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8–10장 · 제사장 세우기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시다

레위기 9장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처음으로 제사를 집례하는 날을 보여 줍니다.

아론은 제단으로 올라가 짐승을 잡고, 피를 바르고, 제물을 태웁니다. 그의 아들들은 피와 제물을 건네며 돕습니다. 모든 제사가 끝나자 아론은 백성을 축복합니다. 모세와 아론도 만남의 천막에 들어갔다 나와 백성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제사가 끝난 뒤에 일어납니다.

제사장은 제물을 드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79장 본문 읽기 →

여덟째 날, 모든 준비가 하나의 약속을 향하다

레위기 9:1–7 본문 →

레위기 9장은 시간부터 분명하게 밝힙니다.

여덟째 날에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렀다.레위기 9: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제사장들은 이레 동안 위임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제 여덟째 날입니다. 준비의 기간이 지나고 실제 직무를 시작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여덟째 날’이라는 표현에 창조의 완성이나 새로운 시대의 시작 같은 상징을 부여하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 본문이 직접 보여 주는 기능은 더 구체적입니다. 이레 동안의 위임이 끝나고 제사장들의 직무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먼저 그 자신을 위한 수송아지와 숫양을 준비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어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숫염소와 수송아지, 어린 숫양, 수소, 숫양, 기름을 섞은 곡식 제물을 가져오라고 전하라고 합니다.

아론을 위한 제물은 정화 제물과 번제입니다. 백성을 위한 제물에는 여기에 친교 제물과 곡식 제물까지 포함됩니다. 레위기 앞부분에서 설명한 여러 제사가 실제로 시행되는 날입니다.

「『또 여호와야훼 앞에서 잡아 친교 제물로 바칠 수소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 그리고 기름을 섞은 곡식 제물을 가져와라. 오늘 여호와야훼가 너희에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레위기 9:4 · 본디새김

제사는 아론이 집례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가 나타나실 대상은 아론만이 아닙니다. 「너희」, 곧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명령한 것들을 만남의 천막 앞으로 가져왔다. 온 회중이 가까이 와서 여호와야훼 앞에 섰다.레위기 9:5 · 본디새김

제사장들은 특별한 직무를 맡지만, 그 직무의 목적은 제사장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백성이 여호와야훼 앞에 서도록 섬기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했다. 「여호와야훼가 명령한 이 일을 행하여라. 그러면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날 것이다.」레위기 9:6 · 본디새김

레위기 9장에서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이 나타나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따라 준비하며,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모두가 가까이 오지만, 같은 방식으로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레위기 9장에는 ‘가까이 오다’라는 동작이 반복됩니다.

5절에서 온 회중이 가까이 와 여호와야훼 앞에 섭니다. 7절에서는 모세가 아론에게 제단에 가까이 가라고 명령합니다. 8절에서는 아론이 실제로 제단에 가까이 갑니다.

백성은 만남의 천막 앞으로 나아옵니다. 아론은 제단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옵니다.

모두가 여호와야훼의 임재를 향해 움직이지만, 아무나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다. 「여호와야훼가 명령한 대로 제단에 가까이 가서 자신의 정화 제물과 번제를 바치고, 자신과 백성을 위해 속죄하시오. 또 백성의 제물을 바치고 그들을 위해 속죄하시오.」레위기 9:7 · 본디새김

‘속죄’가 두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아론 자신과 백성을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백성을 위해서입니다.

이 반복을 모두 같은 제사의 반복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장은 아론 자신의 제물과 백성의 제물을 구별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속죄는 아론의 제사장 직무가 백성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 주고, 두 번째 속죄는 백성을 위한 제물의 집례를 명령합니다.

아론은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속죄의 직무를 수행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한 제사를 건너뛰고 곧바로 백성의 제사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도 속죄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아론이 처음으로 제단에 서다

레위기 9:8–14 본문 →

이제 모세가 아닌 아론이 제사를 집례합니다.

아론은 제단에 가까이 가서 자신을 위한 정화 제물인 수송아지를 잡았다.레위기 9:8 · 본디새김

지금까지는 모세가 위임식을 집례했습니다. 이제 아론이 직접 제물을 잡고, 피를 처리하고, 제단에서 제물을 태웁니다.

그런데 아론 혼자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론의 아들들이 그에게 피를 가져왔다. 그는 손가락을 피에 담가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피는 제단 밑받침에 쏟아부었다.레위기 9:9 · 본디새김

번제를 바칠 때에도 같은 협력이 반복됩니다.

그는 번제 짐승을 잡았다. 아론의 아들들이 그에게 피를 건네주자 그는 그 피를 제단 둘레에 끼얹었다.레위기 9:12 · 본디새김

13절에서는 아들들이 번제 짐승의 토막과 머리를 건네주고, 아론이 그것들을 제단에서 태웁니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아론이 단순히 혼자서 제사의 기술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집안이 함께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아들들의 행동을 나타내는 말이 반복됩니다. 피를 가져오고, 건네주고, 제물의 토막을 건네줍니다. 아론은 제단에서 핵심 의식을 집례하고, 아들들은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돕습니다.

이렇게 레위기 8장에서 직무를 받은 사람들이 9장에서는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합니다.

첫 제사는 화려한 의식보다 이미 주어진 규정에 충실하다

아론의 제사는 앞의 규정과 연결되지만, 정화 제물의 피 처리는 다릅니다.

정화 제물의 피는 제단 뿔들에 바르고, 지방과 콩팥과 간에서 떼어 낸 부속 부분은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립니다. 살과 가죽은 진영 밖에서 불태웁니다.

그다음 번제로 바칠 숫양은 피를 제단 둘레에 끼얹고, 몸을 토막 내어 제단에서 태웁니다. 내장과 다리도 씻어서 태웁니다. 이러한 절차는 레위기 1장과 4장에 제시된 규정들과 연결됩니다.

첫 제사라고 해서 별도의 신비한 동작을 행하거나, 아론만의 특별한 능력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10절에서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였다」라고 말합니다.

아론이 하는 일은 이미 주어진 명령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론의 제사장직이 모세의 중재를 통해 전달된 여호와야훼의 명령과 분리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이제 스스로 제단에 서지만, 자신이 판단하는 대로 제사 방식을 바꿀 권한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의 히브리서 9–10장은 이러한 제사장 제도와 제사의 반복성을 배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레위기 9장의 직접적인 예언을 찾아내는 연결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가 다루던 하나님께 나아감과 속죄의 문제를 신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설명하는 신학적 연결입니다. 그러나 레위기 9장은 그보다 먼저, 이스라엘이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게 된 날의 이야기로 읽어야 합니다.

아론을 위한 제사에서 온 백성을 위한 제사로

레위기 9:15–21 본문 →

이제 이야기는 아론 개인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옮겨 갑니다.

그는 백성의 제물을 가까이 가져왔다. 백성을 위한 정화 제물인 숫염소를 데려다가 잡고, 앞의 것과 같이 그것을 정화 제물로 바쳤다.레위기 9:15 · 본디새김

여기에는 제사 절차를 설명하는 간결한 표현이 사용됩니다. 앞에서 이미 아론 자신의 정화 제물을 다루는 방법을 서술했기 때문에, 백성의 정화 제물에서는 그 과정을 모두 반복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번제를 바치는데, 16절은 「규정대로 바쳤다」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세세하게 서술하던 제사 동작이 여기서는 짧게 정리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절차가 빠졌다는 뜻이 아니라,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규정에 따라 제사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백성을 위한 제사에는 친교 제물이 더해진다

아론 자신을 위해서는 정화 제물과 번제가 준비되었지만, 백성을 위해서는 친교 제물도 준비됩니다. 친교 제물은 레위기 3장에서 설명된 제사입니다. 레위기 7:11–21에서는 친교 제물과 관련된 식사 규정이 제시되며, 7:28–34에서는 제물 가운데 제사장에게 돌아갈 몫이 정해집니다.

그러므로 친교 제물은 모든 것을 제단에서 불태우는 번제와 다릅니다. 일부는 제단에 바치고, 일부는 정해진 방식으로 사람들의 몫이 됩니다. 특히 친교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제사와 식사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백성이 여호와야훼 앞에 서는 일에는 속죄뿐 아니라 봉헌과 친교의 예배도 포함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죄를 해결하는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백성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 앞에서 친교의 제사를 드리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평범한 아침 제사와 특별한 날의 제사가 만나는 자리

그는 곡식 제물을 가까이 가져와 그 가운데서 한 손바닥 가득 덜어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렸다. 이것은 아침 번제 외에 바친 것이었다.레위기 9:17 · 본디새김

출애굽기 29:38–42에서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릴 상번제를 명령합니다. 민수기 28:3–8에서도 매일 바치는 번제가 규정됩니다.

오늘은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날 특별한 날입니다. 그렇지만 그 특별한 사건이 일상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정해진 예배가 있고, 그 위에 오늘의 특별한 제사가 더해집니다.

이날의 사건은 매일 이어질 이스라엘의 예배와 분리된 일회적인 공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제사장들이 지속적으로 섬겨야 할 예배의 질서 안에서 일어납니다.

지방은 제단에, 가슴과 오른쪽 다리는 흔들어 바친다

18–21절에서는 백성의 친교 제물을 바칩니다.

아론은 수소와 숫양을 잡고 피를 제단 둘레에 끼얹습니다. 아들들은 제물의 지방 부분들을 준비합니다.

19절의 히브리어 문장은 지방의 부위들을 열거하다가 20절에 이르러서야 그것들을 가슴들 위에 놓았다는 동작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두 절은 하나의 연속된 장면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물의 지방은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립니다. 가슴들과 오른쪽 다리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흔들어 바칩니다.

레위기 7:30–34와 비교하면 이 구분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친교 제물의 지방은 제단에서 불태워 바치는 몫이고, 가슴과 오른쪽 다리는 정해진 방식으로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는 몫과 연결됩니다.

하지만 그 몫 역시 제사장이 임의로 가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가운데 정해진 절차를 통해 받습니다.

이렇게 백성을 위한 마지막 제사까지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아직 백성에게 약속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제물은 바쳐졌고, 아론은 자기에게 맡겨진 의식을 수행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제단의 동작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제사가 끝나자 아론은 백성을 향한다

레위기 9:22 본문 →

아론은 백성을 향해 두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했다. 그는 정화 제물과 번제와 친교 제물을 바친 뒤 내려왔다.레위기 9:22 · 본디새김

지금까지 아론은 계속 제단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제물을 가져오고, 피를 바르고, 지방을 불태우고, 제물을 흔들어 바쳤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이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 앞에서 집례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끝난 후에는 백성을 향해 축복을 선언합니다. 이 두 방향은 제사장 직무의 서로 다른 측면을 보여 줍니다.

아론은 아직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나타나기 전에 축복합니다.

모세가 예고한 일은 아직 눈앞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론은 제사를 마친 뒤 백성에게 복을 선언합니다. 아론은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단에서 내려옵니다.

이 ‘내려옴’은 앞서 아론이 제단에 가까이 올라가던 동작과 짝을 이룹니다. 제사장의 제단 봉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중심에서 인간이 하는 일은 거의 끝났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아론이 손을 들어 축복했다는 사실을 말하지만, 축복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민수기 6:22–27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 사용할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야훼가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로 시작하는 제사장 축복입니다. 따라서 두 본문은 제사장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복을 선언한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다만 레위기 9:22에서 아론이 민수기 6장의 말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두 번째 축복 뒤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다

레위기 9:23 본문 →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한 번 더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여 줍니다.

모세와 아론이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을 축복했다.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다.레위기 9:23 · 본디새김

드디어 처음부터 예고되었던 사건이 이루어집니다.

4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6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23절에서 그 약속이 성취됩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위임식과 제사장직의 시작을 이끈 사람이고, 아론은 그 직무를 맡아 첫 제사를 집례한 사람입니다. 이 장면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명령과 아론에게 맡겨진 제사장 직무가 서로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영광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온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사건을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면이 다시 떠오르다

이 장면은 출애굽기 40:34–35와 깊이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40장에서 성막 건립이 끝났을 때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습니다. 그 영광 때문에 모세도 만남의 천막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9장에서는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제사장들이 세워지고 제사를 집례한 뒤, 모세와 아론이 만남의 천막에 들어갔다 나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40장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우는 장면을 강조했다면, 레위기 9장은 그 영광이 온 백성에게 드러나는 사건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9:42–46에 주어진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시고, 자신의 영광으로 그곳을 거룩하게 하시며,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9장은 바로 그 약속이 제사장의 직무와 제단의 예배를 통해 공동체의 경험으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성막과 제사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이 그분 앞에 나아가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과 만나십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이 두 번째 축복의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천막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천막 안에서 특별한 기도를 드렸다거나, 어떤 계시를 받았다거나, 첫 축복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축복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제단에서 나온 불과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백성

레위기 9:24 본문 →

마지막 절에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릅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와 지방들을 삼켰다. 온 백성이 그것을 보고 환호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레위기 9:24 · 본디새김

아론은 이미 제물을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삼킵니다.

사람이 불로 제물을 바치는 행위와, 여호와야훼 앞에서 나온 불이 제물을 삼키는 사건입니다. 앞의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사장의 직무입니다. 뒤의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시는 사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불의 근원이 여호와야훼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불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불이다

이 장면에서 불은 백성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24:17에서는 시나이산 위에 나타난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처럼 보였다고 말합니다. 그 불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분의 거룩함과 위엄을 보여 줍니다.

레위기 10:2에서는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야훼께 명령받지 않은 불을 바쳤을 때, 이번에도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켰다고 말합니다. 두 사건에서는 동일한 표현과 ‘삼키다’라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레위기 9장에서는 불이 제단의 제물을 삼킵니다. 레위기 10장에서는 불이 명령받지 않은 제사를 드린 사람들을 삼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는 인간에게 무조건 편안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일은 축복이면서도 경외를 요구하는 사건입니다.

환호와 엎드림이 동시에 일어나다

환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나타나셨다는 사건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는 반응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환호의 감정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바로 뒤에 엎드림을 기록합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그분 앞에 함부로 서 있을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쁨과 두려움이 서로 배제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만난 분은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며, 동시에 온 백성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릴 만큼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본문은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라고 말합니다. 불이 시작된 정확한 위치나 이동 경로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불의 등장은 제사가 끝난 뒤에 백성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제물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주는 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 자체는 「여호와야훼가 이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다」라는 문장으로 의미를 해설하지 않습니다. 그 해석은 앞선 명령의 성취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사건을 함께 읽을 때 도출되는 것입니다.

맺음말 — 제단 위의 불, 땅에 엎드린 백성

레위기 9:1–24 본문 →

그들은 불을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불러내는 방법을 발견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장이 그 직무를 수행한 뒤, 약속하신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실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인간이 정해진 제사를 수행하기만 하면 하나님도 반드시 영광을 나타내셔야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자동적인 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자신의 나타나심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 안에서 백성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제사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말씀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을 만나는 길입니다.

레위기 9장의 마지막에는 더 이상의 명령도 설명도 없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나온 불이 제물을 삼켰습니다. 온 백성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