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1–8장 ·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강물에 내려간 장군과 은을 뒤쫓은 시종
아람의 군대 지휘관 나아만은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에게 존중받았고, 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며,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몸의 차라아트를 없앨 수 없었습니다.
반면 그의 집에는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이스라엘 소녀가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붙잡혀 와서 나아만의 아내를 시중드는 아이였습니다. 그 소녀는 재산도 권력도 없었지만, 나아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이 뜻밖의 대조에서 시작됩니다.
이 장의 핵심은 단순히 병든 사람이 어떻게 치료받았는가가 아닙니다.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보고, 누가 그것을 자기 이익으로 바꾸려 했는가에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아람에 승리를 주셨다
아람 왕의 군대 지휘관 나아만은 왕에게 큰 신임과 존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통해 아람에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용맹한 군인이었지만 차라아트에 걸려 있었습니다.열왕기하 5:1 · 두루새김
아람은 이스라엘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람이 전쟁에서 거둔 성공을 설명하면서 여호와야훼께서 나아만을 통해 아람에 승리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원문에서 이 말은 구원이나 구출을 뜻하며, 이 문맥에서는 전쟁에서의 승리나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일을 가리킵니다. 어떤 전투에서 어떤 적을 이겼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여호와야훼께서 나아만을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곧장 좁혀서는 안 됩니다.
나아만은 나중에 요단강에서 병이 낫고 나서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통해 일하신 역사는 그가 하나님을 고백하기 전부터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활동이 먼저였습니다.
큰 신임과 존중을 받지만 차라아트에 걸린 사람
차라아트는 현대 의학의 한센병과 그대로 일치하는 병명이 아닙니다. 레위기 13–14장은 차라아트라는 범주 아래 여러 피부 증상뿐 아니라 옷이나 집에 나타나는 이상 현상까지 다룹니다. 따라서 나아만의 피부병을 오늘날 알려진 특정한 병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아람 왕에게 존중받는 지위에 있었고 여전히 군대 지휘관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적용되는 격리 규정을 그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나아만에게는 군대를 움직일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피부를 회복시킬 능력은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바로 그 틈으로 들어옵니다.
붙잡혀 온 소녀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아람의 습격 부대가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습니다.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를 시중들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소녀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의 부모가 어떻게 되었는지, 포로로 끌려온 뒤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소녀가 여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이 사마리아에 있는 예언자를 찾아가시면 좋겠어요. 그분이라면 주인님의 차라아트를 고쳐 주실 텐데요.」열왕기하 5:3 · 두루새김
그녀가 나아만을 용서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지,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했기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속마음을 아름답게 꾸며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아만은 소녀를 사로잡아 온 나라의 군대 지휘관이고, 소녀는 그 집에 종으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아만에게 필요한 지식은 소녀에게 있습니다. 그녀는 아람 왕의 군대가 알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예언자는 자기 민족만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람 사람 나아만도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이 장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국경을 넘어가는 첫 순간입니다.
거대한 군대가 움직이기 전에, 이름 없는 소녀의 말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왕들은 편지를 주고받지만 병은 고치지 못한다
나아만은 소녀의 말을 듣고 아람 왕에게 알립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나아만은 은 10달란트와 금 6천, 갈아입을 옷 열 벌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상당한 규모의 선물이 준비된 것입니다. 다만 금 6천의 단위는 본문에 밝혀져 있지 않으므로, 이를 특정한 무게나 오늘날의 돈으로 정확하게 환산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소녀의 말이 조금 달라집니다.
소녀는 사마리아에 있는 예언자를 찾아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전했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내 신하 나아만을 이 편지와 함께 왕에게 보냅니다. 그의 차라아트를 고쳐 주십시오.」열왕기하 5:6 · 두루새김
예언자를 찾아가라는 말이 왕에게 병을 고쳐 달라는 공식적인 요청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람 왕이 예언자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스라엘 왕을 통해 예언자에게 가는 것이 나라 사이의 예의에 맞는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편지를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하나님이냐? 이 사람이 내게 사람을 보내 차라아트를 고쳐 달라는구나. 잘 살펴보아라. 나에게 시비를 걸 구실을 찾는 것이 아니냐!」열왕기하 5:7 · 두루새김
아람 왕이 자신의 군대 지휘관을 보내 치료를 요구했는데, 이스라엘 왕에게는 그 병을 고칠 능력이 없었습니다. 만약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면 아람 왕이 이를 구실로 새로운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은 당시 두 나라의 적대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람 왕이 실제로 전쟁의 구실을 만들려고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본문이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왕의 판단입니다.
두 왕은 나라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나아만의 피부를 회복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왜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 사람을 제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이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열왕기하 5:8 · 두루새김
엘리사는 자신이 나아만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나아만은 왕궁을 떠나 엘리사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경험합니다.
병거를 타고 온 장군에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아만은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습니다.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세요. 그러면 피부가 다시 회복되고 당신은 깨끗해질 거예요.」열왕기하 5:10 · 두루새김
엘리사는 장군을 맞이하는 의식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의 몸을 직접 살펴보지도 않습니다. 나아만이 가져온 선물을 확인하지도 않습니다.
나아만은 화가 나서 떠나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가 직접 나와 서서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아픈 곳 위로 손을 흔들어 내 차라아트를 고쳐 줄 거라고 생각했다.」열왕기하 5:11 · 두루새김
그가 기대한 것은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사람을 보내 강에 가서 씻으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처럼 단순한 방법으로는 병이 나을 리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분노에는 치료 방법에 대한 실망과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함께 담겨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왜 요단강이어야 하는가?
「다마스쿠스의 아마나강과 바르발강이 이스라엘의 어느 물보다도 낫지 않으냐? 그 강들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느냐?」 그는 몹시 화가 나서 몸을 돌려 떠났습니다.열왕기하 5:12 · 두루새김
다마스쿠스는 아람의 중심 도시였고, 그곳에는 물을 공급하는 강들이 있었습니다. 요단강보다 다마스쿠스의 강들이 낫다는 것은 나아만의 평가입니다.
엘리사가 요단강을 지정한 이유는 그 강의 물이 다른 강보다 특별히 깨끗하거나 치료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그에게 요단강에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어느 강의 물이 더 좋은가가 아닙니다.
나아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말을 따를 것인가입니다.
그는 이미 치료의 방식까지 스스로 결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는 그 기대에 맞는 행동을 해야 했고, 강물도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곳의 물이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아만이 자존심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상으로 그를 고쳐 주신다는 공식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엘리사를 통해 병을 낫게 하는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나아만에게 필요한 것은 그 말씀을 자기 기대에 맞게 바꾸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장소까지 왔지만, 치료받지 못한 채 돌아가려 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다시 그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방향을 바꿉니다.
종들은 장군이 놓친 것을 보았다
나아만이 화를 내며 떠나자 그의 종들이 다가옵니다.
종들이 다가와 나아만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더라도 하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저 씻고 깨끗해지라고 했으니, 더더욱 해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열왕기하 5:13 · 두루새김
그들은 장군을 거칠게 꾸짖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합니다. 본문은 나아만의 속마음을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종들의 질문을 통해 문제가 행동의 어려움에 있지 않았음은 분명해집니다.
나아만에게 어려웠던 것은 요단강에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방식을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길을 열어 준 것은 종들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는 붙잡혀 온 소녀가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는 나아만을 섬기는 종들이 그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엘리사의 말을 따르도록 권합니다. 두 장면 모두 나아만이 자신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에게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습니다.
그는 종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요단강으로 내려갑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으로 내려가 하나님의 사람이 말한 대로 일곱 번 몸을 담갔습니다. 그러자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회복되었고, 그는 깨끗해졌습니다.열왕기하 5:14 · 두루새김
본문은 일곱이라는 숫자 자체에 따로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엘리사가 말한 대로 행했다는 사실입니다.
큰 장군이 어린아이의 피부를 얻다
처음에는 어린 소녀가 장군을 도왔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장군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회복되었습니다.
나아만이 얻은 것은 단순히 이전의 피부로 돌아가는 것 이상으로 묘사됩니다. 본문은 어린아이의 피부라는 이미지로 그의 회복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종들이 나아만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존중과 친근함을 나타내는 부름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이 아이를 어린 소년으로 표현합니다. 소녀와 소년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표현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두 곳 모두 어리고 작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이것을 글쓴이가 의도적으로 두 장면을 연결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두 표현이 동일한 상징을 담고 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단강에서 돌아온 나아만은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나아만은 일행을 모두 데리고 엘리사에게 돌아옵니다.
처음 엘리사의 집에 왔을 때 그는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문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엘리사 앞에 직접 서서 말합니다.
나아만은 일행 모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는 엘리사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온 땅에서 이스라엘에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디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열왕기하 5:15 · 두루새김
나아만은 자신을 치료한 예언자가 아니라, 그 예언자가 섬기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엘리사가 앞서 말한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목적이 여기서 한층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이스라엘에만 계시는가?
「온 땅에서 이스라엘에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는 말은 나아만이 여호와야훼만을 참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 안에만 계시고, 다른 나라에서는 일하실 수 없다는 뜻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1절에서 본문은 여호와야훼께서 나아만을 통해 아람에 승리를 주셨다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치료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은 일이 하나님을 새롭게 아는 변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왜 엘리사는 선물을 받지 않았는가?
엘리사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섬기는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해요. 저는 결코 받지 않겠어요.」 나아만이 받아 달라고 거듭 권했지만 엘리사는 거절했습니다.열왕기하 5:16 · 두루새김
본문은 엘리사가 선물을 거절한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만약 엘리사가 그 선물을 받았다면, 나아만은 자신의 치료를 큰 대가를 지불하여 얻은 일로 이해할 여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엘리사가 실제로 그러한 오해를 막으려고 거절했다고 본문이 분명히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에서 이 거절은 치유가 돈을 주고받는 거래로 여겨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장면은 뒤에 등장하는 게하시의 행동과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엘리사가 거절한 것을 게하시는 반드시 얻어 내겠다고 결심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 12:3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가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열왕기하 5장에서 직접 인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통해 다른 민족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두 본문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십니다(누가복음 4:27).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차라아트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지만, 깨끗해진 사람은 아람 사람 나아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 민족이라는 경계를 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십니다.
나아만은 왜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가려 했는가?
엘리사가 선물을 거절하자 나아만은 뜻밖의 요청을 합니다.
나아만이 말했습니다. 「받지 않으시겠다면, 이 종에게 노새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주십시오. 이제 저는 다른 신들에게 번제나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를 드리지 않고, 오직 여호와야훼께만 드리겠습니다.」열왕기하 5:17 · 두루새김
이 요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나아만이 자신의 고백을 아람으로 돌아간 뒤의 예배로 이어 가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방금 여호와야훼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그 하나님을 섬기려 합니다.
림몬 신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아만은 이어서 더 어려운 문제를 꺼냅니다.
「다만 이런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이 종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주인이 림몬 신전에 들어가 절할 때 제 팔에 몸을 기대면, 저도 그 신전에서 몸을 굽혀 절하게 됩니다. 제가 림몬 신전에서 절하는 이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이 종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열왕기하 5:18 · 두루새김
림몬은 아람에서 섬기던 신입니다. 나아만은 이제 다른 신들에게 제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아람 왕을 섬기는 지위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이스라엘에 왔을 때 나아만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자신의 피부였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은 뒤에는 아람으로 돌아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만 제사드리겠다고 말하면서도, 왕을 섬기는 현실 속에서 피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나아만이 이것을 단순히 사회에서 하던 관례로 생각했는지, 다른 신전에서 절하는 행동에 종교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고민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용서를 구한다는 점에서 적어도 자신의 행동이 여호와야훼께 대한 충성과 부딪칠 수 있다는 문제를 알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평안히 가세요」는 허락인가?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말했습니다. 「평안히 가세요.」 나아만은 엘리사 곁을 떠나 얼마쯤 갔습니다.열왕기하 5:19 · 두루새김
엘리사는 림몬 신전에서 절해도 된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행동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나아만의 상황을 길게 판단해 주지 않은 채 평안히 가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다른 신을 섬기는 의식에 참여해도 된다는 일반적인 허가를 이끌어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엘리사가 나아만의 신앙을 거짓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본문이 남겨 놓는 것은 신앙의 시작과 복잡한 현실 사이의 긴장입니다.
엘리사는 그를 붙잡아 이스라엘에 남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돌아가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나아만의 치유는 그가 살아야 할 현실을 없애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제 그 현실을 새로운 신앙의 관점에서 마주해야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정착하지 않고 자기 나라로 돌아갑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그가 먼저 이스라엘 사람이 되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가 떠나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엘리사의 집에 남아 있던 게하시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근동에서는 신과 특정한 땅이나 도시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적 믿음들이 있었습니다. 나아만 역시 여호와야훼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땅의 흙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흙으로 제단을 만들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출애굽기 20:24에는 여호와야훼께 흙으로 제단을 쌓으라는 규정이 나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5장은 나아만이 실제로 흙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정확히 어떤 제단을 만들려고 했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엘리사가 거절한 선물을 게하시는 뒤쫓았다
게하시는 나아만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시중드는 게하시가 말했습니다. 「주인님은 이 아람 사람 나아만이 가져온 것을 하나도 받지 않고 그냥 보내 주셨구나.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내가 그를 뒤쫓아 가서 무엇이라도 받아 내겠다.」열왕기하 5:20 · 두루새김
게하시는 나아만을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해진 사람이나 하나님을 고백한 사람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아람 사람이라는 그의 출신을 먼저 내세웁니다. 이 표현에서 게하시의 구체적인 감정이나 민족적 편견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아만의 치유보다 나아만이 가져온 재물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엘리사는 받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게하시는 반드시 받겠다고 맹세합니다.
같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고 해서 같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엘리사를 시중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가까이에서 섬겨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자신이 섬기는 예언자의 결정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면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맹세에 쓰이는 것입니다.
병거에서 내려오는 나아만
게하시가 나아만을 뒤쫓아 갔습니다. 나아만은 게하시가 뒤에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병거에서 내려 그를 맞으며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열왕기하 5:21 · 두루새김
처음에는 높은 지위의 군대 지휘관으로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왔습니다. 엘리사가 직접 자신을 맞이하지 않자 화를 냈습니다. 본문은 나아만이 병거에서 내린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앞서 엘리사를 대하던 태도와 다르게 보입니다.
게하시가 대답했습니다. 「별일은 없습니다. 주인님이 이렇게 전하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방금 에브라임 산지에서 예언자 무리에 속한 젊은이 둘이 내게 왔어요. 그들에게 은 1달란트와 갈아입을 옷 두 벌을 주세요.』」열왕기하 5:22 · 두루새김
엘리사가 그를 보냈다는 말도 거짓이고, 예언자 무리에 속한 젊은이 둘이 방금 찾아왔다는 주장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게하시는 자기 개인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예언자 무리의 젊은이들을 돕기 위해 선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앞 장에서 독자는 예언자 무리에 속한 사람들과 그들의 가난한 형편을 보았습니다. 남편을 잃고 빚에 시달리던 과부도 예언자 무리에 속한 사람의 아내였습니다(4:1). 따라서 게하시의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듯하다는 것과 사실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나아만이 말했습니다. 「기왕이면 2달란트를 받으세요.」 그는 받으라고 거듭 권하면서 은 2달란트를 두 자루에 나누어 담아 묶었습니다. 그러고는 옷 두 벌과 함께 자기 종 둘에게 주어, 게하시 앞에서 메고 가게 했습니다.열왕기하 5:23 · 두루새김
은의 양은 요청한 것의 두 배입니다. 이 장면에서 나아만은 여전히 아낌없이 주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가 게하시의 거짓말을 알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엘리사가 예언자 무리의 젊은이들을 돕기 위해 선물을 요청했다고 믿고 재물을 내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하시는 언덕에 이르자 종들에게서 짐을 받아 집 안에 둡니다. 그리고 종들을 돌려보냅니다. 이 행동은 게하시가 자신이 한 일을 엘리사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제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엘리사 앞에 섭니다.
「지금이 은과 옷을 받을 때냐?」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묻습니다.
게하시가 들어가 주인 앞에 서자 엘리사가 물었습니다. 「게하시야, 어디서 오는 길이냐?」 게하시가 대답했습니다. 「이 종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습니다.」열왕기하 5:25 · 두루새김
게하시는 자신의 행동을 완전히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이미 그가 나아만에게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병거에서 내려 너를 맞으러 올 때, 내 마음도 너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 지금이 은과 옷을 받을 때냐? 올리브나무와 포도밭, 양과 염소 떼와 소 떼, 남자 노예와 여자 노예를 받을 때냐?」열왕기하 5:26 · 두루새김
게하시가 실제로 받은 것은 은 2달란트와 옷 두 벌입니다. 은과 옷으로 시작하여 농사지을 땅과 가축, 종들까지 이어지는 목록은 한 사람이 재물을 모으고 집안을 크게 일으킬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을 떠올리게 합니다. 게하시가 실제로 그 모든 것을 사려 했다고 본문이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질문은 게하시가 단순히 작은 선물 하나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재물을 얻는 일에 마음을 두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선물을 받는 일이 언제나 잘못인가?
엘리사의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지금이」입니다.
그는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이 돈이나 재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인 규정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앞 장에서 엘리사는 자신에게 먹을 것과 머물 곳을 제공한 수넴 여인의 호의를 받아들였고, 바알살리사에서 가져온 첫 수확물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4:8–10, 42–44).
나아만에게는 엘리사가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나중에 사람을 보내 재물을 요청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아만의 고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게하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엘리사의 결정과 말을 왜곡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게하시의 죄는 단순한 탐욕 이상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맡긴 위치를 이용했습니다. 엘리사의 이름을 거짓으로 사용했고, 나아만의 좋은 뜻을 이용했으며, 은혜를 경험한 사람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모습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바로 그 순간에, 게하시는 그 사건을 재물을 얻을 기회로 삼았습니다.
게하시가 놓친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받아서는 안 되는 순간의 의미였습니다.
나아만의 차라아트가 게하시에게 옮겨 가다
엘리사는 마지막으로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나아만의 차라아트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달라붙을 것이다.」 게하시는 차라아트에 걸려 몸이 눈처럼 하얗게 된 채 엘리사 앞에서 나왔습니다.열왕기하 5:27 · 두루새김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서 두 사람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뀝니다.
여기서 본문은 나아만의 병이 몸의 접촉으로 게하시에게 전염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엘리사의 선언에 따라 게하시가 차라아트에 걸린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피부병에 걸린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일반적인 원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만의 차라아트 자체가 그의 죄에 대한 벌이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는 병에 걸려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게하시의 차라아트는 그의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심판으로 제시됩니다.
또한 게하시의 자손에게 영원히 달라붙을 것이라는 선언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을 남깁니다. 본문은 그 심판이 게하시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자손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이 장에서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모든 후손이 조상의 죄 때문에 자동으로 벌받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규정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24:16은 자녀를 부모의 죄 때문에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며, 에스겔 18:20은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그렇다고 열왕기하 5:27의 엄중한 선언을 없는 것처럼 취급할 수도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게하시의 탐욕과 거짓말에 심각한 심판이 따랐음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심판이 후손에게까지 미치는 방식과 범위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엘리사가 하나님께서 알려 주셔서 그 일을 알았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그의 마음이 게하시와 함께 있었다는 표현으로, 그가 자신을 시중드는 사람이 한 일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본문은 게하시가 실제로 노예를 얻으려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욕망과 관련된 재산 목록에 사람을 소유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앞부분의 사로잡혀 온 소녀를 떠올리게 합니다.
누가 정말 깨끗해졌는가?
나아만은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종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게하시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곁에 있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일이 아닙니다.
본문은 게하시가 감춘 재물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남은 재산이 얼마나 되었는지,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어떤 모습으로 엘리사 앞에서 나왔는지만 보여 줍니다.
그의 몸은 눈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이 요단강에서 얻었던 깨끗함은 잃었습니다.
강물에 내려간 아람의 군대 지휘관은 깨끗해져 돌아갔고, 은을 뒤쫓아간 이스라엘의 종은 차라아트를 얻어 나왔습니다. 열왕기하 5장은 그 두 사람의 엇갈린 걸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과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