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서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6–9장 · 지혜를 구하는 왕

왕의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이 자신의 지혜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과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과 땅의 식물,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생각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뜻밖의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왕좌도, 성전도, 화려한 궁전도 아닙니다. 어머니의 태 안에서 살로 빚어지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의 모습입니다.

왜 지혜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탄생부터 이야기할까요?

왕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왕의 혈통과 지위가 그에게 남다른 권위를 준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서의 화자는 그런 생각을 처음부터 무너뜨립니다.

자신도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태어났고, 똑같이 돌봄이 필요했으며, 결국 똑같이 죽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인간이 어떻게 지혜를 얻는지 설명하다가, 마지막에는 지혜 자체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밝힙니다.

인간의 출발점은 흙과 어머니의 태이지만, 그를 참으로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이 두 출발점 사이에 지혜서 7장 전체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97장 본문 읽기 →

왕도 태어날 때는 울었다

지혜서 7:1–6 본문 →

나도 모든 이와 똑같이 죽을 사람이며, 흙에서 나 처음 빚어진 이의 후손이다. 나는 어머니의 태 안에서 살로 빚어졌는데,지혜서 7:1 · 본디새김

앞 장까지 지혜서의 화자는 왕과 통치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이 화자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지만, 왕좌와 홀을 소유한 왕으로 말하고, 뒤에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선택받아 성전을 지어야 할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합니다(9:7–8). 따라서 독자는 그가 솔로몬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열왕기상 3장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문학적 발화입니다. 다만 지혜서 전체가 역사적 솔로몬 자신이 직접 기록한 자서전이라고 전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뛰어난 혈통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왕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지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흙에서 나 처음 빚어진 이의 후손」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2:7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장면입니다. 지혜서의 화자는 인간의 공통된 출발점을 아담에게서 찾습니다.

열 달 동안 피 속에서 엉겨 굳어졌으며, 남자의 씨와 잠자리에 어우러진 즐거움에서 비롯되었다.지혜서 7:2 · 본디새김

「열 달」은 고대의 임신 기간 계산 방식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피 속에서 몸이 형성된다는 묘사 역시 고대의 생식과 태아 형성에 관한 이해를 보여 줍니다.

저자가 이런 내용을 자세히 말하는 이유는 생명의 발생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왕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은 인간의 생식 과정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나도 태어나 모두가 함께 마시는 공기를 들이쉬었고, 나와 같은 처지의 땅 위로 떨어졌으며, 모든 이와 똑같이 울며 같은 첫소리를 냈다.지혜서 7:3 · 본디새김

공기는 모두가 함께 마십니다.

땅은 모든 사람을 받아들입니다.

아기는 누구나 울음으로 세상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왕의 특별함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아기였습니다. 그를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왕도 태어남의 시작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지혜서 7:5 · 본디새김
모두가 삶으로 들어오는 길은 하나이며, 나가는 길도 같다.지혜서 7:6 · 본디새김

이 두 문장은 인간의 평등을 출생과 죽음이라는 양쪽 끝에서 보여 줍니다. 왕좌는 그 사이에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왕좌가 인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왕도 다른 사람과 같은 인간이라면, 그는 자신이 타고난 우월함 때문에 다른 사람을 다스릴 권리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지위에 대한 자부심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올바르게 감당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왕에게 지혜가 필요한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똑같이 연약한 인간이면서도 많은 사람의 삶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나와 같은 처지의 땅」은 원문에서도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호모이오파테스는 같은 것을 겪거나 같은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땅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겪는다는 이미지로 읽을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땅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앞뒤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고 반복하므로, 이 문맥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통된 땅이라는 의미가 특히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사람과 땅이 같은 연약함을 공유한다는 시적인 뉘앙스도 가능합니다.

그는 왕좌를 버린 것이 아니라 가치의 순서를 바꾸었다

지혜서 7:7–12 본문 →

그러므로 나는 기도했고 슬기가 내게 주어졌다. 나는 부르짖었고 지혜의 영이 내게 왔다.지혜서 7:7 · 본디새김

그는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자신에게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기에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이것은 열왕기상 3:7–9에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와 연결됩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작은 아이와 같아서 어떻게 나아가고 들어와야 할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며,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합니다. 그 기도에서 솔로몬의 지혜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화자가 먼저 행동하지만, 지혜를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지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성취가 아닙니다.

나는 지혜를 홀과 왕좌보다 더 낫게 여겼고, 지혜에 견주면 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지혜서 7:8 · 본디새김

여기서 홀과 왕좌는 왕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가 실제로 왕좌를 버리고 통치를 포기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지혜와 왕권 사이의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권력은 그 자체로 가장 높은 가치가 아닙니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지혜가 더 중요합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보석도 지혜에 비기지 않았다. 모든 금도 지혜 앞에서는 한 줌 모래에 지나지 않으며,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지혜서 7:9 · 본디새김

비교의 방식을 통해 지혜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값비싼 물건이라도 더 귀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가치가 작아집니다.

나는 건강과 아름다운 용모보다 지혜를 더 사랑했고, 빛 대신 지혜를 지니기로 택했다. 지혜에서 나오는 광채는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지혜서 7:10 · 본디새김

건강은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입니다. 아름다움도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선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지혜가 없다면, 건강과 아름다움 역시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낮의 빛은 해가 지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혜의 광채는 잠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11절에서는 뜻밖의 반전이 나타납니다.

모든 좋은 것이 지혜와 함께 한꺼번에 내게 왔고, 지혜의 손에는 셀 수 없는 부가 있었다.지혜서 7:11 · 본디새김

이것은 열왕기상 3:11–13에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도 주셨다는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그는 재물을 얻기 위해 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지혜 자체를 가장 귀하게 여겼습니다.

따라서 11절을 지혜를 얻기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된다는 약속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문맥은 솔로몬의 지혜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그 모든 것을 이끌기에 나는 그것들 모두를 기뻐했지만, 지혜가 그것들의 근원인 줄은 알지 못했다.지혜서 7:12 · 본디새김

이것은 화자가 자신의 이해가 자라 온 과정을 돌아보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좋은 것들이 지혜와 함께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지혜가 그 모든 좋은 것의 근원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혜는 많은 좋은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좋은 것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누리게 하는 근본적인 선물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다른 좋은 것들도 기뻐합니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재물과 건강과 창조 세계를 경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들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지 않습니다.

지혜의 보물은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지혜서 7:13–16 본문 →

나는 거짓 없이 배웠고 아낌없이 나누어 주며, 지혜의 부를 감추지 않는다.지혜서 7:13 · 본디새김

지혜서 6:23에서 화자는 시기가 지혜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얻은 지혜를 시기 없이 나누겠다고 말합니다. 지혜를 나누는 일이 단순한 친절을 넘어 지혜 자체의 성격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재물은 나누면 자기 몫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왕이 가진 땅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자신의 영토가 줄어듭니다. 재물을 주면 자신의 금고에 남는 돈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지혜는 다릅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고 해서 자신이 가진 지혜가 그만큼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지혜는 사람들에게 다함 없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그 보물을 쓰는 이들은 하나님과 우정을 맺었고, 가르침에서 오는 선물들로 인정을 받았다.지혜서 7:14 · 본디새김

지혜를 얻는 목적이 단순히 세상을 잘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지혜가 가르치는 삶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3:11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모세와 친구에게 말하듯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신다고 묘사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지혜의 중요한 열매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연결입니다.

왕은 많은 사람을 자기 아래에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혜를 얻는 궁극적인 결과는 더 많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정을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지혜를 배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겠다고 말한 화자는 15절에서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깨달은 대로 말하고 받은 것들에 걸맞게 생각하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지혜의 길잡이이며 지혜로운 이들을 바로잡는 이이기 때문이다.지혜서 7:15 · 본디새김

지혜를 안다는 것과 그 지혜를 바르게 표현한다는 것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참된 것을 알고도 그것을 잘못 말할 수 있습니다. 옳은 판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바로잡아져야 합니다.

지혜를 얻었다고 해서 더 이상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화자는 자신이 얻은 지혜를 말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말도 그의 손안에 있고, 모든 슬기와 기술에 관한 지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지혜서 7:16 · 본디새김

화자는 지혜를 얻고 많은 지식을 갖추었지만, 그것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기술에 관한 지식까지 하나님에게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세상을 떠나는 길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길이다

지혜서 7:17–22 본문 →

바로 그가 내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거짓 없는 앎을 주었기 때문이다. 곧 세상의 짜임과 기초 요소들의 작용,지혜서 7:17 · 본디새김

이제 화자가 받은 지혜의 내용이 펼쳐집니다.

앞에서는 지혜가 하나님과 우정을 맺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의 뜻이나 도덕적인 삶에 관한 가르침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갑자기 자연 세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구조, 시간의 흐름, 천체의 운행, 동물들의 본성, 바람의 힘, 사람의 생각, 식물과 뿌리의 성질까지 등장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에 관해 아는 능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도 포함합니다.

저자는 세계를 단순히 신비로운 현상들의 집합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세계에는 구조와 질서가 있으며, 그 질서는 인간이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시작과 끝과 중간, 해의 전환에 따른 변화와 계절의 바뀜,지혜서 7:18 · 본디새김
해마다 되풀이되는 순환과 별들의 자리,지혜서 7:19 · 본디새김

여기서 「해의 전환」은 태양의 연중 움직임이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관찰되는 하지와 동지 같은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고대 사람들에게 태양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는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절기를 지키고, 시간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데 중요한 지식이었습니다.

하늘의 질서를 이해하는 일은 땅에서 살아가는 일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동물들의 본성과 들짐승들의 격분, 바람들의 거센 힘과 사람들의 생각, 식물들의 차이와 뿌리들의 능력을 알게 했다.지혜서 7:20 · 본디새김

이 목록은 열왕기상 4:29–34에 나오는 솔로몬의 지혜와도 연결됩니다. 거기서 솔로몬은 나무와 짐승, 새와 기어 다니는 것들과 물고기에 관해 말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의 지혜는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재판하는 능력뿐 아니라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지식으로도 나타납니다.

나는 감추어진 것과 드러난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지혜서 7:21 · 본디새김

이 말을 화자가 현대적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과학적 사실을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는 주장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지혜가 제공하는 앎의 넓이와 깊이를 강조하는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이 세상에 관한 관심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어떤 곳인지 더 깊이 알고 싶어 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혜는 자연을 떠나게 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합니다.

22절은 그 대답을 단 한 문장으로 제시합니다. 「모든 것을 만든 장인인 지혜가 나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의 질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질서와 깊이 관계된 지혜가 자신의 스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바람들의 거센 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는 프뉴마타(πνεῦμα)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영을 뜻할 수도 있지만, 바람이나 숨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20절에서는 자연 세계의 현상을 열거하고 있으므로 바람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22절에서는 지혜의 성격을 설명하는 영으로 사용됩니다.

하나이면서 여러 갈래이고, 깨끗하면서 모든 곳에 미치는 지혜

지혜서 7:23–24 본문 →

여기에서 지혜는 「장인」으로 불립니다.

모든 것을 만든 장인인 지혜가 나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지혜 안에는 영이 있으니, 지성 있고 거룩하며, 하나뿐이고 여러 갈래이며, 미세하고 날래며, 또렷하고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분명하고 해를 입지 않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막힘없고 선을 베풀며, 사람을 사랑하고 굳건하며, 흔들림 없고 걱정 없으며,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살피며, 지성 있고 깨끗하고 더없이 미세한 모든 영을 꿰뚫고 지나가는 영이다.지혜서 7:22–23 · 본디새김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을 보면 그것을 제작한 장인의 솜씨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의 구조와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그 질서와 관계된 지혜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8:22–31에서도 지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함께 있었던 존재처럼 묘사됩니다. 특히 잠언 8:30의 지혜는 하나님 곁에서 창조의 일을 함께하는 존재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구절의 히브리어 표현에는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지혜와 창조가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것을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창조주가 있다는 뜻으로 곧바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화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세상에 관한 앎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지혜가 자신을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식과 지혜가 가르친 지식은 서로 다른 출처를 가진 두 종류의 지식으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과 앎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하나뿐이지만 여러 갈래인 지혜

그러나 이 대조는 지혜가 하나의 일관된 성격을 지니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한 사람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분별력으로 나타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데 지혜를 필요로 하고, 통치자는 사람들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데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나타나지만, 지혜의 근원은 하나입니다.

물론 이 표현들이 지혜의 존재 방식에 관해 정확히 어떤 형이상학적 구조를 설명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지혜가 어떻게 하나이면서 여러 모습으로 작용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의 지혜가 온 세상과 다양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풍성한 활동을 찬양합니다.

깨끗하기 때문에 모든 곳에 미친다

지혜는 어떤 움직임보다도 더 날래며, 깨끗하기에 모든 것에 두루 미치고 모든 것을 꿰뚫고 지나가기 때문이다.지혜서 7:24 · 본디새김

우리는 어떤 것이 깨끗하다면 더러운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지혜는 어떤 것에 접촉한다고 해서 그 더러움에 오염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미칠 수 있습니다.

지혜는 악에 동화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세상에서 물러나 숨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러움에 지배되지 않으면서 세상 전체에 작용합니다.

그런데 지혜는 어떻게 이런 성격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자는 그 이유를 지혜의 근원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서 피어나는 김, 영원한 빛의 광채

지혜서 7:25–26 본문 →

지혜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피어나는 김이며, 전능한 이의 영광에서 흘러나오는 순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럽혀진 것은 아무것도 지혜 안으로 스며들지 못한다.지혜서 7:25 · 본디새김

처음에는 지혜가 인간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지혜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 이미지는 「김」입니다.

김은 눈에 보이지만 손으로 붙잡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피어나는 근원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주변으로 퍼져 나갑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 주는 이미지입니다.

「흘러나오는 순수한 것」 역시 하나님에게서 지혜가 나온다는 관계를 표현합니다. 지혜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여러 이미지로 보여 줍니다.

지혜는 영원한 빛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이며, 하나님의 작용을 비추는 티 없는 거울이고, 그의 선함의 형상이기 때문이다.지혜서 7:26 · 본디새김

영원한 빛에서 나오는 광채

광채는 빛과 떨어져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빛과 광채는 구별해서 말할 수 있지만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 이미지는 지혜와 하나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작용을 비추는 거울

거울은 자신을 보여 주기보다 다른 것을 비춥니다. 깨끗한 거울은 비추는 대상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혜가 하나님의 작용을 비추는 티 없는 거울이라는 표현은,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행동과 능력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를 드러냅니다.

앞에서는 창조 세계의 요소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작용을 비추는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지혜는 세계의 움직임을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세계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하나님을 거울처럼 비춘다는 비유를 하나님과 지혜가 완전히 동일한 존재라는 형이상학적 선언으로 곧바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 관계를 논리적인 정의로 고정하지 않고 다양한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선함의 형상

마지막 표현은 「그의 선함의 형상」입니다.

앞의 두 비유가 빛과 활동을 강조했다면, 마지막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22–23절에서 지혜의 영이 선을 사랑하고, 선을 베풀며, 사람을 사랑한다고 묘사된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지혜가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낸다면, 그 지혜가 가르치는 삶 역시 선함을 향해야 합니다. 지혜를 가졌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자신이 얻은 지식을 악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본문이 말하는 지혜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혜는 세상을 아는 능력이면서 동시에 선을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8장은 지혜가 창조와 맺는 오래된 관계를 강조합니다. 집회서 24장은 지혜가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르며 율법과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특히 히브리서 1:3은 아들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묘사하는데, 지혜서 7:26과 같은 그리스어 명사 아파우가스마(ἀπαύγασμα)를 사용합니다. 이는 강한 언어적 연결이지만, 히브리서가 지혜서 7장을 명시적으로 인용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후대의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런 지혜의 언어를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다만 지혜서 7장 자체는 우선 하나님의 지혜가 창조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시적으로 설명하는 본문으로 읽어야 합니다.

지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면서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지혜서 7:27–28 본문 →

지혜는 하나이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기 안에 머물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세대마다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옮겨 가 하나님의 친구들과 예언자들을 만들어 낸다.지혜서 7:27 · 본디새김

보통 어떤 것이 다른 것을 바꾸려면 자신도 함께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혜는 자기의 본질적인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지혜의 근원과 성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변화합니다.

지혜가 세상을 새롭게 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자연 세계의 질서나 역사 전체의 변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거대한 활동을 설명하다가 다시 한 사람의 내면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지혜는 인간에게 지식을 더해 주는 것보다 깊은 일을 합니다. 하나님과 우정을 맺는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는 사람을 세웁니다.

14절에서는 지혜를 얻는 사람이 하나님과 우정을 맺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27절에서는 지혜가 하나님의 친구들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같은 관계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인간은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의 친구로 변화시키는 것은 지혜의 활동입니다.

지혜는 한 사람이나 한 시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솔로몬처럼 특별한 왕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대마다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옮겨 가 사람들을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함께 사는 이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지혜서 7:28 · 본디새김

문맥에서 이 표현은 지혜와 함께 사는 삶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앞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선함의 형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함께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는 삶의 방식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배울 기회가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말하는 지혜는 시험 점수나 학문적인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하나님에게서 온 지혜를 사랑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빛 뒤에는 밤이 오지만, 지혜는 악에게 지지 않는다

지혜서 7:29–30 본문 →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별들의 모든 배열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빛과 견주어 보아도 지혜가 앞선다.지혜서 7:29 · 본디새김

처음에는 지혜를 통해 해와 별을 이해했습니다. 이제는 해와 별을 바라보면서 지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습니다. 창조 세계가 지혜를 알게 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지혜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비교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빛 뒤에는 밤이 오지만, 악은 지혜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지혜서 7:30 · 본디새김

낮이 오면 밤이 물러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밤이 옵니다. 자연 세계의 빛은 시간의 변화 안에 있습니다. 아무리 밝은 낮이라도 밤을 영원히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와 악의 관계는 다릅니다.

앞 장들에서는 의로운 사람들이 실제로 악한 사람들에게 박해받고 죽임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악이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는 선언을, 지혜로운 사람은 현실에서 언제나 안전하고 성공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악은 지혜의 선함을 더럽힐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서 나오는 지혜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없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을 억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혜가 거짓이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인간의 첫 울음에서 영원한 빛까지

지혜서 7:1–30 본문 →

인간은 한 번의 울음으로 세상에 들어오지만, 하나님에게서 온 지혜는 그 짧은 생애를 영원한 빛과 연결합니다. 그가 다른 사람과 똑같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지혜를 얻는 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기도할 이유가 됩니다.

이 장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지혜로운 왕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과 같은 숨을 쉬고, 같은 울음을 터뜨리며, 같은 돌봄을 필요로 했던 사람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장면입니다.

그 기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마침내 영원한 빛에 관한 선언에 이릅니다.

왕의 생애도 언젠가 끝날 것입니다. 그가 소유한 홀과 왕좌도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구했던 지혜는 왕의 생애보다 더 깊은 근원에서 나옵니다.

밤은 빛을 뒤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은 지혜를 이기지 못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