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의 강들 곁,
그곳에 우리는 앉았다.
시온을 기억하며
울기도 했다.그곳의 포플러나무들에
우리의 리라를 걸어 두었다.참으로 그곳에서 우리를 사로잡은 자들이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던 자들이
즐거움을 청하며
「시온의 노래 하나를
우리에게 불러라」 했다.이 낯선 땅에서
우리가 어찌 여호와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솜씨를 잊어버리기를.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예루살렘을 내 기쁨의 맨 위에
올려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기를.
여호와야훼여, 에돔 자손들을 두고
예루살렘의 그날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들은 말했습니다.
「허물어라, 허물어라,
그 기초까지.」
폐허가 된 딸 바벨론아,
복되구나,
네가 우리에게 한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이여.복되구나,
네 어린아이들을 움켜잡아
바위에 내리쳐 산산이 부수는 사람이여.
137편 해설 모두 보기 4137:4 시온의 노래를 왜 부를 수 없다고 하나요?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시온의 노래는 여호와야훼의 노래예요. 그런데 그들을 짓밟은 자들은 그 노래로 즐거워하려고 해요.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라는 물음은 이런 처지에서 나온 탄식이에요. 낯선 땅에서는 언제나 하나님께 노래하면 안 된다는 규칙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137:5 왜 자기 오른손과 혀가 쓸모없어지기를 바라나요?
앞에 리라와 노래가 나왔기 때문에, 오른손의 재주는 악기 연주와 연결해서 읽을 수 있어요.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으면 말하거나 노래하기 어려워져요. 시인은 이 두 모습을 들어 예루살렘을 기억하고 가장 큰 기쁨으로 삼겠다고 다짐해요.
137:9 어린아이를 죽이는 사람에게 왜 복이 있다고 하나요?
8절의 ‘네가 우리에게 한 그대로’와 ‘너에게 되갚는 사람’이 마지막 절로 이어져요. 이 말에는 사로잡힌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잔혹한 보복의 바람이 함께 드러나요.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시인이 바벨론을 향해 내뱉는 말이에요. 본문은 그 분노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향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아요.
137:8 바벨론이 황폐해지는 것은 언제인가요?
바벨론을 꾸미는 히브리어는 파괴를 당하는 쪽을 나타내는 수동 분사예요. ‘폐허가 된’으로 옮겨 이미 무너진 상태로 읽었어요. 바벨론에 앞으로 닥칠 몰락을 내다보는 말로 읽을 수도 있어요. 시는 언제 어떤 사건으로 이루어질지 설명하지 않아요.