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9장
이 장의 자리 · 17–21장 · 언약과 전쟁, 성전 터
호의를 의심하고 도움을 잃다
역대상 19장은 전쟁 이야기지만, 첫 장면에는 군대도 무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죽었습니다. 이웃 나라의 왕 다윗은 조의를 표하기 위해 사절을 보냅니다. 죽은 왕에게 받은 호의를 그의 아들에게 돌려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암몬의 지도자들은 그 사절들이 실제로는 정탐꾼이라고 주장합니다. 새 왕 하눈은 그 말을 믿고 사절들을 모욕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암몬은 막대한 은을 들여 외국 군대를 고용하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입니다.
이 전쟁은 무엇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본문에서 확인되는 최초의 원인은 다윗의 침략이 아닙니다. 다윗이 보낸 사절들의 의도를 하눈의 지도자들이 의심했고, 하눈이 그 의심에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암몬의 지도자들은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다윗의 호의를 의심했지만, 그 의심을 사실로 취급한 행동이 오히려 자기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사람과 나라 사이의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관계는 어떻게 무너집니까?
아버지가 베푼 호의를 아들에게 돌려주려 하다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아들 하눈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겠다. 그의 아버지가 내게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아버지를 잃은 하눈을 위로하려고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하눈을 위로하러 암몬 자손의 땅으로 가서 그를 찾아갔습니다.역대상 19:2 · 두루새김
이 문장에서는 「호의」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히브리어는 헤세드(חֶסֶד)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사랑, 인자함, 신실한 호의 등을 가리키며, 특히 이미 맺어진 관계에서 서로에게 성실하게 행동하는 것을 표현할 때 중요합니다.
다윗이 나하스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는 이 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확실한 것은 다윗이 나하스에게 호의를 받았다고 기억하며, 그 호의를 그의 아들에게 돌려주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나하스는 죽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에게 직접 보답할 수 없습니다. 대신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려 합니다.
왕이 바뀌었지만 이전 세대에 맺어진 관계를 이어 가려는 것입니다.
하눈은 새 왕이 되었지만 동시에 아버지를 잃은 사람입니다. 왕위를 이어받는 때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때가 겹쳐 있습니다. 국가 사이의 사절 왕래였다는 점에서 외교적 의미가 있었겠지만, 본문이 직접 밝히는 목적은 위로입니다.
그러나 하눈의 지도자들은 이 행동을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의심이 사실을 대신한 순간
암몬의 지도자들은 새 왕에게 묻습니다.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이 하눈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이 임금님을 위로할 사람들을 보냈다고 해서, 정말 임금님의 아버지를 존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신하들은 이 땅을 몰래 살펴보고 무너뜨리려고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역대상 19:3 · 두루새김
물론 지도자들이 왜 그토록 경계했는지는 이해할 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여러 나라를 무찌른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새로운 왕이 왕위에 오른 상황에서 이웃 강대국의 사절단을 경계할 이유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계할 이유가 있다는 것과 상대가 실제로 악의를 품었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들이 내세운 것은 다윗이 보낸 사절들의 행동이 아니라, 사절들이 왔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입니다. 본문에는 사절들이 군사 시설을 살펴보았다거나 비밀 정보를 수집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신중한 사람은 의심이 생겼을 때 사실을 확인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도자들은 확인되지 않은 의심을 이미 밝혀진 의도처럼 말합니다. 그들은 다윗이 왜 사절을 보냈는지 묻기보다, 다윗이 보낸 사절들이 위험하다는 결론으로 하눈을 이끕니다.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수염을 밀고, 그들의 옷을 엉덩이 높이에서 반으로 잘라 낸 뒤 돌려보냈습니다.역대상 19:4 · 두루새김
수염을 미는 행위와 옷을 잘라 몸을 드러나게 하는 행위는 당시 성인 남성의 사회적 체면을 훼손하는 모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절들은 개인 자격으로 암몬에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윗 왕의 명령을 받아 온 신하들입니다. 그들을 모욕하는 것은 그들이 대표하는 다윗의 권위에도 모욕을 가하는 행동이 됩니다.
그런데 하눈의 행동은 지도자들의 주장을 입증하지 않습니다.
사절들이 정탐꾼이었다는 증거는 여전히 없습니다. 단지 그들을 정탐꾼으로 여긴 결과가 나타났을 뿐입니다.
의심이 행동의 근거가 되었지만, 그 행동이 의심을 사실로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다윗은 모욕당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5절에서는 이야기의 시선이 하눈에서 다윗에게로 옮겨갑니다.
사람들이 가서 다윗에게 신하들이 당한 일을 알렸습니다. 신하들이 몹시 수치스러워했으므로,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맞이하게 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수염이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너라.」역대상 19:5 · 두루새김
여리고는 요단강 서쪽에 있는 성읍으로, 암몬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과 연결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사절들은 왕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까지 곧바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하눈은 사절들의 몸을 훼손하여 수치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수치를 고려하여 당장 돌아오지 않아도 되게 했습니다.
이 장면은 두 왕이 사람을 대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보여줍니다.
모욕을 저지른 사람들이 전쟁을 준비하다
6절은 암몬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기록합니다.
암몬 자손은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을 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눈과 암몬 자손은 은 천 달란트를 보냈습니다.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마아가와 소바에서 전차를 빌리고 말을 타고 싸우는 군사들을 고용하려는 것이었습니다.역대상 19:6 · 두루새김
본문은 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과의 관계가 나빠졌음을 알아차렸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관계가 나빠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암몬은 이미 벌어진 일을 화해로 해결하는 대신 군사력을 확보하려 합니다. 달란트는 무게 단위이므로, 이 숫자는 막대한 양의 은을 동원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7절은 빌린 전차를 삼만이천 대라고 기록합니다. 암몬은 자신의 병력만으로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 아람 지역에서 병력을 고용합니다. 이 병력은 메드바 앞에 진을 치고, 암몬 사람들도 자기 성읍들에서 모여 전쟁에 나섭니다.
이렇게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다음, 비로소 다윗이 움직입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요압과 용사들로 이루어진 온 군대를 보냈습니다.역대상 19:8 · 두루새김
이 장면만 놓고 보면 다윗의 군사 동원은 암몬의 준비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군사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지까지 이 사실 하나로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19장의 이야기에서 전쟁을 향해 먼저 군사적 준비를 확대하는 쪽은 암몬입니다.
암몬과 고용된 아람 군대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하나의 군대로 완전히 합쳐져 있지는 않습니다. 9절은 그들을 구별하여 기록합니다.
암몬 자손은 성읍 밖으로 나와 입구에 군사를 배치했습니다. 그들을 도우러 온 왕들은 따로 들판에 있었습니다.역대상 19:9 · 두루새김
이 배치는 곧 이스라엘 군대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7절의 숫자는 같은 사건을 다루는 사무엘하 10:6의 군대 구성 및 병력 수치와 차이가 있습니다. 사무엘하는 여러 아람 지역에서 온 걸어서 싸우는 군사들을 중심으로 병력을 기록합니다. 역대상의 히브리어는 전차나 전차 부대를 가리킬 수 있으므로, 삼만이천이라는 수가 구체적으로 개별 전차의 수인지 전차 부대의 규모를 세는 다른 방식까지 포함하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본문의 차이가 생긴 정확한 원인 역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앞뒤로 적이 있을 때 요압이 한 말
요압이 전장을 살펴보니 이스라엘 군대는 앞뒤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요압은 자기 앞뒤에 적군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뛰어난 군사들 가운데서 사람들을 뽑아 아람 군대에 맞서도록 배치했습니다.역대상 19:10 · 두루새김
나머지 군사들은 형제 아비새에게 맡겨 암몬 군대를 상대하게 합니다. 한쪽에만 모든 병력을 집중하면 다른 쪽에서 공격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요압은 두 방향으로 군대를 배치합니다.
그런데 이 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요압이 아비새에게 말했습니다. 「아람 군대가 내 군대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구해 주어라. 암몬 군대가 네 군대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구해 주겠다.」역대상 19:12 · 두루새김
요압은 자신이 반드시 아람을 이길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비새도 반드시 암몬을 이길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쪽이 밀릴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여기서 두 형제의 관계는 단순히 개인적인 친밀함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전투에서 실제로 서로를 도울 약속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요압은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밝힙니다.
「힘을 내라.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해 힘을 내어 싸우자. 여호와야훼께서 좋다고 여기시는 일을 하시기를 바란다.」역대상 19:13 · 두루새김
그의 군사적 책임은 자신이나 왕의 명예만이 아니라, 백성과 그들이 살아가는 성읍들을 보호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요압은 왜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앞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요압은 자신들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 전투에서 무엇을 하실지 직접 알려 주시는 계시는 이 장에 없습니다. 요압은 전쟁에서 해야 할 행동을 결정하지만, 결과까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군대를 배치하고, 형제와 지원 계획을 세우고, 병사들에게 용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지만 이 고백을 모든 시대의 전쟁에 그대로 적용해서 하나님이 전쟁을 승인하신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요압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백성과 성읍을 위해 싸웁니다. 그가 하나님께 결과를 맡겼다는 사실과 그 전투에 포함된 모든 폭력이 도덕적으로 정당한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암몬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은을 들여 외국 군대를 고용했습니다. 요압은 전투에서 병사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형제와 서로 구해 주기로 약속합니다. 두 편 모두 실제적인 군사적 준비를 합니다.
차이는 단순히 한편은 돈을 쓰고 다른 편은 기도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요압 역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군사 지휘관입니다. 더 중요한 차이는 요압이 결과를 확실히 알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도울 책임을 세우고, 마지막 판단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점입니다.
하눈의 지도자들은 알지 못하는 상대의 의도를 확신했습니다. 요압은 알 수 없는 전투의 결과를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여기는 판단이 있었고, 전투 한가운데서는 알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야아세(עָשָׂה)는 문법적으로 미래의 행동을 가리킬 수도 있고, 바라는 뜻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문맥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좋다고 여기시는 일을 하시기를 바란다」라는 바람으로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그 점에서 요압의 말은 잠언 16:9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하지만,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한쪽의 도주가 다른 쪽의 도주를 부르다
요압의 말이 끝나자 군대가 움직입니다.
요압과 그의 군사들이 싸우려고 아람 군대에 다가가자, 아람 군대가 요압 앞에서 달아났습니다.역대상 19:14 · 두루새김
본문은 아람 군대가 얼마나 오래 싸웠는지, 어느 시점에서 무너졌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음 절에서는 그 행동이 암몬 군대에 영향을 미칩니다.
암몬 자손은 아람 군대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 그들도 요압의 형제 아비새 앞에서 달아나 성읍으로 들어갔습니다.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역대상 19:15 · 두루새김
이것은 앞서 요압과 아비새가 서로 구해 주기로 했던 약속과 대조됩니다. 요압과 아비새는 어느 한쪽이 어려워지면 다른 쪽이 도우러 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암몬과 아람의 연합에서는 한쪽이 무너지자 다른 쪽도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아람 군대가 돈 때문에 충성심이 부족했다거나 용기가 없어서 달아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달아난 원인에는 전투 상황이나 군사력 차이 등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본문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물론 두 형제의 약속과 암몬의 용병 고용은 성격이 다릅니다. 한쪽은 같은 군대 안의 지휘관들이 세운 상호 지원 계획이고, 다른 쪽은 국가 사이의 군사 계약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돈으로 맺은 관계는 모두 불성실하고 형제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안전하다는 일반적인 교훈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 기록만 보면 전쟁이 일단락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암몬을 돕기 위해 왔던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전쟁은 더 큰 규모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 전쟁에서 다윗이 직접 나서다
첫 번째 전투에서 패배한 아람 사람들은 다시 군대를 모읍니다.
아람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패한 것을 보고, 사람들을 보내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의 아람 군대를 불러냈습니다. 하닷에셀의 군대 지휘관 쇼팍이 그들을 이끌었습니다.역대상 19:16 · 두루새김
하닷에셀은 앞 장에서 다윗과 싸워 패배했던 소바의 왕입니다. 이제 그의 지휘 아래 있던 군사 조직이 다시 이스라엘과 맞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이 직접 움직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군사들을 모아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는 아람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과 맞서도록 군사를 배치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군사를 배치하자, 아람 사람들이 그와 싸웠습니다.역대상 19:17 · 두루새김
첫 번째 전투가 요압과 아비새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면, 두 번째 전투에서는 다윗이 직접 군대를 이끕니다. 이제 양측의 대결은 더 큰 규모의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 앞에서 달아났습니다. 다윗은 아람의 전차를 타고 싸우는 군사 칠천 명과 걸어서 싸우는 군사 사만 명을 죽였고, 군대 지휘관 쇼팍도 죽였습니다.역대상 19:18 · 두루새김
전쟁의 규모가 크고 피해가 심각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전쟁의 결과가 이스라엘에 유리했다고 해서 그 죽음의 심각성을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들을 죽인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만, 개별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은 여기서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께 직접 돌리는 문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앞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가는 곳마다 그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표현이 반복되었지만, 여기서는 그런 문장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이번 승리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저자가 이 장에서 사용하는 서술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쟁의 중심에 놓인 신앙 고백은 전투가 끝난 뒤의 승리 선언보다, 앞에서 요압이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했던 말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좋다고 여기시는 일을 하시기를 바란다.」 이 말은 전투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전쟁의 결과가 좋게 나타났다고 해서 이 말의 의미가 단순한 승리 예언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16절의 원문에서는 강의 이름을 직접 쓰지 않고 「강」이라고만 하지만, 문맥상 유프라테스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17절의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문자 그대로 전장에 나갔다는 뜻이 아니라, 왕이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폭넓게 동원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차를 타고 싸우는 군사 칠천 명과 걸어서 싸우는 군사 사만 명은 역대상에 기록된 수치입니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사무엘하 10:18은 전차 관련 병력 칠백 명과 말을 타고 싸우는 군사 사만 명을 기록합니다. 두 기록 사이에는 수치와 군사의 종류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가 원래부터 서로 다른 집계 방식에 따른 것인지, 기록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샀지만, 마지막에는 아무도 도우려 하지 않았다
호의를 의심하여 시작된 사건이, 도움을 잃는 결과로 끝납니다.
하닷에셀의 신하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패한 것을 보고, 다윗과 평화를 맺고 그를 섬겼습니다. 아람은 더 이상 암몬 자손을 구해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역대상 19:19 · 두루새김
앞에서는 서로 구해 주겠다는 약속이 나왔습니다. 마지막에는 더 이상 구해 주지 않겠다는 결말이 나옵니다. 요압과 아비새는 자신들이 상대보다 약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서로 도울 책임을 나누었습니다. 암몬은 자기 나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호의를 먼저 공격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아람이 정확히 어떤 동기 때문에 더 이상 암몬을 도우려 하지 않았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윗을 섬기게 된 새로운 정치적 상황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두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기를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의 승자는 다윗이지만, 이 장은 승리한 왕의 환호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암몬을 둘러싼 관계 하나가 끊어졌다는 사실로 끝납니다.
처음에 하눈에게 찾아왔던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려는 사절들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암몬이 필요로 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을 전쟁에서 구해 줄 군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군사들은 더 이상 오지 않으려 합니다.
호의로 시작될 수 있었던 관계는 모욕과 전쟁을 거쳐, 아무도 더는 구해 주려 하지 않는 관계로 끝났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