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지혜를 찾으라는 권면

그 여자의 집으로 향하는 길

잠언 7장에는 독특한 이야기 방식이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직접 훈계하는 대신, 어느 날 창가에서 보았던 장면을 들려줍니다. 젊은이들이 거리를 지나가고 있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띕니다. 그는 어느 여자의 집이 있는 모퉁이 근처를 걷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여자를 만난 것도 아니고, 유혹을 받아들인 것도 아닙니다. 그저 길을 걷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미 그를 「분별없는 한 젊은이」라고 부릅니다(7:7).

왜 그럴까요? 이것이 잠언 7장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질문입니다. 젊은이의 잘못은 여자를 만나고 나서야 시작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어느 길로 걸어갈지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젊은이의 발걸음을 따라갑니다. 땅거미가 지고, 거리는 어두워지고, 한 여자가 그를 맞으러 나옵니다. 그녀는 종교적인 의무를 마쳤다고 말하고, 젊은이만을 특별히 찾았다고 말하며, 아름답게 꾸민 침실을 설명합니다. 남편이 멀리 떠났으니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이야기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뀝니다.

「그는 갑자기 그 여자를 따라 도살당하러 가는 소처럼」(7:22). 달콤한 사랑의 초대가 도살장으로 향하는 소의 걸음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더욱 깊은 대조가 숨어 있습니다. 첫머리에서 아버지는 지혜를 자신의 누이처럼 가까이하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다른 여자의 친밀한 초대에 이끌립니다. 아버지는 지혜를 마음에 간직하라고 했지만, 젊은이는 매끄러운 말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지혜는 생명을 지키라고 하지만, 여자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은 죽음의 방으로 내려갑니다.

잠언 7장은 단순히 위험한 유혹을 피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누구를 가까이하고, 어떤 말을 믿으며, 무엇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는지가 어떻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 장은 독자에게 젊은이보다 먼저 위험을 보게 합니다. 우리는 그가 듣는 말을 함께 듣지만, 그 말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미리 알게 됩니다. 그렇게 잠언은 독자가 젊은이의 잘못을 구경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선택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읽는 시간 27분소단락 77장 본문 읽기 →

지혜를 누이라고 부르라는 뜻

잠언 7:1–5 본문 →

눈동자처럼 지켜야 하는 것

아버지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다섯 절에 걸쳐 아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간직하라고 권합니다.

내 명령들을 지키고 살아라. 내 가르침을 네 눈동자처럼 지켜라.잠언 7:2 · 본디새김

눈은 인간의 몸에서 매우 소중하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부분입니다. 작은 먼지나 이물질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사람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눈꺼풀을 감거나 몸을 피합니다. 아버지는 바로 그런 소중함으로 가르침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눈을 보호하듯 자신의 가르침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명령들을 지키고 살아라」라는 앞 문장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 사용된 「눈동자」(⁨אִישׁוֹן⁩)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낱말은 이 장에서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9절에서 젊은이가 길을 걷는 때를 묘사할 때,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밤의 눈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본디새김이 「밤의 한복판」으로 옮긴 자리입니다. 이 반복이 의도적인 문학적 장치인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두 장면의 대비는 인상적입니다.

아버지는 가르침을 눈동자처럼 보호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는 밤의 가장 짙은 어둠 속으로 걸어갑니다.

그에게는 길을 분별하도록 돕는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어두워지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혜와 가족이 되라는 명령

3절은 가르침을 손가락에 묶고 마음의 판에 쓰라고 권합니다. 손에 지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기억의 표시이고, 마음에 쓰는 것은 가르침이 생각과 판단의 중심에 자리 잡게 하는 이미지입니다.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야」 하고 말하여라. 분별을 친족이라 불러라.잠언 7:4 · 본디새김

지혜는 여기서 단순히 얻어야 할 지식이 아니라 가족처럼 가까이해야 할 대상으로 표현됩니다. 누이와 친족은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이미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친족」(⁨מוֹדַע⁩)으로 옮긴 낱말은 가까이 아는 사람이나 친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룻기 2:1에서도 보아스가 나오미의 남편 쪽 친족과 연결되는 문맥에 같은 계열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지혜를 친족으로 부르는 것은 지혜를 멀리 있는 낯선 지식으로 여기지 말고, 자신의 삶에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이라는 권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혜를 가까이하라는 명령 다음에 곧바로 낯선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할까요? 5절에서 이유가 드러납니다.

낯선 여자, 곧 매끄러운 말을 하는 외간 여자에게서 너를 지키려는 것이다.잠언 7:5 · 본디새김

여기에는 의도적인 관계의 대조가 있습니다. 한쪽은 가족처럼 가까이해야 할 지혜입니다. 다른 한쪽은 친밀함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젊은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여자입니다.

「낯선 여자」와 「외간 여자」라는 말 자체로 그 여자의 민족이나 국적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므로, 여기서는 젊은이와 정당한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여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출신이 아니라 그녀가 제안하는 관계의 성격입니다.

아버지는 지혜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을 잘못된 친밀함으로 끌어들이는 말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위험한 관계를 피하라는 금지 명령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가까이해야 하는지 아는 지혜입니다.

이제 아버지는 이 말이 왜 필요한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6:6–9와의 연결도 중요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손에 매며, 일상의 자리에서 가르치도록 명령합니다. 잠언 7:1–3에서도 가르침을 마음의 판에 쓰고 손가락에 묶으라고 합니다. 이 두 본문은 표현과 주제에서 연결됩니다. 잠언 7장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잠언 전체의 출발점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함이 지식의 시작이라는 선언입니다(잠언 1:7). 잠언 2:6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지혜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잠언 7장의 가르침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라는 큰 문맥 안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거나 행동하시는 방식보다, 사람이 그 지혜를 받아들일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가 중심에 놓입니다.

창가에서 내려다본 한 젊은이

잠언 7:6–9 본문 →

아버지는 무엇을 보고 분별했는가

6절부터 이야기의 시점이 바뀝니다.

내가 내 집 창가에서 창살 너머로 내려다보았을 때였다.잠언 7:6 · 본디새김

아버지는 이제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찰하는 사람이 됩니다. 창살 너머로 거리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아버지는 집 안에 있고, 젊은이들은 집 밖에서 움직입니다. 독자는 아버지와 함께 그들을 바라봅니다.

나는 미숙한 이들 가운데서 보았다. 젊은이들 가운데서 분별없는 한 젊은이를 눈여겨보았다.잠언 7:7 · 본디새김

처음에는 여러 젊은이가 보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선은 그 가운데 한 사람에게 멈춥니다.

여기서 「분별없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마음이 부족한’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감정뿐 아니라 생각과 판단의 중심을 가리키므로, 이 표현은 단순히 지능이 낮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이 지닌 의미와 결과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버지가 「눈여겨보았다」(⁨בִּין⁩)라고 말하는 자리에 사용된 동사는 분별하고 이해한다는 뜻의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4절의 「분별」과 연결되는 표현입니다.

아버지는 분별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분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엇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을까요?

모퉁이를 지나는 발걸음

8절이 그 이유를 보여 줍니다.

그는 그 여자의 모퉁이 가까운 거리를 지나 그 여자의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잠언 7:8 · 본디새김

젊은이가 처음부터 간음을 결심하고 집을 찾아갔다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우연히 그 근처에 들어섰는지, 호기심에 접근했는지, 이미 의도적으로 찾아가는 중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그의 발걸음이 위험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아버지는 바로 그 길을 주목합니다.

사람의 선택은 마지막 행동 한순간에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곳으로 갈 것인지,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 것인지, 누구와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길을 택할 것인지도 선택의 일부입니다.

젊은이는 아직 여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은 이미 그녀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 있습니다. 본문은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을 보여 주기 전에, 유혹과 마주치게 되는 경로부터 보여 줍니다.

어둠이 깊어지는 네 가지 표현

9절에서는 이야기의 시간이 드러납니다.

땅거미 질 무렵, 하루가 저무는 저녁, 밤의 한복판, 짙은 어둠 속이었다.잠언 7:9 · 본디새김

짧은 한 절에 어둠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거듭 등장합니다. 이 표현들이 반드시 긴 시간이 흐르는 순차적인 장면들을 뜻한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녁에서 깊은 밤에 이르는 어둠의 상황을 여러 표현으로 겹쳐 묘사한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적인 효과는 분명합니다. 젊은이가 걷는 길이 어둠으로 둘러싸입니다.

이 어둠은 실제적인 시간 배경이면서 동시에 그의 판단 상태와 어울립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충분히 분별하지 못합니다. 독자는 그가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젊은이 자신은 그 길의 끝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제 독자는 창가에 서 있는 아버지와 함께 밤거리를 내려다봅니다.

그리고 한 여자가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잠언 4:18–19의 빛과 어둠의 대조를 짧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의로운 길은 밝아지고 악한 길은 어두워진다고 했는데, 7장에서는 그 어둠을 한 젊은이가 실제로 걸어가는 밤거리로 보여 줍니다.

길을 걷던 젊은이와 숨어 기다리던 여자

잠언 7:10–13 본문 →

젊은이는 다가가고, 여자는 맞으러 나온다

10절은 짧은 감탄으로 시작합니다.

보아라, 한 여자가 그를 맞으러 나왔다. 매춘하는 여자의 옷차림을 하고 속마음을 감춘 여자였다.잠언 7:10 · 본디새김

「보아라」라는 말은 독자의 주의를 새로운 인물에게 집중시킵니다. 지금까지 움직이던 사람은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자가 그를 맞으러 나옵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여자는 「매춘하는 여자의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묘사됩니다. 이것은 그녀의 차림새가 성적인 유혹을 암시한다는 표현이지만, 그녀가 실제로 매춘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사실까지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속마음을 감춘」이라는 설명과 함께, 겉으로 드러난 옷차림과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내면이 나란히 놓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녀의 숨겨진 생각을 구체적인 독백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이후 그녀가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의도를 판단하게 됩니다.

집에 머물지 않는 발

그 여자는 소란스럽고 고집이 셌다. 그 여자의 발은 제집에 머물지 않았다.잠언 7:11 · 본디새김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광장에서, 모퉁이마다 숨어 기다렸다.잠언 7:12 · 본디새김

앞에서는 젊은이가 그 여자의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여자 자신도 집에 머물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젊은이는 그 여자의 집으로 향하고, 여자는 집에서 나와 사람을 기다립니다.

이 장면을 단순히 여성이 집 밖에 나와 있는 행동 자체를 비난하는 말씀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잠언 8:1–3에서도 지혜는 길과 성문 곁에서 사람들을 부릅니다. 잠언 7장에서 문제는 그녀가 밖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모퉁이마다 숨어 기다리는 행동입니다.

특히 「모퉁이마다」라는 표현은 8절의 「그 여자의 모퉁이」와 연결됩니다. 젊은이가 그 여자의 집 모퉁이 근처를 지나는데, 여자는 모퉁이마다 숨어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이 만남은 젊은이에게는 우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녀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이후 그녀의 말을 이해할 때 중요해집니다. 그녀는 젊은이에게 자신이 특별히 그를 찾고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말보다 먼저 이루어진 행동

그 여자는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뻔뻔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잠언 7:13 · 본디새김

그녀는 말을 통해 상대방의 동의를 천천히 구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먼저 신체적인 접촉을 하고, 이어서 자신의 초대를 정당화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말을 건넵니다.

이야기는 여자의 적극성과 주도성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러나 젊은이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미 그 여자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초대를 따라갑니다.

잠언은 유혹하는 사람의 행동과 유혹에 응하는 사람의 선택을 함께 보여 줍니다. 이것은 성적인 잘못의 모든 책임을 특정한 성별에게만 돌리기보다, 각 사람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살펴보게 합니다.

이제 여자가 입을 엽니다.

조금 더 깊이

「속마음을 감춘」으로 옮긴 히브리어 네추라트 레브는 해석이 쉽지 않은 표현입니다. 마음을 지키거나 감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문맥에서는 자신의 속셈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어떻게 젊은이를 설득하는가

잠언 7:14–20 본문 →

여자의 말은 14절부터 20절까지 이어집니다. 그녀는 종교적인 의무, 특별한 만남, 아름다운 침실, 감각적인 즐거움, 들킬 위험이 없다는 확신을 차례로 제시합니다. 그 결과 젊은이는 여러 판단을 한꺼번에 요구받습니다.

제사에 관한 말로 시작하다

여자가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은 뜻밖에도 종교적인 내용입니다.

「내게는 바쳐야 할 화목제물들이 있었어. 오늘 내 서원들을 이행했어.」잠언 7:14 · 본디새김

왜 성적인 유혹의 첫머리에 화목제물과 서원 이야기가 등장할까요?

화목제물은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레위기 7:11–18에 따르면 화목제물은 감사, 서원, 자원하는 마음 등과 연결되어 드릴 수 있었으며,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제물의 고기를 먹는 일이 뒤따랐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여자의 말은 식사에 초대할 만한 상황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오늘 제사를 드렸다고 주장한다면, 함께 나눌 음식이 있다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녀가 실제로 서원을 이행했는지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여자의 발언을 그대로 들려줄 뿐입니다.

독자가 주의해야 할 것은, 그녀가 하나님에 관한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다음에 제안하는 행동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사와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과 관련된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제안하는 관계는 다른 사람과 맺은 혼인의 신실함을 깨뜨리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종교적 의무에 관한 말과, 하나님이 주신 관계를 배신하는 초대가 한 사람의 입에서 함께 나옵니다.

종교적인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너를 간절히 찾다가 만났어」

「그래서 너를 만나러 나왔어. 네 얼굴을 간절히 찾다가 너를 만났어.」잠언 7:15 · 본디새김

젊은이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이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앞서 12절에서 그녀가 모퉁이마다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녀가 정말 이전부터 이 젊은이를 알고 찾아다녔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듯한 유혹이, 정작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만남처럼 제시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방식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즐거움을 약속받을 때보다 자신이 특별히 원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더욱 쉽게 마음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별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만으로 그 관계가 진실하거나 신실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침실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내 침상에 덮개들을 펼쳐 놓았어. 이집트 실로 짠 짙은 빛깔의 천들이야.」잠언 7:16 · 본디새김
「내 잠자리에 향을 뿌렸어. 몰약과 침향과 계피로.」잠언 7:17 · 본디새김

이제 말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식과 코로 맡을 수 있는 향기로 옮겨 갑니다.

여자는 단순히 사랑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이루어질 장소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눈으로 볼 것과 코로 맡을 것, 몸으로 느낄 편안함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젊은이는 아직 그 집 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말을 듣는 동안 이미 그 침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말은 실제로 도착하지 않은 장소를 마음속에 먼저 펼쳐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상상 속에서 그곳을 매력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실제로 그곳에 가려는 마음이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침실의 아름다움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이 어떤 행동을 위해 사용되는가입니다. 물건의 아름다움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의 옳음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아침까지 사랑을 마시자는 초대

「이리 와, 아침까지 사랑을 흠뻑 마시자. 사랑을 나누며 즐기자.」잠언 7:18 · 본디새김

여기서 사랑은 물처럼 흠뻑 마시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흠뻑 마시자」(⁨רָוָ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흠뻑 적시거나 충분히 마셔 만족하는 이미지를 가집니다.

이 표현은 잠언 5:19에서 아내의 사랑에 늘 취하라고 했던 가르침과 의미상 대조됩니다. 5장에서는 신실한 혼인 관계 안에서 사랑을 충분히 누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른 사람의 혼인 관계를 침해하는 만남에서 그러한 만족을 얻자고 합니다.

말의 감각적인 매력은 비슷해도, 관계의 성격은 다릅니다.

젊은이는 짙은 어둠 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그에게 아침까지 함께 즐기자고 약속합니다. 그녀의 말만 들으면 밤이 지나면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고, 그 밤의 즐거움은 아무런 문제 없이 끝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젊은이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자가 약속한 평온한 아침이 아니라 죽음의 이미지입니다.

남편은 집에 없다는 마지막 안심

「남편은 자기 집에 없거든. 먼 길을 떠났어.」잠언 7:19 · 본디새김
「은 주머니를 손에 들고 갔어. 보름달이 뜨는 날 자기 집으로 돌아올 거야.」잠언 7:20 · 본디새김

지금까지 그녀는 만남의 매력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이유도 있습니다. 남편이 있는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은 주머니를 가지고 갔다는 설명과 보름달에 돌아온다는 말은 부재 기간이 충분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다만 이것들은 모두 여자의 주장입니다. 남편이 실제로 어디에 갔는지, 언제 돌아올지는 서술자가 별도로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그녀가 젊은이에게 전달하는 핵심은 명확합니다. 지금은 들킬 위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집에 없다는 사실은 남편에게 신실할 책임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그 행동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과 그 행동이 옳은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여자는 두 문제를 하나로 연결하려 합니다. 아무도 모를 것이므로 괜찮다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은 이후의 장면을 통해 들키느냐의 문제보다 더 깊은 위험을 보여 줍니다. 그 젊은이는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기 전부터 이미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길로 들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화목제물 가운데 감사 제물은 드린 날에 먹어야 했고, 서원이나 자원 제물은 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레위기 7:15–17). 16절의 「이집트 실」이라는 표현은 당시 이집트에서 만들어지는 직물이나 그와 연결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만으로 실제 천의 제작 장소나 정확한 무늬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하투보트는 의미가 확실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새겨진 무늬나 특정한 색채의 천을 가리키는 등 여러 가능성이 있으며, 본디새김은 짙은 빛깔의 천으로 옮겼습니다. 17절의 몰약과 계피는 다른 성경 본문에서도 향기와 연결됩니다. 침향으로 옮긴 아할림의 정확한 식물학적 대상은 확정하기 어렵지만, 여기서는 침상을 향기롭게 꾸미는 향료 가운데 하나로 등장합니다. 구약의 다른 본문에서도 혼인의 신실함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출애굽기 20:14와 신명기 5:18에서는 간음을 금하며, 말라기 2:14–16에서는 젊은 시절의 아내에게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책망합니다. 잠언 7장은 그러한 가르침을 추상적인 규정으로만 제시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의미를 보여 줍니다.

젊은이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잠언 7:21–23 본문 →

긴 설득 뒤에 나타나는 침묵

21절은 여자의 긴 발언을 정리합니다.

그 여자는 갖은 설득으로 그를 기울게 했고, 매끄러운 입술로 그를 몰아갔다.잠언 7:21 · 본디새김

여기서 여자의 말은 단순한 설명이나 초대가 아니라 상대방의 방향을 바꾸는 힘으로 묘사됩니다. 「기울게 했다」는 말은 젊은이의 판단이 한쪽으로 움직였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젊은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여러 절에 걸쳐 말합니다. 그러나 젊은이가 어떤 질문을 했는지, 무엇을 망설였는지, 어떤 말로 동의했는지 본문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독자는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 오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그가 걸어간 길과 마지막에 보인 행동을 통해 판단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젊은이는 완전히 수동적인 희생자일까요? 본문은 그렇게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그 여자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녀를 따라갑니다.

그는 분별 있는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주장을 확인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따라갑니다.

도살장으로 가는 소

22절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방향을 바꿉니다.

그는 갑자기 그 여자를 따라 도살당하러 가는 소처럼, 징계받으러 족쇄에 매여 가는 어리석은 자처럼,잠언 7:22 · 본디새김

지금까지의 이야기에는 부드러운 입술과 입맞춤, 화려한 침상과 향기로운 잠자리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젊은이는 도살장으로 가는 소에 비유됩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저 앞으로 움직입니다. 그 걸음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도착할 곳은 죽음입니다.

젊은이에게는 사랑의 초대를 따라가는 걸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에는 도살장으로 향하는 걸음과 같습니다.

이어지는 「족쇄에 매여 가는 어리석은 자」라는 표현은 원문의 해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본디새김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징계를 받으러 매여 가는 모습으로 읽으면, 첫 번째 비유와 공통된 뜻이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충분히 깨닫지 못한 채 끌려가고 있습니다.

화살에 꿰뚫리는 간

덫으로 서둘러 들어가는 새처럼 화살이 그의 간을 꿰뚫을 때까지 갔다. 그 젊은이는 그것이 제 목숨을 앗는 일인 줄 몰랐다.잠언 7:23 · 본디새김

덫으로 서둘러 들어가는 새는 자신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포획의 이미지와 치명적인 상처의 이미지가 함께 나타납니다.

소는 도살장으로 향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징계를 받으러 매여 갑니다.

새는 덫으로 들어갑니다.

모두 자신이 향하는 곳의 위험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제시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 젊은이는 그것이 제 목숨을 앗는 일인 줄 몰랐다」가 이 모든 비유의 의미를 밝힙니다.

젊은이는 즐거움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을 얻으려는 선택이 자신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면 무엇을 잃게 되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분별없음은 언제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가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할 때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가 처음부터 그 젊은이를 분별없는 사람이라고 부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는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 길의 끝을 보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2절의 「족쇄」로 옮긴 히브리어 에케스는 발찌나 발에 채우는 장식·구속 도구와 연결될 수 있고, 이어지는 징계와 어리석은 자의 관계도 문법적으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정확히 어떤 형벌이나 구금 장면을 재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23절의 간은 실제 신체의 장기이며, 화살에 꿰뚫리는 장면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처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젊은이가 실제로 현장에서 화살을 맞아 죽었다는 역사적인 사건의 기록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는 비유를 통해 그가 들어선 길의 치명적인 결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22–23절의 이미지들이 압축적으로 겹쳐 있기 때문에, 각각의 사건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려 하기보다 그 비유들이 공통으로 드러내는 위험을 살펴야 합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아버지는 왜 다시 아들들을 부르는가

잠언 7:24–27 본문 →

구경하던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부르다

24절에서 아버지는 다시 현재의 청중을 향해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들어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귀를 기울여라.잠언 7:24 · 본디새김

이 부름은 이야기의 처음과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내 아들아」라고 부르며 가르침을 간직하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아들들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제 독자는 처음과 같은 자리에서 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왜 그렇게 가르침을 지키라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젊은이가 어떤 말을 듣고 어디로 향했는지를 보았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마지막 권고는 단순히 처음의 명령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금 본 이야기의 의미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말입니다.

마지막에 문제 삼는 것은 마음의 방향이다

네 마음이 그 여자의 길들로 기울지 않게 하여라. 그 여자의 오솔길들에서 헤매지 마라.잠언 7:25 · 본디새김

앞서 21절에서는 여자의 설득이 젊은이를 기울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아들 자신의 마음이 그 여자의 길들로 기울지 않도록 하라고 합니다. 유혹하는 말의 힘과 자신의 마음을 지킬 책임이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는 최종적인 행동에 대해서만 경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기울지 않도록 하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마음이 특정한 방향으로 계속 기울면, 그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가능성도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매력적인 대상이나 상황을 마주할 때 그 매력이 자신의 판단 전체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얼마나 달콤한지만 보지 않고, 그것이 요구하는 행동이 옳은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 관계가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하게 느껴지는지만 생각하지 않고, 그 관계가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야 합니다.

젊은이는 그 여자의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독자에게 자신의 마음부터 그 길로 향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칩니다.

발걸음보다 앞서 마음의 방향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강한 사람도 넘어질 수 있다

26절은 여자의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설명합니다.

그 여자가 수많은 이들을 쓰러뜨려 죽였고, 그 여자에게 죽임당한 이들은 모두 강한 이들이기 때문이다.잠언 7:26 · 본디새김

첫 행에는 수많은 희생자가 등장합니다. 둘째 행의 「강한 이들」(⁨עָצוּ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추밈은 강하거나 수가 많은 상태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강한 사람들조차 쓰러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뒤의 읽기를 택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에는 중요한 경고가 담깁니다. 힘이 있다고 해서 모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험이 많거나 자신감이 강하다고 해서 유혹을 반드시 분별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경계를 늦추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젊은이는 경험이 부족해서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강한 사람도 넘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어린 사람이나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가르침으로 좁혀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면 위험한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침실이 죽음의 방으로 변하다

마지막 절은 이 장 전체의 이미지를 하나로 모읍니다.

그 여자의 집은 스올로 가는 길들, 죽음의 방들로 내려가는 길들이다.잠언 7:27 · 본디새김

이야기의 중간에서 여자는 자신의 침실을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침상에는 값진 천이 펼쳐져 있고, 여러 향료가 뿌려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침까지 사랑을 누리자고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마지막에 그 집이 실제로 어디로 이어지는지 말합니다.

같은 집을 두고 서로 전혀 다른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설명을 믿느냐에 따라 젊은이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는 그녀의 설명만 듣고 따라갔습니다.

어떤 길이 위험한지는 그 길의 입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가 아니라, 그 길이 마지막에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죽음의 방들」이라는 표현은 사후 세계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죽음의 영역을 방들로 표현하면서 그 집의 치명적인 끝을 보여 주는 시적 이미지입니다.

창가에서 보았던 그 길의 끝

잠언 7:1–27 본문 →

잠언 7장을 다시 살펴보면 이 장을 움직이는 중요한 행동 하나가 보입니다. 바로 보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르침을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합니다. 그는 창가에서 거리를 내려다봅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분별하여 바라봅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젊은이의 발걸음을 보고 그 길이 가진 위험을 알아봅니다. 젊은이는 여자의 아름다움과 그녀가 약속한 즐거움에 이끌리지만,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젊은이는 여자를 만나기 전에 이미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 마지막 순간의 행동 하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이 장의 첫머리에 지혜를 누이처럼 가까이하라는 명령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장은 한 여자를 위험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모든 여성을 유혹의 원인으로 일반화하거나, 남성은 언제나 유혹에 끌려가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마지막 명령은 여자를 바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네 마음이 그 여자의 길들로 기울지 않게 하여라」라는 것입니다. 잠언이 궁극적으로 가르치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발걸음을 지혜롭게 이끄는 방법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그 길은 그저 평범한 거리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걸어갈 수 있는 여러 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여자의 매끄러운 말을 듣고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게 꾸민 침실을 이야기했습니다. 향기로운 잠자리와 아침까지 이어질 사랑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마지막에 보여 주는 것은 그 여자가 약속한 아침이 아닙니다. 「그 여자의 집은 스올로 가는 길들, 죽음의 방들로 내려가는 길들이다」(7:27).

잠언 7장의 마지막 장면에는 화려한 침실도, 향기로운 잠자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한 집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거리의 모퉁이였던 그 길이, 마지막에는 죽음의 방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젊은이는 그 차이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그 차이를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위해 지혜를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