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0 베타

전도서 9장

이 장 풀어 읽기

모두에게 닥치는 죽음

나는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두고 밝혀 보려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 또 그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사랑이 닥칠지 미움이 닥칠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그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모두에게 같은 일이 닥칩니다. 의로운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정결한 사람이나 부정한 사람이나,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나 바치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사람이나 죄짓는 사람이나, 맹세하는 사람이나 맹세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나 같은 일을 겪습니다. 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 가운데 이런 불행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같은 일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의 마음은 악으로 가득하고, 사는 동안 그 마음에는 미친 짓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로 갑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더는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랑도 미움도 질투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도 그들의 몫은 이제 영원히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누릴 몫

가서 기쁘게 네 빵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셔라. 하나님께서 이미 네가 하는 일들을 기쁘게 받아들이셨기 때문이다. 네 옷은 언제나 희게 하고, 네 머리에 기름이 모자라지 않게 하여라. 하나님께서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덧없는 삶의 모든 날, 곧 네 덧없는 모든 날 동안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삶을 누려라. 이것이 네 삶의 몫이자, 해 아래에서 네가 애써 일하는 수고 가운데 네 몫이기 때문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힘을 다해 하여라. 네가 가는 스올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밝은 옷을 입은 성인 부부가 마당의 낮은 상에서 빵과 두 잔의 포도주를 앞에 두고 서로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사랑하는 아내와 누리는 삶 · 전도서 9:7–9

뜻밖에 닥치는 일

나는 해 아래에서 또 이런 일을 보았습니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반드시 경주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고, 힘센 사람이 반드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반드시 먹을 것을 얻는 것도, 슬기로운 사람이 반드시 재물을 얻는 것도,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호감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때와 뜻밖의 일이 닥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람은 자기에게 닥칠 불행의 때조차 알지 못합니다. 해로운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처럼, 덫에 잡히는 새처럼, 사람도 불행이 갑자기 덮치는 때에 덫에 걸립니다.

가난한 사람의 지혜

나는 해 아래에서 이런 지혜도 보았습니다. 내게는 아주 큰 지혜로 여겨졌습니다. 작은 성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강한 왕이 와서 그 성을 에워싸고, 성을 공격할 큰 시설들을 세웠습니다. 그 성에는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지혜로 그 성을 구해 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가난한 사람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했습니다.

「지혜가 힘보다 낫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의 지혜는 업신여김을 받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조용히 하는 말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의 고함보다 더 잘 받아들여집니다. 지혜는 전쟁 무기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죄짓는 사람 하나가 좋은 것들을 많이 망칩니다.

9장 해설 모두 보기 8
9:1 사랑이 닥칠지 미움이 닥칠지 모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앞 장에서도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지 못한다고 했어요. 이 절은 의로운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일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해요. 다만 사랑과 미움이 누구의 것인지는 밝히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지 미워하시는지를 사람이 알 수 없다는 뜻으로도 읽을 여지가 있어요.

9:2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요?

여기서 부정하다는 말은 곧바로 악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본문은 의로움과 악함, 정결함과 부정함, 제물을 바치는지 여부 등을 나란히 놓아요. 이런 차이가 있어도 모두 죽는다는 것이 이어지는 3절의 설명이에요.

9:6 죽은 사람에게 더는 몫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5절은 죽은 사람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보상도 없으며, 사람들에게 잊힌다고 말해요. 6절은 사랑과 미움과 질투도 사라지고 해 아래의 일에 몫이 없다고 해요. 이런 죽음의 단절을 말한 뒤, 7–9절은 살아 있는 동안 먹고 마시며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삶을 누리라고 권해요.

9:8 왜 옷을 희게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고 하나요?

흰옷과 머리에 바르는 기름은 잔치와 기쁨을 드러내는 차림이었어요. 반대로 슬픔을 나타낼 때는 기름을 바르지 않기도 했어요. 이 권유는 기쁘게 먹고 마시라는 말과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삶을 누리라는 말 사이에 있어요. 옷과 기름도 살아 있는 동안 누리는 기쁨과 연결돼요.

9:10 스올은 어떤 곳인가요?

여기서는 스올에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고 말해요.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하라는 권유의 이유로 죽음을 제시하는 것이에요.

9:15 가난한 사람은 실제로 성을 구했나요?

이 번역처럼 읽으면 성을 구할 만큼 뛰어난 지혜도 가난한 사람에게 지속적인 인정과 존중을 보장해 주지 못해요. ‘구할 수 있었다’로 읽으면 그의 지혜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가능성에 무게가 실려요. 16절의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는 말은 두 읽기 모두에서 가난한 사람의 지혜가 업신여김을 받는 문제와 연결돼요.

9:4 왜 살아 있는 개와 죽은 사자를 비교하나요?

오늘날 사랑받는 반려견의 모습만 떠올리면 이 대비가 약해질 수 있어요. 여기서는 개가 사자보다 낮게 여겨지는 이미지가 바탕이 돼요. 그러나 비교를 가르는 것은 동물의 힘이나 위엄이 아니라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예요. 이는 바로 앞의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말을 설명해요.

9:2 첫 번째 ‘선한 사람’에는 왜 짝이 없나요?

앞쪽에 나오는 ‘선한 사람’에는 이 번역이 따르는 히브리어 본문에서 반대편 짝이 따로 없어요. 일부 고대 번역은 여기에 ‘악한 사람’을 더하지만, 이 번역은 그 말을 보충하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