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8–10장 · 제사장 세우기
거룩함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다
레위기 10장은 두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시지 않은 불을 바쳤다가 죽습니다. 바로 앞 장에서 제물을 삼켰던 불이 이번에는 제사장들을 삼킵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제사장들이 반드시 먹어야 할 정화 제물을 먹지 않고 불태웠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발견하고 크게 화를 냅니다. 그런데 아론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그 일을 좋게 여깁니다.
어째서 처음에는 명령과 다른 행동 때문에 죽음이 일어났는데, 마지막에는 명령과 다르게 처리한 일이 받아들여졌을까요?
그런데 두 사건 사이에는 여호와야훼가 아론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 놓여 있습니다.
제사장은 정해진 의식을 실행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무엇이 거룩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분별하여 백성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이 장은 제사장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끔찍한 실패에서 시작하여, 한 제사장이 자신에게 닥친 비극 속에서 무엇이 여호와야훼께 합당한지를 묻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 두 장면 사이에서 아론은 처음에는 침묵하다가 마지막에는 말합니다.
똑같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나온 불, 그러나 전혀 다른 결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각자 자기 불그릇을 가져다가 그 안에 불을 담고 그 불 위에 향을 놓았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여호와야훼 앞에 바쳤다.레위기 10:1 · 본디새김
이 사건은 바로 앞 장의 마지막 장면과 이어집니다.
레위기 9:24에서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제물을 삼켰습니다. 그것을 본 백성은 환호하며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0:2에서는 거의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켰다. 그들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죽었다.레위기 10:2 · 본디새김
두 장면의 히브리어 표현은 놀라울 만큼 가깝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왔다’는 표현과 ‘삼켰다’는 동사가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그러나 불이 삼킨 대상은 달라졌습니다.
앞에서는 제단에 놓인 제물이었고, 이번에는 제사를 드리려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는 것과,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행동을 받아들이시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드러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본문이 명시하는 잘못은 하나입니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않은」 불을 바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레위기 10:1은 그 불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랐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9:6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일을 행하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반면 10:1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시지 않은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 역시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오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죽음이 일어납니다.
‘명령한 일’과 ‘명령하지 않은 일’의 대조가 두 장을 연결합니다.
성막과 제사는 인간이 자기 방식으로 신에게 접근하기 위해 마련한 체계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이 자신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정하신 질서입니다.
여호와야훼께 가까이 나아가는 특권이 있다고 해서, 그분께 나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정할 권한까지 갖는 것은 아닙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근거로 오늘의 모든 예배 방식이나 사소한 절차상의 실수를 하나님의 죽음에 이르는 심판과 직접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건은 이스라엘 제사장직이 처음 시작되는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며, 본문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을 명령받지 않은 불을 바친 일과 연결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거룩함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다. 「여호와야훼가 『내게 가까운 이들 가운데서 나는 거룩함을 드러내고, 온 백성 앞에서 영광을 얻겠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일이오.」 아론은 침묵했다.레위기 10:3 · 본디새김
‘내게 가까운 이들’은 이 문맥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제사장들과 직접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백성보다 거룩한 장소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책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으로부터 보호받는 면책 특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모세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함과 연결합니다.
아론이 모세의 해석에 동의했기 때문에 침묵했는지, 충격과 슬픔 때문에 말을 잃었는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침묵을 곧바로 성숙한 순종이라고 칭찬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라고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론이 아들 둘을 잃었고, 모세의 말을 들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불을 가져온 장소가 문제였을까요? 향을 바친 시간이나 장소가 잘못되었을까요? 아니면 나답과 아비후가 자신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방식으로 향을 바친 것일까요? 본문과 다른 제사 규정을 비교하면 이러한 가능성들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어느 하나를 확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16:1–2는 두 사람이 여호와야훼 앞에 가까이 갔다가 죽은 사건을 언급하며 성소 출입을 제한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정확히 어디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두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뒤이어 등장하는 술 금지 명령 때문에 어떤 이들은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2절에는 음주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거룩함을 드러내고」(קָדַשׁ)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두 방향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거룩하심을 드러내신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하나님이 가까운 이들 가운데서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신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뒤따르는 ‘영광을 얻다’ 역시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의미와, 백성에게 영광스럽게 여김을 받으신다는 의미가 모두 가능합니다. 두 읽기는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과, 그것을 무시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는 점이 함께 놓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문장이 출애굽기나 레위기의 앞부분에 동일한 형태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가리키는 말씀이 정확히 언제 주어졌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19:22의 제사장들에 대한 경고나 출애굽기 29:43의 영광과 성별에 관한 약속은 관련된 주제를 제공하지만, 10:3의 직접적인 출처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6:6–7에서 웃사는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가 죽습니다. 두 사건의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거룩한 대상을 다루는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의 명령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 나갈 수 없다
죽은 두 사람의 시신을 처리해야 합니다.
모세는 아론이나 남은 아들들에게 그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아론의 삼촌 우지엘의 아들들인 미샤엘과 엘차판을 부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시신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옮기라고 지시합니다.
조금 전까지 제사장으로 성별되어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던 사람들이 이제 죽은 몸으로 진영 밖에 옮겨집니다.
왜 가족에게 애도를 금하는가?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타마르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지 말고 옷을 찢지 마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죽지 않고 여호와야훼가 온 회중에게 진노하지 않을 것이오. 여러분의 형제들인 이스라엘 온 집안이 여호와야훼가 불태운 이 일을 두고 울도록 하시오.」레위기 10:6 · 본디새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거나 옷을 찢는 일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창세기 37:34에서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옷을 찢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금지는 단순히 감정을 절제하라는 충고가 아닙니다. 통상적인 애도 행위를 제한하는 명령입니다.
「또 죽지 않으려거든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나가지 마시오. 여호와야훼의 기름부음용 기름이 여러분 위에 있기 때문이오.」 그들은 모세의 말대로 했다.레위기 10:7 · 본디새김
아론과 남은 아들들은 현재 제사장으로 성별된 상태이며, 그 직무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21:10–12에서도 대제사장은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는 애도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가까운 가족의 죽음에도 성소를 떠나거나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받습니다.
레위기 10장은 위임식 직후에 발생한 특별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의 제한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나 모든 제사장의 일반적인 애도 금지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본문은 슬픔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전체에는 오히려 애도가 허락됩니다. 그들의 죽음은 공동체가 슬퍼해야 할 사건입니다. 그러나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떠나 일반적인 애도 절차에 참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아론은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사장입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지금 자신에게 맡겨진 거룩한 직무를 떠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이 두 정체성 사이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아론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자리
이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뀝니다.
여호와야훼가 아론에게 말했다.레위기 10:8 · 본디새김
앞부분의 레위기에서 여호와야훼는 주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가 그 명령을 아론과 백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아들 둘이 죽고, 자신은 그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직무를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 내용은 예상과 다릅니다.
위로나 죽음의 원인에 관한 추가 설명이 아닙니다. 앞으로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규정입니다.
「너는 네 아들들과 함께 만남의 천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다른 술을 마시지 마라. 그래야 너희가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정이다.」레위기 10:9 · 본디새김
제사장에게 왜 맑은 판단이 필요한가
술을 마시지 말라는 명령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또 거룩한 것과 일상적인 것을 구별하고,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별하며,」레위기 10:10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한 모든 규정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다.」레위기 10:11 · 본디새김
따라서 술 금지 명령은 제사장들이 직무를 수행할 때 판단력을 온전히 유지해야 한다는 목적과 연결됩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지만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함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질서에 따라 백성의 삶을 분별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것과 일상적인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은 다른 구분이다
10절에는 두 쌍의 구별이 등장합니다.
‘거룩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된 것을 가리킵니다. ‘일상적인 것’은 그러한 특별한 성별을 받지 않은 일반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반면 정결함과 부정함은 사람이나 물건이 의례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리고 그 상태가 거룩한 영역에 접근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계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신체적 상태나 접촉으로 인해 의례적으로 부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레위기 11–15장은 이러한 정결과 부정의 문제를 자세히 다룹니다. 또한 어떤 물건은 일상적인 물건이면서도 정결한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모든 것이 부정한 것은 아니며, 부정한 모든 것이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레위기의 정결 규정이 단순히 깨끗함과 더러움, 선과 악을 구별하는 규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규정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상태로 거룩한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는 이러한 차이를 정확하게 분별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자신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다
11절은 제사장이 알아야 할 것이 자기 직무의 기술에 국한되지 않음을 밝힙니다.
11절의 「모든 규정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다」라는 표현은 신명기 33:10에서 레위의 자손들에게 맡겨진 가르침의 역할과도 연결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는 일을 맡습니다.
이제 살아남은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임은 무엇이 명령되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하고, 그 구별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거룩한 일을 맡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열심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입니다.
그런데 이 장은 그 분별력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곧바로 보여 줍니다.
죽음이 일어난 날에도 거룩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여호와야훼가 아론에게 말씀하신 뒤, 모세는 다시 아론과 살아남은 두 아들에게 제사 음식에 관한 규정을 전달합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의 살아남은 아들들인 엘르아살과 이타마르에게 말했다. 「여호와야훼에게 바치는 불 제물들 가운데서 남은 곡식 제물을 가져다가 누룩 없이 제단 곁에서 먹으시오.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기 때문이오.」레위기 10:12 · 본디새김
「흔들어 바치는 제물인 가슴과 떼어 바치는 몫인 다리는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과 딸들이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으시오. 그것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잡아 바친 친교 제물들 가운데서 당신의 몫과 당신 아들들의 몫으로 주어졌기 때문이오.」레위기 10:14 · 본디새김
두 음식은 모두 제사장 집안에 돌아가는 몫이지만, 먹는 장소와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다릅니다. 곡식 제물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므로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합니다. 레위기 6:16–18의 규정과 연결하면, 이러한 곡식 제물은 아론의 남자 자손들에게 정해진 몫입니다. 반면 친교 제물에서 돌아온 가슴과 다리는 정결한 곳에서 아론의 아들들과 딸들이 함께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 앞의 ‘구별하라’는 명령이 실제 사례로 나타납니다.
‘거룩한 곳’과 ‘정결한 곳’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차이는 음식의 영양이나 제사장의 취향에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제물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성격을 가지며 어떤 규정에 따라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제물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일한 대가로 음식을 받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 행위 자체가 제사의 질서 안에 속합니다.
분명한 것은 슬픔이 가득한 날에도 제사의 규정이 계속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라진 숫염소와 모세의 분노
모세가 정화 제물인 숫염소를 샅샅이 찾아보았는데, 그것은 이미 불에 탄 상태였다. 그는 아론의 살아남은 아들들인 엘르아살과 이타마르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레위기 10:16 · 본디새김
여기서 말하는 숫염소는 레위기 9:15에서 백성을 위한 정화 제물로 바친 숫염소와 연결됩니다.
정화 제물은 언제 먹고 언제 불태우는가
레위기 6:26–30을 보면 정화 제물에 관한 구별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이 먹도록 정해진 정화 제물의 고기는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화 제물의 피를 성소 안으로 가져가 속죄하는 경우에는 그 제물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고 불태워야 합니다.
「보아라. 그 피는 성소 안으로 들여가지 않았다. 내가 명령한 대로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반드시 먹었어야 한다.」레위기 10:18 · 본디새김
바로 앞에서 제사장들이 거룩한 것과 일상적인 것을 구별하고 하나님의 규정을 가르쳐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서 제물을 먹는 행위의 의미를 한층 깊게 설명합니다.
「너희는 왜 정화 제물을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다. 여호와야훼는 너희가 회중의 죄책을 짊어져 그들을 위해 여호와야훼 앞에서 속죄하도록 그것을 너희에게 주었다.」레위기 10:17 · 본디새김
제사장은 어떻게 회중의 죄책을 짊어지는가?
분명한 것은 정화 제물을 먹는 일이 속죄와 관계된 제사장 직무의 일부라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제사장들이 자기 몫의 음식을 먹지 않아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 아닙니다. 회중을 위해 정해진 속죄 절차가 올바르게 이행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화를 낸 것입니다.
그의 질책은 제사 규정이라는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론의 대답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조금 더 깊이
16절의 히브리어에서는 ‘찾다, 살피다’라는 동사가 강조형으로 반복됩니다. 이 표현은 모세가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상한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제물이 규정에 따라 처리되었는지 확인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18절의 「반드시 먹었어야 한다」(אָכַל)는 표현도 히브리어 동사를 반복하여 의무를 강조합니다. 17절에는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나사(נָשָׂא) 아본(nāśāʾ ʿāwōn)입니다. 나사는 ‘들다, 짊어지다, 가져가다’라는 뜻을 가지며, 아본은 죄악이나 죄책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이 표현은 문맥에 따라 자기 죄책을 짊어져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경우에도 사용되고, 다른 사람의 죄책을 짊어지거나 제거하는 경우에도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회중의 죄책을 다루는 제사장 직무와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이 고기를 먹음으로써 백성의 죄책을 실제로 자기에게 옮겨 받는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 절차에 참여하여 회중의 죄책을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뜻일까요? 두 해석 모두 고려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정화 제물을 제사장에게 주신 목적을 회중의 죄책을 짊어지고 그들을 위해 속죄하는 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고기를 먹는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죄책을 다루는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마치 죄를 음식처럼 섭취하여 몸 안에 저장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과정을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침묵하던 아론이 마침내 입을 열다
아론이 모세에게 말했다. 「보시오. 오늘 그들이 자기들의 정화 제물과 자기들의 번제를 여호와야훼 앞에 바쳤는데, 내게 이런 일들이 닥쳤소. 내가 오늘 정화 제물을 먹었다면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좋았겠소?」레위기 10:19 · 본디새김
이 장에서 아론은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그는 제사장으로서 첫 직무를 시작한 날, 자신의 아들들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죽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모세의 명령을 몰랐다고 변명하지 않습니다.
아론은 규정을 폐기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아론의 말은 어떤 규정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는 정화 제물의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규정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규정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특별한 상황을 제시합니다.
아론은 자신이 먹을 수 있었겠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먹고 싶었겠느냐고 묻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행동이 여호와야훼께 합당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모세가 제시한 규정을 듣고, 자신에게 닥친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그 규정을 그대로 수행하는 일이 정말 여호와야훼께 합당했겠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것은 10–11절의 분별과 가르침이라는 제사장 직무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 말씀을 정확하게 지키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그 말씀에 합당한 행동인지 헤아리는 일도 필요합니다.
아론의 질문은 그 어려운 자리에서 나옵니다.
모세가 자신의 판단을 바꾸다
모세는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다.레위기 10:20 · 본디새김
본문은 여호와야훼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아론의 판단이 옳다고 선언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외를 허락하는 새로운 규정이 주어졌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좋게 여긴 사람은 모세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 하나님이 해당 규정의 일반적인 의무를 폐지하셨다거나,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서는 언제든 제물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원칙이 세워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왜 모세가 판단을 바꾸었는지 본문은 자세히 해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모세가 아론의 설명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아론이 제물을 먹지 않은 정확한 이유를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아론이 아들들의 죽음으로 애도하는 상태에서 거룩한 제물을 먹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슬픔을 단순한 사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수행하는 일과 관련된 문제로 제시했다는 해석입니다. 다른 읽기는, 그날 아들들의 죽음으로 제사장 집안에 심각한 일이 발생했으므로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속죄 제물의 고기를 먹는 것이 여호와야훼께 받아들여질지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읽기는 상당 부분 겹칩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론이 자신의 의례적 상태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또는 어떤 규정을 적용했다고 생각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론이 슬픔 때문에 제물을 먹을 마음이 없었다거나, 자신이 의례적으로 부정해졌다고 판단했거나, 특별한 규정의 예외를 적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상 15:22에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하고, 호세아 6:6에서는 하나님이 제사보다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본문들은 제사를 무의미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는 마태복음 12:7에 호세아 6:6을 인용하셔서 안식일에 관한 논쟁에서 자비의 중요성을 지적하십니다. 이것은 레위기 10장에 대한 직접적인 인용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는 주제적 연결을 제공합니다.
맺음말 — 아론이 말했고, 모세가 들었다
처음에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시지 않은 일을 행했습니다. 마지막에 아론은 여호와야훼께서 정하신 제사 규정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두 사건을 단순히 ‘규정 위반’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종교적 열심을 절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거룩함을 존중한다는 것을 인간의 상황에 무관심한 채 규정의 문자만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일과 동일시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명령을 자의적으로 바꾸는 권한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아론이 듣고 침묵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모세가 듣고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엄중하게 드러난 이 장은 뜻밖에도 두 사람 사이의 경청으로 끝납니다.
그날 아론이 겪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죽은 아들들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질문은 무시되지 않았습니다.
아론이 말했습니다.
모세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