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25–40장 · 성막과 제사장

맡기신 일과 멈추게 하신 일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십니다. 금과 은을 다루고, 보석을 다듬고, 나무를 깎으며, 정교한 모양을 구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이 머무실 성막을 만드는 일을 맡기십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하나님은 일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성막을 만드는 일은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 거룩한 일입니다. 필요한 기술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은 되도록 빨리, 쉬지 않고 완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출애굽기 31장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맡기셨다는 사실은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줍니까?

인간이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에서 시작해, 언제 만들기를 멈추어야 하는지를 거쳐, 하나님 자신이 무엇을 기록하여 주셨는지로 끝나는 것입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731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은 명령만 주시지 않고 일할 사람도 준비하신다

출애굽기 31:1–5 본문 →

성막에 관한 명령이 처음 주어졌을 때부터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의 구조와 기구의 크기, 재료와 장식까지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누가 만들 것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금으로 입힌, 증언을 넣을 궤와 정교한 등잔대, 여러 가지 보석이 박힌 제사장의 옷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재료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설계하고 가공하며 서로 다른 재료를 하나의 물건으로 완성할 기술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보아라. 내가 유다 지파 사람 브살렐을 이름으로 불렀다. 그는 훌의 손자이며, 우리라는 사람의 아들이다.」출애굽기 31:2 · 두루새김

문맥에서는 그를 특정한 일을 수행하도록 선택하고 부르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막연하게 ‘솜씨 좋은 사람을 찾아라’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의 이름과 아버지, 할아버지, 소속 지파까지 밝히십니다.

「내가 그를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워 지혜와 이해력과 지식, 온갖 것을 만드는 솜씨를 주었다.」출애굽기 31:3 · 두루새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임한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흔히 예언이나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금속을 가공하고 보석을 다듬으며 나무를 깎는 일을 위해 하나님의 영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지혜는 단순히 무엇이 옳은지 아는 추상적인 능력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재료를 이해하고, 만들 물건을 구상하며, 그 구상을 실제 작업으로 옮기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그가 만들 모양을 구상하여 금과 은과 구리로 작업하고,」출애굽기 31:4 · 두루새김

「만들 모양을 구상하여」라는 표현에는 생각하고 계획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성막의 기본적인 규격과 목적은 하나님이 정하셨지만, 그것을 실제 물건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과 창의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인간의 지혜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혜가 사용될 목적을 마련합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은 강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출애굽기 1:11–14는 그들이 파라오를 위해 건설 노동을 하며 혹독한 노역을 감당했다고 기록합니다. 5장에서는 벽돌 생산량을 둘러싼 압박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가운데 한 사람이 하나님이 머무실 성막을 만드는 일을 맡습니다.

이집트에서 노동은 파라오의 명령 아래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일꾼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혜를 주시어 자신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노동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노동이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지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 성막을 만들지 않으신다

출애굽기 31:6–11 본문 →

브살렐에게 특별한 능력이 주어졌다면, 그가 성막 제작의 모든 일을 혼자 수행하는 것일까요?

「보아라. 내가 단 지파 사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그와 함께 일하도록 세웠다. 또 지혜로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지혜를 주었다. 그들은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한다.」출애굽기 31:6 · 두루새김

먼저 브살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와 함께 일하도록 세워진 오홀리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일일이 기록되지 않은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감정뿐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심하는 내적인 능력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원문의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표현을 단순히 선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지혜롭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실제 제작 활동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브살렐에게만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 일꾼의 마음에도 지혜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출애굽기 35:30–35와 36:1–2에서 더욱 구체화됩니다. 그곳에서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다시 등장하고,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여러 사람이 실제 제작을 위해 부름받습니다. 특히 출애굽기 35:34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능력도 주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지혜는 자신의 솜씨를 발휘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기술을 전하는 일에도 사용됩니다.

이제 7–11절은 그들이 만들어야 할 것들을 열거합니다. 만남의 천막에서 시작해 증언을 넣을 궤와 속죄판, 상과 등잔대, 두 제단과 대야, 제사장의 옷, 기름부음에 쓸 기름과 향까지 등장합니다.

6절은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11절은 「내가 너에게 명령한 대로 이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끝맺습니다. 두 표현 사이에 성막의 모든 주요 구성 요소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하고 구상할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막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곳을 자기 작품으로 소유하거나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명령만 내리시고 결과를 요구하시는 분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 일을 수행할 지혜를 주시고, 함께할 사람을 세우시며, 필요한 능력을 나누어 주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명령을 마친 다음에, 하나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도 멈추어야 한다

출애굽기 31:12–15 본문 →

12절에서는 새로운 말씀이 시작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는 반드시 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의 표징이다. 나 여호와야훼가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31:13 · 두루새김

하나님은 지금 성막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하고 계십니다. 일꾼들이 준비되었고, 그들이 만들어야 할 물건들도 정해졌습니다. 이제 실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이 아무리 거룩하더라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일이 선한가 악한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과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성막 제작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할 때, 가장 먼저 안식일 규정을 말합니다(35:1–3). 그런 다음 성막에 필요한 예물과 제작에 관한 지시를 전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한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의 경계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을 더럽히는 사람은 반드시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날에 일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1:14 · 두루새김

그리고 15절에서도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거듭 말합니다. 본문은 안식일 위반을 언약을 어기는 매우 중대한 일로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시나이 언약 아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법적 규정입니다. 오늘날의 종교적 실천에 고대 이스라엘의 형벌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문제는 별도의 신학적 논의를 필요로 합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표징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기술과 능력을 통해 성막을 만듭니다. 하나님께 드릴 물건들을 실제로 완성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자신들이 거룩한 백성이 되는 자격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나 여호와야훼가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은 사람이 일을 멈춤으로써 자신의 지위와 능력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날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하는 동안에만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멈추는 동안에도 드러냅니다.

조금 더 깊이

3절과 5절에서 제작 활동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히브리어 멜라카는 14–15절에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나타내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13절 첫머리의 히브리어 아크는 이러한 연결을 이해할 때 주목할 만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강조하는 ‘반드시’라는 뜻으로도, 앞선 내용에 제한을 두는 ‘그러나’ 또는 ‘다만’이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읽기에서는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명령의 엄중함이 강조됩니다. 두 번째 읽기에서는 성막을 만드는 일에 관한 명령이 주어진 뒤, 그 일도 안식일이라는 제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조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다만 「사형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과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라는 선언이 법적으로 어떤 관계를 갖는지, 뒤의 선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행하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모두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

출애굽기 31:16 본문 →

안식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13절과 17절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이 「나와 너희 사이의 표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7절에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다.」

안식일 역시 단순히 시간을 관리하는 생활 규칙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언약의 표징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영원한 언약으로 삼아 대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출애굽기 31:16 · 두루새김

여기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한 세대에만 해당하는 임시 조치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세대를 이어 가면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기억하고 드러내는 지속적인 표징으로 제시됩니다.

할례는 사람의 몸에 흔적을 남기고, 성막의 기구들은 일정한 형태를 지닌 물건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일곱째 날마다 찾아오는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은 특정한 물건을 소유하는 것으로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멈추는 것으로도 그 관계를 나타냅니다.

성막은 하나님께 구별된 공간이고, 안식일은 하나님께 구별된 시간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시며 만나시는 장소로 마련되고,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둘을 나란히 놓은 본문은 거룩함이 특정한 건물이나 물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 속한다는 사실은 사람이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에도 나타납니다.

쉼은 노동으로 지친 사람이 필요에 따라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1장의 안식일은 사람이 얼마나 피곤한지, 맡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지켜야 하는 날입니다.

이 날의 의미는 인간의 필요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날을 구별하셨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숨을 돌리셨다는 뜻

출애굽기 31:17 본문 →

17절은 안식일을 지켜야 할 근거로 창조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다. 나 여호와야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는 쉬며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1:17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창세기 2:2–3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으며, 그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실제로 육체적인 피로에 시달리셨거나, 기력이 떨어져 회복이 필요하셨다는 설명이 아닙니다. 본문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멈추시고 안식하셨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창조의 일을 멈추셨다는 사실이 그들의 노동에 한계를 정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끝없이 일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 23:12에서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소와 나귀가 쉬고 여종의 아들과 나그네가 기운을 되찾게 하려는 목적을 밝힙니다. 그곳에서 기운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사용된 동사는 31:17에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נָפַשׁ⁩)로 옮긴 말과 같은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23장은 사회적 관계와 노동의 현실 속에서 안식일이 가져오는 쉼을 강조합니다. 31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드러내는 표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쉬셨다는 사실은 인간의 쉼을 정당화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쉼을 명령하셨다는 사실은 그 쉼이 힘있는 사람들의 특권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는 뜻을 드러냅니다.

출애굽기 5장에서 파라오는 광야에서 제사하게 해 달라는 요구에 짚 공급을 끊고 생산량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필요보다 작업량이 우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질서는 다릅니다.

파라오 아래에서는 이스라엘의 노동이 억압의 수단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동에 목적을 주실 뿐 아니라, 그들의 시간 가운데 일하지 않아야 할 날을 구별하십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을 노역의 장소에서 옮겨 놓는 사건일 뿐 아니라, 그들이 누구의 말씀에 따라 일하고 쉬며 살아갈 것인가를 바꾸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제작 능력을,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돌판을

출애굽기 31:18 본문 →

이제 장면이 갑자기 바뀝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말을 마치시고, 증언이 적힌 돌판 두 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신 돌판이었습니다.출애굽기 31:18 · 두루새김

출애굽기 24:12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이 기록하신 돌판을 주시겠다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그 돌판을 받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돌판에 적힌 증언의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주십니다.

여기서 인간의 제작과 하나님의 기록이 만납니다.

성막의 기구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가운데 놓일 증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출애굽기 25:16에서 하나님은 증언을 궤 안에 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31장 마지막에 증언이 적힌 돌판이 주어지는 일은 성막 제작 명령과 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성막은 인간의 솜씨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막이 가리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인간의 솜씨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혜는 귀하지만, 그 지혜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만드는 물건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지만, 그 물건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기 뜻대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셨습니다. 동시에 언제 일을 멈추어야 하는지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세에게 하시던 말씀을 마치십니다.

말씀을 듣는 시간이 끝나고, 그 말씀을 받아 살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신 돌판」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에게 인간과 같은 신체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문장이 아닙니다. 돌판의 글이 인간의 생각이나 기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돌판 두 개가 모세의 손에 놓이다

출애굽기 31:1–18 본문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능력과 책임을 맡기신다는 것은 그 일을 맡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면서도 그 역할의 한계를 알도록 하십니다. 일을 수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고, 일을 멈추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안식일 규정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야 하는가의 문제와 곧바로 같은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의 안식일은 분명하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주어졌습니다.

아직 성막의 금속 기구도, 휘장도, 제사장의 옷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돌판 두 개를 받습니다.

성막의 가장 깊은 곳에 두도록 명령받은 증언이 이제 그에게 주어집니다. 그것은 브살렐이 다듬은 돌도 아니고, 오홀리압이 새긴 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신 돌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만들어야 할 것을 만들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만들어 낼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합니다.

31장은 아직 성막이 완성되지 않은 자리에서 끝납니다. 일꾼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지만, 모세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모세의 손에는 두 돌판이 들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증언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