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시몬이 세운 나라

시내를 건넌 용기와 잔칫상의 배신

마카베오기 상권은 뜻밖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외국 군대는 패배합니다. 그러나 그 승리를 이끌어 온 가문의 지도자는 전쟁터가 아니라 가족의 환대를 받는 자리에서 살해당합니다. 적군의 기병대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지도력이, 자기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의 식탁에서는 무방비로 무너집니다.

전반부에서 요한은 두려워하는 병사들보다 먼저 시내를 건너고, 후반부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손님을 맞아들이는 척하며 무장한 사람들을 숨깁니다. 한 사람은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앞장서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믿고 따라온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이 장이 묻는 것은 누가 전쟁에서 이기는가만이 아닙니다. 어렵게 되찾은 이스라엘을 어떤 사람이 이끌 것인가, 그리고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신뢰는 어떻게 보존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16장 본문 읽기 →

「너희가 나와 내 형제의 자리를 맡아라」 — 승리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맡기다

마카베오기 상권 16:1–3 본문 →

이야기는 요한이 가자라에서 올라와 아버지 시몬에게 켄데바이오스의 움직임을 보고하면서 시작합니다.

켄데바이오스는 앞 장에서 안티오코스 왕에게 해안 지역의 군사 지휘권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기드론을 요새화하고 유다로 들어가는 길목을 위협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5:38–41). 그러므로 요한의 보고는 단순한 국경 분쟁 소식이 아닙니다. 유다가 어렵게 회복한 영토와 자치권이 다시 침해받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시몬은 위로 두 아들 유다와 요한을 불러 말했다. 「나와 내 형제들과 내 아버지의 집안은 젊은 시절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의 전쟁들을 치렀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여러 번 이스라엘을 건져 내는 데 성공했다.」마카베오기 상권 16:2 · 본디새김

그의 아버지 마타티아스가 모데인에서 저항을 시작했고, 형제 유다가 전투를 이끌었으며, 요나단이 외교와 전쟁을 통해 공동체를 지탱했습니다. 시몬 자신은 그 뒤를 이어 유다의 자치와 성전의 안전을 확보하려 애썼습니다. 이 긴 역사는 한 영웅의 성공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와 지도자들의 수고가 이어진 역사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기 위해 싸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건져 내는 데」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공동체가 압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그 싸움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늙었고, 너희는 자비를 입어 나이도 충분히 찼다. 너희가 나와 내 형제의 자리를 맡아라. 나가서 우리 민족을 위해 싸워라. 하늘에서 오는 도움이 너희와 함께하기를 바란다.」마카베오기 상권 16:3 · 본디새김

이 말에는 지도자의 권한을 영원히 붙잡으려는 태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세대가 감당했던 일을 다음 세대에 넘겨줄 때가 되었다는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승리 자체를 약속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말은 「하늘에서 오는 도움이 너희와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기원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호명하지 않고 「하늘」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리킵니다. 또한 아들들이 성장한 사실도 단순히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자비를 입어」 이루어진 일로 말합니다.

시몬이 아들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은 승리의 영광보다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야 할 책임입니다.

먼저 시내를 건넌 사람 — 두려움을 없애는 지도력

마카베오기 상권 16:4–8 본문 →

요한과 유다는 군대를 이끌고 켄데바이오스를 상대하러 나아갑니다. 그들은 모데인에서 밤을 보냅니다.

마타티아스가 왕의 명령에 맞서 저항을 시작한 곳이 바로 모데인이었습니다(2:1–28). 이제 그곳에서 그의 손자 세대가 다음 전투를 준비합니다.

아침이 되자 적의 대군이 나타납니다. 그들 사이에는 시내가 흐릅니다. 적의 보병과 기병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물길을 건너는 것은 병사들에게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자기 군사들과 함께 적들 맞은편에 진을 쳤다. 군사들이 시내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그가 먼저 건넜다. 병사들도 그를 보고 그의 뒤를 따라 건넜다.마카베오기 상권 16:6 · 본디새김

병사들은 그의 말을 듣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를 보고 움직입니다. 본문은 「그를 보고」라는 표현을 명시합니다. 요한의 행동이 병사들에게 다음 행동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위험을 함께 감당하는 지도력입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넘기는 대신 자신이 그 위험 속으로 먼저 들어갑니다. 다음 절에서 그는 적의 기병이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군사들을 나누고 자기 기병을 보병 가운데 배치합니다(16:7). 용기와 군사적 판단이 함께 나타납니다.

요한은 두려움 앞에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면서, 움직인 뒤에는 상황에 맞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8절에서는 나팔 소리와 함께 적군이 패주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나팔은 군사적 신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민수기 10:9는 적과 전쟁할 때 나팔을 불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 기억되어 구원을 얻는다는 전통을 전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16:8의 나팔은 시몬이 기원했던 「하늘에서 오는 도움」을 연상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하나님이 직접 전투에 개입하셨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평안히 유대로 돌아갔다」 — 승리로 끝나지 않는 평화

마카베오기 상권 16:9–10 본문 →

전투는 승리로 끝나지만 아무런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요한의 형제 유다가 부상을 입습니다. 그럼에도 요한은 적을 추격하여 켄데바이오스가 세운 기드론까지 나아갑니다. 이 기드론은 예루살렘 동쪽의 잘 알려진 골짜기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이 문맥에서는 앞 장에서 켄데바이오스가 요새화한 군사적 거점을 가리킵니다(15:39–41).

그들은 아소도의 들에 있는 망대들로 달아났고, 요한은 아소도에 불을 질러 태웠다. 그들 가운데 천 명가량이 쓰러졌고, 요한은 평안히 유대로 돌아갔다.마카베오기 상권 16:10 · 본디새김

앞서 시몬은 아들들에게 하늘에서 오는 도움을 기원했고, 요한은 승리하여 평안히 돌아옵니다. 이 문장만 보면 마카베오 가문의 다음 세대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바로 다음 절부터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이미 시몬의 시대를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았고, 그들을 두렵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합니다(14:8–12).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만으로 평화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도 폭력이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통찰은 다음 장면에서 구체적인 비극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0절의 불태운 대상은 그리스어 여성 단수 대명사 아우텐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로 앞에 나오는 복수형 「망대들」과는 문법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므로, 본디새김처럼 아소도를 가리킨다고 읽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디새김은 이곳에서 「천 명가량」이 쓰러졌다고 옮겼지만, 확인되는 그리스어 본문에는 디스킬리우스, 곧 ‘이천 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숫자는 번역 원본과 다시 대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몬은 돌보고, 프톨레마이오스는 차지하려 한다

마카베오기 상권 16:11–14 본문 →

본문은 갑자기 여리고 평야의 사령관 프톨레마이오스를 소개합니다.

그는 군사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대제사장의 사위였습니다. 많은 은과 금을 소유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시몬이 이끄는 공동체 안에서 권력과 재산과 혼인 관계를 통해 중요한 위치를 확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교만해져 그 땅을 장악하려고 했다. 속임수로 시몬과 그의 아들들을 없앨 음모를 꾸몄다.마카베오기 상권 16:13 · 본디새김

프톨레마이오스가 가진 군사적 권한과 부 자체가 문제라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권리를 가진 듯한 마음을 만들어 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공동체를 위해 맡겨진 권한을 공동체 자체를 차지하는 수단으로 바꾸려 합니다.

시몬은 그 땅의 도시들을 두루 다니며 그곳들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177년 열한째 달에 그와 마타티아스와 유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여리고로 내려갔다. 이 달은 스밧월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6:14 · 본디새김

프톨레마이오스는 그 땅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시몬은 그 땅의 도시들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땅과 도시들을 상대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릅니다. 한 사람에게 도시는 차지할 대상이고, 다른 사람에게 도시는 살피고 보살필 대상입니다. 이 차이는 앞서 시몬이 자기 가문의 전쟁을 이스라엘을 「건져 내는」 일로 설명한 것과 이어집니다.

시몬의 집안에서 다시 등장하는 마타티아스와 유다라는 이름도 눈길을 끕니다. 마카베오 저항을 시작한 아버지와 그 전쟁을 이끈 형제의 이름이 다음 세대에서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 이름을 가진 후손들이 가족의 식탁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것은 시몬 개인의 죽음을 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 온 가문의 역사에 닥친 비극으로 읽힙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7:20에서는 왕이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와 동행한 아들들은 마타티아스와 유다입니다. 14절의 문장 구조는 번역상 다소 복잡할 수 있지만, 16절에서 시몬과 두 아들이 죽고 21절에서 요한이 아버지와 형제들의 죽음을 듣는 흐름을 고려하면, 마타티아스와 유다가 시몬의 두 아들이라고 읽는 것이 문맥에 부합합니다.

도크의 잔칫상 —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저지른 배신

마카베오기 상권 16:15–17 본문 →

프톨레마이오스는 시몬과 그의 아들들을 자기가 세운 작은 요새 도크로 맞아들입니다.

그는 큰 술잔치를 베풀지만 사람들을 숨겨 둡니다. 겉으로는 손님을 환대하고, 안에서는 그들을 죽일 준비를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잔치는 식사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가족적 유대를 확인하고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나타내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프톨레마이오스는 시몬의 사위입니다. 시몬과 아들들은 낯선 적국의 장군에게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가족과 가까운 사람의 환대를 받으러 온 것입니다.

그 신뢰가 살해의 도구가 됩니다.

시몬과 두 아들이 술에 취하자 프톨레마이오스와 그의 일행은 무기를 들고 들어와 그들을 죽입니다. 시종들 가운데 몇 사람도 함께 살해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살해 장면을 길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싸웠는지, 시몬이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자세히 전하지 않습니다.

대신 곧바로 이 사건의 도덕적 의미를 판정합니다.

그는 매우 불경한 짓을 저질렀고, 선을 악으로 갚았다.마카베오기 상권 16:17 · 본디새김

그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단지 정치적으로 잘못 판단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가 저지른 일은 선과 악의 질서를 뒤집은 행위입니다.

시몬은 도시들을 돌보려고 찾아갔고, 프톨레마이오스는 그를 맞아들이는 척하며 죽였습니다. 시몬에게 부여된 권위와 그가 베풀어 온 호의가 오히려 그를 공격할 기회로 이용되었습니다.

가장 깊은 배신은 단지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선의를 믿고 마음을 연 사람에게 바로 그 선의를 이용하여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칠십인역 잠언 17:13은 선에 악으로 보답하는 사람을 경계하는데, 마카베오기 상권 16:17은 그 구절과 거의 동일한 그리스어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명시적인 인용 표시가 있는 구절은 아니지만, 두 본문이 공유하는 도덕적 판단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잠언은 악으로 선을 갚는 사람의 집에 재앙이 머무는 문제를 경고합니다. 다만 이 장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최종적으로 어떤 심판을 받는지까지 서술하지 않습니다.

은과 금과 선물 — 책의 처음으로 되돌아온 유혹

마카베오기 상권 16:18–20 본문 →

프톨레마이오스의 계획은 시몬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왕에게 편지를 보내 군사적 지원과 영토의 지배권을 요청합니다. 또 요한을 죽이기 위해 가자라로 사람들을 보내고, 군 지휘관들에게는 은과 금과 선물을 약속하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예루살렘과 성전 산을 점령할 사람들도 보냅니다.

이 행동들은 살해가 개인적인 원한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13절에서 밝힌 대로 그는 그 땅 전체를 장악하려 했습니다. 시몬의 죽음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였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2:18에서 왕의 관리들은 마타티아스에게 왕의 명령을 따르라고 권하면서 은과 금과 많은 선물을 약속했습니다. 마타티아스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조상들의 율법과 언약을 버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2:19–22).

그런데 마지막 장인 16:19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군 지휘관들에게 다시 은과 금과 선물을 제시합니다.

책의 처음에 마카베오 가문이 거부했던 유혹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 공동체 내부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외부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 지배가 사용하던 방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은과 금으로 사람들의 충성을 사고, 군사력으로 권리를 주장하며, 성전과 도시를 정치적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태도는 공동체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이 유다의 모든 지도자나 공동체 구성원이 부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음모와 제안만을 알려 줄 뿐, 그 제안을 받은 군 지휘관들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성전 산까지 점령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은 비극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마카베오 가문이 회복하고 지키려 했던 성소가 이제 그 집안 내부에서 시작된 권력투쟁의 목표물이 됩니다.

이름 없는 사람이 먼저 달려갔다 — 살아남은 요한

마카베오기 상권 16:21–22 본문 →

프톨레마이오스는 요한을 제거하기 위해 자객들을 가자라로 보냅니다. 시몬과 두 아들을 죽였지만, 요한이 살아 있는 한 그의 계획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한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어떤 사람이 앞질러 가자라로 달려가 요한에게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었다고 알렸다. 또 이렇게 말했다. 「그가 당신도 죽이려고 사람들을 보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6:21 · 본디새김

이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어떻게 음모를 알게 되었는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요한은 자신의 행동으로 병사들의 두려움을 넘어가게 했습니다. 뒤에서는 요한 자신이 다른 사람의 행동 덕분에 다가오는 위험을 알게 됩니다.

앞장섰던 지도자가 이번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습니다.

요한은 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랍니다. 요한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투에서 승리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마주한 것은 군사적으로 예측한 적의 움직임이 아니라 자기 가족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충격 속에서도 자신을 죽이러 온 자들을 알아보고 붙잡아 죽입니다. 22절은 그가 그들의 살해 의도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그의 대응은 무차별적인 보복으로 서술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파견된 사람들에 대한 대응입니다. 그렇지만 본문이 그 과정의 모든 정황이나 이후의 정치적 결과를 알려 주는 것은 아니므로, 이 한 절을 근거로 그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더 넓은 보복을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늘의 도움을 믿고 살아온 시몬은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배신과 폭력이 닥칠 수 있다면, 그 도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마카베오기 상권 16장은 이 물음에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시몬이 죽고 요한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가지고 두 사람의 믿음이나 하나님의 호의를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맡겼던 책임은 예상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요한에게 이어집니다. 요한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지만, 그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에서는 벗어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 가는 데에는 시몬과 요한처럼 널리 알려진 지도자만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소식을 전한 이름 없는 사람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시몬은 분명 하늘의 도움을 기원합니다. 그러나 21–22절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그 전령을 보내셨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달려가 경고했고, 요한이 그 경고를 듣고 행동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전령의 행동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신앙적 해석이지만, 본문 자체가 명시하는 사실은 아닙니다.

「나머지 일들」 — 끝내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마카베오기 상권 16:23–24 본문 →

마카베오기 상권은 요한이 음모에서 살아남는 장면 다음에 갑자기 끝납니다.

요한의 나머지 일들, 그가 치른 전쟁들, 그가 용맹을 떨친 일들, 그가 성벽들을 쌓은 일과 그의 행적은, 보라, 이 모든 것이 그가 아버지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때부터의 대제사장 재임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마카베오기 상권 16:23–24 · 본디새김

이 결말은 열왕기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기록 방식과 닮았습니다.

열왕기상 14:19, 14:29 등에서는 왕이 행한 다른 일들을 별도의 왕실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도 요한의 나머지 행적을 다른 기록으로 돌립니다. 여기서 요한의 시대를 기록한 책은 왕의 연대기가 아니라 대제사장 재임 연대기입니다.

요한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지도자이면서 대제사장입니다. 성전의 지도력과 유다의 정치적·군사적 지도력이 한 가문 안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앞서 14:41에서는 시몬이 지도자이자 대제사장으로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신실한 예언자가 나타날 때까지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규정 자체에는 현재의 지도 체제를 인정하면서도 최종적인 판단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성격이 있습니다.

따라서 16:24의 계승 기록만으로 요한의 가문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영원하고 무조건적인 신적 승인을 받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이 절이 확실하게 알려 주는 것은 요한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그의 행적에 관한 별도의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두 절은 앞에서 등장한 여러 요새와 성벽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켄데바이오스는 기드론을 세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거점으로 삼았습니다(15:39, 16:9). 프톨레마이오스는 도크를 세우고 그곳에서 시몬을 배신했습니다(16:15). 마지막에는 요한이 성벽들을 쌓은 일이 언급됩니다(16:23).

같은 건축 행위도 전혀 다른 목적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성벽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한 거점이 되고, 어떤 요새는 신뢰를 배반하는 장소가 되며, 또 어떤 성벽은 도시를 지키는 일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요한이 쌓은 성벽의 위치와 경위를 자세히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언급은 그의 역할이 전쟁의 승리나 가족의 복수에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성벽을 세우고 공동체를 운영해야 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는 무엇으로 지켜지는가

마카베오기 상권 16:1–24 본문 →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도 인간의 탐욕과 배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판단할 기준마저 버려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보다 무엇에 충실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일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마지막에 요한은 그 선택을 이어받습니다. 다만 그는 아버지가 기대했던 평온한 세대교체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가족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과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 속에서 새로운 책임을 맞이합니다.

책의 처음에는 모데인에서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이 일어섰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자라에 있던 요한에게 이름 없는 사람이 달려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요한은 몹시 놀랍니다. 그러나 그 전갈은 요한을 죽이려는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의 차이 속에서 한 가문의 비극은 막을 수 없었지만, 그 가문이 맡아 온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