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23장

이 장의 자리 · 12–24장 · 아브라함의 길

약속의 땅에서 처음 소유한 무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아내를 묻을 땅조차 없었습니다.

창세기 23장은 바로 이 모순에서 시작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장이 사라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슬픔을 단 두 절로 기록하면서, 묘지를 구입하는 과정에는 열여덟 절을 할애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성경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아브라함의 슬픔보다 땅을 사고파는 과정을 훨씬 길게 기록했을까요?

창세기 23장은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이나 기적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사람이 슬픔 속에서 일어나 이웃들과 대화하고, 값을 치르고, 아내를 묻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조용한 행동들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현실이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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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백이십칠 년 — 긴 삶이 한 문장으로 끝나다

창세기 23:1–2 본문 →

사라가 산 햇수는 127년이었습니다.창세기 23:1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백 년, 이십 년, 칠 년을 차례대로 말한 뒤 그것이 사라가 산 햇수였다고 다시 확인합니다. 이 반복은 사라의 삶을 하나의 완결된 생애로 제시합니다.

사라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떠난 뒤 이야기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아브라함의 두려움 때문에 파라오의 집으로 데려가졌고(12:10–20),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었으며(16:1–3), 하나님의 출산 약속을 듣고 웃었습니다(18:12). 마침내 이삭을 낳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웃음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21:6).

이 모든 이야기가 이제 끝납니다.

사라는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기 위해 왔습니다.창세기 23:2 · 두루새김

기럇아르바라는 이름에 헤브론이라는 이름이 덧붙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가나안 땅에 있음을 밝힙니다. 사라가 묻힌 장소를 설명하는 19절에서도 마므레, 헤브론, 가나안 땅이라는 지리적 정보가 다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땅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서 사라가 맞이한 것은 땅 전체의 소유가 아니라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를 슬픔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삭이라는 약속의 아들이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사라가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속이 일부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현실은 아브라함의 삶에서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 장은 그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워 버리지 않습니다.

죽은 이 곁에서 일어나다 — 슬픔에서 시작되는 책임

창세기 23:3–4 본문 →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곁에서 일어나 헷 자손에게 말했습니다.창세기 23:3 · 두루새김

본문은 그가 슬픔을 모두 극복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라를 묻어야 합니다.

「저는 다른 땅에서 와서 여러분 가운데 머물러 사는 사람입니다. 제가 소유할 수 있도록 묘지로 쓸 땅을 내어 주십시오. 죽은 아내를 제 곁에서 옮겨 묻으려 합니다.」창세기 23:4 · 두루새김

게르는 자기 고향이나 친족의 영역을 떠나 다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외부인을 가리킵니다. 토샤브는 어떤 지역에 머물러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두 단어를 다른 땅에서 와서 그들 가운데 머물러 산다는 말로 풀어 옮겼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나고 자란 주민과 같은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거처는 있지만, 자기 소유의 땅이 충분히 확보된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고, 우물을 둘러싼 다툼을 겪었으며, 다른 주민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내의 죽음 앞에서 다시 자신이 다른 땅에서 와서 머물러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요청에는 다른 표현이 등장합니다.

「제가 소유할 수 있도록 묘지로 쓸 땅」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땅에 잠시 묻도록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묘지를 얻으려 합니다.

왜 그렇게 하려는지 아브라함이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행을 보면 그 차이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차례 값을 치르겠다고 강조하고, 거래가 끝날 때까지 아내를 묻지 않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의 장례를 치를 허락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지도자이십니다 — 존경과 소유권은 다르다

창세기 23:5–9 본문 →

헷 자손은 아브라함의 요청에 정중하게 대답합니다.

「어르신, 우리 말을 들어 주십시오. 어르신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지도자이십니다. 우리 무덤 가운데 가장 좋은 곳에 아내분을 묻으십시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아내분을 묻도록 자기 무덤을 내어 드리기를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창세기 23:6 · 두루새김

아브라함은 자신을 다른 땅에서 와서 그들 가운데 머물러 사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헷 자손은 그를 「하나님의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존귀한 인물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편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이 어떤 성질의 뛰어남이나 위대함을 강조하는 데 쓰이기도 하므로, 매우 존귀한 지도자라는 뜻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헷 자손이 아브라함을 하찮은 외부인으로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소유할 묘지를 원했습니다. 반면 헷 자손은 자기들의 무덤을 사용하도록 허락하겠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무덤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그 장소를 자기 소유로 확보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의를 갖추어 몸을 굽혀 절한 다음, 다시 구체적인 요청을 합니다.

「그가 가진 막벨라 굴, 곧 그의 밭 끝에 있는 굴을 제게 팔아 달라고 해 주십시오. 제가 은으로 값을 모두 치르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그 굴을 제 소유의 묘지로 넘겨받으려 합니다.」창세기 23:9 · 두루새김

초하르의 아들 에브론이 소유한 막벨라 굴입니다. 그가 값없이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값이 지불된 매매와 단순한 사용 허락이나 호의로 거저 주는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상대방의 선의에 계속 의존하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땅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언젠가 그 땅을 자신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이유로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유권을 일방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들과 대화하고, 동의를 구하고, 값을 지불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근거로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곧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할 수 있는 허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과 다른 사람들의 현재 권리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드립니다, 그러나 사백 셰켈입니다 — 정중한 말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래

창세기 23:10–16 본문 →

에브론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본문은 그가 헷 자손 가운데 앉아 있었으며, 성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듣는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고 설명합니다. 성문은 고대 도시에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장소일 뿐 아니라, 공동체의 공적인 일들을 의논하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어르신.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그 밭을 어르신께 드립니다. 그 안에 있는 굴도 드립니다. 제 백성이 보는 앞에서 어르신께 드립니다. 아내분을 묻으십시오.」창세기 23:11 · 두루새김

아브라함이 처음 원했던 것은 밭 끝에 있는 굴이었습니다. 에브론은 이제 굴뿐 아니라 밭 전체를 함께 언급합니다. 그리고 「드립니다」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합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몸을 굽혀 절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의 사람들이 듣는 가운데 에브론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디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그 밭값을 은으로 드리겠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그러면 제 아내를 그곳에 묻겠습니다.」창세기 23:13 · 두루새김

거래의 대상이 굴에서 밭과 굴 전체로 넓어진 것입니다.

「어르신,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은 400셰켈 값어치의 땅이 저와 어르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아내분을 묻으십시오.」창세기 23:15 · 두루새김

이 말은 여전히 정중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실제로 값을 치러야 할 금액도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에브론이 헷 자손 앞에서 말한 값대로, 상인들이 거래에 쓰는 은으로 400셰켈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습니다.창세기 23:16 · 두루새김

아브라함은 훗날 자신이나 후손들이 그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때, 단지 누군가가 한때 호의를 베풀었다는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얻습니다.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값이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은 겉으로 보면 매우 관대한 제안입니다. 그러나 에브론이 정말로 돈을 전혀 받지 않고 거저 주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뒤이어 아브라함이 값을 지불하겠다고 말하자, 에브론은 곧바로 은 400셰켈이라는 금액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드립니다」라는 말을 거래가 이미 값을 받지 않고 완료되었다는 선언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상대에게 호의를 표시하면서 거래를 진행하는 정중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 이루어진 땅 거래가 기록되어 있지만, 땅의 크기와 성격, 거래 당시의 경제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금액만 비교하여 알맞은 가격이었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에브론이 제시한 가격이 공정했는지 부당했는지 직접 평가하지 않습니다. 셰켈은 여기서 무게 단위이며, 「상인들이 거래에 쓰는 은」이라는 표현은 거래에서 인정되는 기준에 맞추어 은을 달아 주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밭과 굴과 모든 나무 — 처음으로 확정된 소유

창세기 23:17–18 본문 →

거래가 끝나자 본문은 땅의 범위를 자세히 나열합니다.

그 거래에는 마므레 맞은편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과 그 안의 굴, 밭의 사방 경계 안에 있는 모든 나무가 포함되었습니다. 헷 자손, 곧 그 성의 성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 모든 것이 아브라함이 사들인 재산으로 확정되었습니다.창세기 23:17–18 · 두루새김

아브라함이 소유하게 된 것은 단순히 굴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밭과 굴, 그 경계 안의 나무까지 포함한 특정한 땅입니다.

그에게는 그 땅에서 살아갈 거처가 있었지만, 주민들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아 자기 소유로 확정되는 땅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그는 처음으로 이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기록되는 자신의 땅을 갖게 됩니다.

창세기 12장 7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후손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17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바라보는 땅을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 8절에서는 가나안 땅 전체를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시겠다는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를 묻기 위해 겨우 한 밭을 구입합니다.

약속의 크기와 현재의 소유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가나안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실제로 소유하게 된 것은 막벨라의 밭과 굴입니다.

그 뒤에 사라를 묻었다 — 거래의 끝에서 다시 돌아온 아내

창세기 23:19–20 본문 →

긴 협상이 끝난 뒤에야 사라의 이름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 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막벨라 밭의 굴에 묻었습니다. 그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곧 헤브론 맞은편에 있었습니다.창세기 23:19 · 두루새김

이 순서는 우연히 기록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요구한 것이 자신에게 속한 묘지였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이야기는 땅의 경계와 가격, 거래의 증인들에 집중하다가 마지막에 다시 사라에게 돌아옵니다. 그토록 자세한 거래가 이루어진 이유는 바로 사라를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그 밭과 그 안의 굴은 헷 자손에게서 아브라함에게 넘어가, 그가 소유한 묘지로 확정되었습니다.창세기 23:20 · 두루새김

17–18절에서 이미 소유권이 확정되었다고 기록했는데, 20절에서 다시 같은 내용을 반복합니다. 이 반복을 통해 독자는 이야기의 최종 결과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이후 창세기에서 막벨라 굴은 가족의 매장지로 계속 등장합니다. 아브라함도 그곳에 묻힙니다(25:9–10). 이삭과 리브가, 레아도 그곳에 묻혔다고 기록되며(49:31), 야곱 역시 그곳에 묻힙니다(50:13).

약속의 완성을 보지 못한 세대가 그 땅에 남긴 첫 번째 분명한 소유는, 다음 세대가 기억할 수 있는 무덤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3절부터 18절까지 사라를 가리킬 때 죽은 이를 뜻하는 표현이 여러 차례 쓰이며, 아브라함도 사라를 자신의 죽은 이라고 부릅니다. 두루새김은 아브라함의 말에서 이를 「죽은 아내」나 「제 아내」로 풀어 옮겼습니다. 매장지를 얻기 위한 공식적인 대화 속에서 죽은 가족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장례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19절에서는 다시 「아내 사라」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맺음말 — 사라를 묻은 땅

창세기 23:1–20 본문 →

이것은 단순히 고대의 땅 거래를 보존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평생 약속받았으나 아직 자기 것으로 갖지 못했던 땅에, 마침내 자신의 소유로 인정받는 첫 번째 장소를 마련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가족이 살아갈 집이 아니라 아내를 묻을 무덤이라는 데 이 장의 깊은 역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묘지 구입을 하나님이 반드시 명령하신 신앙 행위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왜 특별히 그 장소를 영구적인 가족 묘지로 삼고 싶어 했는지 그의 모든 동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 땅.

그 안에 있는 굴.

그리고 그곳에 묻힌 사라.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넓은 가나안 땅 가운데, 그의 가족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자기 것이라 부를 수 있게 된 곳은 바로 그 무덤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