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 아래에서 또 하나의 불행을 보았습니다. 사람에게 무겁게 닥치는 불행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재물과 재산과 명예를 주셔서, 그가 바라는 것 가운데 부족한 것이 없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릴 수 있게 하지는 않으셔서, 낯선 사람이 그 재물을 누립니다. 이것은 덧없으며, 심한 병과 같은 불행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녀를 백 명이나 낳고 오랜 세월을 산다고 해 보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좋은 것을 누리며 만족하지 못하고 죽어서 묻히지도 못한다면, 죽은 채 태어난 아이가 그 사람보다 낫다.
그 아이는 덧없이 와서 어둠 속으로 가고,
그 이름도 어둠에 덮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해를 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그 사람보다 더 편히 쉰다. 그 사람이 천 년을 두 번 살아도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결국 모두 같은 곳으로 가지 않느냐?」
채워지지 않는 마음
사람의 모든 수고는 먹고살기 위한 것이지만,
그래도 바라는 마음은 채워지지 않습니다.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나은 점은 무엇입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줄 아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것이 바라는 것을 찾아 마음이 떠도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것도 덧없으며 바람을 뒤쫓는 일입니다.
사람이 알 수 없는 일
존재하는 것은 이미 이름이 붙어 있고,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툴 수 없습니다. 말이 많아질수록 덧없음도 늘어나니, 사람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덧없는 삶의 짧은 날들을 그림자처럼 보냅니다. 그동안 무엇이 사람에게 좋은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사람이 떠난 뒤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까?
6장 해설 모두 보기 46:3 왜 죽은 채 태어난 아이가 더 낫다고 하나요?
자녀 백 명과 천 년을 두 번 사는 삶은 자녀의 수와 수명을 아주 크게 늘려 든 예예요. 그런데도 그 사람은 만족하지 못하고, 죽어서 묻히지도 못해요. 당시 죽은 뒤 제대로 묻히지 못하는 일은 큰 수치와 불행으로 여겨졌어요. 코헬렛은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는 조건만 따로 떼어 비교하지 않아요.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한 긴 삶과 아이의 쉼을 맞세우며,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뿐 아니라 좋은 것을 누렸는지를 물어요.
6:9 눈앞에 보이는 것과 떠도는 마음은 무엇을 비교하나요?
앞에서는 먹고살려고 수고해도 바라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여기서는 눈앞의 것이 바라는 것을 찾아 떠도는 마음보다 낫다고 하면서도, 이것 역시 덧없다고 말해요. 눈앞의 것을 가지면 모든 불만이 사라진다고 약속하지는 않아요.
6:10 사람보다 강한 이는 누구인가요?
앞부분은 존재하는 것에 이미 이름이 붙어 있고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려져 있다고 말해요. 이름이 붙었다는 말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요. 그렇게 읽으면 사람도 자기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말이,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툴 수 없다는 말로 이어져요. 이 장은 재물을 주고 누리게 하는 일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말하므로, 그 강한 이를 하나님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6:8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히브리어 표현은 ‘살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 걸을 줄 아는’이에요. 본문은 이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안다는 뜻으로 풀었어요. 앞의 질문은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무엇이 나은지 묻고, 뒤의 질문은 살아갈 줄 아는 가난한 사람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지 물어요. 두 질문은 모두 수고해도 바라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7절의 말에 이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