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달아남과 멈춤

집회서 21장은 뜻밖의 두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처음에는 뱀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이 등장하고, 후반에는 남의 집 문 앞에서 멈추어 서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위험한 곳에서 서둘러 떠나야 하고,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발을 멈추어야 합니다.

두 행동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지혜에서 나옵니다. 무엇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지 알고, 어디까지 나아가도 되는지 아는 것, 그것이 이 장에서 말하는 분별입니다.

그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자기 안에 자리 잡은 어리석음을 알아차리고, 다른 길로 돌아설 수 있을까요?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21장 본문 읽기 →

죄를 지었느냐? 그렇다면 거기서 멈추어라

집회서 21:1–3 본문 →

첫 문장은 정죄가 아니라 질문입니다.

얘야, 죄를 지었느냐? 더는 죄를 보태지 마라. 전에 지은 죄에 관해서도 간구해라.집회서 21:1 · 본디새김

지혜 교사는 자기 제자가 죄를 지을 가능성을 처음부터 인정합니다. 죄를 범했다는 사실 자체가 교훈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유는 아닙니다.

먼저 죄를 더하지 말라고 하고, 이어서 이전의 죄에 관해 간구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과거를 되돌릴 수 없는 인간에게 열려 있는 두 방향입니다. 앞으로의 행동을 바꾸는 일과 이미 저지른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일입니다.

교사는 이 두 가지를 어느 하나로 대체하지 않습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을 계속해도 되는 것은 아니며, 행동을 고쳤다고 해서 이미 지은 죄를 외면해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어지는 두 절은 죄를 세 가지 위험한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먼저 뱀입니다. 뱀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이어 사자의 이빨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다가가면 물리는 뱀이었지만, 이제 죄는 목숨을 빼앗는 맹수처럼 그려집니다.

마지막에는 양날이 선 큰 칼이 등장합니다. 뱀이나 사자를 피할 때와 달리, 여기서는 이미 칼에 베인 상처가 강조됩니다.

모든 불법은 양날이 선 큰 칼과 같고, 그것이 낸 상처에는 치유가 없다.집회서 21:3 · 본디새김

이 말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용서나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읽으면 바로 앞의 간구하라는 명령과 충돌합니다. 1절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3절의 절대적인 표현은 죄가 남기는 피해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지혜문학의 경고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죄를 용서받는 일과 죄가 낳은 모든 결과를 없애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무너진 신뢰, 빼앗긴 재산, 훼손된 관계는 잘못을 인정했다고 즉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죄에서 달아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 전에 멈추라는 초대입니다.

무너지는 오만한 자의 집, 하늘에 닿는 가난한 자의 간구

집회서 21:4–6 본문 →

앞의 세 절에서 죄는 뱀과 사자와 칼이었습니다. 이제 그 위험이 사람들 사이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겁박과 모욕은 재산을 황폐하게 할 것이고, 그처럼 오만한 자의 집도 황폐해질 것이다.집회서 21:4 · 본디새김

이 표현은 바로 다음 절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을 이해할 배경이 됩니다. 오만한 사람의 집은 황폐해지지만, 가난한 사람의 간구는 위로 올라갑니다.

가난한 이의 간구는 그의 입에서 주의 귀에까지 이르고, 그에 대한 판결은 신속히 내려진다.집회서 21:5 · 본디새김

세상의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와 하나님의 관심이 누구에게 향하는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모습은 출애굽기 22:22–24의 경고와도 통합니다. 그곳에서도 고통받는 사람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난한 사람이 기도하면 언제나 즉시 원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보증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지혜 교사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판결이 인간 사회의 무관심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6절에서 본문은 다시 개인의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잘못을 짚어 주는 말을 미워하는 사람은 죄인의 발자취를 따르고, 주를 경외하는 사람은 마음으로 돌아설 것이다.집회서 21:6 · 본디새김

앞에서 교사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간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죄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그 중요한 통로 가운데 하나가 다른 사람의 책망입니다.

책망을 거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검토할 기회까지 거절합니다. 반대로 주를 경외하는 사람은 잘못을 지적받을 때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단순히 부끄러워하거나 잠시 감정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가던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의 그리스어에는 한 가지 문법적 여지가 있습니다. 간구가 이르는 ‘그의 귀’와 뒤따르는 ‘그의 판결’의 소유 관계가 문장 안에서 모두 명시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디새김은 앞의 표현을 주의 귀로 이해하고, 뒤의 판결은 대상을 열어 둡니다. 어느 읽기에서도 가난한 사람의 간구와 신속하게 다가오는 판결이 연결된다는 핵심은 유지됩니다.

평탄하게 닦인 길이 반드시 좋은 길은 아니다

집회서 21:7–11 본문 →

7절은 다소 갑작스럽게 말솜씨에 관한 격언으로 넘어갑니다.

말에 능한 사람은 멀리서도 알려지지만, 지각 있는 사람은 그가 미끄러질 때 알아챈다.집회서 21:7 · 본디새김

사람들은 말에 능한 사람을 쉽게 알아봅니다. 그러나 유창하게 말하는 능력과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은 다릅니다.

둘째 행의 ‘그가 미끄러질 때’는 말에 능한 사람이 실수할 때 지각 있는 사람이 그것을 알아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지각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말솜씨는 바깥으로 드러나지만, 분별은 잘못되는 지점을 알아보는 데서 나타납니다.

남의 재물로 자기 집을 짓는 사람은 겨울을 위해 자기 돌들을 모으는 사람과 같다.집회서 21:8 · 본디새김

이 비유는 쉽지 않습니다. 겨울을 준비하면서 돌을 모으는 사람의 행동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본문만으로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리스어 본문의 주요 전승에는 ‘겨울’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다른 고대 본문에서는 ‘무덤’으로 읽습니다. 무덤으로 읽으면 비유가 더욱 직접적입니다. 남의 재물로 자기 집을 지으며 안전을 확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무덤에 쓸 돌을 모으는 셈입니다. 겨울로 읽으면 그 준비의 부적절함이나 허망함을 강조하는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뜻에는 불확실성이 남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남의 재물’을 오늘날의 모든 차입이나 정상적인 금융 거래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앞의 4–5절에서 겁박과 모욕, 가난한 사람의 간구가 등장한 만큼,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을 부당하게 이용해 자기 번영을 세우는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이 비유는 4절의 무너지는 집과 연결됩니다. 자기 집을 크게 만드는 일 자체가 그 집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었는지가 중요합니다.

9절과 10절은 이 경고를 공동체와 인생의 길로 확대합니다.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의 모임은 한데 모은 삼 부스러기이며, 그들의 마지막은 타오르는 불꽃이다.집회서 21:9 · 본디새김

삼 부스러기는 불이 붙기 쉬운 섬유 재료입니다. 낱개로 흩어져 있던 것이 한데 모이면 큰 불꽃의 연료가 됩니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는 사실이 그 모임의 안전이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악한 행동을 강화하는 모임은 겉으로는 결속력이 있어 보여도 파괴에 취약합니다.

죄인들의 길은 돌로 평탄하게 닦여 있고, 그 끝에는 하데스의 구덩이가 있다.집회서 21:10 · 본디새김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처음부터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별다른 방해 없이 순조롭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길의 끝에는 구덩이가 있습니다.

이 구절의 초점은 죽음 이후의 형벌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안전하고 편리해 보였던 길이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역설에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다스리고, 주를 경외함의 완성은 지혜다.집회서 21:11 · 본디새김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의 결말은 불꽃이고, 주를 경외하는 삶이 도달하는 완성은 지혜입니다. 그런데 11절은 그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외적인 율법 준수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생각도 다스린다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길이 얼마나 편한지만 보지 않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살핍니다.

같은 지혜를 들어도 누군가는 자라고, 누군가는 버린다

집회서 21:12–18 본문 →

11절에서 주를 경외함의 완성으로 제시된 지혜는 이제 배움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영리하지 않은 사람은 가르침을 받지 못할 것이다. 쓰라림을 더하는 영리함도 있다.집회서 21:12 · 본디새김

첫 문장만 보면 지혜를 배우려면 원래부터 영리해야 한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둘째 문장은 영리함 자체도 사람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두 행에 쓰인 그리스어는 같은 어근을 가진 표현입니다. 판우르고스는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는 영리함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문맥에 따라 교활함이나 간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절은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 지혜를 얻는다는 선언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분별에 필요한 기민함과 다른 사람에게 쓰라림을 더하는 교활함을 구별하게 합니다.

13절과 14절은 배움을 대하는 두 사람을 물과 그릇으로 비교합니다.

지혜로운 이의 앎은 홍수처럼 불어날 것이고, 그의 조언은 생명의 샘과 같다.집회서 21:13 · 본디새김
어리석은 이의 속은 깨진 그릇과 같아서, 어떤 앎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집회서 21:14 · 본디새김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지식은 계속 자라나며, 마침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조언이 됩니다. 그의 앎은 자신만을 위한 소유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샘이 됩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에게서는 배운 것이 머물지 못합니다. 문제는 지식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간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잠언 13:14도 지혜로운 자의 가르침을 생명의 샘에 연결합니다. 그곳에서나 집회서 21장에서나 지혜는 다른 사람을 압도하기 위한 지식이 아닙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파괴적인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15절은 이 차이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을 제시합니다.

지혜로운 말을 들은 사람은 그것을 칭찬하고 거기에 더 보탭니다. 반면 흥청거리는 사람은 들은 말을 자기 등 뒤로 돌려 버립니다.

여기서 깨진 그릇의 비유가 더 분명해집니다. 배움은 귀에 말이 들어오는 순간 끝나는 일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들이고 간직하여 자기 삶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16절과 17절에서는 이 차이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나타납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설명은 여행길에 짊어지는 무거운 짐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말도 듣는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보다 지치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깨달음 있는 사람의 입술에서는 호의가 드러납니다. 지혜로운 말이란 단지 논리적으로 정확한 말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임에서는 슬기로운 이의 입을 찾을 것이고, 그의 말을 마음속으로 곱씹을 것이다.집회서 21:17 · 본디새김

이 절은 15절의 개인적인 배움이 공동체 전체로 확대된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의 조언을 구하고, 그 말을 곧바로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속에서 다시 생각합니다.

그런데 18절은 지혜가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허물어진 집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앞의 집 이미지들과 연결됩니다. 오만한 사람의 집은 황폐해지고, 부당한 재물로 세운 집에는 파괴의 위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지혜 자체가 허물어진 집처럼 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생명의 샘이 되는 가르침이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폐허처럼 여겨집니다. 같은 것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같은 교훈이 한 사람에게는 수갑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금팔찌다

집회서 21:19–21 본문 →

이제 본문은 지금까지의 대조를 가장 선명한 이미지로 압축합니다.

어리석은 이들에게 교훈은 발에 채운 차꼬이며, 오른손에 채운 수갑과 같다.집회서 21:19 · 본디새김
슬기로운 이에게 교훈은 금으로 된 장식과 같고, 오른팔에 낀 팔찌와 같다.집회서 21:21 · 본디새김

손과 팔은 사람이 행동하는 데 사용하는 신체 부위입니다. 그곳에 채워진 물건이 한쪽에서는 행동을 제한하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을 아름답게 꾸밉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제한하는 가르침을 자유를 빼앗는 속박으로 여깁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으라는 요구, 다른 사람의 몫을 존중하라는 요구, 자기 잘못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모두 불편한 족쇄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슬기로운 사람은 그러한 가르침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교훈을 억지로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이는 귀한 것으로 여깁니다.

20절의 웃음에 관한 격언도 이 사이에서 읽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웃을 때 목소리를 높이지만, 영리한 사람은 조용히 살짝 미소 지을 것이다.집회서 21:20 · 본디새김

여기서 웃음소리가 크다는 사실 자체가 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교훈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이 일상의 행동에도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유를 잃어서 자신을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절제할 줄 알기 때문에 자유를 더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남의 집 문 앞에서 멈추는 사람

집회서 21:22–26 본문 →

22절부터 장면이 달라집니다.

어리석은 이의 발은 집으로 재빨리 들어가지만, 경험 많은 사람은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할 것이다.집회서 21:22 · 본디새김

여기서 경험 많은 사람이 느끼는 부끄러움은 반드시 자신이 잘못했다는 죄책감을 뜻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지켜야 할 거리와 예의를 아는 사람이 느끼는 조심스러움에 가깝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문에서 몸을 굽혀 집 안을 들여다보지만,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밖에 서 있을 것이다.집회서 21:23 · 본디새김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호기심이나 방문 목적이 우선입니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으면 들여다보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귀를 기울입니다.

반면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상대방의 공간이 자기 뜻대로 들어가도 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24절은 그 경계를 듣는 행위에까지 적용합니다.

문 곁에서 엿듣는 것은 사람의 무례함이며, 슬기로운 사람은 그런 불명예를 견디기 힘들어할 것이다.집회서 21:24 · 본디새김

문은 단순히 건물의 안과 밖을 나누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외부로부터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몰래 듣는 행위도 경계를 침범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지혜는 사소한 예절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며, 타인의 삶에는 내가 존중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아는 태도입니다.

5절에서 가난한 사람의 간구는 그의 입에서 하나님의 귀에까지 이릅니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십니다. 반면 24절의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몰래 들으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귀가 얼마나 밝은지가 아니라,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어디에서 듣기를 멈출 줄 아는가입니다.

25절은 이런 행동을 말의 문제로 연결합니다.

남들의 입술은 이런 일들로 무거워질 것이지만, 슬기로운 이들의 말은 저울에 달릴 것이다.집회서 21:25 · 본디새김

저울은 무게를 확인하고 판단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 이미지는 슬기로운 사람이 말을 하기 전에 그 내용과 결과를 헤아린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 말이 사실인지, 자신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6절은 이 모든 행동의 근원을 마음과 입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어리석은 이들의 입에는 그들의 마음이 있지만, 지혜로운 이들의 마음은 그들의 입이다.집회서 21:26 · 본디새김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입으로 곧장 내보냅니다. 생각과 말 사이에 판단할 여유가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느낀 분노나 호기심이나 욕망이 그대로 말이 됩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마음을 거쳐 나옵니다. 마음이 먼저 판단하고, 입은 그 판단을 표현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기관이 아니라 생각하고 분별하는 인간 내면의 중심입니다.

이렇게 보면 11절의 ‘자기 생각을 다스리고’라는 표현이 26절에 이르러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입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5절의 첫 행은 그리스어 전승에 차이가 있습니다. 본디새김처럼 입술이 무거워진다는 읽기가 있고, 남들의 입술이 이런 일들을 이야기한다는 읽기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자신과 무관한 말을 퍼뜨리는 행위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어느 읽기를 따르더라도 둘째 행의 저울 이미지는 분명합니다.

남을 저주하는 입이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친다

집회서 21:27–28 본문 →

마지막 두 절은 앞에서 이어진 말의 문제를 더 깊은 곳까지 끌고 갑니다.

불경한 자가 사탄을 저주할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저주한다.집회서 21:27 · 본디새김

마지막 절은 이 원리를 더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수군거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더럽히고, 머물러 사는 곳에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집회서 21:28 · 본디새김

남의 평판을 훼손하려는 말은 말하는 사람 자신의 인격을 더럽힙니다. 다른 사람의 신뢰를 깨뜨리려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특히 마지막의 ‘머물러 사는 곳에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그 결과가 공동체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기억과 관계 속에 흔적을 남깁니다.

이것은 16–17절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조언은 공동체가 찾아 듣고 마음에 간직하지만, 수군거리는 사람의 말은 결국 그를 공동체에서 불신받게 만듭니다.

같은 입이지만 하나는 관계를 세우고 다른 하나는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신약의 야고보서 3:5–10에서도 혀의 작은 움직임이 큰 파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제가 이어집니다. 이는 집회서 21장의 직접적인 인용이라기보다, 인간의 말과 책임에 관한 지혜 전통의 주제적 연결로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7절의 그리스어에는 톤 사타난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에서 ‘대적자’ 또는 ‘고발자’를 뜻하는 사탄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하나는 본디새김처럼 사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불경한 사람이 자신의 악행을 외부의 악한 존재와 연결해 저주하지만, 정작 스스로의 불경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대적자’를 뜻하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악한 말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경고가 됩니다. 그리스어 표현만으로 어느 의미가 반드시 옳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욥기 1–2장과 스가랴 3:1–2에는 하늘의 고발자로 나타나는 사탄이 있지만, 그 사실만으로 집회서의 이 구절도 반드시 같은 존재를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 앞에 서 있는 두 사람

집회서 21:1–28 본문 →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을 두려워하는 감정에만 머무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을 듣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범할 때 멈출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남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는 문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합니다. 집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도 궁금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엿들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같은 문 앞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그는 밖에 서 있습니다. 안에 들어갈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안에 들어가도 되는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자기 욕망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고, 다른 사람은 그 욕망 앞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빨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위험할 때는 지체하지 않고 떠나지만,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할 때에는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죄에서 달아날 줄 알고, 남의 경계 앞에서는 멈출 줄 아는 사람.

집회서 21장이 보여 주는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문밖에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