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시몬이 세운 나라

시내를 건넌 용기와 잔칫상의 배신

마카베오기 상권은 뜻밖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외국 군대는 패배합니다. 그러나 그 승리를 이끌어 온 가문의 지도자는 전쟁터가 아니라 가족의 환대를 받는 자리에서 살해당합니다. 적군의 말을 탄 군사들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지도력이, 자기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의 식탁에서는 무방비로 무너집니다.

전반부에서 요한은 두려워하는 군사들보다 먼저 시내를 건너고, 후반부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손님을 맞아들이는 척하며 무장한 사람들을 숨깁니다. 한 사람은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앞장서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믿고 따라온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이 장이 묻는 것은 누가 전쟁에서 이기는가만이 아닙니다. 어렵게 되찾은 이스라엘을 어떤 사람이 이끌 것인가, 그리고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신뢰는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16장 본문 읽기 →

「너희가 나와 내 형제의 자리를 맡아라」 — 승리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맡기다

마카베오기 상권 16:1–3 본문 →

이야기는 요한이 가자라에서 올라와 아버지 시몬에게 켄데바이오스가 벌이고 있는 일들을 알리면서 시작합니다.

켄데바이오스는 앞 장에서 안티오코스 왕에게 해안 지역의 군사 지휘권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기드론을 요새로 만들고 유다로 들어가는 길목을 위협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5:38–41). 그러므로 요한의 보고는 단순한 국경 분쟁 소식이 아닙니다. 유다가 어렵게 되찾은 영토와 스스로 다스릴 권리가 다시 침해받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시몬은 나이가 가장 많은 두 아들, 유다와 요한을 불러 말했습니다. 「나와 내 형제들과 내 아버지의 집안은 젊은 시절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을 위해 전쟁을 치렀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여러 번 이스라엘을 구해 냈다.」마카베오기 상권 16:2 · 두루새김

그의 아버지 마타티아스가 모데인에서 저항을 시작했고, 형제 유다가 전투를 이끌었으며, 요나단이 외교와 전쟁을 통해 공동체를 지탱했습니다. 시몬 자신은 그 뒤를 이어 유다가 스스로 다스릴 권리와 성전의 안전을 지키려 애썼습니다. 이 긴 역사는 한 영웅의 성공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와 지도자들의 수고가 이어진 역사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기 위해 싸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이스라엘을 구해 냈다」고 말합니다. 공동체가 억압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그 싸움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늙었다. 너희는 자비를 입어 이 일을 맡을 나이가 되었다. 너희가 나와 내 형제의 자리를 맡아라. 나가서 우리 민족을 위해 싸워라. 하늘에서 오는 도움이 너희와 함께하기를 바란다.」마카베오기 상권 16:3 · 두루새김

이 말에는 지도자의 권한을 영원히 붙잡으려는 태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세대가 감당했던 일을 다음 세대에 넘겨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승리 자체를 약속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말은 「하늘에서 오는 도움이 너희와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기원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부르지 않고 「하늘」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리킵니다. 또한 아들들이 성장한 사실도 단순히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자비를 입어」 이루어진 일로 말합니다.

시몬이 아들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은 승리의 영광보다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야 할 책임입니다.

시몬은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맡기려 하고, 프톨레마이오스는 다른 이의 자리를 빼앗으려 합니다. 두 사람 모두 권력이 옮겨 가는 일을 생각하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먼저 시내를 건넌 사람 — 두려움을 없애는 지도력

마카베오기 상권 16:4–8 본문 →

요한과 유다는 군대를 이끌고 켄데바이오스를 상대하러 나아갑니다. 그들은 모데인에서 밤을 보냅니다.

모데인은 이 책의 처음부터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마타티아스가 왕의 명령에 맞서 저항을 시작한 곳이 바로 모데인이었습니다(2:1–28). 이제 그곳에서 그의 손자 세대가 다음 전투를 준비합니다.

아침이 되자 적의 큰 군대가 나타납니다. 그들 사이에는 시내가 흐릅니다. 적의 걸어서 싸우는 군사들과 말을 탄 군사들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물길을 건너는 것은 군사들에게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자기 군사들과 함께 적들 맞은편에 진을 쳤습니다. 그는 군사들이 시내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먼저 건넜습니다. 군사들도 그를 보고 뒤따라 건넜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6:6 · 두루새김

군사들은 그의 말을 듣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를 보고 움직입니다. 본문은 「그를 보고」라는 표현을 분명히 적습니다. 요한의 행동이 군사들에게 다음 행동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위험을 함께 감당하는 지도력입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넘기는 대신 자신이 그 위험 속으로 먼저 들어갑니다.

다음 절에서 그는 적에게 말을 탄 군사가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군사들을 나누고, 걸어서 싸우는 군사들 사이에 말을 탄 군사들을 배치합니다(16:7). 용기와 군사적 판단이 함께 나타납니다.

요한은 두려움 앞에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면서, 움직인 뒤에는 상황에 맞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8절에서는 나팔 소리와 함께 적군이 패하여 달아납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10:9는 적과 전쟁할 때 나팔을 불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 기억되어 구원을 얻는다는 전통을 전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16:8의 나팔은 시몬이 기원했던 「하늘에서 오는 도움」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하나님이 직접 전투에 개입하셨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승리를 기적적인 사건으로 단정하기보다는,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신앙과 실제 군사적 행동이 함께 놓인 장면으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무사히 유대로 돌아갔습니다」 — 승리로 끝나지 않는 평화

마카베오기 상권 16:9–10 본문 →

전투는 승리로 끝나지만 아무런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요한의 형제 유다가 다칩니다. 그럼에도 요한은 적을 뒤쫓아 켄데바이오스가 세운 기드론까지 나아갑니다. 이 기드론은 예루살렘 동쪽의 잘 알려진 골짜기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이 문맥에서는 앞 장에서 켄데바이오스가 요새로 만든 군사적 거점을 가리킵니다(15:39–41).

적들은 아소도의 들에 있는 망대들로 달아났습니다. 요한은 아소도 성읍에 불을 질러 태웠습니다. 적들 가운데 천 명가량이 쓰러졌고, 요한은 무사히 유대로 돌아갔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6:10 · 두루새김

이 문장만 보면 마카베오 가문의 다음 세대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바로 다음 절부터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이미 시몬의 시대를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았고, 그들을 두렵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합니다(14:8–12). 오랜 전쟁 끝에 찾아온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만으로 평화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도 폭력이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통찰은 다음 장면에서 구체적인 비극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0절의 불태운 대상은 그리스어 여성 단수 대명사 아우텐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로 앞에 나오는 복수형 「망대들」과는 문법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므로, 두루새김은 이 대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을 「아소도 성읍」으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읽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몬은 돌보고, 프톨레마이오스는 차지하려 한다

마카베오기 상권 16:11–14 본문 →

본문은 갑자기 여리고 평야의 사령관 프톨레마이오스를 소개합니다.

그에게는 세 가지 유리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군사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대제사장의 사위였습니다. 많은 은과 금을 소유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마음이 교만해져 그 땅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시몬과 그의 아들들을 속여 죽일 계획을 꾸몄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6:13 · 두루새김

이는 신명기 17:20에서 이스라엘의 왕에게 경계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왕이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가진 군사적 권한과 부 자체가 문제라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권리를 가진 듯한 마음을 만들어 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공동체를 위해 맡겨진 권한을 공동체 자체를 차지하는 수단으로 바꾸려 합니다.

시몬은 그 땅의 도시들을 두루 다니며 그곳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177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에 시몬과 그의 아들 마타티아스와 유다가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6:14 · 두루새김

두 사람 모두 땅과 도시들을 상대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릅니다. 한 사람에게 도시는 차지할 대상이고, 다른 사람에게 도시는 살피고 보살필 대상입니다.

이 차이는 앞서 시몬이 자기 가문의 전쟁을 이스라엘을 「구해 냈다」는 말로 설명한 것과 이어집니다. 시몬의 지도력은 적어도 이 장의 묘사에서 백성의 안전과 도시의 평안을 목적으로 제시됩니다. 반면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미 자신에게 맡겨진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재산과 더 큰 권력을 추구합니다.

시몬의 집안에서 다시 등장하는 마타티아스와 유다라는 이름도 눈길을 끕니다. 마카베오 저항을 시작한 아버지와 그 전쟁을 이끈 형제의 이름이 다음 세대에서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 이름을 가진 후손들이 가족의 식탁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것은 시몬 개인의 죽음을 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 온 가문의 역사에 닥친 비극으로 읽힙니다.

도크의 잔칫상 —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저지른 배신

마카베오기 상권 16:15–17 본문 →

프톨레마이오스는 시몬과 그의 아들들을 자기가 세운 작은 요새 도크로 맞아들입니다.

그는 큰 술잔치를 베풀지만 사람들을 숨겨 둡니다.

고대 세계에서 잔치는 식사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가족적 유대를 확인하고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나타내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프톨레마이오스는 시몬의 사위입니다. 시몬과 아들들은 낯선 적국의 장군에게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가족과 가까운 사람의 환대를 받으러 온 것입니다.

그 신뢰가 살해의 도구가 됩니다.

시몬과 두 아들이 술에 취하자 프톨레마이오스와 그의 일행은 무기를 들고 들어와 그들을 죽입니다. 시몬을 시중들던 사람 가운데 몇 사람도 함께 살해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살해 장면을 길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싸웠는지, 시몬이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자세히 전하지 않습니다.

대신 곧바로 이 사건의 도덕적 의미를 판단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큰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선을 악으로 갚았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6:17 · 두루새김

따라서 이 사건의 문제는 단순히 높은 지위의 사람을 살해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신뢰한 사람을 배반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관계와 호의를 파괴했다는 데 있습니다.

가장 깊은 배신은 단지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선의를 믿고 마음을 연 사람에게 바로 그 선의를 이용하여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큰 악」으로 옮긴 원문 표현에 쓰인 그리스어 아테시아는 신의를 깨뜨리는 행위, 약속이나 마땅히 지켜야 할 충실함을 저버리는 행위를 뜻할 수 있습니다. 칠십인역 잠언 17:13은 선에 악으로 보답하는 사람을 경계하는데, 마카베오기 상권 16:17은 그 구절과 거의 동일한 그리스어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인용이라고 직접 표시한 구절은 아니지만, 두 본문이 공유하는 도덕적 판단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다만 이 장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최종적으로 어떤 심판을 받는지까지 서술하지 않습니다.

은과 금과 선물 — 책의 처음으로 되돌아온 유혹

마카베오기 상권 16:18–20 본문 →

프톨레마이오스의 계획은 시몬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왕에게 글을 보내 군사적 지원과 영토의 지배권을 요청합니다. 또 요한을 죽이기 위해 가자라로 사람들을 보내고, 천 명 단위의 부대를 맡은 지휘관들에게는 은과 금과 선물을 약속하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예루살렘과 성전 산을 차지할 사람들도 보냅니다.

이 행동들은 살해가 개인적인 원한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13절에서 밝힌 대로 그는 그 땅 전체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시몬의 죽음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였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2:18에서 왕의 관리들은 마타티아스에게 왕의 명령을 따르라고 권하면서 은과 금과 많은 선물을 약속했습니다. 마타티아스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조상들의 율법과 언약을 버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2:19–22).

그런데 마지막 장인 16:19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군 지휘관들에게 다시 은과 금과 선물을 제시합니다.

처음에는 외국 왕의 관리들이 재물을 통해 마타티아스의 충성을 얻으려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시몬의 사위가 재물을 통해 이스라엘 군 지휘관들의 충성을 얻으려 합니다.

책의 처음에 마카베오 가문이 거부했던 유혹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 공동체 내부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외부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 지배가 사용하던 방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은과 금으로 사람들의 충성을 사고, 군사력으로 권리를 주장하며, 성전과 도시를 정치적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태도는 공동체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이 유다의 모든 지도자나 공동체 구성원이 부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음모와 제안만을 알려 줄 뿐, 그 제안을 받은 군 지휘관들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성전 산까지 차지하려는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은 비극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마카베오 가문이 되찾고 지키려 했던 성소가 이제 그 집안 내부에서 시작된 권력 다툼의 목표물이 됩니다.

이름 없는 사람이 먼저 달려갔다 — 살아남은 요한

마카베오기 상권 16:21–22 본문 →

프톨레마이오스는 요한을 죽이기 위해 사람들을 가자라로 보냅니다. 시몬과 두 아들을 죽였지만, 요한이 살아 있는 한 그의 계획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앞질러 가자라로 달려가 요한에게 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었다고 알렸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당신도 죽이려고 사람들을 보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6:21 · 두루새김

이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어떻게 음모를 알게 되었는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요한이 「먼저 건넜습니다」. 뒤에서는 이름 없는 사람이 「앞질러 가자라로 달려가」 소식을 전합니다. 앞에서 요한은 자신의 행동으로 군사들의 두려움을 넘어가게 했습니다. 뒤에서는 요한 자신이 다른 사람의 행동 덕분에 다가오는 위험을 알게 됩니다.

앞장섰던 지도자가 이번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습니다.

요한은 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랍니다. 요한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투에서 승리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마주한 것은 군사적으로 예상한 적의 움직임이 아니라 자기 가족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충격 속에서도 자신을 죽이러 온 사람들을 붙잡아 죽입니다. 22절은 그가 그들의 살해 의도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그의 대응은 무차별적인 보복으로 서술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보내진 사람들에 대한 대응입니다. 그렇지만 본문이 그 과정의 모든 사정이나 이후의 정치적 결과를 알려 주는 것은 아니므로, 이 한 절을 근거로 그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더 넓은 보복을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본문은 더 어려운 물음을 남깁니다. 하늘의 도움을 믿고 살아온 시몬은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배신과 폭력이 닥칠 수 있다면, 그 도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마카베오기 상권 16장은 이 물음에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시몬이 죽고 요한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가지고 두 사람의 믿음이나 하나님의 호의를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맡겼던 책임은 예상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요한에게 이어집니다. 요한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지만, 그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에서는 벗어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 가는 데에는 시몬과 요한처럼 널리 알려진 지도자만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소식을 전한 이름 없는 사람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시몬은 분명 하늘의 도움을 기원합니다. 그러나 21–22절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을 보내셨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달려가 경고했고, 요한이 그 경고를 듣고 행동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소식을 전한 사람의 행동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신앙적 해석이지만, 본문 자체가 분명히 밝히는 사실은 아닙니다.

「나머지 일들」 — 끝내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마카베오기 상권 16:23–24 본문 →

마카베오기 상권은 요한이 음모에서 살아남는 장면 다음에 갑자기 끝납니다.

요한의 나머지 일들, 그가 치른 전쟁과 용감하게 싸워 세운 공, 그가 성벽을 쌓은 일과 그의 행적은, 그가 대제사장으로 지낸 날들을 기록한 책에 적혀 있습니다. 그 책은 그가 아버지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때부터의 일을 담고 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6:23–24 · 두루새김

이 결말은 열왕기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기록 방식과 닮았습니다.

열왕기상 14:19, 14:29 등에서는 왕이 행한 다른 일들이 별도의 왕실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도 요한의 나머지 행적을 다른 기록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요한의 시대를 기록한 책은 왕의 연대기가 아니라 「그가 대제사장으로 지낸 날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요한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지도자이면서 대제사장입니다. 성전의 지도력과 유다의 정치적·군사적 지도력이 한 가문 안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앞서 14:41에서는 시몬이 지도자이자 대제사장으로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신실한 예언자가 나타날 때까지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규정 자체에는 현재의 지도 체제를 인정하면서도 최종적인 판단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성격이 있습니다.

따라서 16:24의 계승 기록만으로 요한의 가문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영원하고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이 절이 확실하게 알려 주는 것은 요한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그의 행적에 관한 별도의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두 절은 앞에서 등장한 여러 요새와 성벽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켄데바이오스는 기드론을 세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거점으로 삼았습니다(15:39, 16:9). 프톨레마이오스는 도크를 세우고 그곳에서 시몬을 배신했습니다(16:15). 마지막에는 요한이 성벽들을 쌓은 일이 언급됩니다(16:23).

같은 건축 행위도 전혀 다른 목적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성벽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한 거점이 되고, 어떤 요새는 신뢰를 배반하는 장소가 되며, 또 어떤 성벽은 도시를 지키는 일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요한이 쌓은 성벽의 위치와 경위를 자세히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언급은 그의 역할이 전쟁의 승리나 가족의 복수에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성벽을 세우고 공동체를 운영해야 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역사는 전투의 승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승리 이후에도 사람들은 살아야 하며, 도시들은 유지되어야 하고, 다음 세대가 머물 자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는 무엇으로 지켜지는가

마카베오기 상권 16:1–24 본문 →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도 인간의 탐욕과 배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판단할 기준마저 버려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보다 무엇에 충실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일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마지막에 요한은 그 선택을 이어받습니다. 다만 그는 아버지가 기대했던 평온한 세대교체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가족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과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 속에서 새로운 책임을 맞이합니다.

책의 처음에는 모데인에서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이 일어섰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자라에 있던 요한에게 이름 없는 사람이 달려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요한은 몹시 놀랍니다. 그러나 그 소식은 요한을 죽이려는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의 차이 속에서 한 가문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 가문이 맡아 온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