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26장
이 장의 자리 · 25–36장 · 이삭과 야곱
하나님이 마련하신 자리
창세기 26장은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실제로 이삭은 크게 번성합니다. 그런데 복을 받을수록 그의 삶은 더 불편해집니다.
사람들이 그를 질투하고, 그의 우물을 막고, 마침내 그에게 떠나라고 요구합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파도 사람들이 물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삭은 다시 옮겨 가고, 또 우물을 팝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에서는 이삭을 쫓아냈던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평화의 언약을 맺자고 요청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 장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는 삶일까요, 아니면 빼앗기고 쫓겨나는 상황에서도 살아갈 자리를 얻게 되는 삶일까요?
처음에 하나님은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며」라고 약속하십니다(26:3). 우물 다툼이 이어진 뒤에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26:24).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방인들이 「여호와야훼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26:28).
처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이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들도 알아보는 현실이 됩니다.
기근 속에서 주어진 명령 — 떠나지 말고 머물러라
이야기는 흉년으로 시작합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 때 있었던 첫 흉년과는 다른 흉년이었습니다. 이삭은 그라르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왕 아비멜렉을 찾아갔습니다.창세기 26:1 · 두루새김
창세기의 독자라면 이 첫 문장에서 아브라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12:10).
여호와야훼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지 마라. 내가 네게 일러 주는 땅에서 살아라.」창세기 26:2 · 두루새김
아브라함에게는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12:1). 이번에는 이삭에게 다른 형태의 명령이 주어집니다.
흉년을 피해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삭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판단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문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명령만 하시지 않습니다.
「이 땅에 나그네로 머물러라. 내가 너와 함께하며 네게 복을 주겠다. 너와 네 후손에게 이 모든 땅을 주고,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한 맹세를 이루겠다.」창세기 26:3 · 두루새김
여기서 「나그네로 머물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구르(גּוּר)는 자기 소유의 땅에 정착한 주인으로 살기보다, 다른 사람의 땅에서 머물러 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는 그곳에 머물러야 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에게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이후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떠나라고 명령하는 장면은 바로 이러한 불안정한 위치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바로 그 땅에서 나그네로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어지는 약속은 이삭의 가족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네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그들에게 이 모든 땅을 주겠다. 땅의 모든 민족이 네 후손처럼 복을 받기를 빌 것이다.」창세기 26:4 · 두루새김
마지막 문장의 히브리어 동사는 히트바라쿠(בָּרַךְ)입니다. 민족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들어 자신들의 복을 빌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 후손을 통해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동사의 형태만으로 두 의미 가운데 하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어느 쪽으로 읽어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다른 민족들과 무관하게 홀로 복을 누리는 존재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의 후손은 여러 민족이 복을 말하고 경험하는 역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지켰다는 말
5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여러 표현으로 풍성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내 말을 듣고 내가 맡긴 일과 내 명령과 규칙과 가르침을 지켰기 때문이다.」창세기 26:5 · 두루새김
「명령」, 「규칙」, 「가르침」이라는 말은 이후 모세를 통해 주어지는 율법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브라함이 후대에 주어질 모세 율법의 모든 조항을 이미 알고 지켰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씀과 요구를 충실히 따랐다는 사실을 여러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안에서 그 순종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고 길을 떠났으며(12:4), 자신의 집안이 하나님의 길을 지키도록 이끌 책임을 받았고(18:19),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에서도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했습니다(22:15–18).
특히 창세기 22:18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모든 민족이 그의 후손을 통해 복을 받는다는 약속을 전합니다. 창세기 26:4–5는 그 말씀과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삭은 자신이 이루어 낸 일을 근거로 복을 약속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관계와 그에게 하신 맹세 안에서 복을 약속받습니다. 이삭은 이 말씀에 따라 그라르에서 삽니다(26:6).
그러나 그곳에 머문다고 해서 두려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이삭
그곳 사람들이 아내에 관해 묻자 이삭은 말했습니다. 「제 누이예요.」 이삭은 리브가를 자기 아내라고 말하기가 두려웠습니다. 리브가가 아름다워서 그곳 사람들이 리브가 때문에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창세기 26:7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말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12:10–20; 20:1–18). 아름다운 아내, 남편의 두려움, 누이라는 소개, 이방 통치자의 발견, 그리고 통치자가 오히려 잘못된 행동의 위험을 지적하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두 사건이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사라가 실제로 아버지가 같은 누이이기도 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20:12). 반면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는 그런 관계가 제시되지 않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의 친족이지만 누이는 아닙니다.
또한 이번에는 리브가가 왕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은 우연히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진실을 발견합니다.
이삭이 그곳에서 지낸 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왕 아비멜렉은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다가, 이삭이 아내 리브가와 다정하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창세기 26:8 · 두루새김
이삭은 자신을 보호하려고 진실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와의 자연스러운 친밀함이 그 거짓말을 드러냈습니다.
아비멜렉이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하마터면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네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할 뻔했다. 그랬다면 네가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한 셈이 아니냐?」창세기 26:10 · 두루새김
여기서 이야기의 관점이 뒤집힙니다.
이삭은 이방인들을 두려워했지만, 그들의 왕은 다른 사람의 아내와 관계를 맺는 일이 공동체가 죄를 짓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판단에서 이방인보다 지혜롭거나 의롭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어서 이삭과 리브가를 해치는 사람은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이삭이 실수하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의 두려움과 잘못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삶이 지켜지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물론 본문이 아비멜렉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 일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 약속이 주어진 뒤 이삭의 생명이 실제로 보호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이삭은 그라르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삶에는 다른 문제가 찾아옵니다.
풍요가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삭은 그 땅에 씨를 뿌려 그해에 백 배를 거두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창세기 26:12 · 두루새김
본문은 이삭의 농사 기술이나 특별한 경영 능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라는 말로 수확의 의미를 밝힙니다.
여기서 「백 배」를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 모두 얻게 될 수익처럼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수치는 이삭이 경험한 특별한 풍요를 그리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으면 언제나 같은 양의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이삭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재산이 계속 늘어나 마침내 아주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창세기 26:13 · 두루새김
원문은 같은 어근을 되풀이하며 이삭의 번성을 강조합니다. 한 번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 재산이 계속해서 늘어났다는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이삭에게는 양과 염소 떼와 소 떼가 있었고, 종도 많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질투했습니다.창세기 26:14 · 두루새김
이삭이 복을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복이 주변 사람들의 호의까지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곁을 떠나라. 네가 우리보다 훨씬 강해졌기 때문이다.」창세기 26:16 · 두루새김
이삭에게 주어진 풍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위협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라르 지역에서 아주 많은 가축과 종을 거느리는 부유한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땅의 통치자는 아니었습니다.
재산은 늘어났지만 정착할 수 있는 권리는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에서 그 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이삭의 처지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우물들을 모두 흙으로 메워 막아 버렸습니다. 그 우물들은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판 것이었습니다.창세기 26:15 · 두루새김
가축을 많이 기르는 사람에게 물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합니다. 특히 건조한 지역에서는 우물을 얻지 못하면 많은 가축과 종을 거느린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물을 막는 것은 이삭이 그 땅에서 삶을 이어 갈 수 있는 토대를 무너뜨리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이삭이 사람들을 모아 싸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떠납니다.
이것을 곧바로 이삭의 위대한 온유함이라고 칭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삭은 다른 사람의 땅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었고, 상대편에는 그 지역의 왕과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정도의 무력이나 협상할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본문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이동으로부터 이 장에서 가장 길고 독특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에섹, 싯나, 르호봇 — 우물의 이름으로 기록된 갈등
이삭은 그라르 골짜기로 옮겨 가서 우물을 다시 팝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뒤 블레셋 사람들이 막아 버린 우물들이었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들을 아버지가 붙인 이름 그대로 불렀습니다.창세기 26:18 · 두루새김
고대 이야기에서 장소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남긴 우물과 그 이름을 이어받음으로써 자신이 살아가는 땅과 아버지의 역사를 연결합니다.
그런데 우물을 다시 파는 것만으로 갈등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삭의 종들은 새 우물도 팝니다. 땅을 파다가 샘물이 솟는 우물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살아 있는 물은 고여 있는 물과 달리 솟아나거나 흐르는 물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샘물이 솟는 우물」로 옮겼습니다.
에섹 — 물을 찾았지만 다툼이 생기다
첫 우물의 이름은 에섹입니다.
그라르의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며 말했습니다. 「이 물은 우리 것이야.」 그들이 이삭과 다투었기 때문에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고 지었습니다.창세기 26:20 · 두루새김
이삭은 우물의 이름을 통해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합니다. 독자가 눈여겨볼 것은 이삭이 다툼을 일으켰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삭은 그곳을 떠나 다른 우물을 팝니다.
싯나 — 갈등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다
이삭의 종들이 다른 우물을 팠지만, 그라르의 목자들은 그 우물을 두고도 다투었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싯나라고 지었습니다.창세기 26:21 · 두루새김
첫 번째 우물의 이름이 다툼이었다면, 두 번째 이름은 그 갈등을 더욱 적대적인 일로 겪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다만 두 번째 사건이 첫 번째보다 얼마나 격렬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자세한 협상이나 논쟁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한 우물에서 다음 우물로 옮겨 가는 행위가 계속될 뿐입니다.
그러나 물러나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는 우물을 빼앗길 때마다 물을 찾는 일 자체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자리를 옮기지만 계속해서 팝니다. 이삭은 다른 사람의 요구 앞에서 자신의 생존을 내던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충돌을 피하면서도 가족과 가축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을 계속 찾습니다.
이삭의 행동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다툼을 키우지 않으면서도 삶을 이어 가려는 끈질김입니다.
르호봇 — 마침내 넓은 자리를 얻다
세 번째 우물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이삭은 그곳에서 옮겨 가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 우물을 두고는 아무도 다투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짓고 말했습니다. 「이제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에게 넓은 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니, 우리는 이 땅에서 자손을 낳고 늘어날 것이다.」창세기 26:22 · 두루새김
실제로는 이삭이 자리를 옮겼고, 그의 종들이 우물을 팠습니다. 물을 발견한 것도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일로 이해합니다.
이삭이 말하는 「넓은 자리」는 단지 땅의 면적이 넓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쫓겨나던 사람이 마침내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된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자손을 낳고 늘어날」 미래를 내다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처음에 하신 약속과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후손이 많아지고 땅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서 이삭이 경험한 첫 번째 중요한 변화는 모든 땅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우물 하나를 두고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얻는 일이었습니다.
이삭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지 않았지만, 마침내 살아갈 자리를 얻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다시 들려온 약속
르호봇에서 다툼 없이 물을 얻게 된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그날 밤 여호와야훼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 종 아브라함 때문에 네게 복을 주고 네 후손을 많게 하겠다.」창세기 26:24 · 두루새김
이삭이 그날 밤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앞서 그가 생명의 위협을 걱정했고, 땅에서 쫓겨났으며, 계속해서 물을 둘러싼 갈등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말씀은 그의 삶과 동떨어진 막연한 위로가 아닙니다.
약속의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듣는 사람의 경험은 달라졌습니다.
처음 이삭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는 흉년을 피해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때였습니다. 이제 그는 사람들에게 쫓겨나고 우물을 둘러싸고 다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처음 한 번 들으면 더 이상 필요 없는 정보가 아닙니다. 삶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져도 다시 의지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제단과 천막과 우물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세 가지 일을 합니다.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는 그곳에 천막을 쳤고, 그의 종들은 우물을 팠습니다.창세기 26:25 · 두루새김
제단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입니다. 천막은 이삭과 그의 가족이 사는 곳입니다. 우물은 그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을 공급합니다.
예배, 거주, 생존을 위한 노동이 한 장면 안에 모여 있습니다.
그는 큰 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천막을 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땅을 약속하셨지만 이삭이 그 땅 전체를 소유한 주인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현실의 필요를 위해 땅을 파는 일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물을 주실 것이라고 믿으면서 우물을 파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으로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이삭을 내쫓았던 사람들이 평화를 청하다
아비멜렉이 자기 친구 아훗삿과 군대 지휘관 피골을 데리고 이삭에게 찾아옵니다.
이삭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미워하여 여러분 곁에서 쫓아내셨는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창세기 26:27 · 두루새김
이삭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지 않습니다. 「저를 미워하여」라는 표현은 그가 상대방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여 줍니다.
그런데 아비멜렉 일행의 대답은 예상과 다릅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야훼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서로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어기면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하자고 말했습니다.」창세기 26:28 · 두루새김
앞서 아비멜렉은 창문 너머로 이삭과 리브가를 보고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이제 그는 이삭이 살아온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아비멜렉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그가 이삭과 같은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삭과 적대적인 관계를 계속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해치지 않고 오직 잘 대해 주며 무사히 보내 주었듯이, 당신도 우리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해 주십시오. 당신은 지금 여호와야훼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창세기 26:29 · 두루새김
그들은 이삭을 잘 대해 주기만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그라르 사람들은 이삭의 우물을 막았고, 목자들은 이삭의 종들과 물을 두고 다투었으며, 아비멜렉은 직접 이삭에게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물론 아비멜렉은 11절에서 이삭과 리브가를 보호하도록 명령했고, 이삭을 죽이거나 재산을 전부 빼앗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이삭을 해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들의 말이 정확하다고 확인하지 않습니다. 앞선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말과 이삭이 경험한 현실 사이의 차이가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책임을 따져 묻지 않습니다.
이삭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먹고 마셨습니다.창세기 26:30 · 두루새김
이 장면에서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는 적대 관계를 끝내고 서로 받아들이는 뜻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서로 맹세했습니다. 이삭이 그들을 배웅하자, 그들은 평안히 떠났습니다.창세기 26:31 · 두루새김
앞에서는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삭이 그들을 배웅합니다.
처음에는 쫓겨난 사람이었던 이삭이 이제는 찾아온 사람들을 평안히 돌려보내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또한 아비멜렉 일행은 앞서 이삭을 「무사히 보내 주었듯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번에는 성경이 직접 그들이 「평안히 떠났습니다」라고 기록합니다. 이삭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우물을 빼앗았던 사람들에게 보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관계는 변화했습니다.
아비멜렉과의 언약은 우선 두 집단이 서로 해치지 않기로 약속한 평화의 협정입니다. 다만 이 작은 평화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다른 민족들과 복의 관계를 이루게 되리라는 더 큰 약속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이삭 개인의 풍요에서 끝나지 않고, 이삭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언약을 맺었던 창세기 21:22–34를 떠올리게 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아비멜렉과 피골이 등장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인식과 우물, 맹세가 연결됩니다. 다만 두 이야기의 아비멜렉과 피골이 반드시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본문은 그들이 같은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물을 찾았어요」 — 브엘세바의 이름
언약을 맺고 사람들이 떠난 바로 그날, 이삭의 종들이 소식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바로 그날 이삭의 종들이 와서 자기들이 판 우물에 관해 알렸습니다. 「물을 찾았어요.」창세기 26:32 · 두루새김
본문은 이 두 사건 사이에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평화의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물이 솟았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건을 같은 날의 일로 나란히 기록한 것은 이야기의 흐름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평화가 이루어졌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도 발견되었습니다. 흉년과 다툼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이제 안정된 삶의 조건이 마련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시브아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삭도 그곳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아브라함의 종들은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의 종들도 우물을 팝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땅과 약속을 물려받았지만, 아버지가 이미 이루어 놓은 삶을 그대로 누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다시 흉년을 겪고, 다시 두려움을 경험하며, 다시 사람들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우물이 있다고 해서 그 우물에서 언제나 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막힌 우물은 다시 파야 했고, 새로운 우물도 찾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지만, 각 세대는 자기 삶의 자리에서 그 약속을 새롭게 경험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우물을 파고, 자기 시대의 평화를 맺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앞서 창세기 21:28–31에서 아브라함은 일곱 마리의 암양과 맹세를 연결하여 브엘세바의 이름을 설명했습니다. 창세기 26:23에서도 이삭은 이미 브엘세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에 올라갑니다. 따라서 33절은 그 이름이 역사상 처음 생긴 시점을 기록한다기보다, 이삭의 우물과 맹세 사건을 통해 브엘세바라는 장소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는 장면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두 설명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까지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평화롭게 끝날 것 같았던 장의 마지막 두 절
브엘세바에서 평화의 언약을 맺고 우물을 발견하는 장면은 이삭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에서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헷 사람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창세기 26:34 · 두루새김
에서가 마흔 살이 되었다는 사실은 앞서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한 나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삭도 마흔 살에 결혼했습니다(25:20).
그러나 두 결혼의 상황은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가나안 사람들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데려오지 말라고 종에게 명령했습니다(24:3–4). 그 결과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반면 에서는 헷 사람의 딸 둘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 구절만으로 에서가 부모에게서 직접 받은 결혼 명령을 어겼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의 결혼을 위해 중요하게 여겼던 기준과는 다른 선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 두 여자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을 괴롭게 했습니다.창세기 26:35 · 두루새김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여자의 성격이나 행동을 마음대로 만들어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7:46에서 리브가는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사는 것이 싫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28장에서는 에서의 결혼과 부모의 뜻이 다시 중요한 문제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마지막 두 절은 다음에 펼쳐질 가족 이야기의 갈등을 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밖의 사람들과는 평화를 이루었지만, 자기 집안에서는 새로운 괴로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물과 땅을 둘러싼 문제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지만, 아들의 결혼으로 인한 근심은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마침내 물을 찾은 사람들
이삭은 여러 곳을 떠나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는 우물을 거듭 팠고, 마침내 다툼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을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밀려났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평화를 청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양보하라는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삭이 모든 다툼에서 옳았다고 평가하지도 않고, 그의 모든 선택을 따라 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삭의 삶은 약속을 받은 사람이 모든 것을 즉시 소유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땅에서 아직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 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라르에서 쫓겨나던 사람에게 이제 하나의 자리가 생겼습니다. 그를 내쫓았던 사람들과는 평화의 맹세가 이루어졌고, 그가 머무는 곳에서는 다시 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땅 전체를 소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삭은 제단을 쌓고 천막을 쳤으며, 종들은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물을 찾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