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참되다는 증거입니다. 옛사람들은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보이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의 믿음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믿음으로 그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두고 그렇게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겪지 않도록 옮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에녹이 믿음으로 옮겨졌다고 하는 것은, 그가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시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그는 세상을 죄 있다고 판결했고, 믿음에 따른 의로움을 물려받았습니다.
가족을 구하려고 방주를 짓는 노아 · 히브리서 11:7
아브라함과 하늘의 고향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물려받을 땅으로 떠나라는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떠났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받은 땅에서도 남의 땅에 사는 나그네처럼 지냈습니다.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천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기초가 있는 도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도시를 계획하고 지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나이가 너무 많았지만 사라와 함께 자손을 낳을 힘을 얻었습니다. 약속하신 분을 믿을 만한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을 만큼 늙은 한 사람에게서 수많은 자손이 태어났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떠나는 아브라함 · 히브리서 11:8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지닌 채 죽었습니다.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자신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이며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향을 찾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곳은 더 나은 고향, 곧 하늘에 있는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위해 도시를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믿은 사람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약속들을 받은 그가 하나뿐인 아들을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에게 「이삭을 통해 난 사람들이 네 자손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유하자면 그는 이삭을 죽음에서 되돌려 받은 셈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앞으로 있을 일을 바라보며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요셉의 아들들을 하나하나 축복했으며, 자기 지팡이 끝에 기대어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올 일을 말했으며, 자기 뼈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지시했습니다.
모세의 믿음과 선택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난 뒤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습니다. 아이가 아름다운 것을 보았고,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했습니다. 죄의 즐거움을 잠시 누리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값진 재산으로 여겼습니다. 앞으로 받을 보상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견뎌 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유월절을 지키고 피를 뿌렸습니다. 맏이들을 죽이는 이가 이스라엘 백성의 맏이들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홍해에서 여리고까지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지나듯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똑같이 건너려다가 바닷물에 삼켜졌습니다. 믿음으로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이 일곱 날 동안 그 둘레를 돈 뒤였습니다. 믿음으로, 돈을 받고 몸을 팔던 라합도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정탐꾼들을 평화롭게 맞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이기고 견딘 사람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 다윗과 사무엘과 예언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무찌르고, 옳은 일을 행하고, 약속하신 것을 받고, 사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맹렬한 불길을 끄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가운데서 힘을 얻고, 전쟁에서 강해지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여자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기 가족들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매를 맞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나은 부활을 얻으려고 풀려나기를 거절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겪었고, 사슬에 묶이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돌에 맞고, 톱으로 몸이 잘리고,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양가죽과 염소가죽을 걸치고 떠돌며 가난과 고난과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둘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우리와 함께 이루어질 약속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나은 것을 미리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 없이 따로 온전하게 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11장 해설 모두 보기 1311:1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여기서 ‘증거’는 눈앞에 물건을 내놓아 보여 준다는 뜻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어요. 뒤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믿고 행동해요. 노아는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한 경고를 듣고 방주를 짓고,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떠나요. 앞의 ‘확신’으로 옮긴 말에는 ‘바탕’이라는 뜻도 있어요. 믿는 사람의 확신을 강조할지, 바라는 것을 받쳐 주는 바탕을 강조할지는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11:7 방주는 무엇인가요?
이 절에서 중요한 점은 노아가 위험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배를 만들었다는 것이에요. 앞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 행동으로 이어진 예예요.
11:7 노아가 세상을 판결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이 절은 노아가 사람들을 모아 재판했다고 말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방주를 지은 그의 행동이 세상과 대비되어, 세상에 죄가 있음을 드러냈다고 읽을 수 있어요.
11:11 자손을 낳을 힘을 얻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본문은 앞에서 이어지는 아브라함 이야기와 12절의 ‘한 사람’을 연결해 아브라함을 주어로 삼았어요. 사라 자신이 믿음으로 아이를 가질 힘을 얻었다고 읽는 대안도 있어요. 사라의 이름을 문장에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힘을 얻고 약속하신 분을 믿은 사람이 달라져요. 어느 읽기에서든 약속하신 분을 믿을 만한 분으로 여겼다는 점이 중요해요.
11:13 에녹도 나왔는데 왜 모두 죽었다고 하나요?
5절은 에녹이 죽음을 겪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해요. 13절부터는 약속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며 고향을 찾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져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모두’를 앞에서 언급한 모든 인물에게 똑같이 적용하기보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 안에서 읽어요.
11:24 파라오는 누구인가요?
‘파라오의 딸의 아들’은 이집트 왕의 집안에 속한 자리라는 뜻이에요. 모세는 그 자리를 택하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쪽을 선택해요.
11:26 모세 이야기에서 왜 그리스도를 말하나요?
바로 앞 절에서 모세는 죄의 즐거움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받는 학대를 선택해요. 원문의 표현은 ‘그리스도의 모욕’이에요. 본문의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모욕’은 그리스도로 인해 겪는 모욕이라는 읽기를 택한 것이에요.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모욕을 모세도 겪었다는 읽기도 가능해요. 모세가 당시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이 본문에서 따로 밝히지 않아요.
11:28 유월절은 어떤 날인가요?
이 절은 처음 유월절을 지키며 피를 뿌린 일을 말해요. 그 피는 이스라엘 백성의 맏이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뿌린 것이에요.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일을 기념하는 절기로 이어져요. 맏이는 한 집안에서 처음 태어난 자녀를 말해요.
11:31 정탐꾼은 어떤 사람인가요?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화롭게 맞아들였어요. 저자는 이 행동을 라합의 믿음과 연결하고, 그가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고 말해요.
11:35 더 나은 부활은 무엇과 비교하는 말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죽은 가족을 다시 맞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장의 풀려남을 거절하고 더 나은 부활을 바라봤어요. 이 대조는 믿음의 결과가 언제나 지금 겪는 고난에서 벗어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줘요.
11:39 약속하신 것을 받았다면서 왜 받지 못했다고 하나요?
33절의 원문은 ‘약속들’이라는 복수형을, 39절은 ‘그 약속’이라는 단수형을 써요. 40절은 앞선 사람들이 우리 없이 따로 온전하게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셨다고 설명해요. 이 연결을 따라, 여러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 것과 모두가 함께 온전하게 되는 일을 구별해서 읽을 수 있어요. 다만 13절에도 복수형인 ‘약속들’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므로, 단수와 복수의 차이만으로 뜻을 결정할 수는 없어요.
11:23 모세를 숨길 때 어떤 위험이 있었나요?
이런 명령 아래에서 모세의 부모는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겼어요. 본문은 부모가 아이가 아름다운 것을 보았고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요. 저자는 아이를 숨긴 일을 믿음의 행동으로 소개해요.
11:19 이삭이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났나요?
17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다고 말하면서, 이어서 아들을 바치고 있었던 모습을 설명해요. 19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비유하자면’과 ‘되돌려 받은 셈’이라는 표현은 이삭이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뜻과 구별해 읽도록 도와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