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0 베타

요한복음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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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한 사람

예수께서는 길을 가다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한 채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입니까, 부모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도 아니고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도 아니다.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낮 동안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온다.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이 말을 하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그 침으로 진흙을 만들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실로암은 ‘보냄을 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습니다.

한 성인 남자가 실로암 연못가 돌계단에 무릎을 꿇고 두 손에 물을 모아 눈을 씻는다.
실로암에서 씻다 · 요한복음 9:6–7

이웃들의 질문

이웃들과 전에 그가 구걸하는 모습을 보았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 맞아」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야. 닮은 사람이야」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앞을 보게 되었어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진흙을 만들어 제 눈에 바르고 『실로암으로 가서 씻어라』라고 했어요. 그래서 가서 씻었더니 앞을 보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모르겠어요.」

안식일에 눈을 고친 일을 두고 벌어진 논쟁

사람들은 전에 앞을 보지 못하던 그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데려갔습니다. 예수께서 진흙을 만들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제 눈에 진흙을 발랐습니다. 제가 씻었고, 지금은 앞이 보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야. 안식일을 지키지 않잖아.」

다른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죄인이 어떻게 이런 표징을 행할 수 있겠어?」

이렇게 그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습니다. 그들이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해 주었으니, 너는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예언자입니다.」

부모에게 한 질문

유대 사람들은 그의 부모를 부를 때까지도 그가 앞을 보지 못하다가 보게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부모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너희 아들이냐?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고 너희가 말하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보느냐?」

부모가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이 저희 아들이고,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다 큰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자기 일은 스스로 말할 것입니다.」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 사람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면 회당 공동체에서 쫓아내기로 이미 뜻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다 큰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시 불려 온 사람

유대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을 두 번째로 불러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우리는 그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죄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제가 앞을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그가 네게 무슨 일을 했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했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듣지 않았습니다. 왜 다시 들으려고 합니까? 설마 여러분도 그 사람의 제자가 되고 싶은 겁니까?」

그들은 그를 모욕하며 말했습니다.

「너는 그 사람의 제자다. 하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 점이 놀랍습니다. 그 사람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여러분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말을 들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의 눈을 누군가 뜨게 했다는 이야기는 세상이 생긴 뒤로 들린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너는 온통 죄 속에서 태어났다. 그런 네가 우리를 가르치느냐?」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예수와의 만남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 물으셨습니다.

「너는 인자를 믿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그분이 누구십니까? 그분을 믿으려고 묻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가 말했습니다.

「주님,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보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심판을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 되고, 보는 사람들은 눈이 멀게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곁에 있던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설마 우리도 눈먼 사람들이라는 말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눈이 멀었다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우리는 본다』라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9장 해설 모두 보기 8
9:3 예수께서는 이 사람과 부모에게 죄가 전혀 없다고 하시나요?

제자들은 누구의 죄 때문에 이 사람이 보지 못한 채 태어났는지 물어요. 예수께서는 그 두 가지 설명을 모두 부정하고,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드러나는 것을 말씀하셨어요. 본인과 부모가 평생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는 뜻으로 범위를 넓혀 읽을 필요는 없어요.

9:4 낮과 밤 이야기는 왜 나오나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일이 드러나는 것을 말씀하신 뒤, 낮 동안 그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어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셨어요. 낮과 밤의 이미지는 이렇게 일할 때와 빛에 관한 말을 연결해요. 여기서는 밤이 정확히 어느 사건을 가리키는지 따로 밝히지 않아요.

9:8 구걸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이웃들은 그가 앉아서 구걸하던 모습을 기억해요. 그런데 이제 그가 앞을 보자, 자신들이 알던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서로 묻게 돼요.

9:22 회당 공동체에서 쫓아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이런 조치를 하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어요. 본문은 부모가 유대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자기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했다는 것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아들에게 물으라고 했다고 설명해요.

9:24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무슨 요구인가요?

그들은 곧바로 예수께서 죄인이시라는 것을 안다고 덧붙여요. 그래서 이 요구에는 자신들이 내린 판단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이 담긴 것으로 읽을 수 있어요. 그 사람은 예수께서 죄인이신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하고, 자신이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요.

9:31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는 말은 누가 하나요?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공경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신다는 생각과 자신이 보게 된 일을 연결해요. 그러고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으셨다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려요. 서술자가 모든 사람의 모든 기도에 관한 규칙을 따로 설명하는 문장은 아니에요.

9:34 이 사람이 온통 죄 속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예수께서는 3절에서 이 사람이 보지 못한 이유를 본인이나 부모의 죄로 설명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상대들이 그의 출생을 죄와 연결하며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요. 이 비난을 서술자의 판단으로 읽지 않도록 구별해야 해요.

9:41 ‘우리는 본다’는 말이 왜 죄가 남는다는 대답으로 이어지나요?

앞서 심문하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죄인이시라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그분께서 눈을 뜨게 하셨다는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반면 앞을 보게 된 사람은 예수를 인자로 알고 믿는다고 말해요. 이 대조를 배경으로 보면 ‘우리는 본다’는 말은 단순히 시력이 있다는 말에서 더 나아가, 자신들이 옳게 판단한다는 주장으로 읽을 수 있어요. 39절에서 예수께서는 심판을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어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 되고, 보는 사람들은 눈이 멀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어요. 다만 41절의 ‘눈이 멀었다면 죄가 없다’를 곧바로 ‘모른다고 인정하면 용서받는다’로 바꾸면 본문에 없는 조건을 넣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