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12–24장 · 아브라함의 길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 리브가가 선택한 길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찾아 먼 길을 다녀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긴 이야기에서 정작 신랑 이삭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처음의 의논에도 참여하지 않고, 아내를 찾는 여정에도 동행하지 않습니다. 장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들판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나님도 직접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선언하지도 않으시고, 종에게 나타나 길을 가르쳐 주지도 않으십니다. 종은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만, 눈에 보이는 천사가 그를 안내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대신 이야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입니다.

늙은 아브라함은 종에게 사명을 맡깁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종은 먼 길을 떠나 기도하고, 기다리고, 사람을 관찰하고, 협상합니다. 리브가는 낯선 여행자에게 물을 주고 낙타들에게까지 물을 먹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고향을 떠나겠느냐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왔습니다. 이제 그 약속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려면, 또 한 사람이 자기 고향을 떠나야 합니다.

창세기 24장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인간의 선택이 어떻게 함께 움직이는가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24장 본문 읽기 →

내 아들을 그곳으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 — 아브라함이 지키려는 두 가지

창세기 24:1–9 본문 →

아브라함은 늙어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모든 일에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창세기 24:1 · 두루새김

아브라함은 이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가축과 종들이 있고, 오랫동안 기다린 아들 이삭도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삭에게 아직 아내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이삭 한 사람의 출생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삭을 통해 다시 후손이 이어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집안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나이 든 종을 부릅니다. 이 종은 재산 관리와 중요한 일을 맡길 만큼 신뢰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손을 자신의 허벅지 아래에 놓고 맹세하게 합니다. 이는 창세기 47장 29절에서도 나타나는 맹세 방식입니다. 허벅지 아래에 손을 두는 행위가 혈통이나 후손과 관련된 상징을 담고 있다고 이해할 여지는 있지만, 본문은 그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걸고 종에게 엄숙한 책임을 맡긴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지시하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가나안 사람들의 딸들 가운데서 이삭의 아내를 데려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의 고향 땅의 친족에게 가서 아내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은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종이 물었습니다. 「그 여자가 저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주인님의 아들을 주인님이 떠나오신 땅으로 데려가야 하나요?」창세기 24:5 · 두루새김

그런데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창세기 24:6 · 두루새김

그는 이삭이 아내를 얻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삭이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는 일은 더욱 분명하게 지키려 합니다. 이유는 7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야훼가 자신을 아버지의 집과 태어난 땅에서 데려오셨고, 자신의 후손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은 단순히 현재 사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된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아내를 얻는다는 이유로 아브라함이 떠나온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약속의 방향과 어긋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결혼이 이루어질지는 열어 두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신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일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오려 하지 않으면 종은 맹세를 지킬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이삭을 그곳으로 데려가서는 안 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가 종보다 앞서 천사를 보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자가 따라오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와 상대방의 거절 가능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가나안 여자가 아니라 친족 가운데서 아내를 찾으려 했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친족이 모두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훗날 여호수아 24장 2절은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강 저편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돌아봅니다.

따라서 이 명령을 가나안 사람들은 모두 악하고 아브라함의 친족들은 모두 경건했다는 판단으로 단순화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결혼을 단순한 개인의 결혼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의 미래와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그 약속의 다음 세대를 이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종이 길을 떠납니다.

낯선 사람에게 물을 주는 여자 — 기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행동

창세기 24:10–21 본문 →

종은 낙타 열 마리를 데리고 아람 나하라임에 있는 나홀의 성으로 향합니다.

아람 나하라임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종은 아브라함의 친족이 살고 있는 지역을 찾아갑니다.

그는 성 밖 우물 곁에 낙타들을 쉬게 합니다. 시간은 저녁입니다. 물을 길으러 여자들이 나오는 때입니다.

우물은 사람들이 물을 얻고 만나는 장소입니다. 특히 물을 길으러 나오는 시간에는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이 기도했습니다. 「제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야훼, 부디 오늘 제가 찾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제 주인 아브라함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십시오.」창세기 24:12 · 두루새김

종은 자신에게 직접 약속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자신의 임무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젊은 여자에게 『물을 마시게 물동이를 좀 기울여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그 여자가 『마시세요. 낙타들에게도 제가 물을 먹일게요』라고 대답하면, 그 여자가 주님의 종 이삭을 위해 주님께서 정하신 사람이게 해 주십시오. 그 여자를 통해 주님께서 제 주인에게 친절을 베푸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창세기 24:14 · 두루새김

여행자 한 사람에게 물을 조금 주는 일과 낙타 열 마리가 충분히 마시도록 물을 길어 주는 일은 다릅니다. 낯선 사람의 작은 부탁을 듣고, 그 사람이 부탁하지 않은 필요까지 알아차려 스스로 수고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종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 리브가는 브두엘의 딸이었습니다. 브두엘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가 낳은 아들이었습니다.창세기 24:15 · 두루새김

독자는 종보다 먼저 리브가가 바로 아브라함의 친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독자는 이미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종은 아직 모릅니다. 그는 리브가에게 물을 조금 달라고 요청합니다.

리브가가 대답했습니다. 「어르신, 마시세요.」 리브가는 서둘러 물동이를 내려 손으로 받쳐 들고 종에게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창세기 24:18 · 두루새김

그리고 종이 부탁하지 않은 말을 덧붙입니다.

종이 물을 다 마시자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낙타들에게도 물을 길어 줄게요. 낙타들이 다 마실 때까지요.」창세기 24:19 · 두루새김

리브가는 서둘러 물을 가축이 물을 마시는 통에 붓고, 다시 물을 길으러 달려가 모든 낙타에게 물을 먹입니다. 리브가는 종이 원하는 표징을 수동적으로 충족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종은 여호와야훼께서 이번 길을 잘되게 해 주신 것인지 알려고, 말없이 리브가를 지켜보았습니다.창세기 24:21 · 두루새김

그는 기도한 내용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판단을 끝내지 않습니다. 리브가가 실제로 낙타들에게 물을 다 먹이는지 지켜봅니다. 아직 그의 가문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기도와 관찰은 이 장에서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저를 이끄셨습니다 —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의 의미

창세기 24:22–28 본문 →

낙타들이 물을 다 마시자 종은 금 코고리와 팔찌 두 개를 꺼냅니다.

본문은 코고리와 팔찌의 무게까지 기록합니다. 이는 가벼운 감사 표시를 넘어 상당한 가치의 물품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종이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세요? 제게 알려 주세요. 아버지 댁에 우리가 하룻밤 묵을 곳이 있나요?」창세기 24:23 · 두루새김

리브가는 자신이 브두엘의 딸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짚과 가축 먹이도 넉넉하고 하룻밤 묵을 곳도 있다고 대답합니다. 우물에서는 낯선 여행자에게 물을 주었고, 이제는 그 여행자가 묵을 곳과 가축의 먹이까지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종이 기도했던 친절은 한순간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종에게는 더 결정적인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리브가가 바로 아브라함의 친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몸을 굽혀 여호와야훼께 엎드려 절합니다.

종이 말했습니다. 「제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그분은 제 주인에게 베푸시는 친절과 신의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 길에서 저를 제 주인의 친족 집으로 이끄셨습니다.」창세기 24:27 · 두루새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데 필요한 길이 열리고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길을 떠난 종이 우물 곁에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리브가는 친절을 베풀었고, 종은 그의 가문을 확인했습니다. 그 일련의 사건을 돌아보며 종은 여호와야훼가 자신을 이끄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아 갑니다.

이 점은 오늘날 어떤 우연한 일치라도 곧바로 하나님의 확정적인 명령으로 해석해도 된다는 뜻과 다릅니다. 본문에서 종은 기도한 조건을 확인하고, 친족 관계를 살피고, 가족의 동의를 구하며, 마지막에는 리브가 자신의 의사까지 확인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백하는 과정에 사람을 살피고 대화하는 일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친절과 신의」입니다. 이미 맺어진 관계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태도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먹기 전에 먼저 할 말이 있습니다 — 반복되는 이야기의 이유

창세기 24:29–49 본문 →

리브가는 집으로 달려가 이 일을 알립니다.

그의 남자 형제 라반은 리브가가 받은 코고리와 팔찌를 보고, 그가 들려준 말을 듣고 우물가로 달려갑니다. 그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낙타들을 위한 자리와 먹이를 마련하고, 여행자들에게 발을 씻을 물을 내줍니다.

종 앞에 음식이 차려졌습니다. 그러나 종이 말했습니다. 「제가 할 말을 다 하기 전에는 먹지 않을게요.」 라반이 대답했습니다. 「말씀하세요.」창세기 24:33 · 두루새김

그는 긴 여행을 마쳤고, 손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왜 왔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창세기 24장에서 가장 긴 발언이 시작됩니다.

종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종이라는 사실을 밝힌 뒤, 아브라함이 받은 복과 사라가 늙은 뒤에 이삭을 낳은 일을 설명합니다. 그다음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일과 리브가를 만난 일을 처음부터 다시 말합니다.

첫 번째 서술에서 독자는 종이 실제로 무엇을 경험했는지 보았습니다. 두 번째 서술에서는 종이 그 경험을 리브가의 가족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 듣습니다.

같은 사건이 이제 한 사람의 경험에서 다른 사람의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증언으로 바뀝니다.

예를 들어 처음 아브라함은 여자가 따라오려 하지 않으면 종이 맹세를 지킬 책임에서 벗어나지만, 이삭을 고향으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24:8). 그런데 종이 가족에게 전하는 말에서는 친족에게 갔는데도 그들이 여자를 보내 주지 않는다면 맹세의 저주에서 벗어난다고 설명합니다(24:41). 처음에는 여자의 의사에 초점이 있고, 두 번째 설명에서는 가족의 결정이 강조됩니다. 종이 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 맞추어 이야기의 해당 부분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큰 부자가 되었고, 사라가 늙은 뒤에 아들을 낳았으며, 가진 것이 모두 그 아들에게 주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종은 이삭이 어떤 집안의 사람이며, 어떤 미래를 가진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부와 재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인도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족들에게 직접적인 대답을 요구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제 주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신의를 지키실 생각이라면 말씀해 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도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저는 그에 맞춰 갈 길을 정하겠어요.」창세기 24:49 · 두루새김

27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베푸시는 친절과 신의를 고백했습니다. 49절에서는 리브가의 가족에게 같은 친절과 신의를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종은 이제 사람들에게도 신실한 응답을 요청합니다.

종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결정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우물가에서 종은 리브가가 낙타들에게 물을 다 먹인 뒤 장신구를 꺼내고, 그다음 그의 가문을 묻습니다(24:22–23). 그러나 가족에게 설명할 때는 리브가의 가문을 확인한 뒤 코고리와 팔찌를 끼워 주었다고 말합니다(24:47). 이 차이가 실제 행동의 정확한 순서를 둘러싼 서술상의 차이인지, 종이 사건을 간결하게 재구성한 것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무분별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이에요 — 가족의 동의와 남아 있는 질문

창세기 24:50–56 본문 →

라반과 브두엘은 종의 말을 듣고 대답합니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했습니다. 「이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이에요. 우리가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어요.」창세기 24:50 · 두루새김

「우리가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어요」라는 표현은 이 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드러났다고 판단하여 자신들이 반대하거나 별도의 조건을 내세우기 어렵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리브가를 데리고 가라고 허락합니다. 종은 땅에 엎드려 여호와야훼께 절합니다.

그리고 리브가에게 은과 금으로 만든 물건들과 옷을 주고, 그의 남자 형제와 어머니에게도 귀한 물품을 줍니다. 그날 밤 종과 일행은 먹고 마시며 묵습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종은 즉시 떠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라반과 리브가의 어머니는 리브가가 며칠이나 열흘쯤 더 머물렀다가 가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리브가는 먼 곳으로 떠나야 합니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는 일이니 작별할 시간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가족이 왜 더 머물기를 원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종이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번 길을 잘되게 해 주셨으니, 제가 늦어지게 하지 마세요. 저를 보내 주세요. 제 주인에게 돌아가겠어요.」창세기 24:56 · 두루새김

가족은 작별할 시간을 원합니다. 종은 지체하지 않고 떠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결정해야 할까요?

이야기는 뜻밖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아이를 불러 직접 물어보자.」창세기 24:57 · 두루새김

마침내 리브가 자신의 목소리가 결정적인 자리에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물품들을 단순히 여자를 사는 대금으로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결혼을 의논하는 가운데 귀한 물품이 주어졌다고 기록하지만, 각각의 물품이 어떤 법적 성격을 지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겠어요 — 리브가가 자기 길을 선택하다

창세기 24:57–61 본문 →

그들은 리브가를 불러 물었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했습니다. 「가겠어요.」창세기 24:58 · 두루새김

리브가는 낯선 사람을 따라 고향을 떠나 먼 땅으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곳에는 아직 직접 만나 본 적 없는 남자가 있습니다. 자신의 가족과 익숙한 생활을 뒤로하고 새로운 가정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이야기 처음에 종이 제기했던 질문과 연결됩니다. 「그 여자가 저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브라함은 그 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 그가 오려 하지 않으면 종은 맹세를 지킬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이제 그 질문에 리브가 자신이 답합니다.

「가겠어요.」

아브라함의 종이 확신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리브가 자신의 응답을 지나서야 실제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리브가에게 복을 빌며 말했습니다. 「우리 누이야, 네게서 수천만 자손이 나오기를 바란다. 네 후손이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의 성문을 차지하기를 바란다.」창세기 24:60 · 두루새김

이 축복의 말은 앞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며, 자기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리브가의 가족이 거의 같은 내용을 그에게 축복으로 말합니다.

여기서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약속을 이어 가는 데 필요한 배우자로만 남지 않습니다. 그 자신이 많은 후손의 어머니가 될 사람으로 축복받습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았던 것처럼, 이제 리브가가 다음 세대의 어머니가 됩니다.

리브가는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에 오릅니다. 그리고 종을 따라 길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리브가도 이제 익숙한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합니다. 물론 두 사건은 같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셨지만, 리브가에게는 종의 증언과 가족의 동의, 그리고 자신의 결정을 통해 길이 열렸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기 삶의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리브가의 결혼은 가족 사이의 의논과 재산의 교환을 포함하는 고대의 혼인 과정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에게 당시 사회의 모든 제약을 넘어선 완전한 독립적 선택권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본문이 리브가의 의사를 직접 묻고, 그의 긍정적인 응답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저녁 들판에서 마주한 두 사람 — 길의 끝에서 시작되는 사랑

창세기 24:62–67 본문 →

장면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이삭은 브에르 라하이 로이 쪽에서 왔습니다. 그는 네게브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창세기 24:62 · 두루새김

브에르 라하이 로이는 창세기 16장 14절에서 하갈과 관련하여 등장했던 우물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나를 보시는 살아 계신 분의 우물’이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하갈이 여호와야훼의 천사를 만났던 장소가 이제 이삭의 생활 지역을 설명하는 데 등장합니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이삭은 들을 거닐려고 나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낙타들이 오고 있었습니다.창세기 24:63 · 두루새김
리브가도 고개를 들어 이삭을 보고 낙타에서 내렸습니다.창세기 24:64 · 두루새김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장면은 시선의 움직임으로 시작됩니다. 앞서 종이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관찰했던 장면과 달리, 이제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리브가가 종에게 물었습니다. 「들에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저 사람은 누구세요?」 종이 대답했습니다. 「제 주인님이세요.」 리브가는 몸을 가릴 천을 꺼내 둘렀습니다.창세기 24:65 · 두루새김

그동안 종은 아브라함을 자기 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삭을 가리켜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초점이 아브라함에서 이삭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종의 임무는 끝나 가고, 이삭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종은 자신이 한 모든 일을 이삭에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본문은 그 긴 이야기를 세 번째로 반복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이미 종의 경험을 알고 있고, 리브가의 가족에게 그가 어떻게 설명했는지도 들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천막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는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사랑했습니다. 이삭은 어머니를 잃은 뒤에 위로를 받았습니다.창세기 24:67 · 두루새김

흥미로운 것은 혼인이 성립되었다는 말 다음에 사랑이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사람의 결정과 긴 여행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이 혼인 관계를 이루고, 이삭이 리브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23장에서 사라가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묻을 땅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삭이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24장의 마지막에서 그가 어머니를 잃은 뒤 위로를 받았다는 말이 등장합니다.

사라의 죽음은 단순히 이전 세대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에게도 남아 있는 상실이었습니다. 리브가의 도착은 그 상실 가운데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리브가가 사라와 같은 사람이 되거나 사라를 대신하여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삭의 아내입니다. 사라가 남긴 자리에 새로운 여성이 들어오지만, 그 관계의 성격은 다릅니다.

사라의 천막은 이제 과거의 상실만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아니라, 이삭과 리브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장소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63절의 「거닐려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수아흐는 의미를 확정하기 어려운 드문 표현입니다. 들판에서 거닐거나 생각에 잠기는 행동으로 읽을 수 있고, 묵상이나 기도의 의미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칠십인역은 이 대목을 깊이 생각하거나 묵상하는 의미의 그리스어 동사로 옮깁니다. 그러나 이삭이 정확히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본문이 알려주지 않습니다.

맺음말 — 저녁 들판으로 다가오는 낙타들

창세기 24:1–67 본문 →

하나님의 약속은 이름 없는 종의 충실한 여정과 리브가의 자발적인 응답을 지나,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 사랑하는 자리까지 이어집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고, 리브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며, 이삭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 가운데 위로를 받습니다.

이야기는 큰 기적이나 장엄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라의 천막에 리브가가 들어오고, 그가 이삭의 아내가 되며, 이삭이 그를 사랑했다는 말로 끝납니다.

한 세대가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세대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저녁 들판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만남으로 조용히 완성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