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0 베타

호세아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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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른이 몸을 낮추어 어린아이의 두 손을 잡고 걸음을 돕는다.
걸음을 가르치는 사랑 — 비유 · 호세아 11:3

어린 이스라엘을 돌본 사랑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그를 사랑했고,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그들을 부르면 부를수록, 그들은 부르는 이들에게서 더 멀리 떠나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짐승을 잡아 바치고, 새긴 우상들에게 제물을 태워 바쳤다.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그들을 팔에 안아 준 것은 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고쳐 준 이가 나인 줄 몰랐다. 나는 사람을 대하듯 부드럽게, 사랑의 밧줄로 그들을 이끌었다. 그들의 턱에 걸린 멍에를 들어 올려 주는 이와 같았고, 몸을 굽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아시리아가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그들이 내게 돌아오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휩쓸고, 성문의 빗장들을 부수어 삼킬 것이다. 그들이 꾸민 꾀 때문이다. 내 백성은 내게서 돌아서는 일에 매달려 있다. 그들을 불러 내게로 오라고 해도, 아무도 나를 높이지 않는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떻게 너를 내주겠느냐? 이스라엘아, 어떻게 너를 넘겨주겠느냐? 어떻게 너를 아드마처럼 내버려 두고,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내 마음이 속에서 뒤집히고, 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뜨겁게 일어난다. 나는 불타는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겠다. 다시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나는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오지 않겠다.」

그들은 여호와야훼를 따라갈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사자처럼 우렁차게 외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외치시면 자녀들이 바다 쪽에서 떨며 올 것입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새처럼, 아시리아 땅에서 비둘기처럼 떨며 올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자기 집에서 살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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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누가 에브라임을 팔에 안아 주었나요?

히브리어에는 ‘그의 팔’이라는 표현이 있어, 팔의 주인을 누구로 볼지 분명하지 않아요. 본문은 앞의 ‘나’와 뒤의 ‘내가 고쳤다’를 이어 받아, 안아 주는 행동도 여호와야훼의 돌봄으로 옮겼어요.

11:4 사랑의 밧줄과 멍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나요?

‘사람의 줄’은 뒤의 ‘사랑의 밧줄’과 연결해 ‘사람을 대하듯 부드럽게’로 풀었어요. ‘멍에’에 해당하는 말의 모음을 달리 읽어, 젖먹이를 뺨 가까이 들어 올리는 모습으로 이해하기도 해요. 그렇게 읽으면 앞 절에서 아이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안아 주는 모습이 이어져요. 본문은 히브리어의 모음 표기를 따라 멍에로 옮겼어요.

11:7 불러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히브리어에는 ‘위로’ 또는 ‘위에 계신 이에게’로 읽을 수 있는 말과 ‘부르다’, ‘높이다’가 이어져요. 누가 누구를 부르고 높이는지 분명하지 않아요. 백성이 위에 계신 이를 불러도 그분이 그들을 일으켜 주지 않는다는 읽기도 가능해요. 앞부분에서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는 일에 매달려 있다는 고발은 분명해요.

11:8 아드마와 스보임처럼 만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신명기 29:22(개역개정 29:23)은 이 성읍들의 멸망을 함께 언급해요. 여호와야훼는 ‘어떻게 너를 내주겠느냐’고 거듭 묻고, 다음 절에서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해요. 앞의 심판 경고에 이어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에요.

11:9 하나님께서 ‘거룩한 이’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이 절에서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씀과 이어져요. 여호와야훼께서는 백성 가운데 계신 거룩한 이로서, 불타는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11:9 ‘분노에 휩싸여 오지 않겠다’는 말은 어떻게 옮긴 건가요?

마지막 히브리어 표현은 ‘성읍에 들어오지 않겠다’로도 옮길 수 있어요. 본문은 앞의 분노와 멸망에 관한 말을 따라 분노를 가리키는 읽기를 택했지만, 장소를 말하는 표현일 가능성도 남아 있어요.

11:5 앞에서는 이집트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앞의 이집트 귀환을 다시 종살이하는 처지의 비유로 읽고, 여기서는 그들을 실제로 지배할 나라가 아시리아라고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또 이 절을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라는 반문으로 옮겨 앞의 경고와 연결하는 읽기도 있어요. 본문은 히브리어의 부정어를 따라 부정하는 선언으로 옮겼어요. 앞뒤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지는 해석이 갈려요.

11:1 이스라엘을 왜 ‘내 아들’이라고 부르나요?

출애굽기 4:22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르셨어요. 여기서는 그 사랑이 걸음을 가르치고 안아 주고 먹이는 모습으로 이어져요. 마태복음 2:15는 예수의 이야기에서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는 말씀을 인용해요. 호세아에서 이스라엘에게 한 말을 마태복음이 예수의 이야기와 연결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