거룩하게 구별하는 절차를 가리키는 것인지 구체적인 범위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출애굽기 29:35–37을 함께 읽으면, 위임이 하루가 아닌 칠 일 동안 진행되는 의식임은 분명합니다.

레위기 8장이 보여 주는 제사장의 본질

레위기 8:1–36 본문 →

먼저, 거룩함은 인간이 스스로 얻어서 하나님 앞에 내놓는 자격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서 아론은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주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진행되는 의식을 통해 거룩한 일을 맡을 자리에 세워집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미 제사장 옷을 입고 있습니다. 몸에는 기름과 피가 뿌려졌습니다. 제물이 불태워졌고, 거룩한 식사도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머무는 곳은 여전히 만남의 천막 입구입니다.

바로 안쪽에는 거룩한 성막이 있고, 그들 앞에는 앞으로 섬겨야 할 제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요한 일을 맡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능력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 머물며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들의 손은 이미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손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레위기 8장은 그렇게 끝납니다. 거룩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만남의 천막 입구에 머물며, 자신들을 세우신 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